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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한 시즌이 마감됐다. 많은 선수들이 팀을 떠나고 새로운 팀으로 옮긴다. 그리고 박수를 받으며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이 선수들은 오랜 시간 축구를 위해 헌신하고도 박수 한 번 받지 못하고 그라운드를 떠났다. 바로 WK리그에서 올 시즌 은퇴를 선언한 선수들에 관한 이야기다. 열악한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며 한국 여자축구를 이끌었던 이 선수들의 은퇴를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다는 점은 대단히 아쉽다. 그동안 한국 축구를 위해 땀 흘려오다 올 시즌을 끝으로 조용히 은퇴하게 된 선수들의 마지막 인사를 전한다. 그래도 이 선수들이 마지막 인사를 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 건 너무나도 가슴 아픈 일 아닌가.

전민경 (이천대교) - “친구와 약속 지키고 싶었다”

"축구하는 동안 많은 걸 배웠다.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고 행복했다. 내 인생에 있어서 절대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될 것이다. 정말 열심히 했고 후회도 없다. 축구를 할 수 있었다는 점에 대해 너무나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특히나 대표팀에서 골키퍼 경쟁을 한 (김)정미와 함께 땀 흘렸던 시간을 잊을 수 없다. 그 순간이 나에게는 가장 큰 행복이었다. 힘든 일도 많았지만 은퇴한 지금 생각해 보면 정미와 함께 운동했던 순간들이 가장 많이 생각난다. 앞으로 지도자 자격증도 딸 예정이다. 당분간은 쉬면서 공부를 하고 싶다. 축구를 하는 동안 만나지 못했던 분들과 만나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기사에 꼭 써줬으면 하는 친구가 있다. 김미숙이라는 친구다. 사회에서 알게 된 친구인데 내가 힘들 때면 언제든 달려와 힘이 돼 줬다. 선수 생활을 하면서 이 친구와 ‘우승을 하게 되면 꼭 인터뷰에서 네 이름을 한 번은 언급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우리 팀이 인천현대제철에 계속 밀리는 바람에 우승을 한 번도 못했다. 인천현대제철이 5연패를 하는 바람에 우승 소감을 이야기할 기회가 없었다. 축구를 그만두기 전 인터뷰에서 꼭 한 번 고마움을 전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은퇴 인터뷰에서라도 그 친구의 이름을 언급하게 돼 다행이다. ‘미숙아. 고마웠어.’ 이 이야기는 꼭 좀 써줬으면 좋겠다."

WK리그 명문 이천대교는 올 시즌을 끝으로 해체됐다. ⓒ여자축구연맹

위성희 (경주한수원) - “돈가스 가게에서 인생 배우는 중”

"비록 골키퍼로서 좋은 선배 언니들이 많아 내 꿈이었던 국가대표 넘버원 골키퍼를 해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4년 전 서울시청에 있을 때 팀을 우승으로 이끈 기억은 잊을 수 없다. WK리그 플레이오프도 나가보도 챔피언결정전도 나가봤다. 선수권대회 우승도 경험했고 전국체전에서는 금메달과 은메달, 동메달을 다 따봤다. 서울시청에 6년을 있었고 그 전에는 지금은 해체된 충남일화에도 3년을 있었다. 특히나 서울시청에서 나를 이끌어 주셨던 서정호 감독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항상 선수들을 위해 모든 걸 내주신 분이다. 먹는 것, 자는 것, 입는 것 모두 선수를 위하셨던 지도자였다. 선수밖에 모르는 아버지 같은 분이시다. 이 자리를 통해 진심으로 고마움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청소년 대표팀과 유니버시아드 대표팀 등에서만 활약했고 국가대표에서는 넘버3로만 있었다. 올해 팀에서 경기에 거의 나가지 못했다. 그래서 확실히 은퇴를 결심하게 됐다. 하지만 그래도 32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은퇴하게 돼 후회가 크게 남지는 않는다. 도전해 볼만큼 도전했고 최선을 다한 선수 생활이었다. 얼마 전 3급 지도자 자격증 코스를 시작했는데 지도자의 길을 가는 건 조금 더 생각해 볼 것이다. 집에서 하던 가게를 이어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부산 용호동에서 돈가스를 팔고 있다. 마침 일손도 필요했고 내가 이 시기에 은퇴하게 되면서 이 가게를 맡아 일을 배우고 있다. 힘들긴 한데 여러 사람들을 만나 대화도 나누고 배달하는 일이 재미있다."

WK리그 명문 이천대교는 올 시즌을 끝으로 해체됐다. ⓒ여자축구연맹

이은혜 (이천대교) - 해체와 맞물린 은퇴, 아쉬운 작별

"원래 올해 은퇴할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8월에 우리팀 해체 소식을 들었다. 은퇴를 이미 결정한 상황에서 팀이 해체된다는 소식을 들으니 너무 마음이 아팠다. 나는 원래 은퇴할 생각이었지만 그래도 팀이 해체되지 않고 나만 은퇴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팀에 11년 동안 있었다. 울산과학대를 졸업하던 2006년 11월에 처음 드래프트가 생겨서 대교에 입단한 뒤 11년간 한 팀에만 몸 담았다. 몇 년 전부터는 한 팀에서 뛰고 은퇴하는 모습을 그렸다. 사실 선수가 은퇴한다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다. 1년, 1년 계속 미련이 남는다. 만약 팀이 해체되지 않았더라면 1년 더 해보겠다고 마음을 바꿨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 팀이 해체되고 선수들은 다 거취를 결정했다. 팀 동료였던 안혜인만 규정상 다시 드래프트에 지원했고 다른 선수들은 은퇴나 이적을 택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가 처음 우승하던 2009년이 가장 많이 생각난다. 인천현대제철과의 챔피언결정전 1차전에서 내가 결승골을 넣고 이겼다. WK리그에서 넣은 첫 골이었다. 그리고 2차전에서도 이겨 우리가 초대 챔피언에 올랐다. 2011년도에 우리가 우승하던 날은 내 생일이었다. 그렇게 세 번이나 우승을 경험했던 그 때를 잊을 수가 없다. 19년 동안 해오던 축구를 한 순간에 그만두니 허무하기도 하다. 내가 지금 32살인데 19년이면 인생의 반 넘게 축구를 해온 거다. 지금은 그냥 여행을 다니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내년 2월까지는 아무 생각하지 않고 쉴 생각이다. 축구 말고 안 해봤던 필라테스나 요가 같은 여성스러운 운동을 해보고 싶다. 운동하느라 유지했던 살도 빼고 근육도 빼고 여성스럽게 살고 싶다."

김진영 (수원FMC) - “모든 순간이 즐거웠다”

"축구를 하면서 너무나 감사한 10대와 20대 시절을 보냈다. 15세 때부터 연령별 대표팀에 계속 소집됐고 2011년까지는 성인 대표팀에도 이름을 올렸지만 십자인대 파열 부상 이후 대표팀 생활을 마무리하고 WK리그에서만 뛰었다. 하지만 나는 선수 생활을 떠올리면 전혀 후회가 없다. 나의 10대와 20대 시절 선수 경험이 앞으로 살아갈 30대에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울산현대정보과학고 시절이 가장 즐거웠다. 중학교 때는 체계적으로 축구를 배우지 못했었는데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축구에 눈을 뜰 수 있었다. 지금은 울산과학대 감독으로 계신 정연삼 감독님께 그때 많이 배웠다."

"얼마 전 지도자 교육 강습회에 들어갔다 왔다. 다른 운동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 고민 중이다. 체육회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서 알아보고 있다. WK리그에 관심을 가져주시는 분들을 보면서 늘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뛰고 있는 선수들이 아직은 미약할지 몰라도 늘 보답하겠다는 마음으로 노력하고 있으니 계속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주시면 좋겠다. 주변에서는 내가 현역 은퇴를 하니 슬프지 않느냐고 묻기도 하는데 나는 전혀 아쉽지 않다. 축구를 했던 모든 순간이 재미있고 즐거웠다."

WK리그 명문 이천대교는 올 시즌을 끝으로 해체됐다. ⓒ여자축구연맹

차연희 (경주한수원) - 최초의 독일 진출, 이제는 지도자로

"조금 더 그라운드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면서 은퇴하고 싶었는데 올해 큰 부상을 당해 결국 한 경기도 뛰지 못하고 은퇴하게 돼 아쉽다. 개막을 한 달 앞두고 전방 십자인대 파열과 연골판이 찢어지는 큰 부상을 입었다. 이천대교에서 올해 경주한수원으로 이적했는데 팀에 도움도 주지 못하고 은퇴하게 됐다. 대표팀에서 오래 일하다 한수원 주무로 오신 송숙 선생님이 마지막 한 경기라도 뛸 수 있도록 많이 도와주셨다. 바쁘신 와중에도 재활 훈련을 열심히 챙겨주셨는데 결국 한 경기도 뛰지 못하고 은퇴하게 됐다. 송숙 선생님께 고마움과 미안함을 전한다. 또한 고등학교 때 처음 축구를 접하게 해준 하태욱 감독님과 대표팀에 처음 들어가던 시기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故최추경 감독님에게도 감사한 마음이다. 故최추경 감독님 때문에 대교를 선택하게 됐다."

"대교에 있던 시절 두 번이나 WK리그 우승을 경험했고 MVP도 탔다. 나에게는 최고의 순간이고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2009년에는 박희영과 함께 최초로 독일에도 진출했다. 힘들었지만 감사했던 순간이다. 운동을 오래 하면서 제대로 휴식을 취한 적이 없어 당분간은 휴식을 취할 생각이다. 아직도 무릎이 완치가 되지 않아 치료하면서 여행도 좀 다니고 쉴 예정이다. 일단 3급 지도자 자격증은 몇 년 전에 따 놨는데 기회를 봐 내년에는 2급 지도자 자격증까지 한 번 도전해 볼 생각이다. 당장 지도자로 돌아가기 보다는 일단은 미래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싶다. 일단은 내년 시즌 WK리그 경기장에 옛 동료들을 응원하러 자주 갈 생각이다. 은퇴라는 게 참 시원섭섭하다. 이 자리를 통해 선수 생활 하는 동안 같이 땀 흘리면서 고생했던 선,후배들과 가족들에게도 감사했다는 말을 꼭 하고 싶다."

박윤주 (경주한수원) - 그녀는 늘 부상을 안고 살았다

"돌아보면 제대로 뛴 기간이 길지 않아 아쉽다. 다친 적이 많다. 2011년에는 십자인대 파열을 당해 재활을 하고 복귀했다가 또 부상을 입어 1년을 쉬기도 했다. 늘 부상을 달고 살았고 특히나 무릎이 좋지 않아 선수 생활 내내 힘든 시기를 보냈다. 경기에 나가 이기고 컵대회에서 우승하고 플레이오프에 올라갔던 때를 생각하면 좋았지만 온 힘을 다해 경기에 집중하기에는 몸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았다. 나는 딱히 대표팀에서 활약한 선수도 아니다. 그냥 묵묵히 WK리그에 있었던 선수다. 그런 나의 은퇴까지 챙겨주는 분은 별로 없다."

"가장 친한 팀 동료 곽지혜와 이번에 나란히 은퇴하게 됐다. 은퇴하면서 서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그래서 더 특별한 동료다. 지도자 중에서는 서정호 감독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내 오래된 스승이다. 위례정보산업고등학교 때도 나를 지도했고 서울시청에서도 그만두시기 전까지 함께했다. 나에게는 아빠 같은 분이다. 그리고 은퇴를 하면서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WK리그 선수가 아니지만 많은 분들이 WK리그에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한다. 가까운 일본만 보더라도 여자선수들이 뛰는 경기에도 많은 관중이 오지만 우리는 선수 부모님과 지인이 전부다. WK리그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 주셨으면 좋겠다."

이제 이들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 인생의 절반, 혹은 그 이상을 바친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새로운 도전에 임한다. 이들이 있었기에 한국 여자축구가 발전하고 있지만 우리는 이런 이들과의 이별을 너무 소홀하게 대하는 것 같다. 오늘 소개한 이들 외에도 박시후(인천현대제철), 황보람(화천KSPO), 공혜원(수원FMC), 정원정(서울시청), 정지수, 곽지혜(이상 경주한수원) 등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결정한 모든 선수들에게 진심으로 고생했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WK리그에서 은퇴하는 이들의 마지막 인사가 많은 이들에게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이렇게 초라하게 보내면 안 되는 선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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