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산토스] ‘수원 사나이’ 염기훈, 전설 대하는 전설의 품격

염기훈, 산토스

[스포츠니어스 | 인천공항=명재영 기자] 수원의 사나이는 확실히 달랐다. 레전드가 또 다른 레전드를 떠나보내며 주장의 품격을 제대로 보여줬다.

23일 인천공항에서 수원삼성 팬들이 산토스 환송식을 열었다. 산토스 환송식은 22일 구단의 계약 만료 발표 직후 팬들이 직접 행사를 기획해 극적으로 열렸다. 24일 새벽 항공기를 통해 브라질로 출국하는 산토스는 출국 직전 공항에 일찍 도착해 팬들과 만났다.

이날 산토스는 팬들이 만든 산토스상의 제1회 수상자로 트로피를 받고 팬들의 도열을 받으며 아름다운 이별 행사를 했다. 이 자리에는 수원의 주장인 염기훈이 함께했다. 당초 산토스는 택시를 이용해 공항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산토스와 다섯 시즌을 함께 보낸 염기훈은 산토스에게 해줄 마지막 선물을 고민하다가 산토스가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갈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배우자와 함께 공항까지 바래다주는 길을 선택했다. 이렇게 홀로 산토스를 공항에 보내는 게 미안해서였다.

염기훈은 공항에 도착하기 전 산토스의 가족들과 마지막 저녁 식사를 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염기훈의 가족과 산토스 가족은 돈독하기로 유명하다. 국적과 언어를 넘나든 우정이 마지막까지 빛을 발한 것이다. 산토스의 딸은 염기훈의 아내에게 ‘이모’라고 하며 따랐다. 그만큼 오랜 시간 함께 했기에 가능한 사이였다. 이날 염기훈은 온전히 하루를 산토스의 배웅을 위해 보냈다.

염기훈은 이날 환송식부터 밤늦게 출국하기 직전까지 산토스의 옆에 함께 있으며 동료에게 마지막 예의를 다했다. 특히 산토스가 수화물 문제로 1시간 넘게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는 팬들과 함께 직접 짐을 옮기면서 진한 우정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 밖에 염기훈은 환송식에 참석하지 못한 팬들을 위해 자신의 SNS 계정으로 직접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기도 했다. 환송식이 무르익자 지켜보던 염기훈은 참아왔던 눈물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염기훈은 공항에서의 인터뷰를 통해 산토스에 대한 진한 애틋함을 표시했다. “산토스는 팀과 제가 힘들었을 때 동고동락한 동료입니다. 12년 동안 프로 생활을 하면서 많은 외국인 선수를 만나고 헤어졌지만 산토스에게 가장 정이 든 것 같습니다. 산토스가 수원을 떠나는 건 안타깝고 속상한 일이지만 이별의 순간은 언제나 찾아오는 것이기에 보내주려고 합니다. 워낙 성실한 선수이기 때문에 어딜 가도 잘 할 것으로 믿습니다.”

그렇다면 염기훈에게 산토스는 어떤 존재일까. 또 같이 한 최고의 순간은 언제일까. “산토스는 웬만한 한국 선수보다도 정신력이 뛰어난 선수에요. 머나먼 타지에서 생활했지만, 항상 성실했고 출전 여부에 상관없이 어느 상황에서든 최선을 다했던 선수입니다. 제가 도움 기록을 쌓는데 사실 산토스가 많이 도와줬어요. 저에겐 정말 여러모로 고마운 선수입니다. 다섯 시즌 동안 정말 많은 걸 같이 했는데 힘든 시기를 거쳐 작년 FA컵에서 같이 트로피를 들었던 것이 가장 좋았고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염기훈과 산토스는 한때 염산권(염기훈-산토스-권창훈) 트리오로 불렸지만 권창훈이 지난겨울, 산토스가 이번 시즌을 끝으로 떠나면서 이 트리오는 더는 볼 수 없게 됐다. 팬들에게는 아쉬운 일이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도 염기훈은 정말 동료이자 남자의 모습을 보여줬다. 이들의 우정은 훗날에도 빛나지 않을까. 염기훈은 공항에서 무려 4시간 가까이 산토스와 함께 했다. 산토스가 출국 게이트로 빠져 나가는 모습을 본 뒤에야 공항을 빠져나갔다. ‘전설’을 대하는 ‘전설’의 품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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