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폭설이 내린 강릉종합운동장의 모습. 겨울에 축구하면 늘 이런 모습이 될 것이다. ⓒ강원FC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해마다 K리그 시즌이 끝나면 나오는 말이 있다. 우리도 추춘제를 하면 어떻겠느냐는 것이다. 지금처럼 봄에 시즌을 시작해 가을(정확히 말하면 겨울이지만)에 끝내는 ‘춘추제’가 아니라 가을에 시작해 봄에 시즌을 마치는 ‘추춘제’를 하자는 주장이다. 최근 J리그에서도 추춘제를 논의 중이다. J리그 구단들이 난색을 표하고 있지만 일본축구협회가 추춘제 전환 필요성을 호소하고 있다. J리그는 오는 12월 이사회에서 이 추춘제에 대한 결정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J리그는 2019년이나 2022년부터 추춘제를 실시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이 시기면 K리그도 추춘제로 전환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적지 않게 나오는 가운데 J리그의 행보에 따라 K리그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형식적으로 알아보는 추춘제의 장점

하지만 나는 추춘제를 전적으로 반대한다. 가장 큰 이유는 단순하다. 춥다. 그냥 추운게 아니라 이러다 얼어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춥다. 일본이 자국리그에 어떤 결정을 내리건 간에 우리가 영향을 받을 필요도 없다. 추춘제는 절대 안 된다. 정말 추춘제를 했다가는 그나마 경기장을 찾는 관중이 반토막 날 것이다. 나는 J리그가 추진하고 있으니 K리그도 진지하게 추춘제를 고민해 보자는 말조차 절대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눈이 펑펑 와서 도로가 꽉 막힌 1월 어느 주말 경기장까지 갈 생각만 해도 아찔하고 그 추운 경기장에 앉아 있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머리카락이 선다. 추춘제는 절대 안 된다. 추워 죽는다. 차라리 날 쏘고 가라.

사실 하고 싶은 말은 이게 다다. 죽을 만큼 추우니 추춘제는 생각도 하지 말자는 게 오늘 칼럼의 핵심이다. 할 말은 다했다. 그런데 여기에서 그냥 끝낼 수는 없으니 형식적으로라도 추춘제의 장점에 대해 알아보자. 음, 장점이 별로 없어 보이긴 하지만 그나마 하나 꼽으라면 유럽 축구와 시즌을 맞춰 이적시장이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지금은 K리그나 J리그 등 춘추제를 시행하는 리그에서 추춘제를 시행하는 유럽으로 이적할 경우 불편함이 적지 않다. K리그나 J리그 선수들은 춘추제를 소화한 뒤 겨울에 유럽으로 이적하면 유럽 시즌 중반에 합류해 바로 경기에 나서야 한다.

또한 추춘제를 시행하면 K리그와 시즌이 겹치는 KBO리그를 피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KBO리그에 밀려 K리그가 중계도 부족하고 관심도 적은데 KBO리그 시즌을 피하면 훨씬 더 많은 관심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일단 추춘제의 장점은 이 정도다. 장점을 더 나열했다가 정말 진지하게 추춘제를 주장하는 이들이 더 생길지 모르니 추춘제의 장점은 이제 그만 알아보자. 그리고 정말 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추춘제의 장점은 이 외에 딱히 떠오르지도 않는다. 추워서 경기장에 앉아 경기를 보며 조는 이들이 없다는 것도 장점이라면 장점일 것이다. 일본축구협회는 J리그가 추춘제를 하게 된다면 일본 선수의 유럽 진출이 용이해져 대표팀도 더 강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겨울에 축구하면 우리 성룡이 얼어 죽는다.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추춘제의 단점

자 이제 형식적으로 추춘제의 장점을 알아 봤으니 단점도 알아보자. 가장 큰 문제는 역시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겨울에 축구장에 있는 게 너무나도 춥다는 점이다. 나는 지난 월요일(20일) WK리그 챔피언결정전 2차전을 보러 갔다가 얼어 죽을 뻔했다. 지난 주 수요일(15일) K리그 챌린지 준플레이오프 아산무궁화와 성남FC의 경기를 보러 아산에 갔다가도 마찬가지였다. 내복을 위아래로 껴입고 수면 양말을 신고 목티셔츠를 입고 롱패팅을 입고 마스크를 쓴 뒤 핫팩 두 개를 켰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손이 얼어 타자를 치기도 어려워 WK리그 경기가 끝난 뒤에는 근처 커피숍으로 피신해 일을 하기도 했다.

도저히 견딜 수 있는 추위가 아니다. 그래도 일이니 끝까지 앉아 있었지 그냥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간 것이었더라면 경기장을 박차고 나왔을 것이다. 아니 이 추위에 경기장에 갈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기자로 일하며 매년 가장 힘들었던 건 12월 25일이었다. 홍명보 장학재단이 주최하는 자선축구 대회가 늘 이날 열렸기 때문이다. 좋은 일을 위해 모인 경기라 그 취지에는 충분히 공감한다. 하지만 크리스마스에 경기장에 앉아 있으면 다리는 물론이고 턱이 덜덜 떨린다. 결국 홍명보 자선축구도 고심 끝에 서울월드컵경기장이 아닌 실내경기장으로 장소를 바꿔 치러지고 있다. 탁월한 선택이다. 웃고 즐겨야 할 자선축구를 하는데 관중이 너무 추워서 입 밖으로 욕을 내뱉으면 안 되지 않겠나.

한 겨울 축구장에 앉아 있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올 시즌 아직 K리그 승강플레이오프 2차전과 FA컵 결승 1,2차전, WK리그 올스타전 등이 남아있다. 이 경기장에 가려거든 출발 전부터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중무장을 하고 간다고 해 추위를 이겨낼 수 없다. 골대 뒤에서 뛰는 서포터스 모습을 보면서 ‘나도 좀 저렇게 뛰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축구를 꽤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지는 12월 FA컵 결승전을 경험해 봤을 것이다. 이 12월 FA컵 추위를 경험해보고도 추춘제를 입 밖으로 꺼내는 이들은 못 봤다. 단순히 ‘이런 장점과 이런 단점이 있군. 하지만 장점이 더 마음에 들어’라며 추춘제를 지지하는 이들이 있다면 지금 당장 밖에 나가 두 시간만 서 있어 보시라.

겨울에 축구하면 우리 성룡이 얼어 죽는다.

추춘제 시행되면 강원 홈 경기는 어떨까?

그래도 ‘적당히’ 추운 유럽에 비해 아시아의 겨울은 추워도 너무 춥다. 그래도 축구 인기가 많은 유럽에서는 경기장을 꽉 채운 수만 관중의 열기로 추위를 조금 녹일 수 있다 쳐도 천 명이 앉아 있는 K리그에서는 같은 추위도 더 무섭게 느껴진다. 요새는 경기장에 갈 때면 경기 전후 취재 시간을 포함해 세 시간 이상 냉동 창고에 갇힌다고 생각하고 간다. 이 추위도 무시무시한데 1월이나 2월에 축구를 한다면 정말 끔찍할 거다. 몇몇 인터뷰에서 “내 꿈은 70세까지 경기장에서 취재를 하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데 다시 인터뷰를 한다면 한 가지 조건을 더 추가할 생각이다. “내 꿈은 70세까지 ‘춘추제’를 치르는 경기장에서 취재를 하는 것이다.” 요새 들어 몸도 예전 같지 않은데 나이 먹고 한 겨울 축구장을 계속 경험한다면 골병이 들 것 같다.

추춘제로 KBO리그를 피하면 K리그가 더 많은 관심을 얻을 것이라는 것도 짧은 생각이다. 이미 겨울스포츠로는 농구와 배구가 자리 잡고 있다. 과연 K리그가 프로농구와 프로배구 사이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겨울에도 관람하기 편한 실내 종목과 바람 쌩쌩 부는 벌판에 앉아 있어야 하는 축구 중 대중에게 더 끌리는 곳은 어디일까. KBO리그를 피해 겨울에 K리그를 진행하면 그래도 경쟁이 수월할 것이라는 생각은 너무 단순하다. 가슴 아픈 일이지만 K리그가 추춘제를 실시한다고 해 없던 관심이 생겨날 일은 없다. 안 그래도 최근 들어 더 썰렁해진 축구장이 만약 추춘제를 실시한다면 더 휑해질 것은 분명하다.

더군다나 추춘제를 실시하면 폭설이 내리는 강원도 원정은 지옥이 된다. 한 번 들어갔다가 폭설로 고립되면 다음 경기까지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폭설이 내려 원정팀이 아예 경기장에 도착하지 못할 수도 있다. 2010년 3월 강원 홈 경기에 축하공연을 왔던 브라운아이드걸스를 기억하는가. 추춘제를 실시하면 상당수 경기를 이런 식으로 치러야 한다. 당시 브라운아이드걸스는 폭설이 내린 와중에도 축하 공연을 하느라 진을 뺐고 이 장면은 아직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3월에 열린 강원 홈 경기도 이 정도였는데 12월이나 1월, 2월에 강원에서 홈 경기가 열린다고 생각하면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K리그에서 추춘제 논의는 계속 접어두는 게 좋을 것 같다.

겨울에 축구하면 우리 성룡이 얼어 죽는다.

추춘제 했다가 얼어 죽는다

러시아는 추춘제가 아닌 것 같은 추춘제를 운영 중이다. 이게 대안이 될 수는 있다. 7월에 시즌을 시작해 12월까지 진행한 뒤 휴식을 취했다가 후반기를 3월부터 5월까지 치른다. 유럽 빅리그와 일정은 맞춰야겠고 날씨는 너무 추우니 변형된 추춘제를 실시 중이다. 하지만 리그 중반 휴식기가 2~3개월이나 되는 이 방식은 너무 일정하지 못하다. 그냥 두 개의 리그처럼 운영돼 연속성이 떨어진다. 더군다나 러시아 리그는 이렇게 일정을 축소하는 바람에 한 시즌 동안 팀당 30경기밖에 치르지 못한다. 단점도 굉장히 많고 오래 정착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현재 한 시즌에 정규리그만 38경기를 치르는 K리그에서는 러시아 같은 형태로 강추위를 피해 추춘제를 시행하기가 어렵다.

뭐 대충 경기수를 맞춰 만약 K리그나 J리그가 러시아처럼 추춘제를 실시한다면 어떨까. 그나마 한국에서는 5월부터 6월, 그리고 9월 정도가 날씨의 지장 없이 축구를 즐길 수 있는 시즌이다. 3월 개막 때도 춥고 4월도 추운 건 마찬가지다. 7월~8월은 미친 듯이 더운데 9월을 넘어가면 축구장에는 다른 곳보다 빨리 겨울이 찾아온다. 축구장의 계절은 ‘봄, 여어어름, 갈, 겨어어어어어어울’이다. 춘추제를 해도 좋은 날씨에 즐길 수 있는 경기는 한 7~8 라운드쯤이나 될까. 그런데 이걸 굳이 겨울에 치르자는 건 일고의 가치도 없는 주장이다. 날 좋을 때는 쉬고 하필이면 추위가 몰아칠 때 야외 경기장으로 나가는 건 굉장히 현명하지 못한 방식이다.

K리그와 관련한 여러 아이디어를 환영한다. 이것도 고민해 보고 저것도 고민해 보면서 발전 방향을 논의하는 건 좋다. 하지만 추춘제 만큼은 영원히 꺼내지 않았으면 한다. J리그가 이 문제를 공론화 했다고 해 ‘그렇다면 우리도?’라고 접근하는 이들은 없었으면 좋겠다. 참고로 일본축구협회의 추춘제 도입에 대해 J리그 구단 80%가 반대하고 있다. 유럽 이적시장 일정에 맞춰 시즌을 시행한다는 건 말로는 쉽지만 경기장을 찾는 이들에게는 너무나도 무서운 말이다. 칼럼을 끝내려는데 조성룡 기자가 단독 취재를 해왔다. 경기도 소재 시민구단들이 12월 2일부터 경기도컵(가칭)을 연단다. 시즌 도중 기회를 받지 못한 선수들이 경기 감각을 키울 수 있는 좋은 취지의 대회이고 당연히 환영한다. 현장에 갈 것이다. 하지만 나는 벌써부터 이 추위가 두렵다. 토너먼트 대회도 이리 무서운데 K리그에서 추춘제를 실시하면 정말 얼어 죽을 수도 있다. 추춘제는 우리나라가 아열대 기후가 되기 전까지는 생각도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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