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혁 ⓒ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조성룡 기자] 단 한 팀을 위해서 헌신한 선수를 향해 붙여지는 칭호. 원클럽맨.

인천유나이티드에서 4년 동안 뛰었던 김도혁이 아산무궁화로 떠났다. 이적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적이라 보기 어렵다. 그는 병역 의무를 위해 아산으로 떠났기 때문이다. 4년 동안 김도혁과 희노애락을 함께한 인천의 팬들은 벌써부터 아쉬움이 한가득이다. "무사히 돌아오라"는 응원과 함께 '김도혁 종신'의 목소리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참 신기하다. 사실 이 정도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임팩트 있는 모습으로 팀의 영웅이 되거나 한 팀에서 굉장히 오래 뛰어야 한다. 그런데 김도혁은 인천에서 고작 4년을 뛰었고 올 시즌에는 많은 경기에 나서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천은 김도혁을 사랑한다. 시민구단이기에 오랜 기간 동안 구단에 몸담은 선수가 별로 없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하지만 김도혁이 받는 사랑은 신기할 정도로 크다.

인천이 애지중지 아끼는 그 김도혁을 <스포츠니어스>가 만났다. 그리고 그가 사랑받는 이유를 알았다. 김도혁 또한 인천을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짝사랑이 아닌 주고받는 사랑은 더욱 애틋하고 깊어질 수 밖에 없다.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인 김도혁이라 많은 표현은 하지 않지만 그는 어쨌든 인천을 사랑하고 있었다.

4년 동안 김도혁은 인천에서 축구선수로 성장했고 인천과 함께 컸다. 많은 일이 있었다. <스포츠니어스>는 입대 직전 김도혁을 만나 짧으면 짧고 길다면 긴 4년을 함께 돌아봤다.

#1. "무서웠던 동네 이제는 정들어서 못떠나겠어요"

처음 인천에 올 때를 떠올려보자. 어떤 연고도 없었던 인천에 입단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나?

인천은 축구 때문에 처음 와보게 된 곳이다. 그 때만 해도 인천은 내게 낯설었다. 사실 편견 같은 것도 약간 있었다. '무서운 항구도시'의 이미지가 인천에 있었다. 그런데 당시 김봉길 감독님이 지휘봉을 잡았던 인천 축구가 좋았다. 도전적이고 저돌적이었다. 최전방부터 전방 압박을 하는 등 축구 스타일이 정말 매력적이었다. 대학생일 때 '아, 나도 저기서 같이 뛰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 인천 유나이티드 제공

그래서 프로 진출을 타진할 때 다른 몇 군데 구단에서도 제의가 왔다. 고민하던 중 인천에서도 제의가 왔다. 별 다른 생각 안하고 인천에 가기로 했다. 그게 벌써 4년 전이다. 세월 참 빠르다.

사실 선수의 입장에서는 시민구단이 아니라 모기업이 있는 기업구단에 가고 싶은 욕심도 있었을 것 같다.

한 번도 그런 생각을 안해봤다면 거짓말이다. 워낙 들리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시설도 좋고 지원도 빵빵하고… 그런데 핵심은 내가 한 번도 겪어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비교할 대상이 없다. 오직 인천 뿐이다. 인천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고 현재와 미래를 비교할 뿐이다. 인천은 시민구단이지만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 바뀌고 있다.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제는 그런 유혹에는 흔들리지 않는다.

정말로? 냉정하게 말하자면 '시민구단' 인천은 힘든 팀 아닌가.

정말이다. 인천이 힘든 팀은 맞다. 그래서 더 애정이 간다. 누군가는 인천에 있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애정 없는 선수가 무의미하게 인천에 있는 것보다 애정을 가지고 있는 선수가 인천에 있는 것이 훨씬 좋은 일 아니겠는가? 나는 인천에 대한 애정이 크다고 자부한다. 사실 애정보다는 정이 많이 든 것 같다.

4년이 지나도 '무서운 항구도시' 이미지는 그대로인가? 

아니다. 인천에 살다보니 인천이라는 동네 자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다. 살기 좋은 동네다. 구단 프런트와 팀 동료들이 잘해준 것도 있겠지만 동네 사람들도 친절하고 마주치는 팬들도 너무나 좋은 분들이 많았다.

이제는 인천이라는 동네에 정이 들었다. 자주 가던 맛집도 카페도 이제 당분간은 오지 못한다. 추억 많이 쌓았다. 입대 때문에 살던 집도 내놨는데 아직 안팔렸다. 인천이 떠나지 말라고 붙잡는 것 같다. 아쉬움이 그래서 더 큰가…

4년 동안 세 명의 감독을 만나는 등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그렇다. 세 분의 감독님 모두 조금씩 스타일이 다르다. 김봉길 감독은 선수들에게 부담감을 최대한 줄여주려고 노력한다. "너희들 하고 싶은 축구 해봐"라고 하는 분이다. 김도훈 감독은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주옥같다. 선수들에게 동기부여가 될 수 있는 말을 잘 한다. 그리고 현재 이기형 감독은 선수들에게 경쟁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있다.

짧은 것 같아도 많은 추억이 있었다. 기억 나는 경기도 워낙 많다. 데뷔전도 있고 FC서울 상대로 데뷔 첫 승도 기억나고 부산 아이파크 상대로 데뷔 첫 골 터뜨린 것도 있고… 2015 K리그 클래식 개막전에서 1호 골을 넣은 것도 기억난다. 심지어는 성남FC에 0-1로 져서 하위 스플릿이 확정됐던 때도 기억난다. 그 때 김도훈 감독님 많이 울었는데 하하. 하지만 역시 잔류를 확정지었던 경기들이 가장 떠오른다.

국가대표에 발탁되기도 하지 않았나? (2014년 김도혁은 당시 故이광종 감독이 이끌던 U-23 대표팀 2차 소집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후 6월 1일 인천 아시아드 주경기장에서 열린 쿠웨이트와의 평가전에서 후반 교체 투입되며 그라운드를 밟았다.)

맞다. 그 때 엄청 벅찼다. 그냥 국가대표팀의 옷을 입고 뛴다는 자체가 영광이었다. 어떻게 뛰었는지 잘 기억 나지도 않는다. 사실 한 가지는 기억난다. 내가 굉장히 '쫄보'처럼 뛰었다는 건 알고 있다. 그래도 국가대표팀에 속해서 뛴다는 그 느낌이 너무 좋았다. 아직도 그 때 입었던 유니폼은 집에 고이 간직하고 있다.

#2. 힘들었던 2017 시즌,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이유

올 시즌은 어땠는가?

정말 다사다난했다. 솔직히 축구하면서 가장 힘든 시즌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도 팀적으로도 신경쓸 것이 많았다. 팀 성적도 좋지 않은 상황에서 주장인데 부상까지 당했다. 나 스스로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힘들었다. 하지만 이것 또한 훗날 나 자신에게 큰 재산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맛집이나 카페도 많이 다닌 것 같다. 당신 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인가?

그렇다. 다른 사람들은 드라이브 이런 거 한다던데 나는 피곤하다. 친구들 만나서 이야기 많이 하고 힘들었던 일을 잊으려고 노력한다. 맛집 찾아다니고 카페 가는 것도 쏠쏠한 재미다. 또 인천에 맛집이 꽤 많다. 송도에 양고기, 라멘 이런 맛집들이 있고 구월동에도 단골 음식점과 카페가 있다. 팀 동료들과도 맛집을 많이 공유하는 편이다.

커피는 사실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미스터 프라푸치노'라는 별명도 그저 유쾌한 해프닝 때문에 생겨난 별명이었다. 그런데 운동 전에 커피 한 잔 하면 커피에 카페인이 있으니까 집중력도 좀 생기는 것 같고 좋더라. 그렇게 계속 마시다보니 커피의 고소한 맛을 알게 되더라.

ⓒ 인천 유나이티드 제공

구월동에 자주 가는 단골 카페가 있다. 이름이 굉장히 길다. 거기 가면 핸드 드립 커피와 티라미수를 먹는다. 티라미수가 수제인데 진짜 맛있다. 추천한다. 그리고 원정이나 다른 곳에서 프랜차이즈 카페를 가면 바닐라 라떼를 마셨다. 그런데 최근 부노자가 나한테 화이트 초콜릿 모카를 추천해준 거다. 추울 때 마셨더니 이게 또 꿀맛이다. 그래서 요즘 프랜차이즈 카페 메뉴는 갈아탔다. 화이트 초콜릿 모카 최고다.

그래도 올 시즌 인천은 또 잔류에 성공하면서 '잔류왕'이라는 명성을 증명했다.

사실 나는 '잔류왕'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우리가 마지막에 살아남는 모습이 좋다고 보지 않는다. 이 꼬리표를 뗐으면 좋겠다. 강팀들을 향해 '잔류왕'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꾸준히 안정적으로 잔류하는 그런 팀이 됐으면 한다.

인천은 기가 막히게 잔류한다. 비결이 뭔가?

자주 말하고 다녔지만 인천은 선수들이 굉장히 많이 바뀐다. 그러다보니 조직력이 늦게 다져진다. 초반 성적이 좋지 못하다가 중반에 조금씩 호흡이 맞고 후반에 살아나는 것이다. 인천이 가을에 살아나는 이유는 이런 것들이 꽤 크게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꼭 우리보다 순위표 아래인 팀들이 있다. 올 시즌은 광주FC가 그랬고 작년에는 수원FC가 그랬다. 밑에 아무도 없었으면 우리끼리 조급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지거나 비기면 그 팀들도 똑같이 지거나 비기는 것이다. 매 시즌 치열하게 싸웠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팀들이 있었다는 것이 심리적으로 조금 더 안정감을 준 것 같았다.

올 시즌 힘들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잔류에 성공했고 마지막 경기에서 골도 넣으며 해피엔딩으로 마쳤다.

정말 팬들에게 올해가 제일 감사하면서도 미안했다. 내가 올 시즌 꽤 오래 그라운드를 밟지 못했다. 경기에 나가지 못하는 대신 관중석에서 경기를 봤다. 위에서 내려다보는데 김도혁 이름을 마킹한 유니폼이 꽤 많이 보이는 것이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많았다.

감동을 많이 받았다. 내가 축구를 정말 열심히 해야 하는 이유를 그 분들에게서 찾았다. 그들에게 보답하는 방법은 내가 빨리 그라운드에 복귀하는 것 뿐이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치료하고 더 열심히 몸을 만들었다. 정말 힘든 시간이었지만 그 분들 덕분에 이겨낼 수 있었다.

#3. "축구는 관중이 만든다"

유독 인천, 그리고 인천 팬에 대한 애정이 많다.

당연하다. 내게 있어 팬은 힘이 되는 존재다. 팬들이 우리 선수들에게 힘을 준다. 그저 입에 발린 말이 아니라 정말 힘이 나는 존재다. 팬들 응원 소리를 들으면 한 발짝 더 뛰게 된다. 그래서 나는 홈 경기를 참 좋아했다.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경기를 하면 힘이 넘치더라.

인천 팬들이 나를 많이 사랑해주셨다. 특히 부상 당했다가 복귀했을 때, 그리고 내가 입대 전 마지막 경기를 했을 때 내 이름을 많이 불러주시더라. 애정이 느껴졌다. 그 진심이 느껴지는데 내가 어떻게 그들을 실망시킬 수 있겠는가? 내가 팬에 대한 애정이 많다고 말했는데 사실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저 받은 만큼 돌려드리려고 할 뿐이다.

물론 내가 좋지 못한 경기력으로 팬들을 실망시킬 때도 있다. 나는 인천에 있으면서 버스 막기도 당해봤다. 그 때 많은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그 상황이 벌어지면 버스 안 분위기는 좋을 수가 없다. '조금만 기다려 주셨으면'이라는 아쉬움도 있다. 하지만 일단 우리가 못했으니 팬들이 정신 차리라고 호되게 야단을 치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가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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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지난 10월 14일 포항스틸러스 원정이 그랬다. 힘 한 번 써보지도 못하고 0-5 대패를 당했다. 그 때 팬들 앞에서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냥 내 진심에서 나온 말이었다. 먼 길 와주셨는데 최소한의 보답도 하지 못했던 것 같았다. 그 날 우리는 팬들을 실망시킨 경기를 했고 그랬기 때문에 죄송한 마음이 우러나왔을 뿐이다.

인천 팬들의 목소리가 크다는 것은 나도 인정한다. 하지만 FC서울, 수원삼성, 전북현대와 같은 소위 '빅 클럽'의 팬들에 비해 숫자는 적지 않는가?

사람이 적은 것이 무슨 대수인가. 그 팀들이 팬 많은 것은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과 붙었을 때 적어도 우리 팬들은 절대 안밀린다. 개인적인 의견이기 때문에 객관적이지는 않을 수 있다. 그렇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 인천 팬들 어디 가서 절대 밀리는 법이 없다. 원정 가서도 응원 소리가 그라운드에 아주 잘 들린다.

응원가도 공부했을 것 같은 마인드다.

에이, 그걸 공부까지 해야하나? 경기를 하다보면 워낙 많이 들린다. 멜로디나 가사 같은 것들을 일부 안다. 팬들이 먼저 부르면 '아 그 노래가 이거였구나'라고 느낌이 딱 온다. 그래서 올해 잔류 확정 짓고 팬들이랑 그렇게 노래도 부르고 사진도 찍었다. 마무리도 잘 했다.

올해도 그랬지만 2016 시즌 마지막 경기는 정말 '대박'이었다.

나는 그 장면이 K리그 역사에 남을 장면이라 생각한다. 벌금 징계를 받았지만 자랑스러웠다. 그래서 나도 일부분 냈다. 진짜 우리 인천 팬들 멋있다. 그래서 그 장면을 통해 나는 한 가지 확신을 갖게 됐다.

무엇인가?

'축구는 선수가 아니라 팬이 만든다'는 것이다. 내가 예전에 유럽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오직 축구만 보려고 간 여행이다. 4일 동안 4경기를 봤다. 맨체스터 시티-아스널, 리버풀-에버턴, 도르트문트-아우크스부르크, 헤르타 베를린과 어느 한 팀의 경기를 봤다. 독일과 영국을 오갔다. 거기서 두 가지를 느꼈다. '축구는 관중이 만든다'는 것과 유럽의 잔디는 축구를 잘 할 수 밖에 없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선수의 입장에서는 마냥 부러웠다.

팬이 축구를 만든다는 것이 이상하게 들릴 수 있다. 그런데 팬은 확실히 축구의 질을 높여줄 수 있다. 선수가 잘하면 5만 명이 박수와 환호를 보내고 못하면 5만 명이 야유를 쏟아낸다. 5만 명 앞에 서는 어떤 선수가 최선을 다하지 않겠는가? 정신을 차리지 않을 수 없다. 이 차이가 굉장히 크다.

나는 그 현장을 보면서 축구 경기 안봐도 된다고 생각했다. 관중들만 봐도 너무 즐거웠다. 관중들 자체가 하나의 볼 거리다. 정말 감명 깊었다. 숙소에 들어와 침대에 누워서 상상했다. 한국, 그리고 인천이 이랬다면 얼마나 좋을까,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이 팬들로 꽉 들어차면 얼마나 좋을까? 언젠가는 될 것이라 믿는다.

#4. 떼놓을 수 없는 이름, 문선민과 설기현

사실 올 시즌 김도혁을 얘기할 때 문선민을 빼놓을 수 없다.

걔 미친X이다.

그런 얘기를 하는 것 보니 진짜 친하긴 한 것 같다. 어떻게 빨리 영혼의 단짝이 될 수 있었는가?

부천FC1995에서 뛰고 있는 김한빈이 나와 친하다. 그런데 어느 날 한빈이가 "내 동생 한 명 인천으로 가니까 잘해줘"라고 얘기하는 거다. 누군지 물어보니까 알려주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 동생이 알고보니 문선민이었다. 워낙 선민이 성격이 좋다. 말도 먼저 걸고. 친해지고 싶어서 친해진 것은 아니다. 서로 공감대가 있고 잘 맞다보니 친해진 것이다. 진짜 좋은 친구 같은 동생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좋은 친구같은 동생에게 미쳤다고 하는가?

형이 입대하는데 배웅하러 오지도 않고 "편지하겠다"는 말만 남긴 채 여자친구와 미국으로 여행 갔다. 지켜볼 것이다. 훈련소 기간 동안 편지가 오지 않는다면 반드시 응징하겠다.

저런, 영혼의 단짝이 다른 반쪽을 찾아 갔으니 허전할 것 같다.

나는 처음에 문선민이 연애하는 줄 몰랐다. 그런데 뭔가 조금씩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원래 운동 끝나면 선민이가 먼저 와서 "형 우리 같이 밥 먹자", "형 우리 카페 가자"라고 한다. 그러면 같이 가서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신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운동 끝나면 "형 나 약속 있어. 먼저 갈게"라는 것이다. 그래서 "얘가 뭐 있나…"란 의심을 했다. 하지만 물증이 없으니 내가 뭐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도 친한 사이라고 선민이가 열애 사실을 가장 먼저 내게 알려줬다. 사실 축구선수의 연애는 좀 예민한 부분이 있다. 어쩌면 팬들을 실망시키는 부분일 수도 있고. 공개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선민이도 그 점을 고민한 것 같았다. 조심스럽게 내게 오더니 "형 나 만나는 사람 있어"라고 하더라. 축하해줘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욕을 하고 말았다. "어쩐지 이 새X가…"

ⓒ 인천 유나이티드 제공

열애 사실을 밝히고 나서는 아주 대놓고 푹 빠져 산다. 선수들은 운동 끝나면 주로 사우나를 함께 간다. 문선민은 사우나 갈 때 옷을 한 보따리 챙겨간다. 사우나에 사복을 세 벌씩 챙겨가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챙겨와서 우리한테 코디 해달라고 물어본다. 문선민이 부럽지는 않지만 참 보기 좋다. 여자친구가 내조도 잘하는 것 같더라. 사실 문선민이 열애 시작하고 나서 경기력이 더 좋아졌다.

근데 당신은 연애를 응원하기보다 "이마나 더 까져라"는 말이나 하고 다녔다.

저번에 <스포츠니어스>와의 통화에서도 문선민 이마를 걸지 않았는가. 자꾸 문선민 이마 걸고 다니면 안되는데… 이제 입대하니까 당분간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꼭 분명히 하고 싶다. 지금 문선민의 그 헤어 스타일 엄청 공들인 것이다. 머리 숱은 풍성한데 이마가 많이 까졌을 뿐이다. 팬들이 이 부분은 감안 해주셨으면 좋겠다.

알겠다. 문선민의 머리 숱은 풍성한 걸로 하겠다. 그렇다면 문선민 말고 김도혁의 축구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존재가 또 있는가?

있다. (설)기현이 형이다.

어째서?

나는 그를 존경한다. 단순히 2002년 월드컵 4강 멤버고 유럽까지 다녀온 선수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설기현의 커리어를 다 제쳐두고도 그는 충분히 존경받아야 할 선수다. 운동하는 것부터 사소한 사생활까지 그는 모범적이다. '괜히 저 커리어를 쌓은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런데 이 부분은 짚고 넘어가야 하지 않을까. 설기현의 은퇴 당시 많은 인천 팬들은 강하게 비판했다.

팬들이 그랬다는 것은 나도 안다. 하지만 나라도 기현의 형에 대해 해명하고 싶다. 당시 나는 너무나 안타까웠다. 한국에서는 선수의 의사가 강하게 반영되지 못한다. 물론 선수의 책임도 일정 부분 있겠지만 구단의 책임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설기현이 비판을 한 몸에 받는 것을 보면서 '이것은 아쉽다'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했다.

나는 적어도 설기현과 한 방을 쓴 적도 있었고 곁에서 많은 것을 지켜봤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다. 그는 정말 좋은 선배이자 선수였다. 이제 와서 솔직하게 말하지만 나는 그 당시에 설기현이 은퇴할 상황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선수 생활을 더 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당시 설기현의 컨디션이 인천 선수들 중에서 제일 좋았다고 봤다.

배울 점도 많고 존경스러운 선수가 바로 기현이 형이었다. '나도 고참이 되면 저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인상 깊은 선배였다. 아마 그와 함께 한솥밥을 먹었던 선수라면 대부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물론 팬들이 그에게 서운함을 느끼는 부분은 당연히 있을 것이다. 전후 사정을 다 알 수도 없고 알아야 할 이유도 없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나라도 나서서 이런 이야기를 팬들께 전해드리고 싶었다. 참 그가 많이 안타까웠다. 팬들께 조심스럽게 말씀드리고 싶었다.

#5. 인생도 군 입대도 타이밍이 중요하다

김도혁의 입대 결심은 갑작스러웠다. 무슨 생각으로 입대를 결심했는가?

아니 대한민국 남자가 병역 의무를 수행하러 간다는데 이상할 것이 있나? 애초에 군대를 가야 한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 내게 그랬다. "군대는 네가 가고 싶어서 가는 것이 아니다. 타이밍이 있다"라고 했다. 잘 생각해보니 지금이 타이밍이었다. 지원 점수도 비교적 높아서 붙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지원을 했고 무사히 합격했다.

미드필더 김도혁이 아산무궁화에 'SB(측면 수비수)' 포지션으로 지원해서 합격했다. 그래서 대구 김진혁은 집에서 자다가 입대 축하를 받기도 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는가?

이게 축구선수들의 군 입대 지원 전략을 잘 알아야 한다. 첫 번째로 지원을 할 때 포지션은 크게 상관이 없다. 어떤 포지션에 넣어도 상관이 없다. 두 번째로 점수가 굉장히 중요하다. 이것은 좀 복잡하다. 국가대표 경력, K리그 출전 경력 등이 들어간다.

여기서 변수는 포지션마다 정해진 인원을 뽑는다는 것이다. 결국에는 해당 포지션에 넣은 선수들끼리 점수 싸움을 하는 셈이다. 그런데 미드필더는 워낙 쟁쟁한 선수들이 많이 넣었다는 소문이 애초에 돌고 있었다. 합격자를 봐라. 이명주와 주세종(이상 FC서울)이다. 두 선수는 A대표팀 경력까지 있다. 만일 내가 미드필더에 지원했으면 입대는 거의 불가능했다고 봐야 한다.

나는 국가대표 경력으로 받는 점수는 거의 없다. 그런데 K리그 출전 경력은 자신이 있었다. 상주상무나 아산은 최근 2년 간 기록을 본다. 나는 2017년에는 많이 뛰지 못했지만 2016년에 꽤 많은 경기를 뛰었다. 그래서 해당 점수가 괜찮았다. 보니까 미드필더만 아니라면 어느 포지션에 넣어도 해볼 만한 상황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원서 접수 기간에는 엄청난 눈치 싸움이 벌어진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원서 접수 기간이라고 한다면 대부분 금요일 마감 직전에 우르르 원서를 접수한다. 그 때까지 누가 어느 포지션에 넣었는지 확인하고 지원하는 것이다. 나는 점수가 조금 안정적인 편이라 수요일에 넣었다. 공격수로 지원할까도 잠깐 고민했는데 에이전트가 수비로 지원했다고 해서 알겠다고 했다.

합격 했을 때 가장 먼저 든 느낌은 안도감이었다. 사실 지원하면서도 '될 수 있을까'란 걱정을 많이 했다. 군대에 간다는 사실이 유쾌한 것은 아니지만 합격이라는 것은 뭐든 다 좋은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합격 사실을 알자마자 '아, 다행이다. 정말 잘 됐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은 입대 이야기를 듣고 어떤 반응을 보이시던가?

잘 됐다고 하시더라. 이왕 갈 거면 빨리 갔다오라고 하시더라. 축구선수들은 군대에 일명 '철 들려고' 가는 건 아니다. 2년이라는 시간 동안 금전적인 손해도 보고 경력의 문제도 있다. 여러가지 복잡한 상황이 있다. 부모님 입장에서는 더 나이 먹기 전에 빨리 갔다오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보신 것 같다.

아버지는 오히려 편하게 말씀하시더라. 4주 금방이라고. 어머님은 아직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아들이 입대한다는데 조금 짠하지 않으실까? 그래도 아버지의 한 마디가 위로가 됐다. 아버지는 30개월 넘게 군 생활을 하셨다고 들었다. 요즘 21개월은 금방이라고 하시면서 한 마디 던지셨다. "국방부 시계는 어쨌든 간다."

측면 수비수 역할은 자신 있는가?

물론 예전에 해보기는 했다. 하지만 전문적으로 측면 수비수를 했던 선수들도 많은데 내가 그 선수들만큼 잘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하라면 할 것이다. 내가 또 시키면 잘 한다. 그래서 이효균 결혼식 가서도 신랑이 춤춰야 할 거 내가 흑기사로 춤추고 왔다. 아, 그 생각 하니까 부끄러워 죽을 것 같다.

이제 4주 동안 고된 훈련소 생활을 버텨야 한다. 걱정이 많을 것 같다.

엄밀히 말하자면 7주다. 4주 동안 훈련소에서 훈련 받고 경찰 학교에서 3주 동안 교육을 받을 예정이다. 거기에서는 뭐 스물 몇 가지 방패술 얍! 얍! 하면서 배우게 된다더라. 다른 건 걱정이 안되는데 행군과 야영은 걱정된다. 이 날씨에 밖에 나가서 자면 입 돌아간다. 먼저 군대를 갔던 형들이 "논산은 8월에도 추우니 핫팩 많이 가져가라"고 말했다. 그래서 핫팩 100개 정도 챙겨갈까 생각 중이다.

(실제로 김도혁은 육군훈련소 입대 당시 배낭 한 가득 핫팩을 담아 유유히 들어갔다.)

하지만 제일 걱정되는 건 따로 있다. 바느질이다. 군대 가면 자기 명찰 다 바느질해야 한다고 들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봤다. 사실 바느질을 잘 못한다. 혼날까봐 걱정이다. 그래도 지금 아산에 있는 (박)세직이 형이나 다른 군필 형들이 이것저것 많이 알려줘서 도움이 되고 있다. 특히 세직이 형은 물어보면 다 알려준다. 정말 고맙다.

그런 착한 형이 막상 선임 되면 또 모르는 게 군 생활이다. 조심해라. 아산에서의 21개월은 어떻게 보낼 생각인가?

군 입대를 기회라고 생각한다. 내가 성장하고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는 기회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서 2년 동안 열심히 해보려고 한다. 그동안 부족했던 것을 찾아서 해보고 또 해보고 될 때까지 해볼 것이다. 아산에서 나 만의 무기를 하나 정도 만들고 복귀하고 싶다.

아산 팬들을 위해서도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들에게는 내가 '인천의 김도혁'이라고 비춰지지 않고 '아산 신인 김도혁'이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잘하면 잘한다고 칭찬 받고, 못하면 '별로다'라고 자극도 주셨으면 좋겠다. 물론 나는 나를 좋아해주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 최선을 다할 것이다.

아산에 가면 K리그 챌린지 무대도 처음으로 만나게 된다.

김한빈이 많이 다르다고 하더라. 나도 개인적으로 K리그 챌린지를 몇 경기 챙겨봤다. 다르긴 한 것 같았다. 하지만 관중이 많이 없다는 것이 아쉬웠다. 나 역시 많이 노력하겠지만 아산 시민들께서도 많이 경기장에 찾아오셨으면 좋겠다. 뜨거웠던 인천의 함성이 그립지 않게 아산 시민들께서도 많이 응원해주셨으면 좋겠다.

#6. 김도혁이 그리는 미래, 그리고 '원클럽맨'

어찌됐건 김도혁은 제대 후 인천으로 돌아오게 된다. 벌써부터 '원클럽맨'을 바라는 팬들의 목소리도 들린다. 이기형 감독도 비슷한 얘기를 했고.

그런 이야기에 대해서는 항상 감사함을 느낀다. 하지만 나는 분명하게 안다. '원클럽맨'은 나 혼자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구단 또한 나를 선택해야 한다. 구단이 나를 오래 데리고 있다면 그것은 정말 감사할 일이다. 하지만 구단이 나를 선택해주지 않는다면 내가 계속해서 남아있을 수는 없다. 나는 열심히 노력할 뿐이다. 살아남을 수 있도록.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구단에 보탬이 될 수 있다면 남아야겠지만 구단이 생각했을 때 내가 부족하면 당연히 나가야 한다. 내 실력이 부족해서, 내가 노력을 하지 않아서 인천에 피해를 끼칠 수는 없다. '원클럽맨'에 대한 내 생각은 이렇다. 단순히 나 혼자 만의 노력으로 될 수는 없는 것이더라.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이렇게 인천에 애정을 많이 갖게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상상 못했을 것 같다.

당연히 못했다. 어렸을 때는 어느 팀이 좋은 팀인지 몰랐다. 그냥 그런 생각은 해봤다. '나는 경남 사람이니까 경남FC에서 뛸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그저 연고지 팀인 경남에 가서 축구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인천에 이렇게 인연이 닿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나중에 은퇴 직전에 고향에서 축구를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다. 아직도 경남 출신 친구들이 선수로 활동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경남 최영준이 친구다. 얼마 전에도 친구들과 모여서 공 한 번 차고 왔다. 더도 말고 딱 한 번만 경남 출신들이 모여서 축구 한 번 해보면 재밌을 것 같다. 게다가 경남의 선수들이 모두 경남 출신이라니. 꽤 멋있을 것 같다.

해외 진출에 대한 생각은 전혀 없는가?

왜 없겠는가. 나도 선수고 꿈이 있는 사람인데. 그런 생각을 자주 한다. 만약에 내가 인천이라는 정든 팀을 떠나서 다른 팀으로 가게 된다면 그곳은 한국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지금까지 인천을 위해서 뛰었고 인천 팬들의 응원 소리를 들으며 뛰었는데 정 반대의 입장에 서게 된다면 상당히 힘들 것 같다.

군대에 빨리 가는 것도 해외 진출에 대한 생각이 조금은 있기 때문이다. 일본도 가보고 싶고 미국도 가보고 싶고 독일도 가보고 싶다. 해외 진출의 기준은 오로지 축구다. 내 축구 인생에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면 기꺼이 가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고려할 생각 없다.

미국에 가고 싶다는 얘기는 굉장히 신선하게 들린다.

사실 나도 그 생각은 한다. 미국에 가게 되면 내 인생이 크게 바뀔 것 같다. 완전히 달라질 것 같다.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은 한다. 한국의 프로 스포츠가 미국의 시스템을 많이 따오지 않았는가? 과연 '원조'는 어떻게 운영하고 있는지 세세하게 살펴보고 싶다.

독일이나 일본은 축구선수의 입장에서 가보고 싶은 곳이다. 하지만 미국은 다르다. 그들이 어떻게 스포츠 마케팅을 하고 있는지 보고 싶고 미디어 산업 등 스포츠 산업 현장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알아보고 싶다. 기회가 된다면 공부도 더 해서 대학원도 가보고 싶다. 그런데 이런 얘기 왜 우리가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나 지금 은퇴하는 거 아니다. 아산 갔다와서도 선수 생활 한참 해야한다. 그저 그냥 내가 개인적으로 그리고 있는 꿈, 또는 미래라고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알겠다. 일단 군대부터 다녀와라. 마지막으로 입대 전 인천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달라.

올 시즌도 마찬가지로 마지막 경기에서 잔류에 성공했다. 이 기쁨을 팬들과 나눌 수 있어서 행복했다. 다른 사람들은 모를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너무나 뜻깊은 마지막 경기였다. 내 인생에서 절대 잊을 수 없는 한 판이었다. 그날 팬들의 응원 소리를 잊지 못한다. 유난히 컸고 그것이 내 마음을 90분 내내 울렸다. 많은 힘이 됐다.

이제 그 응원의 힘을 안고 대한민국 남자로 국방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러 간다. 더 멋지고 성숙한 모습으로 돌아오겠다. 전역하고 인천에 돌아갔을 때 팬들에게 "우리 도혁이가 왔구나, 역시 우리 도혁이 몸 건강히 잘 돌아왔구나"란 이야기를 듣고 싶다. 더 멋지게 갈고 닦겠다. 2년 뒤 다시 돌아가서 인천을 구하고 인천의 전성기를 이끄는 선수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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