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축구협회 앞에서 집회를 하는 '축사국' 회원들. 9명인 줄 알았는데 8명이었다.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 | 홍인택 기자] '축구를 사랑하는 국민의 모임(이하 축사국)'은 지난가을 '히딩크 논란'과 함께 등장했다. 그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종교와 비슷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 어느 커뮤니티나 커뮤니티만의 특색을 띠지만 축사국의 종교적 색채는 그 어떤 커뮤니티보다도 짙게 나타난다.

이미 <스포츠니어스>에서는 축사국이 '히딩크를 사랑하는 모임'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칼럼을 기재했다. 해당 칼럼에서는 축사국이 '박사모'와 닮은 점을 언급하며 "세상을 바꾸는 집회가 아니라 개인 팬클럽, 혹은 신도들의 부흥성회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과연 축사국은 '박사모'의 행보를 걷고 있을까. 닮았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닮았을까. 축사국은 어떻게 시민종교가 되었을까.

'박사모'와의 유사성

지난 4월 시사 전문 매체 <시사인>은 태극기 집회에 관한 분석기사를 발행했다. <시사인>은 "태극기 집회의 비결은 '애국의 삼각형'이다. 이는 종교의 구성요소와 유사하다"라고 전했다. 해당 기사에는 '박사모'와 '일베'의 게시글을 빅데이터로 분석한 결과가 사회학의 거장 에밀 뒤르켐의 종교사회학 이론과 매우 유사하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이들이 분석한 태극기 세력의 담론에는 특정 키워드가 삼각형으로 나타나게 된다. '애국'은 '대한민국'이라는 믿음의 대상, '국민'이라는 소속감, '태극기' 집회라는 집단행동으로 구성됐다. 이는 뒤르켐의 삼각형에서 각각 믿음, 행위, 소속감에 속하는 키워드다. 뒤르켐은 종교가 자연 세계를 너무 부정확하게 설명하므로 믿음 하나만으로는 존속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종교가 집단을 정의(소속감)하고 구성원의 행동을 규제하는 기능(행위)을 했기 때문에 존속한다고 해석했다.

태극기 세력들이 시민종교로서의 '애국교'를 형성한 것이다. 파면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언론은 예수를 법정에 세운 제사장, 고영태 씨는 가룟 유다, 헌법재판관들은 본디오 빌라도, 악의 근원인 사탄은 북한과 대입시켰다.

축사국의 행보를 뒤르켐의 삼각형에 대입하면 그들의 종교적 색채는 두드러진다. 그들은 '히딩크'를 '한국축구'라는 믿음의 대상으로 설정하고 '국민'이라는 소속감을 부여했다. '히딩크 선임 촉구 집회'라는 집단행동도 단행했다. 네덜란드 행은 2차 집단행동으로 이어졌다. 그들에게 축사국 커뮤니티는 믿음을 공유하고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곳이며 집단행동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이 됐다.

또한 축사국은 태극기 세력의 '애국교'와 매우 유사한 기독교적 고난 서사를 완성했다. 히딩크는 십자가를 짊어져야 할 상징이었다. 김호곤 전 기술위원장은 본디오 빌라도가 됐다. 그들이 말하는 적폐 언론은 빌라도의 판결을 옹호하는 세력이다. 물론 '절대악' 사탄 역할은 축구협회가 맡으면서 배역이 정해졌다. 빠진 부분이 있다면 내부고발자, 혹은 배신자 역할을 할 가룟 유다다.

믿음 체계를 지탱하기 위해서는 뒤르켐의 삼각형 구성 요소와 함께 외부의 적이 필요하다. 이는 축사국과 태극기 세력뿐만 아니라 한국 보수 개신교들의 생존 전략이다. 그들은 상시적 비상사태를 설정하고 위기를 강조하며 그들을 위협하는 공공의 적을 설정한다. 박정희 정부 시절에 보여준 개신교의 행보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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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개신교와의 유사성

<슬로우뉴스>는 기독교 역사에 관한 참고문헌을 파헤치며 재작년 7월 보수 개신교의 생존 전략을 분석한 기사를 발행했다. 보수 개신교는 이승만 정권부터 선민의식으로 사회적 기반을 다졌다. 이후 쿠데타로 세워진 박정희 정권은 취약했던 정치적 정당성 확보를 위해 당시 특권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던 개신교계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보수 개신교는 반공과 반북, 친미의 적극적인 대표자로서 박정희 정권의 필요성에 충실히 기여했다. 즉, 냉전 시기라는 위기의 역사를 관통하는 시점에서 공산주의와 북한 정권은 실존하는 공공의 적이었다. 실존하는 공공의 적은 내부 결속을 다진다. 게다가 보수 개신교는 새마을 운동을 통해 강하게 결속된 집단이 공통된 목표로 집단행동을 거치면 어떤 효과가 나타나는지 체험했다. 그들이 일궈낸 한강의 기적은 개신교로서도 위대한 업적이자 자긍심이 됐다.

그러나 시간이 흘렀고 사회는 변했다. 그들이 이룩한 체계가 지난 4월 탄핵으로 무너지는 것 또한 경험했다. 더 이상 반공과 반북은 그들의 결속력을 다지지 못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당시 떠올랐던 대형 교회의 세습과 세금 문제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심지어 눈처럼 불어난 교회 부채 문제도 있다. 그들로서는 이 시기야말로 위기다. 그들은 새로운 생존 전략이 필요했다. 뒤르켐의 삼각형을 이루는 구성 요소를 바꾸면 개신교 자체가 변질된다. 그래서 그들은 새로운 사탄을 규정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최근 그들을 결속시키는 키워드는 '반동성애'다.

보수 개신교는 종북세력과 함께 성소수자, 이주민 등을 사회악으로 규정하면서 내부 결속을 다지고 있다.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은 이들을 '혐오동맹'으로 표현했다. 그들은 차별과 혐오를 이용해 예배와는 별도로 또 다른 집단행동에 나섰다. '반동성애 집회'에 나선 것은 물론이고 2010년 이후로 블로그, 카페, 포털, SNS, 모바일 메신저 등을 통해 온라인 여론 공간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멀티닉' 안희환 목사, 홀리라이프의 이요나 목사, 예수재단의 임요한 목사 등이 활발한 온라인 활동으로 동성애 혐오에 어느 정도 일조하고 있다.

보수 개신교가 한강의 기적을 그들의 자긍심으로 여기는 것처럼 2002년 월드컵 4강의 기적도 '국민'의 자긍심이 됐다. 추락하는 한국 축구의 성적 속에서 그들은 위기를 느끼고 축구협회와 김호곤 전 기술위원장을 혐오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리고 이 결과는 김 전 위원장을 국정감사로 이끌어냈고 결국 그의 사퇴까지 이끌어내며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온라인 여론 공간은 축사국의 주 무대였다. 그들의 집단 행동은 히딩크 선임 촉구 집회와 네덜란드 여행에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축구협회와 전혀 상관없는 뉴스에도 그들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똑같은 내용의 댓글을 복사하고 붙였던 적이 있다. 축사국과 연관성이 깊은 노제호 총장은 히딩크 논란을 일으켰을 때도 모바일 메신저를 이용해 여론전을 펼쳤다. 최근에는 수원 삼성 유소년 전세진의 PSV 아인트호벤 행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축사국 커뮤니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정황이 포착됐다. 이 과정에서 수원 삼성은 한 유소년 선수의 꿈을 가로막은 구단이 됐고 축구협회에 이어 새로운 '외부의 적'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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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국' 담론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

<시사인>은 "태극기 담론이 뒤르켐의 삼각형을 구현하는 시민종교라는 가설은 이들이 대책 없는 광신자 그룹이라는 의미가 아니다"라고 전하면서 "시민종교 자체는 보편적 현상이다. 노인 세대뿐만 아니라 어느 세대든 삼각형 안의 내용만 달리 채워가며 얼마든지 되풀이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보수 개신교는 위기를 조성하고 외부의 적을 꾸준히 재설정하면서 구성원을 결속시켰다. 축사국이 없어져도 또 하나의 축사국이 탄생할 수 있고 또 한 명의 노제호 총장이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축사국 담론을 시민 종교로 인식하고 접근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축사국 또한 '한국축구 위기론' 속에서 뒤르켐의 삼각형과 외부의 적을 설정하면서 나타났다. <시사인>은 기사 마지막에 신흥 종교들이 겪게 되는 '제도화의 딜레마'를 언급한다. 신흥 종교는 어느 시점이 되면 신앙 몰입 강화와 대중적 확산의 갈림길에 선다는 것이다. <시사인>은 김진태 의원 등 명사들의 선동으로 태극기 세력이 신앙 몰입 강화 경로를 선택한 것으로 분석했다.

김호곤 기술위원장이 물러난 현재 포털 뉴스 댓글에는 신태용 감독을 향한 비난이 주를 이루고 있다. 축사국은 흐릿해져 가는 그들의 정당성을 다시 세우기 위해 댓글 여론을 보며 다음 외부의 적으로 신태용 감독을 분명하게 지목할 수도 있다. 이 길은 대중적 확산의 길로 이어질 수 있다. 혹은 축사국 내부에서 '배신자'가 나타난다면 그들의 결속력은 더 강해질 수 있다. 여기에 노제호 총장이 축사국 전면에 나서게 된다면 신앙 몰입 강화로 이어질 것이다. 어떤 길을 택해도 그들은 단순한 커뮤니티가 아닌 신흥 종교로서 정체성을 띠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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