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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서울 신문로 대한축구협회 앞에는 약 300여 명의 초·중·고등학교 지도자들이 모였다. 그들은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쳤고 행진까지 했다. ‘학원축구 위기극복 비상대책위원회’라는 이름으로 모인 이들은 협회가 현장과 소통해 학원축구를 살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스포츠니어스>에서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학원축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진지하게 논의해 보고자 한다. 학원축구의 위기에 대해 심층 진단한다. -편집자주

[스포츠니어스|축구회관=조성룡 기자] 앞으로 우리는 지동원과 같은 '풋볼 드림'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지동원의 고향은 제주특별자치도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제주도에서 약 53km 떨어진 추자도다. 지금도 이곳은 고작 1,906명이 사는 작은 섬이다. 지동원을 배출한 곳이지만 이런 곳에서 이제 축구선수의 꿈을 키우기는 상당히 어려워졌다. 지동원은 축구부가 없는 추자초등학교를 다니다 축구선수의 꿈을 위해 제주도 화북초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만약 지동원이 지금 어린 시절을 보낸다면? 공부 만이 답일 수도 있다.

심지어 과거에도 이런 제한이 있었다면 우리는 차범근이라는 세계 축구의 별도 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는 서울 양천구에 위치한 영도중학교에서 하키 선수로 생활했다. 이후 중학교 3학년 때 종로구의 경신중학교로 전학을 가 축구선수의 삶을 시작했다. 만일 그가 지금 학창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면? 전학 제한으로 인해 축구선수로의 전향은 꿈꾸기 어려웠을 것이다.

뜬금없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내년 3월 1일부터 학생 축구선수들은 위장전입이 전면 금지되기 때문이다. '당연한 일을 왜 반대하느냐'고 묻는 목소리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투기 목적이나 명문 학교 입학을 위한 위장전입과는 약간 다르다. 간단히 말해서 '집 앞 학교에서만 축구해라'는 이야기다. 축구 인프라가 풍부한 지역일 경우 큰 걱정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인프라가 열악한 곳의 경우 선수 수급 등에서 문제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학교 선택권 없어 사교육으로 넘어가야

집회에 참석한 학부모 김미희 씨는 "다른 학교 전학이 금지되면 학부모들의 부담은 늘어날 것이 뻔하다"라고 한숨을 쉬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마땅한 학교 축구부가 없으면 축구클럽으로 가야한다. 학교 축구부는 일정 부분 재정 지원을 받을 수 있어 학부모들의 부담이 덜하다. 하지만 축구클럽은 학부모들이 내는 회비의 의존도가 크다. 부담이 늘어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자리에 참석한 한 중학교 감독은 "전학 금지 제도를 완화시켜야 한다. 잦은 전학은 선수 개인에게도 좋지 않다. 하지만 선수 생활을 하다보면 프로 선수들이 이적을 하는 것처럼 불가피하게 전학을 가야하는 상황 또한 생긴다. 여기서 선수들의 선택 폭을 넓혀줘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어린 선수들 또한 다양한 상황에 부딪치게 된다. 그들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융통성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이것은 단순히 학교 만의 문제는 아니다. K리그 챌린지 팀인 아산무궁화도 전학 금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올해 창단한 아산은 축구 인프라 확충을 위해 유소년 시스템 구축에 돌입했다. '전액 무료'라는 파격적인 혜택을 내걸면서 좋은 유망주를 아산으로 데려오고자 했다. 하지만 단순히 자식의 잠재성 하나만 보고 삶의 터전을 아산으로 옮길 수 있는 학부모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 부분에서 아산은 굉장히 고민과 노력을 많이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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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전체가 이사가야 축구할 수 있다

가장 난감한 상황은 축구 인프라가 열악한 곳에서 일어나기 마련이다. 해당 학군에 축구부가 있는 학교가 단 한 곳이라고 가정해보자. 어린 선수가 그곳에서 축구선수 생활을 하다가 부득이하게 전학을 가야하는 일이 생긴다. 적응을 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프로 산하 팀에 가는 상황일 수도 있다. 팀이 해체를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선수가 행정, 법률 등 여러 문제 없이 전학가기 위해서는 부모님과 함께 다같이 이사를 가야한다.

여기서 학부모의 고민은 시작될 수 밖에 없다. 삶의 터전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옆 동네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시나 도를 옮겨야 하는 상황이라면 더욱 난감하다. 생계가 걸릴 수 있다. 현재를 위해 자식의 앞길을 막을 것인지, 아니면 자식을 위해 현재를 버릴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일종의 도박이다. 과거였다면 자녀를 전학시켜 합숙소 생활을 하게 하면 되지만 이제는 불가능하다. 물론 보편적인 시나리오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례가 생각보다는 많아질 것이라고 현장에서는 예상하고 있다.

한 축구계 관계자는 "적어도 선수 자식을 둔 부모의 입장이라면 이 제도는 한 번 쯤 다시 고민할 수 밖에 없다"라고 지적한다. 단순히 축구 만의 문제는 아니다. 타 종목에서도 전학 금지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는 터져나오고 있다. "학생의 거주 지역에서 더 이상 선수 생활이 불가능할 경우 다른 지역 전학 또한 허가해야 한다"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제 추자도에서 축구선수는 나올 수 없다

문체부는 학원스포츠의 정상화를 외치고 있다. 성적지상주의에서도 벗어나야 하고 어린 선수들을 위해 다양한 제도를 도입, 공부하는 선수를 만들겠다고 나선다. 이 제도 또한 어린 선수들이 학부모와 떨어져서 살면서 생길 수 있는 문제들을 선제적으로 예방하겠다는 의도 또한 깔려있다. 문체부도 나름 할 말은 있다. 하지만 이 제도를 적용받는 당사자들은 자신을 '수혜자'가 아닌 '피해자'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그런지 고민해봐야 할 문제다. 이 규정이 계속된다면 이제 추자도에서 지동원 같은 축구선수는 나올 수 없다.

결국에는 가치의 문제다. 그렇다면 공유하고 토론해야 한다. 추운 거리에 그들이 일부러 나선 이유는 가장 필요한 바로 그것, 공유와 토론을 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함이었다. 어떤 가치가 더 우위일지는 쉽게 판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지난 8월 국가인권위원회가 경기도 교육청에 낸 권고문을 소개하며 이야기를 마치려고 한다. "아동과 청소년의 행복 추구권과 개성 및 인격 발현 기회를 과도하게 제한하면 안된다. 체육특기자들이 불가피하고 예외적인 사정이 있는 경우 거주지역 밖 학교에 진학할 수 있도록 허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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