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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서울 신문로 대한축구협회 앞에는 약 300여 명의 초·중·고등학교 지도자들이 모였다. 그들은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쳤고 행진까지 했다. ‘학원축구 위기극복 비상대책위원회’라는 이름으로 모인 이들은 협회가 현장과 소통해 학원축구를 살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스포츠니어스>에서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학원축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진지하게 논의해 보고자 한다. 학원축구의 위기에 대해 심층 진단한다. -편집자주

[스포츠니어스 | 축구회관=김현회 기자] 경기도 교육청은 지난 3월 도내 각 초·중학교에 지침을 내렸다. “내년 2월 28일까지 모든 교내 운동부의 합숙소를 폐지하라”는 것이었다. 경기 지역 초등학교 105개와 중학교 73개 등 총 178개 학교가 이 규정에 따라 내년까지 합숙소를 폐지해야 한다. 178개 경기 지역 초·중학교 축구부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 경기 지역 모든 운동부에 적용되는 규정이라 파급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서울시 교육청 역시 2년의 유예기간을 둔 뒤 오는 2020년까지 초·중학교 운동부 합숙소를 전면 폐지하기로 했다.

인권위와 경기도 교육청이 바라보는 합숙소는?

합숙소 폐지는 10년 넘는 논쟁거리였다. 2003년 천안초등학교 축구부 합숙소 화재 참사 이후 운동부 합숙소는 골칫거리로 전락했다. 2007년에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학생 운동부 합숙소 폐지 권고안을 내기도 했다. 인권위는 “실태조사 결과 약 75%의 초등학교 학생선수들이 언어적, 신체적 폭력을 경험했고 15%는 성추행을 당했다고 답변했다”면서 선수들이 모여 생활하는 합숙소를 운동부 폭력의 원인으로 꼽았다. 경기도 교육청이 합숙소 폐지를 결정하고 서울시 교육청도 이에 뒤따르자 다른 시·도 교육청도 연쇄적으로 운동부 합숙소 폐지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일선 지도자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합숙소를 폐지하면 운동부 존립 자체가 위태롭기 때문이다. 집과 가까운 지역 운동부에 진학할 수 없는 상황에서 타지역 학교에 입학해 숙소 생활을 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렇게 타지역 선수를 수급하지 못할 경우 존립 자체를 고민해야 하는 학교가 많다. 현재 운동부 진학을 위해 타지역으로 전학하는 경우 위장전입으로 간주해 불이익이 돌아가는 사례도 생기고 있다. 그런데 합숙소까지 폐지되면 타지역에서 선수 수급을 아예 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일반 학생이 일반 학교에 진학하는 것처럼 통학이 가능한 동네 학교에 운동부가 없다면 아예 운동선수로 성장할 수 없다.

경기도 평택 청담중학교 김태건 감독은 요즘 들어 고민이 많다. 당장 내년 2월까지 합숙소 문을 닫으라는 방침이 떨어졌지만 그러면 지방에서 올라온 선수들을 어떻게 해야할지 걱정이기 때문이다. 김태건 감독은 “우리 팀에는 전주에서 온 학생도 있고 천안에서 온 학생도 있다. 축구가 하고 싶어 대전에서 올라온 친구도 있다”며 “만약 이 선수들이 자기네 동네에 좋은 팀이 있고 그 팀도 선수들을 원했다면 우리 학교까지 와 운동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말 축구를 하고 싶어 이 먼 곳까지 와 숙소 생활을 하며 운동하고 있다. 그런데 숙소를 폐지하면 이 아이들에게는 그냥 축구를 하지 말라는 것과 마찬가지”라면서 한숨을 쉬었다.

대한축구협회에 지도자 300여 명이 모였다. 이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스포츠니어스

합숙소 폐지를 보는 걱정스러운 시선

선수들은 어린 나이에도 실력과 환경에 따라 움직인다. 재능이 보이면 규모와 시설이 더 좋은 학교로 옮기고 그렇지 못하다면 집과 멀리 떨어져 있어도 운동에 집중할 수 있는 학교를 택한다. 그리고는 숙소에서 지내며 생활한다. 스스로 택한 길이다. 주요 경기를 앞두고 2주 전부터 선수 전원이 합숙하는 경우도 있지만 각 학교는 이런 경우가 아니면 합숙을 선수 자율에 맡기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서울 목동중학교 이백진 감독은 “이런 선수들이 축구를 할 수 없게 하는 건 행복추구권 침해”라고 소리를 높였다. 합숙소가 폐지되면 집에서 통학 가능한 거리에 있는 운동부를 찾아야 하지만 그러면서 운동 환경이나 지도자를 선택할 수는 없어진다. 아니면 비용이 더 많이 드는 사설 클럽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경기도는 이제 교육청의 방침으로 합숙소 문을 아예 닫아야 한다. 경기도 수원 율전중학교 최동욱 감독은 교육청이 합숙소 폐지 근거로 내놓은 학교 진흥법을 지적했다. “이 법에는 합숙소 폐지 규정이 없다. ‘상시 합숙을 해선 안 된다’고만 돼 있는데 ‘상시’라는 건 해석에 따라 달라진다”면서 “평일에 합숙을 하고 주말에 아이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면 문제가 없다. 또한 학교 진흥법에는 학교장이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고 돼 있는데 교육감이 월권을 행사한다. 교육감이 이렇게 합숙소 폐지를 주장하는데 학교장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김태건 감독은 “걸어서 통학 가능한 읍내 아이들만을 데리고 운동부를 운영하라는 건데 그러면 데리고 축구를 할 아이들이 없다”고 했다.

합숙소가 폐지된 뒤에도 평택중학교 축구부에서 운동을 하려면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에 주소지를 두고 통학해야 한다. 위장전입으로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생기면서 자녀만 주소지를 옮기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이제는 합숙소 생활도 할 수 없다. 경기도 교육청 방침에 따르면 가족이 모두 학교 근처로 이사해 합숙소 생활 없이 통학을 해야 한다. 학생의 인권을 생각하고 사건, 사고를 방지하겠다는 교육청의 방침도 이해는 가지만 운동부 입장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는 학원 축구뿐 아니라 프로팀 유소년 선수들 역시 마찬가지다. 합숙소가 폐지되면 전통의 명문인 울산 현대중과 포항제철중 등도 고스란히 피해를 입게 된다. 시골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월 65만 원 부담에서 100만 원 이상 부담으로?

가까스로 학교 측이 선수를 수급해도 문제다. 합숙소 폐지는 고스란히 학부형들에게 피해가 돌아간다는 주장이다. 현재 축구부 합숙소는 학부형들이 십시일반 나눠 낸 회비로 운영되고 있다. 그래도 교내에 자리 잡고 있어 한 달에 식비를 포함해 65만 원 정도로 해결하고 있다. 하지만 합숙소가 폐지되면 타지에서 온 학생들은 아예 따로 집을 구해 살아야 한다. 부모들이 타지까지 와 자식을 돌볼 수 없는 상황이라면 어린 나이에 홀로 생활할 수밖에 없다. 65만 원이 아니라 한 달에 주거비와 식비 등으로만 수백만 원이 깨지고 돌봐줄 사람도 없다. 일선 지도자들이 “이건 아예 축구를 하지 말라는 것과 다름없다”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나마 편법을 생각하는 학교가 꽤 많다. 교내 합숙소 폐지 방침이 내리진다는 소식을 듣고 합숙소 문을 닫는 곳도 생겼다. 하지만 이들은 학교 밖에 따로 빌라를 구해 합숙을 시작했다. 합숙소 폐지 자체가 현실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편법을 써서라도 운동부를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서 학부형들이 내는 회비는 확 늘었다. 30~40명씩 되는 선수들을 방 한 칸에 몰아 넣을 수도 없어 빌라 한 채를 통째로 임대해 쓰기 때문이다. 월세를 학부형들이 부담해야 하고 수도세와 전기세 등도 학부형들의 몫이 됐다. 교내 합숙소를 쓸 때면 식비 포함 한 달에 65만 원으로 해결되던 게 이제는 한 달에 100만 원을 훌쩍 넘긴다. 교내 합숙소에서는 주로 식비만 부담하면 됐지만 이제는 학부형들이 월세를 비롯한 생활비까지 대야한다.

율전중학교는 2009년 교육청의 지원을 받아 무려 3억 원의 돈을 들여 합숙소를 지었다. 샤워장은 물론 휴게실 등 학생들을 위한 최신식 시설을 갖췄다. 지난 해에도 1억 원을 더 들여 부족한 부분을 리모델링했다. 율전중학교 뿐 아니라 전국의 많은 학교가 교육청 지원으로 좋은 시설의 합숙소를 갖췄다. 과거처럼 빨래가 너저분하게 널린 골방에 이불 하나 깔아 놓고 단체 생활을 하는 곳이 아니다. 하지만 합숙소 폐지가 결정되면서 막대한 금액을 투자해 지은 이 좋은 시설도 다 문을 닫게 생겼다. 최동욱 감독은 “합숙소가 위험하다면서 폐지 방침을 내세웠는데 우리는 최신식 시설에 한 달에 한 번씩 꼬박꼬박 소방 시설과 전기 시설 안전 점검도 다 받는다”며 “예전처럼 합숙소를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좋은 시설을 못 쓰게 된다는 건 불합리한 처사”라고 밝혔다.

대한축구협회에 지도자 300여 명이 모였다. 이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스포츠니어스

“아이들 위해 합숙소 폐지? 학교 안이 더 안전해”

좋은 시설을 놔두고 학생들이 학교 근처 원룸에서 생활하며 학부형들의 경제적인 부담만 더 커질 수 있다는 건 생각해 볼 대목이다. 김태건 감독은 “합숙이 장점만 있는 건 아니다. 어린 나이에 집을 떠나 단체 생활을 한다는 게 안쓰럽긴 하다”면서도 “하지만 어린 나이에 자기들이 운동을 하고 싶어 선택한 것이다. 함께 생활하며 운동에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청담중학교는 현재 축구부 뿐 아니라 야구부도 운영 중이다. 합숙소 폐지가 결정되면서 야구부도 합숙소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가야 한다. 축구계만의 문제가 아니라 학원 스포츠 전반이 고민해야 할 문제다. 경기도뿐 아니라 전국 모든 지역에서 머리를 맞대야 할 문제다.

이걸 학원 스포츠 지도자들의 밥그릇 싸움으로 봐서는 안 된다. 그들을 ‘고인 물’이라고 단정지어서도 안 된다. 아이들의 행복추구권과 직결되는 문제다. 지침이야 공문 한 장으로 내려질 수 있지만 자녀들의 꿈을 위해 뒷바라지 하는 학부형들은 65만 원으로 막을 걸 한 달에 100만 원이 넘게 쏟아 부어야 한다. 인권위원회의 권고가 스스로 선택한 행복보다 더 위에 있을 수 없다는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 일선 지도자들은 합숙소 폐지가 단순히 학생들을 위한 지침이 아니라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지도자는 “학생들이 한 군데 모여 있다가 사고라도 터지면 교육청이 그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교육청이 그 책임을 피하기 위해 아이들을 학교 밖 원룸으로 내몰고 있다”고 성토했다. “이건 회피일 뿐 개선이 아니다”라고 했다.

김태건 감독은 “학교 안에서 구타나 성폭력 등이 벌어지면 그걸 관리 감독하는 분들이 징계를 받을까봐 걱정하신다”면서 “합숙소를 폐지할 게 아니라 이런 사건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방안을 강구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최동욱 감독은 “잘하고 있는 학교는 더 잘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게 교육 정책이다. 그런데 우리처럼 시설도 개선하고 안전 점검도 정기적으로 받는 학교에도 제재를 가하면 안 된다”고 아쉬워했다. 이제 경기도내 선수들은 내년 2월 28일까지 짐을 싸 학교 밖에서 생활해야 한다. 단체 생활을 하며 벌어지는 구타와 폭행 등에 대해서는 차단하고 안전 사고 역시 예방해야 한다. 하지만 합숙소 폐지가 이 근본적인 예방책이 될 수 있을지는 고민해 봐야 하고 정말 학생들과 학부형을 위한 것인지도 한 번 더 생각해 봐야 한다.

인터뷰를 마칠 때쯤 최동욱 감독은 이런 말을 전했다. “아이들은 축구를 계속하기 위해 가족 전체가 이사를 하거나 아니면 아예 축구를 그만둬야 하는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지도자들의 이 집회 이후에 어느 한 쪽을 선택하겠다고 다들 상황을 지켜보는 중이다. 과연 합숙소를 폐지하면 아이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운동을 할 수 있을까. 아이들이 학교의 통제를 벗어나 학교 밖으로 나가 밥을 먹고 잠을 자고 휴식을 취하는 게 더 좋은 일인지는 생각해 봐야 한다. 학생들은 그래도 학교 안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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