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회] ‘미운 오리 새끼’ 상주상무의 고독했던 도전


상주상무
군대는 일찍 가는 게 제일 좋다. 하지만 제도적으로는 이제 조금 더 늦춰줄 필요도 있다. ⓒ상주상무

[스포츠니어스 | 상주=김현회 기자] 상주상무는 K리그에서 ‘미운 오리 새끼’ 같은 존재다. 선수들이 상주에 입대해 병역을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은 너무나도 고맙지만 프로 무대에 과연 군 팀이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은 늘 남아있다. 나 역시 그간 군 팀은 K리그가 아닌 실업무대에 있어도 충분하다는 주장을 펼쳐왔다. 이번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상주상무가 부산아이파크를 만나게 되자 축구팬들의 응원이 부산으로 기운 것도 사실이었다. 부산을 이끌었던 故조진호 감독을 추모하는 마음에 상대가 ‘미운 오리 새끼’ 상주였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상주가 극적으로 K리그 클래식 잔류에 성공하자 이를 반기지 않는 시선도 많다. 사연 많은 부산이 결국 K리그 클래식 승격 문 앞에서 좌절하자 그들을 안타까워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상주의 외롭고도 고독했던 도전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현장에서 지켜본 이들은 그 누구보다도 간절했다. 그들은 이 경기를 통해 내년에도 K리그 클래식에서 경기할 수 있는 자격을 보여줬다. 상주의 K리그 클래식 잔류를 반기지 않는 이들도 여전히 많을 테지만 그들은 대다수가 부산을 응원할 때 외롭게 준비했고 그들의 목표를 이뤄냈다. ‘미운 오리 새끼’ 상주는 박수를 받을 만한 팀이라는 사실을 입증했다.

상주 여름
상주상무 여름은 인천전에서 퇴장 당한 뒤 이어 벌어진 부산과의 중요했던 승부에서 결승골을 뽑아냈다. ⓒ상주상무

그들도 그들 향한 시선을 잘 안다
상주상무 주장 여름은 이번 승강 플레이오프가 누구보다도 부담스러웠다. 인천과의 K리그 클래식 최종 라운드에서 전반 44분 퇴장 당하며 팀의 0-2 패배와 승강 플레이오프 진출을 지켜봐야 했다. 이 경기에서 전반 내내 인천을 압도했던 상주는 여름 퇴장 이후 수세에 몰렸고 결국 쓰디쓴 패배를 맛봐야 했다. 여름은 이때를 회상하면 지금도 한숨이 절로 나온다. “동료들에게 도움이 되지 못해 너무 미안했다. ‘미안하다’는 말도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정규리그 징계는 승강 플레이오프까지 이어지지 않는다는 규정에 따라 여름은 승강 플레이오프 부산과의 원정 1차전에 나섰고 이 경기에서 전반 7분 만에 결승골을 뽑아냈다. 여름의 극적인 반전이었다.

하지만 여름을 비롯한 상주 선수들은 마음고생이 심했다. 군 팀 상주보다는 올 시즌 유독 사연이 많은 부산이 K리그 클래식에 올라오길 바라는 시선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여름도 이런 시선을 적지 않게 느꼈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는 ‘미운 오리 새끼’다. 이번 부산과의 승강 플레이오프뿐 아니라 늘 K리그 경기를 하면 우리 팀을 질타하는 분들이 많다. 군 팀이 프로 무대에 있다는 이유에서다. 칭찬이나 응원보다는 늘 우리 팀의 존재 자체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이 느껴진다. 그럴 때마다 상주 선수로서 마음이 아픈 것도 사실이다.” 상무는 최근 상주시라는 이름을 달고 뛰는 것도 문제가 돼 K리그 참가 자체가 무산될 수도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여름은 솔직한 심정을 드러냈다. “광주에서 뛸 당시에 나도 상주를 밉게 본 것도 사실”이라고 밝힌 여름은 막상 상주에 입대한 뒤에는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군대에 와야 한다. 축구를 하면서 병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상무는 꼭 있어야 할 존재라고 생각한다. 미움을 받더라도 K리그 클래식에서 뛰려고 열심히 해야 하는 게 우리의 임무다.” 상주 공격수 주민규도 자신들을 향한 곱지 않은 시선을 잘 안다. 주민규는 “이런 시선을 받고 있는 게 굉장히 슬프다”면서 “K리그 클래식과 K리그 챌린지를 가리지 않고 선수들은 군대에 와 병역을 해결해야 한다. 좋은 시선으로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시선이 오히려 선수들을 자극하는 계기가 됐다고 전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더욱 오기가 생겼다. 그래서 꼭 잔류하고 싶었다.”

상주상주 김태완 감독 ⓒ 스포츠니어스

추락하던 분위기, 프로답게 이겨낸 선수들
상주는 인천과의 경기에서 패한 이후 급격히 분위기가 떨어졌다. 여름은 “내가 주장이라고 나서서 팀을 이끌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면서 “고개는 들고 있지만 서로 눈치만 보는 분위기였다. 인천전 이후 분위기가 심각해졌다”고 했다. 하지만 김태완 감독을 비롯한 코치진은 선수들을 다그치지 않았다. 욕심을 내려놓고 선수들을 지켜봤다. 여름은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들이 먼저 내려 놓으셨다.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해보라고 하시면서 외출도 많이 주시고 편하게 해주셨다. 덕분에 선수들이 초조해지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상주는 차분하면서도 집중해 부산과의 승강 플레이오프 두 경기를 준비했다.

1차전 원정경기에서 여름의 결승골로 승리를 거둔 상주는 분위기가 들뜨기 시작했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자제시켰다. “좀 풀어지려고 하니까 동료들이 잡아줬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다. 2차전이 남아 있는데 벌써부터 좋아하면 안 된다’고 동료들이 정신을 차리게 해줬다.” 행정과 제도적인 문제를 떠나 이들은 축구선수다. 거기에다가 군인이기도 하다. 주어진 임무에 최선을 다해야 하고 승리를 거둬야 한다. 부산 입장에서도 승강 플레이오프가 간절했지만 상주 또한 이 경기를 양보할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은 이 경기에 모든 걸 걸었다.

여름과 주민규의 말처럼 이들은 누구보다도 집중해 K리그 클래식에 남기 위한 자격을 갖추고 있었다. 군 팀 상주가 K리그 챌린지로 내려가길 바라는 시선은 분명히 존재했지만 이들은 K리그 챌린지에서 2위를 차지하고 FA컵 결승까지 오른 부산을 상대로 정당한 경기를 펼쳐 살아남았다. 상주는 2013년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가 도입된 이후 최초로 K리그 클래식 11위팀이 잔류에 성공한 사례가 돼 역사에 남게 됐다. 피 말리는 승부차기 끝에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살아남은 최초의 팀도 바로 상주다. 부산도 멋지게 싸웠지만 추락하는 분위기에서 집중한 상주가 조금은 더 내년 시즌 K리그 클래식에서 뛸 자격을 갖추고 있었다.

상주 휴가증
여름은 경기 종료 후 받은 휴가증을 자랑했다. 그들에게도 분명한 K리그 클래식 잔류 목표가 있었다. ⓒ스포츠니어스

김태완 감독이 기뻐하지 못한 이유는?
상주 김태완 감독은 경기 내내 들뜨지 않았다. 과한 액션을 취하며 선수들을 다그치거나 질책하지도 않았다. K리그 플레이오프 사상 최초의 승부차기 승리라는 역사를 쓴 뒤에도 기뻐하는 내색하지 않았다. 코치진이 서로 부둥켜 안은 채 감격하고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기쁨의 눈물을 흘릴 때도 애써 표정을 감춘 채 두 손을 모으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기자회견장에 와 눈물을 보였다. 이 눈물은 K리그 클래식에서 살아남았다는 기쁨의 눈물이라기보다는 미안함의 눈물이었다. 그는 故조진호 감독 이야기를 꺼냈다. “故조진호 감독과 플레이오프에서 만나지 못한 것이 아쉽고 미안하다. 게다가 부산에는 상주 출신 선수들이 있다. 안타까운 마음이 있다. 부산을 여기까지 이끌고 온 제자들과 이승엽 감독대행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다. 우리가 K리그 클래식에서 살아남았지만 故조진호 감독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김태완 감독은 故조진호 감독과 상주에서 지난 시즌 함께 했던 사이였다. 故조진호 감독을 보좌하는 수석코치로 고인과 함께 했었다. 지도자 인생에서 가장 극적일 순간에 김태완 감독이 극도로 감정을 자제한 것도 故조진호 감독이 이끄는 팀에 대한 예의였다. 김태완 감독은 승리에 대한 기쁨보다는 패자에 대한 예의를 갖췄다. “우리도, 부산도 참 잔인한 승부였다. 승부차기에서 실축한 부산 고경민에게 위로 건네고 싶다. 부산도 잘 싸웠다. 훌륭한 팀인데 아쉽다. 기쁘지만 마냥 기뻐할 수는 없다.” 상주 선수들은 충분히 K리그 클래식에 남을 만한 실력과 정신력을 갖추고 있었고 그들을 지휘한 김태완 감독 역시 패자를 더 걱정해 줄 수 있는 그릇이 큰 지도자였다. 상주라는 군 팀을 곱지 않게 바라보는 시선도 많고 사연 많은 부산이 K리그 클래식에 올라오길 바라는 이들도 많았지만 상주의 승리 역시 그만한 가치가 있다.

상주 선수들은 다른 K리그 팀들처럼 경기에 출장하고 승리를 따내면 큰 금액의 수당을 받지 못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휴가증 한 장을 위해 뛴다. 프로 무대는 돈으로 말한다지만 그런 돈을 이기는 게 휴가증 한 장이라는 사실 역시 인상 깊다. 여름은 경기가 끝난 뒤 밝은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올 시즌 매 경기 휴가증이 걸려 있었다. 우리에게는 이 포상 휴가증 한 장이 되게 소중하다. 부대장님께서 늘 ‘이기기만 하라. 해달라는 대로 해주겠다’고 하셨는데도 한 발을 더 뛰지 못해 이길 경기를 비겼다. 그러다 승강 플레이오프까지 오게 됐다. 그런데 오늘은 잔류가 확정되자 바로 라커룸에서 아직 휴가 일수를 써 넣지 않은 휴가증이 나왔다.” 여름은 주머니에 꼭 챙겨 놓은 휴가증을 꺼내 자랑했다. 그들에게도 K리그 클래식에 남아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그게 돈이고 휴가증이고는 별개의 문제일 뿐이다. 난 취재 끝나면 집에 가는데 여름은 이 휴가증 한 장을 위해 사력을 다했다.

상주상무
상주상무의 K리그 클래식 잔류에도 큰 박수를 보내야 한다. ⓒ상주상무

‘미운 오리 새끼’들의 고독했던 도전
“올해 가장 길게 받은 휴가가 4박 5일이었다. 우리는 제대할 때까지 포상 휴가 일수가 정해져 있는데 올해 많이 이기질 못해 아직 한도를 채우려면 멀었다. 회식 자리에 가 ‘휴가를 길게 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부대장님께 밀어 붙일 생각이다. 이번에는 그래도 잔류에 성공했으니 한 열흘 정도 휴가를 받았으면 좋겠다.” 외부에서는 ‘미운 오리 새끼’ 취급을 당하는 그들이었지만 이렇게 K리그 클래식 잔류에 성공한 뒤 휴가증 한 장을 받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너무 그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만 바라보는 것도 잘못된 것 같다. 행정과 제도는 탓해도 순수하게 그라운드에서 최선을 다한 상주 선수들과 코치진을 탓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들은 본분에 맞게 목표를 이뤄냈다. 여름은 “미안한 마음이 너무 커 경기장에 서면 몸을 아끼지 않고 동료들을 위해 뛰자고 생각했는데 동료들이 더 많이 뛰어줘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했다. 그들의 축구는 멋졌다.

기자회견장을 빠져 나온 뒤에도 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 넣은 채 생각에 잠겨 있던 김태완 감독과 따로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한 가지 당부의 이야기를 전했다. “우리는 행정적으로는 문제가 있는 팀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를 경기력으로 평가해 주셨으면 한다. 우리도 경기력으로 정당하게 평가받아 K리그 클래식에 올라오고 K리그 챌린지로 내려가기도 한다. 선수들이 더 좋은 경기력을 선보일 수 있게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 주셨으면 좋겠다. 우리가 ‘미운 오리 새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이 ‘미운 오리 새끼’도 나중에는 백조가 된다. 백조가 되기 위한 ‘미운 오리 새끼’들이 모인 팀이라고 생각해 주시길 부탁드린다.” 최선을 다한 감독과 선수는 아무 죄가 없다. 그들은 축하를 받을 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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