[김현회의 공개연예] ‘영춘기’는 약간 재미있는 학원 광고?

나의 영어 사춘기
'나의 영어 사춘기'는 영어 울렁증에 시달리고 있는 연예인들의 영어 도전기로 큰 관심 속에 시작했다. ⓒCJ E&M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나는 영어 울렁증이 대단히 심하다. 외국인이 대화를 걸어오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중고등학교 시절 문법은 열심히 했는데 이걸 어떻게 써먹어야 하는지는 잘 모른다.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사람이 너무 부럽다. 요즘 주변에 보면 어디서 배웠는지 영어 잘하는 사람들 천지다. 그럴수록 나는 더 작아진다. 이태원에도 못가고 여전히 홍대에서 노는 이유도 영어 때문이다. 사방에서 영어가 들리는 이태원은 나에게 너무나도 멀고도 두려운 곳이다.

그런 나에게 단비 같은 TV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바로 tvN ‘나의 영어사춘기’였다. 영어 깨나 잘하는 줄 알았던 연예인들이 나보다도 한참 부족한 영어 실력으로 영어에 도전하는 모습은 색다르게 다가왔다. 감정이입이 됐고 대리만족을 느꼈다. 그리고는 나도 이들과 함께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첫 회에서 강사가 내준 숙제를 인터넷으로 찾아보고 함께 공부했다. ‘CITY’를 ‘SICY’라고 쓰는 휘성을 보고는 적어도 내가 휘성보다는 낫다는 마음으로 흥미롭게 프로그램을 지켜봤다. 나도 이 기회에 자극을 받아 영어 울렁증을 극복해 보고 싶었다. 대단히 잘 만든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했다.

매 회 영어 교육과는 별로 관련도 없는 VCR 영상이 프로그램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재미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요소라고 생각하고 넘겼다. 그래도 나에게 영어 울렁증을 극복할 수 있는 뭔가를 줄 수 있는 프로그램이니 이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예능 프로그램이어서 웃음을 줄 요소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데 계속 이 프로그램을 보고 있자니 이게 예능 프로그램인지 프로그램에 출연 중인 강사의 영어 학원을 위한 프로그램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이름을 건 영어 학원을 운영 중인 이 강사가 사실상의 프로그램 주인공이었다.

여러 영어 강사가 등장하길 바랐다. 다양한 관점에서 영어 공부법을 설명해 주고 자신감을 심어주는 프로그램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나의 영어 사춘기’는 이 강사를 위한, 이 강사에 의한 프로그램이었다. 그러면서 내가 지금 이 학원 홍보 영상을 왜 보고 있는 건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다. 며칠 전 텔레비전을 돌리다가 이 강사가 학원 홍보하는 홈쇼핑 채널을 본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의 모습과 ‘나의 영어 사춘기’에서의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홈쇼핑 채널은 대놓고 광고였고 ‘나의 영어 사춘기’는 은근한 광고였을 뿐 크게 다를 건 없었다.

재미만 있으면 예능도 광고 수단이 되는 걸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지만 대부분의 시청자는 즐겨보던 예능 프로그램이 광고와 가깝다는 느낌이 들면 거부감을 갖는다. 드라마에서 갑자기 난 데 없이 홍삼을 건네주며 쭉쭉 빨아먹으라는 PPL이 나오면 몰입도가 확 깨진다. 연인과 싸우다가 갑자기 샌드위치 가게에 가 뜬금없이 주문을 줄줄 읊을 때도 마찬가지다. 내가 즐기고 있는 이 콘텐츠가 광고 덩어리(?)였다는 걸 느끼는 순간에 몰입도는 사라진다. 그래서 더 은연 중에 시청자도 알아채지 못하도록 광고를 하는 게 중요하다.

‘나의 영어 사춘기’ 4회는 송년회 때문에 본방사수를 하지 못하고 재방송을 찾아봤다. 요새는 송년회 때문에 술도 많이 마시고 정신이 없다. 그런데 경기도 파주시 파주읍 봉서리 ‘맛나짬뽕’을 먹으니 속도 확 풀리고 정신을 집중해 ‘나의 영어 사춘기’ 4회를 챙겨볼 수 있었다. 어떤가. 이 정도는 돼야 진정한 PPL 아닌가. 내가 지금 친구네 짬뽕집인 ‘맛나짬뽕’을 광고했다는 걸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은 이 칼럼을 다 읽은 뒤 포털사이트에 ‘맛나짬뽕’을 검색해 볼 것이고 “너무 멀다”면서 동네 중화 요리집에서 짬뽕을 시킬 것이다. 노골적인 마케팅이 훅 들어오면 사람들은 거부감을 느낀다. 나처럼 자연스럽게 하라. 뭐 아님 말고.

시원스쿨
‘나의 영어 사춘기’ 방송 3회 만에 이들은 영어 학원 광고를 찍었다. ⓒ시원스쿨

‘나의 영어 사춘기’는 너무 노골적인 한 영어 강사 밀어주기다. 누군가는 요리 프로그램에 나오는 셰프들도 마찬가지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요리 프로그램은 여러 셰프가 나와 다양한 요리를 선보이고 그 과중에서 웃음을 선사한다. 이들은 이미 높은 위치에 올라 부담이 될 수도 있지만 요리 서바이벌도 마다하지 않는다. 한 프로그램 자체가 한 셰프의 절대적인 존재감에 의해 구성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시원 강사가 나왔으면 오성식도 나와야 하고 민병철도 나와야 한다. 그게 균형 잡힌 ‘에듀 예능’이다. 아무리 취지가 좋다고 하더라도 시청자가 광고에 대한 거부감이 크면 그 취지도 반갑게 맞이하기가 어렵다. 더군다나 이 강사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이미 광고는 물론 홈쇼핑까지 진출한 인물이다.

내가 너무 삐딱한 게 아닌지 생각하고 있던 차에 이 거부감을 확신으로 만들어준 일이 있었다. ‘나의 영어 사춘기’ 방송 3회 만에 이 프로그램에 출연 중인 두 출연자가 영어 학원 광고를 찍은 것이었다. 바로 ‘나의 영어 사춘기’에 나오는 강사가 속한 그 학원 광고였다. 이렇게 되면 ‘나의 영어 사춘기’에 대한 몰입도는 더 떨어진다. 과연 앞으로도 ‘나의 영어 사춘기’를 순수한 의도의 영어 교육 프로그램이라고 바라볼 수 있을까. 광고에 나온 출연진과 강사의 모습을 보면 그 학원 이름만 떠오른다. 너무 노골적이어서 불편하다. 프로그램이 사랑을 받고 상품성이 있으면 광고 모델로 나서는 게 당연한 일이지만 이제 막 3회차가 방송됐을 뿐인데 이 강사와 출연진들은 벌써 광고를 찍어서 공개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협찬하고 광고하는 것도 능력이라면 이 프로그램은 능력 부족이다. 너무 노골적이어서 거부감이 든다. TV 프로그램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건 그들에겐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도 시청자들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 처음에는 공감하면서 몰입했던 ‘나의 영어 사춘기’가 이제는 그냥 유명인들이 나오는 약간 재미있는 영어 학원 광고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속이 좋지 않으니 ‘맛나짬뽕’이나 먹으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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