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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니어스 | 홍인택 기자] 도심 속에서도 경기장을 방불케 하는 공간이 있다. 바로 '스포츠 펍'이다. 스포츠 펍에 모인 축구 팬들의 열기는 뜨거웠다. 그러나 이 스포츠 펍들은 하나둘 씩 자취를 감추고 있다. 그중에서 비교적 오랜 시간 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는 펍 '락카룸'을 찾았다.

연희동 '락카룸'은 스포츠 펍이다. 반지하 구조로 되어있는 가게 내부는 생각보다 넓었다. 지난 23일 가게 한 쪽 공간에는 이미 자리를 잡고 '엘 클라시코' 경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경기 시작 한 시간 전인 8시가 조금 넘자 그 공간은 어느새 인산인해를 이뤘다. 어떤 사람들은 바르셀로나 유니폼을 입고 맥주를 주문했고 어떤 사람들은 레알 마드리드의 머플러를 목에 감고 삼삼오오 자리를 잡았다. 자리가 부족해 맥주 한 잔을 들고 서서 지켜보는 팬들도 여럿 있었다.

위대한 경기를 기다리던 팬들은 정작 경기 시작 시각인 9시가 되자 답답함을 느꼈다. 'SPOTV NOW'의 서버가 다운되면서 스포츠 펍에서도 중계를 제공하기가 쉽지 않았다. 사람들은 커뮤니티 사이트를 전전하며 자체적으로 경기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일행 중 한 명이 트위치로 중계되는 러시아 중계를 찾았고 가게 사장님께 전달했다. 커다란 TV 화면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리오넬 메시가 등장하자 사람들은 그제야 환호성을 질렀다. 전반 30분이 겨우 지난 시점이었다.

그러나 곧이어 트위치 방송도 저작권 문제로 링크가 끊겼다. 'SPOTV NOW'에 재접속을 시도하는 동안 팬들은 또 초조한 마음으로 문자 중계를 찾았다. 이후 다시 중계가 나오자 팬들은 환호했다. 마치 골이라도 들어간 것 같았다. 그사이 벌어진 일들은 호날두의 헛발질, 케일러 나바스와 안드레 테어 슈테겐의 선방 장면이 있었다. 스포츠 펍에 모인 팬들은 그 아까운 장면을 전반 주요장면으로 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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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속 '미니 경기장', 팬들의 환호와 탄식이 한꺼번에

후반전 바르셀로나가 중원을 장악하면서 놀라운 일들이 벌어졌다. 루이스 수아레스의 골, 메시의 단일 클럽 최다 골 신기록이 경신되는 페널티 킥 득점, 경기 마지막 알레이스 비달의 쐐기 골까지 터지며 펍에 모인 바르셀로나 팬들은 뜨겁게 열광했다. 반면 레알 마드리드 팬들은 머리를 감싸 쥐며 고개를 푹 숙였다. 모든 사람의 표정이 보이는 공간에서 사람들의 희비가 분명하게 갈리는 광경을 본 것도 처음이었다.

자신을 동국대학교 학생이라고 밝힌 A 씨는 "바르셀로나 팬으로서 자랑스럽다. 네이마르의 공백을 걱정했는데 파울리뉴가 잘 해줬다. 이게 만약 중국화라면 중국 리그는 위대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라고 전했다. 아내와 사이좋게 바르셀로나 유니폼을 입고 펍을 찾은 박모 씨(31)도 "항상 엘클라시코를 보면 마음을 졸이면서 본다. 전반에는 불안했지만 후반에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잘 끝내줘서 너무 좋다"라면서 "호나우지뉴 뛸 때부터 팬이었다가 지금 아내가 된 사람을 펍에 데리고 왔다. 이후 아내도 같이 바르셀로나 팬이 됐다"라며 기쁜 내색을 감추지 않았다.

한편 씁쓸한 표정으로 담배를 피우고 있었던 이모 씨(28)는 한눈에 봐도 레알 마드리드 팬이었다. 그는 "팀에 대한 원망이 심해졌다. 리그에서 쓰는 전술도 너무 똑같다. 오늘은 (마테오) 코바치치도 들어와서 기분이 좋았는데 막상 경기에서 크로스와 헤더를 매크로 돌리듯 경기하더라. 답답했다"라고 전하면서 "바르셀로나가 워낙 잘했다. 메시는 역시 신인 것 같다"라고 경기를 총평했다.

펍 '락카룸'은 그야말로 도심 속에 존재하는 미니 경기장이었다. 펍에 모인 팬들의 비율을 생각한다면 그곳은 마치 '캄프 누' 같았다. 낯선 사람들이 사전 계획 없이 한 장소에 모여 같은 팀을 응원하며 부둥켜안는 모습은 월드컵 이후 참 오랜만에 보는 광경이었다. 연희동이 이렇게 축구 열기로 가득한 곳이었다니. 예전엔 미처 몰랐다.

팬들이 일부러 연희동 '락카룸'을 찾은 이유

한가지 놓친 점이 있었다. 그렇게 뜨거운 열기를 보여줬던 팬들은 경기가 끝나자 마치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사람들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들은 연희동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스포츠 펍을 찾기 위해 인터넷으로 검색했고 일부러 이 먼 곳까지 왔던 것이다. 경기가 끝난 시간은 11시였다. 사람들은 대중교통 막차 시간을 걱정하며 서둘러 가게를 빠져나갔다.

'락카룸'은 얼마 남지 않은 스포츠 펍 중에 하나다. 여러 스포츠 펍들이 적자를 면치 못하며 하나둘 문을 닫았다. A 씨는 동국대학교 기숙사에 살고 있었다. 그는 원래 신촌에서 경기를 보려고 했지만 유료 중계를 제공하는 공간을 찾기 마땅치 않아 연희동까지 넘어왔다. 박 씨 부부는 역삼동에서 연희동까지 넘어왔다. 이 씨의 거주지는 인천이었다. 그들 주변에는 친구들과 축구를 보며 놀 수 있는 공간이 부족했다. 신촌 같은 번화가에서도 축구를 보기 어려워 그들은 연희동까지 발걸음을 옮겼다.

레알 마드리드 팬 이 씨는 "'봉황당'은 리버풀 팬이 모이는 곳이라고 들었다. 합정동 '크로스바'는 문을 닫았다고 들어서 '락카룸'으로 왔다"라고 밝히면서 "팬으로서는 펍이 더 많이 생겼으면 한다. 그러나 사람들도 맥주 한두 잔만 먹고 두 시간 경기를 보다가 그냥 간다. 가게 수익을 생각하면 이해는 된다"라며 스포츠 펍이 없어지고 있는 현상에 대해 의견을 밝혔다.

바르셀로나 팬 박 씨는 "신사 쪽에도 유명한 펍이 있는데 '락카룸' 분위기가 더 좋다. 신사 쪽은 공간이 좁아 소규모로 모인다. '락카룸'처럼 뜨거운 분위기가 아니라 조용히 보는 분위기다"라고 스포츠 펍의 분위기를 전하면서 "사람이 많으면 더 뜨거워질 수 있다. '락카룸'은 정말 경기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런 펍이 더 생겼으면 한다. 스포츠 펍이 없어지는 추세는 팬으로서는 아쉬울 수밖에 없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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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 떠난 펍의 뒷모습, 유료 중계는 희망일까?

한편 '락카룸'을 운영하는 주인장은 한숨을 푹푹 쉬며 담배를 태웠다. 그는 "여기서 7년을 장사했다. 손님들은 큰 경기가 열릴 때만 오신다. 꼭 스포츠 펍뿐만 아니라 소상 농이 다 힘들다고 생각한다"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그래도 경기 본다고 손님들이 이렇게 와주신다. 이제 박싱데이인데 시간이 또 새벽 세시, 네시에 열리니까 힘들어서 수익을 올리기 쉽지 않다"라면서 "이 일은 천수, 천수다. 하늘에 맡길 수밖에 없다"라며 운영의 어려운 점을 토로했다.

스포츠 펍은 한때 합정동과 종로에서 몇 군데 생기긴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을 닫기도 했다. 스포츠 펍 운영이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해외 스포츠 경기 시각이 꼽힌다. 해외 축구는 대부분 자정 이후 새벽에 많이 열린다. 미국 메이저 리그나 농구는 새벽이나 아침에 주로 펼쳐진다. 술을 마시면서 경기를 즐기기에는 어렵다는 분석이다.

다른 이유로는 중계권 문제가 있다. 시청자들이 케이블 TV 스포츠 채널에 가입하거나 포털 사이트를 통해 무료로 중계를 접할 수 있으므로 굳이 펍을 찾지 않는다는 점이다. 해외는 스포츠 중계가 대부분 유료 중계로 펼쳐져 스포츠 펍들이 중계권을 구입해 제공한다. 축구계 한 관계자는 "한국 관중들은 맥주 한잔하면서 함성을 지르고 응원하려면 경기장을 직접 찾는 수밖에 없지 않나. 또 한국 스포츠 펍들은 경기 중계를 틀어줄 뿐 다른 술집과 큰 차이가 없는 편이다. 스포츠 펍만의 차별성을 갖춰야 한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스포츠 중계가 유료로 제공된다면 지방의 축구 팬들은 중계와 스포츠 펍을 접하기 더 힘들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서울도 이 정도인데 지방은 더 심하지 않을까. 친구들 사이에서 한 명이 채널권을 구입한다고 해도 주말 자정이 넘은 늦은 시간에 친분 있는 지인의 집에 모이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지방 소재 스포츠 펍의 지리적 접근성은 막연히 또 하나의 어려움으로 다가온다. 

이날 조용한 동네였던 연희동과 펍 '락카룸'이 흥했던 이유는 스포티비의 유료 중계 정책이 분명 한몫을 했다. 서버 불안으로 인한 중계 운영에서 미숙함을 남겼지만 스포티비의 유료 정책은 새로운 경제효과를 파생시킨 것일 수도 있다. 스포츠 펍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스포츠 중계가 유료로 제공되어야 한다는 의견은 충분히 고려해볼 가치가 있다. 또한 박 씨와 축구계 관계자의 의견에 따르면 '락카룸'만의 펍 분위기도 사람들을 끌어모은 요소로 분석할 수 있다. 어쩌면 그래서, 그렇게 많은 사람이 '락카룸'에 모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렇게 많았던 스포츠 펍 중에 '락카룸'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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