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회] ‘한국 축구 미스터리’ 우리는 어떻게 독일을 이겼나


한국 독일
한국이 독일을 이겼던 이 경기는 영원한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한국 축구 최대 미스터리.’ 15년 전인 2004년 12월 19일 부산아시아드에서 열린 한국과 독일전을 표현하는 말이다. 국내파 위주로 구성된 한국이 베스트 멤버를 총동원한 독일을 상대로 3-1 완승을 거둔 이 경기는 두고 두고 회자된다. 최고의 경기였다는 찬사도 이어졌지만 도무지 어떻게 이겼는지 알 수 없는 이 경기를 ‘미스터리’라고 표현하는 이들도 많다. 독일이 아시아 국가에 당한 첫 패배였다는 점도 놀랍고 미하엘 발락과 올리버 칸이 A매치 데뷔전을 치른 한국 선수들에게 쩔쩔 맸다는 사실도 놀랍다.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 독일과 한 조에 속한 우리는 이 15년 전 미스터리한 경기를 기억하고 또 재연해야 한다. 지금부터 ‘한국 축구 최대 미스터리’인 15년 전 독일전으로 시계를 되돌려보자. 당시 경기에 나섰던 선수들의 생생한 인터뷰도 준비돼 있다.

해외파 빠져 1.8군쯤 되던 한국팀
요하네스 본프레레 감독이 이끄는 한국은 2004년 위태로운 행보를 이어갔다. 2006년 독일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예선에서 만족스럽지 못한 경기력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베트남과의 원정경기에서 가까스로 2-1 승리를 따냈고 레바논과는 1-1로 비겼다. 몰디브를 안방으로 불러들여 치른 경기에서도 2-0으로 이기는데 그쳤다. 그리고 한 달 뒤 세계 최정상급 기량을 자랑하는 독일을 안방으로 불러들였다. 2002년 한일월드컵 준우승팀인 독일은 2006년 월드컵을 홈에서 개최하게 돼 그 홍보 목적으로 아시아 투어 일정을 잡았다. 일본을 들렀다가 한국을 찍고 태국에 가서 한 경기를 더 치르는 일정이었다. 몰디브와 베트남을 상대로도 쩔쩔 맨 한국 축구로서는 안방에서 독일에 크게 망신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앞섰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박지성과 이영표(이상 PSV 에인트호벤)를 비롯해 송종국(페예노르트), 이을용(트라브존스포르), 이천수(누만시아), 설기현(울버햄턴) 등 주축 선수들이 대거 빠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정한 A매치 데이가 아니라 독일의 동아시아 투어 일환이었기 때문에 선수들을 차출할 수가 없었다. J리그에서 뛰던 유상철과 안정환(이상 요코하마)도 뛸 수 없었다. 그나마 해외파라고는 딱 두 명이 소집 가능했다. 소속팀의 양해를 얻은 시미즈의 조재진과 독일 2부리그 프랑크푸르트의 차두리만이 대표팀 합류가 허락됐다. 당시 차두리는 베트남과의 월드컵 2차예선에서 퇴장 당해 FIFA로부터 A매치 4경기 출장 정지 처분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 친선전은 징계 대상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유권해석에 따라 대표팀에 합류할 수 있었다.

본프레레 감독은 어쩔 수 없이 신예들을 선발해야 했다. 유경렬(울산)과 김동현(수원), 남궁도, 박규선(이상 전북) 등은 생애 처음으로 성인 대표팀에 선발되는 영광을 누렸다. 김치곤과 김동진(이상 서울), 김두현(수원), 김정우(울산), 김진규, 김영광(이상 전남) 등 어린 선수들도 기회를 잡았다. 군 복무 중이었던 광주 이동국도 대표팀에 소집됐다. 그나마 차출하려던 박요셉(광주)을 군사 훈련 문제로 뽑을 수 없어 유경렬로 급히 대체했다. 하지만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주역이 대거 빠진 상황에서 무게감은 크게 느껴지질 않았다. 박지성과 이영표, 송종국 등이 대표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봤을 때 이 대표팀은 사실상 1.8군이나 2군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었다. 한일월드컵 출전 멤버는 이운재와 이민성, 차두리 등 딱 세 명이었고 해외파도 조재진과 차두리 딱 둘 뿐이었다. 본프레레 감독은 어쩔 수 없이 세대교체를 위한 시도를 해야 했다.

발락 클로제
발락과 클로제는 한국과의 경기에 출격했다. ⓒBild

칸과 발락, 최정예 전차군단의 소집
오히려 원정경기를 치르는 독일이 더 전력을 모았다. 분데스리가가 다른 유럽 리그에 비해 유독 12월 휴식기가 길다는 점을 적극 활용했다. 미하엘 발락과 올리버 칸(이상 바이에른 뮌헨), 미로슬라브 클로제(베르더 브레멘) 등 2002년 한일월드컵 준우승 주역이 대거 포함됐다. 필립 람(슈투트가르트)과 베른트 슈나이더(레버쿠젠), 로베르트 후트(첼시),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토르스텐 프링스(이상 바이에른 뮌헨) 등도 모두 소집됐다. 당시 분데스리가에서 막 뜨고 있던 케빈 쿠라니(슈투트가르트)와 루카스 포돌스키(쾰른)도 뽑혔다. 마르틴 폴츠(풀럼)와 토마스 히츠스페르거(애스턴빌라) 정도만 빼면 최정예 멤버였다. 심지어 람과 쿠라니, 티모 힐데브란트, 안드레아스 힝켈(이상 슈투트가르트) 등은 UEFA컵 경기를 치르게 돼 일본전에는 뛸 수 없지만 이후 곧바로 선수단에 합류해 한국전을 준비하기로 했다.

홈팀 한국은 2군이 나서는데 원정팀 독일은 최정예가 출장하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장면이 연출됐다. 그런데 평가전을 준비하는 한국에 깜짝 놀랄 만한 소식이 전해졌다. 독일이 일본에서 치러진 경기에서 가볍게 3-0 승리를 따냈다는 것이었다. 클로제가 두 골을 넣고 발락도 한 골을 뽑아내며 일본을 쉽게 제압했다. 이나모토 등 주축 선수들을 대거 차출한 일본으로서는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안방에서 독일에 패하고 말았다. 독일은 일본전 승리로 위르겐 클린스만호 출범 이후 4승 1무의 무패행진을 이어가게 됐다. 여기에 슈투트가르트 4인방까지 합류하게 돼 전력은 더 세졌지만 한국은 2004년 K리그를 마친 뒤 휴식기를 보내다가 선수들이 모여 정상 컨디션도 아니었다. 더군다나 새 얼굴이 많은 상황이라 짧은 기간 동안 조직력을 갖추기에도 어려웠다.

독일과의 경기가 열린 2004년 12월 19일 부산아시아드는 오랜 만에 붉은 티셔츠를 꺼내 입은 팬들로 가득 찼다. 독일은 클로제와 쿠라니 투톱을 내세웠고 발락과 슈바인슈타이거, 에른스트, 슈나이더 등이 중원에 포진했다. 포백 수비진은 힝켈과 프리드리히, 뵈른스, 람으로 구성했고 골문은 칸이 지켰다. 어디 하나 물 샐 틈 없는 완벽한 선수 구성이었다. 당시 가장 잘 나가는 신예 스트라이커 쿠라니를 선발로 기용했다는 건 클린스만 감독이 초반부터 한국을 상대로 강력한 공격을 선보이겠다는 의미였다. 반면 한국은 차두리와 이동국, 김동현 스리톱에 김두현, 박규선, 김동진, 김상식을 중원에 배치했다. 박재홍과 김진규, 박동혁 감독이 스리백으로 나섰고 이운재가 골문을 지켰다. 대표팀 경험이 극히 적은 선수들로 구성돼 경기 전부터 무게감이 독일로 확 쏠렸다.

슈바인슈타이거
슈바인슈타이거는 한국과의 경기에 출장해 박규선과 격돌했다. ⓒ맨체스터유나이티드 공식 트위터

2004년 12월 19일, 미스터리한 경기가 열리다
하지만 막상 경기가 시작되자 한국은 전혀 밀리지 않았다. 전반 10분 차두리가 상대 오른쪽 돌파를 시도하며 활발한 몸놀림을 보였고 이때부터 선수들은 긴장이 풀린 듯 폭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전반 17분 첫 골이 터졌다. 김상식이 우측사이드로 길게 내준 공을 이동국이 돌파하다가 문전으로 올렸고 독일 수비진이 헤딩으로 걷어낸 공을 달려들던 김동진이 그대로 땅볼로 강하게 때려 넣은 것이다. 칸도 어쩔 수 없는 슈팅이었다. 하지만 독일은 전반 26분 곧바로 동점골에 성공했다. 발락이 프리킥을 그대로 한국 골문으로 꽂아 넣으며 1-1 동점을 만들었다. 후반 들어 본프레레 감독은 김동현을 빼고 남궁도를 투입했고 독일도 포돌스키를 투입하면서 응수했다.

그런데 후반 26분 한국의 기가 막힌 골이 터졌다. 문전으로 올라온 크로스가 수비와의 경합 중 튕겨 나가자 이동국이 골문을 등진 채 감각적인 터닝슛을 날려 독일 골망을 흔든 것이었다. 한국 축구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골이 터지는 순간이었다. 한국이 독일을 또 다시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독일 클린스만 감독은 박동혁에게 철저히 묶인 쿠라니를 대신해 아사모아를 투입했고 한국은 이동국 대신 조재진을 투입시켰다. 하지만 후반 39분 한국에 절체절명의 위기가 찾아왔다. 박재홍의 핸드볼 파울로 독일의 페널티킥이 선언된 것이었다. 키커는 독일에서, 아니 전세계에서 가장 킥을 잘 한다는 발락이었다. 하지만 이운재는 오른쪽으로 몸을 날려 발락의 공을 완벽하게 막아냈다. 독일의 추격 의지에 찬물을 끼얹는 순간이었다.

기세가 오른 한국은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후반 41분 또 한 번 독일을 울렸다. 남궁도가 좌측 사이드를 단독 돌파한 뒤 우측으로 쇄도하던 차두리에게 연결하자 차두리는 문전 정면으로 달려들던 조재진에게 차분하게 빠른 패스를 했다. 그리고 조재진은 이 공을 독일의 빈 골문에 가볍게 차 넣었다. 독일의 추격 의지를 완전히 꺾는 골이었다. 한국은 후반 추가 시간 박규선을 빼고 유경렬을 투입했다. A매치 데뷔전을 치른 선수를 빼고 또 다른 선수를 A매치에 데뷔시키는 여유였다. 이운재를 대신해 김영광도 투입시켰다. 그렇게 한국은 독일을 상대로 잊지 못할 3-1 완승을 따냈다. 대다수 해외파가 뛸 수 없었던 한국이 최정예 멤버를 구축한 독일을 상대로 거둔 ‘미스터리’한 승리였다. 독일이 아시아 팀을 상대로 당한 첫 패배여서 충격은 더 컸다. 일본을 3-0으로 가볍게 제압했던 독일은 한국에 충격적인 패배를 당한 뒤 태국으로 날아가 5-1 대승을 거두며 분풀이를 해야 했다.

박규선
박규선은 일찌감치 현역에서 은퇴한 뒤 한남대 코치직을 맡았다.

본프레레 감독이 막으라던 그 선수는?
이날 A매치 데뷔전을 치른 박규선(현 한남대 코치)은 독일전 이야기가 나오자 웃었다. 벌써 15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그래도 그날의 기억이 선명하다. “경기 전 해운대 해수욕장을 걸으며 본프레레 감독과 이야기를 나눴다. 나한테 ‘어느 포지션에서 뛰고 싶느냐’고 했다. 그래서 ‘왼쪽 사이드백이 가장 좋다’고 했는데 본프레레 감독이 ‘그 자리에는 (김)동진이가 있어서 경기에 나서지 못할 수도 있다. 혹시 오른쪽도 가능하냐’고 묻더라. 나는 일단 뛰는 게 중요했다. 그래서 ‘할 수 있다’고 하니 ‘그 자리에 요즘 독일에서 가장 핫한 신인과 마주쳐야 한다. 잘 막아달라’고 했다.” 박규선은 이날 오른쪽 윙백으로 나서 독일의 한 선수와 계속 맞붙었다. 본프레레 감독이 말한 그 선수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선수는 슈바인슈타이거였다. 박규선 코치는 이날 슈바인슈타이거가 누군지도 모르고 그를 막아냈다.

박규선 코치는 슈바인슈타이거와의 맞대결에서 전혀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역습 상황에서 공격적인 능력을 선보이며 독일의 왼쪽 측면을 초토화했다. 오른쪽 윙백 박규선 코치와 오른쪽 포워드 차두리의 스피드에 독일은 당황했다. 박규선 코치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소집되고 며칠 훈련도 못했다. 경기에 나서니 발락은 정말 세계 정상급 선수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을 만큼 잘했다. 하지만 이런 선수들과 한 번 제대로 붙어보자고 생각했다.” 박규선 코치는 경기도 경기지만 당시 본프레레 감독의 모습을 잊지 못한다. “해운대 바닷가를 통역과 셋이 걸었다. 그런데 그 12월 추위에도 본프레레 감독은 반팔 티셔츠 하나 입고 다니시더라. 되게 열정적이거나 되게 열이 많은 감독이라는 걸 느끼게 됐다. 그 추운데 반팔티셔츠 하나 입고 나에게 슈바인슈타이거 이야기를 해주셨다.”

이 경기에서 골을 넣은 선수 말고도 숨은 주역이 한 명 더 있었다. 바로 선발 출장해 풀타임을 소화한 중앙 수비수 박동혁(현 아산무궁화 감독)이었다. 박동혁 감독은 쿠라니와 클로제를 꽁꽁 묶으며 안정된 수비력을 선보였다. 하지만 당시 박동혁 감독의 상황은 그리 좋지 않았다. 코뼈 골절로 수술을 받은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동혁 감독은 “클로제가 헤딩을 잘하는데 코뼈 수술을 해 내가 얼마나 클로제를 잘 막아낼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다”면서도 “발락도 내가 좋아하는 선수였다. 그런데 직접 경기장 안에서 보니 확실히 다르더라. 여유와 볼 관리 능력이 정말 좋았다”고 했다. 하지만 이날 박동혁 감독은 세계 정상급 선수들을 상대로 완벽한 경기력을 선보였다. “우리는 몸이 좋은 ‘그날’이었고 독일은 몸이 안 좋은 ‘그날’이었다. 뭐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경기였다. 하고 싶은 거 다했다.”

한국 독일
한국전 충격 패배 소식을 전한 독일 언론. ⓒBild

“특별한 전략, 전술도 없었다”
박동혁 감독은 이날 쿠라니와 클로제를 완벽히 막아냈고 결국 분데스리가에서 가장 뜨고 있다던 공격수 쿠라니의 교체 아웃까지도 이끌어 냈다. 그리고 이날 평소 좋아했다던 발락과 충돌했다. 경기 도중 동료가 충돌해 쓰러져 있는 상황에서 발락이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며 박동혁 감독과 언쟁을 펼친 것이었다. 박동혁 감독은 이후 상황을 전하며 웃었다. “그 경기를 치르고 얼마 뒤 무릎 수술 때문에 독일 레버쿠젠에 갔다. 그런데 통역하는 친구가 현지인들에게 나를 소개하며 ‘발락하고 싸운 선수’라고 하더라. 그런데 그 분들이 다 알고 계셔서 놀랐다. 발락이 역시 독일에서는 슈퍼스타였다.”

현재 성남 U-15 감독을 하고 있는 남궁도에게도 이날 경기는 잊을 수 없는 한판이었다. 후반 교체 투입된 남궁도 감독은 승리에 쐐기를 박는 세 번째 골의 출발점이었다. 남궁도 감독은 한국 진영에서 차단된 공을 드리블해 차두리에게 연결했고 차두리를 거친 공은 조재진의 골로 이어졌다. 남궁도 감독은 당시 상황을 또렷하게 기억했다. “세 번째 골이 들어간 뒤 내가 넣은 것처럼 우리 벤치 쪽으로 가 세리머니를 했다. 그랬더니 본프레레 감독이 ‘네가 넣은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좋아하느냐’고 하시더라. 당시에는 완전히 분위기에 젖어 막 뛰어다녔다. 많은 분들이 그 경기를 ‘한국 축구의 미스터리’라고 하시는데 내가 생각해도 그렇다. 전술이나 전략이 특별한 것도 없었는데 유독 그날따라 선수들 컨디션이 200%였다. 현장에 있던 나도 어떻게 이겼는지 모르겠다. 그냥 다 잘 됐던 경기다.”

이날 후반 추가시간에 교체 투입돼 A매치 데뷔전을 치른 유경렬(현 천안시청 코치)도 “본프레레 감독이 굉장히 고집 있고 강했다. 선수들이 따라오길 원하는 스타일이었다”면서 “그런데 나같이 새로 차출된 선수들이 꽤 많아서 본프레레 감독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컸었다. 한 번 즐겁게 해보자는 분위기였다”고 했다. 유경렬 코치는 “난 그 경기에서 3분밖에 못 뛰었으니 ‘미스터리’에서 좀 빼달라”고 웃었다. 이날 경기에서 독일을 3-1로 제압하며 ‘한국 축구 최대 미스터리’를 만들어낸 이들은 하나 같이 자신감을 주문했다. 결국엔 2018년 러시아월드컵 독일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독일 최정예 멤버를 잡은 한국의 2군(?)들은 “주눅 들지 말고 하라”고 입을 모았다. 15년 전 독일을 혼쭐냈던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여기에 답이 있을 것이다.

본프레레
명언이다. ⓒ방송 화면 캡처

겁 먹고 물러서지 말고 신나게 하라
박동혁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나도 청소년 월드컵이나 올림픽을 경험하면서 긴장하고 부담을 느꼈다. 결국 이런 부담감과의 싸움이다. 승패에 상관없이 치르는 경기가 부담이 적어 잘 풀릴 때도 많다. 얼마나 주눅 들지 않고 하고 싶은 걸 다 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15년 전 독일과의 경기처럼 월드컵 독일전은 하고 싶은 걸 다 하는 경기가 됐으면 좋겠다.” 남궁도 감독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아직도 당시 승리가 ‘미스터리’하긴 한데 그래도 한 가지 잘한 걸 꼽으라면 겁 없이 달려들었다는 점이다. 그러다보니 역습도 잘 됐고 이것저것 다 잘 됐던 경기였다. (이)운재 형이 페널티킥도 막아내고 안 되는 게 없었다. 겁 없는 경기를 했으면 좋겠고 특히나 선배들이 팀을 잘 이끌길 바란다. 당시 독일전 때는 우리팀에 나보다 어린 선수가 한두 명이었을 거다. 나는 형들이 끌고 가는대로 따라갔다.”

A매치 데뷔전에서 상대 측면을 신나게 허문 박규선 코치는 역습을 강조했다. “독일을 잡으려면 수비가 두터워야 한다. 그날 경기에서도 두리 형과 측면에서의 호흡이 좋았다. 수비적인 경기 운영을 하면서 손흥민처럼 빠른 선수들이 빈 공간을 노리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박규선 코치의 이 분석을 유경렬 코치에게 전하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오, 박규선은 역시 좋은 코치다. 나는 뭐 독일전에서 3분 뛴 것 밖에 없으니 이런 저런 말을 할 처지는 아니다. 하지만 한 가지 하고 싶은 말은 아픔을 겪으면 그만큼 또 올라간다는 것이다.” 독일 최정예 군단을 3-1로 제압한 전설적인 선수들의 이야기이니 허투루 들어서는 안 된다. 한국 축구 역사상 가장 미스터리한 승리를 따낸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봐야 한다.

미스터리가 완전히 풀리지는 않았다. 그래서 미스터리일 것이다. 당시 경기를 떠올리던 선수들도 그날따라 유독 경기가 잘 됐다고 했다. 축구를 십수년 동안 했고 지금도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는 이들도 “사실 어떻게 이겼는지 잘 모르겠다”고 할 정도다. 하지만 대화를 나눠보니 이들의 공통점은 딱 하나 있었다. “지금 보면 당시 독일 선수들이 어마어마해 보이지만 당시에는 칸과 발락, 클로제를 빼면 잘 몰랐다”는 것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했지만 때로는 상대를 너무 크게 평가해 굽히고 들어가는 게 패인이 되기도 한다. 지레 겁먹고 물러서지 말자는 이야기다. 15년 전 선배들은 그렇게 주눅 들지 않고 독일을 시원하게 이겼다. 한국이 2018년 러시아월드컵에서 한 번 더 독일을 상대로 미스터리한 경기를 펼쳐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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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독일 대표팀 명단

▲GK=올리버 칸(바이에른뮌헨), 지몬 옌츠(볼프스부르크), 티모 힐데브란트(슈투트가르트)

▲DF=로베르트 후트(첼시), 페르 메르테사커(하노버), 크리스티안 뵈른스(도르트문트), 안드레아스 힝켈, 필리프 람(이상 슈투트가르트), 파트리크 오보모옐라(빌레펠트), 크리스티안 판더(샬케)

▲MF=미하엘 발락, 토르스텐 프링스, 바스티안 슈바인스타이거(이상 바이에른뮌헨), 파비안 에른스트, 프랑크 바우만, 팀 보로우스키(이상 브레멘), 베른트 슈나이더(레버쿠젠)

▲FW=미로슬라브 클로제(브레멘), 케빈 쿠라니(슈투트가르트), 토마스 브르다리치(볼프스부르크), 게랄트 아사모아(샬케), 루카스 포돌스키(쾰른)

◇당시 한국 대표팀 명단

▲GK=이운재(수원) 김영광(전남)

▲DF=이민성(포항) 조병국(수원) 김치곤(서울) 최진철 박재홍 박동혁 감독(이상 전북) 김진규(전남) 유경렬(울산)

▲MF=김정우(울산) 김동진(서울) 김두현(수원) 김상식(광주) 박규선(전북)

▲FW=이동국(광주) 조재진(시미즈) 김동현(수원) 차두리(프랑크푸르트) 남궁도(전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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