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니어스 | 인천공항=명재영 기자] K리그 역사에 남을 한 인물이 우리 곁을 떠났다. 하지만 그의 뒷모습은 쓸쓸하지 않았다. 함께 해주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수원삼성의 산토스가 24일 새벽 브라질로 출국했다. 한국에 온 2010년 이래 고향 땅으로 가는 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이번엔 그 모양새가 좀 다르다. 휴가가 아닌 이별이기 때문이다. 수원 구단은 22일 산토스의 계약 종료 소식을 알렸다. 상호 합의로 재계약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담겼다.

수원 팬들은 충격에 빠졌다. 2013년 여름 이적시장에서 청백적 유니폼을 입은 산토스는 5시즌 동안 167경기에 출전해서 62골 16도움을 올렸다. 경기당 0.5에 가까운 공격 포인트를 올린 셈이다. 기록만으로도 수원의 개인 최다 득점자에 올랐지만 산토스의 진가는 단순한 수치로 평가할 수 없다. 팀이 어려울 때마다 결정적인 한 방을 보여주며 팬들을 울고 울렸던 선수를 어찌 숫자로 논하랴.

산토스는 수원의 11번째 공식 레전드로 영원히 이름을 남기게 됐다 ⓒ 수원삼성 제공

그런 산토스를 더 이상 빅버드(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볼 수 없다는 건 팬들에게 악몽에 가까운 일이다. 그 어떤 국내 선수보다도 팬들과 정을 쌓은 그다. 하지만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는 법’이라는 말처럼 이별의 순간이 찾아왔다. 하지만 팬들은 산토스를 그냥 보낼 수 없었다. 제대로 된 작별 인사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 전북현대와의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산토스는 2골을 연달아 몰아친 후 눈물을 흘리며 이별을 암시하기는 했지만, 그것만으로 상황을 단정 지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수원 팬들은 만약을 대비했다. 수원 팬 커뮤니티 ‘수블미’의 회원들이 그 주인공이다. 자체 팟 캐스트 방송도 운영할 만큼 수원 팬 내에서는 영향력이 큰 사이트다. 이들은 수원의 신화용과 김민우가 아쉽게 연간 베스트11 수상을 놓치자 직접 모금을 통해 자체 시상식을 기획했다. 그리고 그 시상식의 이름은 ‘산토스상’으로 결정됐다. 이 시상식을 기획한 수블미 운영자 채호병 씨는 “많은 족적을 남겼고 수원을 위해 큰 헌신을 한 산토스를 기리기 위해 명칭을 산토스 상으로 정했다”고 공지를 통해 말했다.

그는 산토스가 수원을 떠날 가능성이 있기에 올해가 아니면 선수 본인에게 상을 전달할 기회가 이번밖에 없을 것 같다는 예언(?)도 덧붙였다. 현장에서 만난 채 씨는 “산토스를 기억하고자 하는 많은 수원 팬들과 만남을 뒤에서 도운 구단 직원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이런 자리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 같다”고 감사를 표시했다.

이야기가 뜻하지 않게 현실이 되면서 급하게 산토스의 환송식이 기획됐다. 주체는 팬들이었다. 산토스의 이별이 공식화되자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산토스의 출국이 23일이었기 때문이다. 공지 하루 뒤에 바로 출국하는 일정이었다. 산토스를 만날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이 인천국제공항에서의 출국 상황이었다. 산토스상 시상식 개최에 뜻을 함께 모은 팬이 구단에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어렵게 만남의 시간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모든 것이 맞춰졌다. 출국 당일인 23일 오후 9시 인천공항에 환송식이 열리기로 확정됐고 이 소식은 커뮤니티 공지를 통해 팬들에게 퍼져나갔다. 준비할 시간도 없이 공지 바로 다음 날 그것도 평일 늦은 밤의 일정이었지만 ‘레전드’ 산토스와의 마지막 인사를 위해 참석하겠다는 팬들이 급속도로 늘어났다. 그리고 대망의 23일이 밝았다.

안 갈래야 안 갈 수가 없다

기자 또한 온라인 활동을 통해 산토스의 환송식이 열린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국내에서는 흔치 않은 일이기에 곧바로 현장 취재를 결정했다. 재밌는 점은 그다음이었다. <스포츠니어스>의 SNS 계정에 불이 난 것처럼 메시지가 쏟아졌다. 수원 팬들의 취재 요청이었다. 조금씩 달랐지만, 내용은 결국 모두 똑같았다. 산토스의 환송식에 <스포츠니어스> 기자들이 취재를 와줬으면 한다는 일종의 제보였다.

산토스와의 마지막 시간을 기사로나마 남기고 싶다는 마음들이 계속해서 전달됐다. 일정상 <스포츠니어스>의 얼굴 김현회 기자는 함께 할 수 없었지만 올 시즌 수원을 전담해서 맡은 본 기자가 무슨 일이 있더라도 환송식만큼은 가기로 내부의 이야기가 오갔다. 그렇게 23일 업무를 마치고 행사시간보다 한 시간 빠른 오후 8시 도착에 맞춰 공항철도에 몸을 실었다. 남들보다 일찍 도착해 환송식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전달하기 위함이었다. 

산토스는 수원의 11번째 공식 레전드로 영원히 이름을 남기게 됐다 ⓒ 수원삼성 제공

그렇게 오후 8시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현장에서 온 매체는 <스포츠니어스> 뿐이었다. 집결 장소인 5번 게이트의 2층에 도착하자 이미 와있던 20여 명의 팬이 기자를 반겼다. 줄 서는데 도가 튼 수원 팬들의 ‘일찍일찍’ 문화를 다시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짤막한 인사 뒤에는 혼자만 어색한 시간이 이어졌다. 팬들이 만든 행사였기에 현장에는 그 어떤 구단 관계자도 없었다. 우두커니 서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오는 팬들을 쳐다볼 뿐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인원수가 빠르게 불어났다. 이들의 상당수는 이동이 편리한 수도권에 거주하는 팬들이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최진현 씨가 그랬다. 세종특별자치시에 거주하는 최 씨는 산토스의 마지막 모습을 봐야 한다는 그 생각 하나만으로 3시간 반을 달려왔다. 최 씨는 “그동안 많이 좋아했던 산토스가 재계약을 하지 않고 떠난다는 소식에 마음이 아파 올라오게 되었다”며 “산토스가 이렇게 수원을 떠나게 됐지만, 팀을 잊지 말고 응원하는 팬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을 기억해줬으면 좋겠다”고 애틋한 심정을 드러냈다.

주인공의 등장, 그런데…

약속 시각이 가까워지자 인천공항에는 무려 200여 명의 팬이 모였다. 웬만한 지방 원정 응원단보다 많은 인파였다. 한 장소에 이렇게 많은 인원이 모이자 공항의 보안요원들은 비상이 걸렸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이 각자 파란 무언가를 몸에 치장하며 비장한 각오로 뭉쳐있었기 때문이다. 보안요원들은 직접 다가와 이 인원들의 정체와 모인 목적을 확인하고 나서야 살짝 멀리 물러섰다. 하지만 인터폰으로 상황을 계속하며 긴장을 늦추지는 않았다.

그렇게 약속 시각인 9시가 됐다. 산토스가 출국장에 도착했다는 소식에 모인 팬들 전부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공항 3층 출국장으로 에스컬레이터를 통해 이동했다. 출ㆍ퇴근의 지하철을 연상케 하는 줄이 에스컬레이터에 생겼다. 혼잡한 상황이었지만 모두가 질서 있게 이동해 별다른 안전사고 없이 인원 전원이 산토스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3층으로 올라가자 산토스와 그의 가족 모습이 보였다. 옆에는 수원의 김민수 통역관이 있었다. 그리고 또 한 명의 놀라운 손님이 있었다. 바로 주장 염기훈이었다. 산토스와의 마지막 추억을 위해 본인이 직접 차를 운전해 산토스 가족을 인천공항으로 데려다준 것이었다. 염산(염기훈-산토스) 듀오가 모습을 드러내자 팬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주인공들이 모인 가운데 산토스가 항공기 탑승을 위한 절차를 마치면 환송식이 곧바로 시작될 예정이었다.

김민수 통역관이 도와주는 가운데 산토스가 짐을 부치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문제는 바로 그 짐이었다. 짐이 많아도 너무 많은 것이다. 가족과 함께 한국에서 5년을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기는 했다. 직접 가지고 갈 여행용 가방을 제외하고도 거대한 이사 박스 9개가 카트 8개에 실렸다. 당장 이 카트를 움직일 손이 부족하자 일부 팬들이 나섰다. 팬들이 카트를 끌어주고 나서야 일들이 조금씩 풀리는 듯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산토스 본인이 짐을 어떻게 박스에 넣기는 했는데 무게가 관건이었다. 32kg까지의 수화물만 항공기에 실릴 수 있는데 무게를 재보니 대다수의 박스가 32kg를 초과했다. 심지어 100kg에 가까운 박스도 있었다. 항공사 직원도 난감한 표정이었다. 방법은 짐을 다시 싸는 수밖에 없었다. 김민수 통역관과 염기훈을 비롯해 같이 카트를 끌고 온 팬들이 현장에서 짐을 다시 정리했다. 일일이 뜯고 다시 포장하는 막노동 수준의 일이 갑자기 생긴 것이다. 기자 또한 카트를 같이 끌며 얼떨결에 산토스를 돕는 입장이 되었다.

성인 남성이 혼자서는 들 수 없을 만큼의 거대한 박스는 여러 명의 협동으로 겨우 재정리됐다. 이 모습을 지켜본 기자는 딱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산토스 오늘 집에 못 갈 뻔했네”. 산토스와 김민수 통역관, 염기훈 셋이서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일이었다. 열심히 일을 돕던 염기훈도 웃으며 “오늘 와주신 팬분들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네요”라며 고마움을 전했다.

산토스는 수원의 11번째 공식 레전드로 영원히 이름을 남기게 됐다 ⓒ 수원삼성 제공

수화물 정리 작업이 마무리에 이르자 시간은 이미 오후 10시를 넘어섰다. 예정됐던 시간을 한참 넘긴 상황이다. 환송식의 애초 계획은 오후 9시에 산토스를 만나 30분 정도 시간을 갖고 작별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시간이 늦어진 것이 산토스에는 상관이 없었지만, 문제는 팬들이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공항에 온 팬들의 막차 시간이 임박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점점 흐르자 안타까운 상황이 펼쳐졌다. 막차를 놓치면 안 되는 팬들이 결국 산토스의 환송식을 보지 못하고 귀갓길에 올랐다.

수화물로 인해 환송식 시간이 많이 늦어지자 팬들 사이에서는 진담 같은 농담이 흘렀다. 공항에서 산토스를 처음 봤을 때 다들 눈물이 글썽거렸는데 지금은 있던 눈물도 다 사라지더라는 그런 이야기였다. 산토스의 짐은 금액으로도 상상을 초월했음이 드러냈다. 초과 수화물 비용으로 191만 3500원이 청구됐다. 일을 돕던 한 팬이 농담으로 “산토스 돈 많아?”라고 물어보자 산토스는 한국어로 능청맞게 “돈 없어”라고 대답했다. 산토스의 익살스러운 말에 주장 염기훈을 비롯한 모두가 웃음을 터트렸다.

또다시 눈물 흘린 산토스

1시간이 넘는 수화물 운송 작전이 끝난 오후 10시 20분경 간신히 환송식을 시작할 수 있었다. 밖에서는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수원의 유명한 응원가가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팬들이 둥근 원 대형으로 산토스와 그 가족들을 맞이했다. 그리고 산토스의 말이 이어졌다. “환상적인 우리 팬들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기다림에 지쳐 눈물이 달아났다던 팬들의 눈은 어느새 눈물로 촉촉해졌다.

산토스는 팬들 앞에서 의미심장한 말도 남겼다. “이렇게 수원에서 가기는 싫었습니다. 수원에 더 많은 트로피를 안겨주고 수원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싶었습니다. 제 선택은 이곳입니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결정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당장 내일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이런 발언이 나오자 팬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구단이 산토스를 내쫓는 것이 아니냐는. 기자의 취재 결과 산토스의 브라질행은 수원 구단 측의 일방적인 결정이 아니라 구단과 산토스 본인의 상황이 맞물려서 이뤄진 것으로 확인됐다.

산토스는 수원의 11번째 공식 레전드로 영원히 이름을 남기게 됐다 ⓒ 수원삼성 제공

산토스의 이야기가 끝나자 산토스상 시상식이 진행됐다. 팬들의 모금으로 만들어진 트로피에는 ‘OBRIGADO SANTOS(고마워요. 산토스)’라는 문구와 함께 ‘살아있는 전설 산토스 선수에게 이 상패를 수여합니다’라는 말이 적혀있었다. 그리고 산토스가 수원으로 이적한 2013년 7월 25일과 FOREVER(영원히)라는 날짜도 있었다. 비록 수원을 떠나지만, 팬들의 마음속에는 영원할 것이라는 의미였다.

시상식 뒤에는 팬들의 선물 증정식이 이어졌다. 팬들은 각자 마련한 선물들을 산토스에게 다가가 직접 전달했다. 이 중에는 직접 포르투갈어로 적은 편지도 있었다. 환송식 내내 웃음기를 머금던 산토스가 편지를 읽으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혼잡했던 상황 탓에 내용을 정확히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팬의 진심이 산토스를 울린 것만은 확실했다.

레전드의 마지막 선수 입장

많이 늦어진 시간 탓에 환송식은 곧바로 산토스를 보내는 마지막 순서로 향했다. 도열식이었다. 팬들이 2줄로 길게 줄을 서고 산토스가 그 길을 지나가며 하이파이브를 하는 내용이었다. 수원 홈경기에서 선수단이 경기 전 훈련을 위해 처음 입장할 때의 그 풍경 그대로였다.

산토스가 대열에 다가섰다. 팬들이 “라~ 라라라라라 라라라라 산토스 산토스~”를 외치며 산토스 응원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응원가에는 ‘탐’으로 불리는 응원 북도 동원됐다. 공공장소에서는 원래 불가능한 행위지만 공항 측의 배려로 경기장에서의 산토스 응원가를 그대로 가져올 수 있었다. 산토스는 팬들의 손을 일일이 맞잡으며 마지막 선수 입장 길을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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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산토스 응원가와 구호가 이어졌고 그렇게 환송식은 마무리되었다. 팬들이 준 선물을 한 아름 안고 산토스는 배우자와 딸 사라, 레베카와 함께 출국 장소인 공항의 3번 게이트로 이동을 시작했다. 정말 이별하는 순간이었다. 산토스는 예의를 갖춰 팬들에게 인사를 멈추지 않았고 팬들은 손을 흔들었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 멀어져갔다.

“주장, 고마웠어요”

산토스의 마지막 배웅 길에는 염기훈과 그의 배우자 그리고 김 통역관이 함께했다. 염기훈은 앞서 열린 환송식에서 참았던 눈물을 터트리며 잠시 모습을 감췄다. 한참 뒤에야 다시 나타난 염기훈은 “화장실에서 눈물 좀 닦았다”며 다시 웃는 표정으로 산토스의 옆에 섰다. 오후 11시. 이제는 그들마저도 이별 인사를 해야 하는 시간이 찾아왔다. 출국 게이트로 들어가야 하는 시간이었다.

산토스는 김 통역관을 통해 염기훈에게 마지막 고마움을 표시했다. “오늘 덕분에 무사히 공항에 올 수 있었어요. 다시 한번 너무 고맙고, 내년 AFC 챔피언스리그와 K리그 클래식에서 꼭 좋은 성적을 내기를 멀리서도 기원할게요”. 이 말이 끝난 뒤 그들은 서로를 껴안았다. 각자의 배우자를 비롯한 가족끼리도 포옹하며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이들의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염기훈의 배우자 김정민 씨는 “한국에 있는 동안 바쁘다는 이유로 잘 해주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하다”며 “브라질에 가서 꼭 잘 살았으면 좋겠다”며 쌓인 정을 드러냈다.

산토스는 수원의 11번째 공식 레전드로 영원히 이름을 남기게 됐다 ⓒ 수원삼성 제공

모든 절차를 끝낸 산토스는 출국장으로 들어갔다. 어쩌면 다시는 못 볼 그다. 이별에는 언제나 아쉬움이 남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산토스의 마지막 길은 외롭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려운 시간을 함께해온 수많은 팬이 그를 기억하기 위해 머나먼 공항까지 찾아왔다. 그리고 감동적인 시간을 함께 보냈다. 우리 축구사에서 이런 일을 다시 볼 수 있을까. 너무나도 아름다운 풍경이었기에 모든 것이 눈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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