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과 성남은 부산으로 가는 길목에서 만났다. ⓒ아산무궁화

[스포츠니어스 | 아산=김현회 기자] 선수들이 원정을 떠나 묵을 숙소나 끼니를 해결할 식당을 찾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여행을 가 숙박업소 어플을 켜거나 맛집을 검색하는 수준이 아니다. 30여 명에 가까운 선수단이 한꺼번에 묵을 만한 숙소를 찾는 일은 쉽지 않다. 식당 역시 마찬가지다. 영양가도 생각해야 하고 한 번에 선수단을 모두 수용할 만한 규모여야 한다. 그렇다고 다 되는 건 아니다. 무엇보다도 선수단 버스가 주차를 할 공간도 필요하다. 아예 주차장이 따로 마련돼 있거나 큰 길에 주차를 할 수 없다면 30여 명에 가까운 선수단이 식사를 하기 위해 이동하는 건 무리다. 이 조건을 다 맞출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11월에도 축구하게 된 아산과 성남

이 모든 업무는 구단 주무가 맡는다. 주무가 동선과 상황을 파악해 섭외한다. 그런데 전국 각지로 원정을 떠나는 상황에서 모든 지역의 숙소와 식당을 줄줄이 꾀고 있을 수는 없다. 그래서 K리그 챌린지 구단 주무끼리 소통하는 ‘단톡방’이 있다. “XX 지역에 원정을 왔는데 선수단이 이용할 식당이 있으면 추천해 달라”고 하면 서로 추천해 주는 공간이다. 이들은 이 ‘단톡방’을 통해 많은 정보를 얻는다. 대부분 구단이 원정을 떠나면 묵을 숙소는 대충 정해져 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숙소 문제도 이 ‘단톡방’에 묻는다. K리그 챌린지와는 별개로 K리그 클래식 주무들끼리도 ‘단톡방’이 있다. 그들 사이에서도 1부리그와 2부리그가 존재한다.

주무들의 고민은 11월이 되면 극심해 진다. 선수들이 쓰는 소모 용품을 더 주문하느냐 마느냐는 걸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4위까지 진출하는 준플레이오프에 나간다면 11월에 쓸 용품도 구입해야 하지만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하면 11월 용품은 구입할 필요가 없다. 선수들이 훈련 때 쓰는 테이프부터 구입해야 할 물품은 한두 개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준플레이오프에 못 갈 것 같으니 11월 용품은 주문하지 않겠다”고 구단에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주무는 없다. 일찌감치 탈락이 확정됐으면 모를까 준플레이오프 가시권에 있는 팀에서 이런 말을 한다면 “재수 없는 소리한다”며 꾸중을 들을 게 뻔하다.

아산무궁화와 성남FC 주무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둘은 같은 대학교 같은 학과 선후배 사이다. 성남FC 곽재승 주무가 아산무궁화 이선우 주무보다 2년 선배다. 한국외대 국제스포츠레저학과를 졸업한 뒤 나란히 프로구단에 입성해 평상시에도 서로 정보도 공유하고 고민도 나누는 사이다. 같은 업종에 종사하다보니 학창시절보다 더 친하다. 치열하게 준플레이오프 진출 경쟁을 펼치던 이 두 팀 주무는 11월까지 축구를 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11월 용품을 준비했다. 그리고 이들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아산은 K리그 챌린지 3위로, 성남FC는 4위로 극적인 준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다. 자칫 잘못하면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가 끝난 뒤 곧바로 선수단이 해산해야 팔 판이었지만 아산과 성남은 11월에도 축구를 할 수 있게 됐다.

아산은 안방에서 성남을 기다렸다. ⓒ아산무궁화

준PO 준비하며 부산행도 챙겨야 했던 두 팀

아산과 성남은 15일 아산 종합운동장에서 외나무다리 승부를 펼쳤다. KEB하나은행 2017 K리그 챌린지 준플레이오프에서 이 두 팀이 만났다. 3위 아산은 무승부만 거둬도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수 있는 상황이었고 4위 성남은 비기면 탈락하는 핸디캡을 안고 있었다. 반드시 K리그 클래식에 오르고 싶은 선수들의 열망은 강렬했다. 하지만 양 팀 주무에게는 또 다시 고민이 시작됐다. 이 경기에서 살아남으면 하루를 쉬고 오는 17일 부산으로 날아가 하루 밤을 묵은 뒤 부산아이파크와 플레이오프가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정해진 건 아무 것도 없었다. 당장 준플레이오프가 끝나야 한 팀은 부산으로 가고 한 팀은 시즌을 마감하는 일정이 확정되는 상황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부산 숙소였다. 아산은 평소 부산 원정을 떠나면 묵던 A호텔이 있었다. 성남이 부산 원정을 갔을 때 묵던 호텔은 B호텔이었다. 양 팀 주무는 준플레이오프가 치러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혹시 플레이오프에 갈 수 있으니 부산 호텔 예약을 해야 했다. 물론 준플레이오프에서 떨어지면 호텔 예약은 취소다. A와 B 호텔 모두 부산아이파크가 홈으로 쓰는 구덕운동장 부근이었다. 그런데 아산 이선우 주무가 A호텔에 전화했다가 깜짝 놀랐다. “예약이 꽉 차 그 많은 인원이 묵을 방이 없다”는 것이었다. 알고 봤더니 이 기간에 부산에서 국내 최대 게임쇼 ‘지스타 2017’이 열리는 것이었다. 16일부터 딱 나흘간 열리는 일정이 부산에서 열릴 플레이오프와 겹쳤다.

총 2,758부스의 전시관이 열리는 역대 최대 규모의 행사였다. 부산 일대의 숙박 업소 대부분의 예약이 꽉 차 있었다. 30여 명이 넘는 대규모 선수단이 묵을 숙소를 찾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아산 이선우 주무는 평소 성남이 주로 이용하던 B호텔에 전화를 걸었다. “혹시 오는 금요일(17일)에 대규모 선수단이 하루 묵을 방이 있을까요?” 그러자 B호텔 측에서 난감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그날 이미 예약된 팀이 있습니다. 성남FC 선수단이 예약을 했는데 상황에 따라 취소할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아직 성남FC 측에서 확실히 결정을 못해주셨는데 어쩌죠?” 이선우 주무는 무릎을 탁 쳤다. 성남이 이 호텔에 묵지 않을 이유는 딱 하나 뿐이었기 때문이다. 아산에 패하는 것뿐이었다. “알겠습니다. 다시 전화 드리겠습니다.”

아산은 안방에서 성남을 기다렸다. ⓒ아산무궁화

숙박업소 놓고 벌인 두 팀 주무의 협상

아산 이선우 주무는 성남 곽재승 주무에게 연락을 했다. “형. 그 B호텔 있잖아요. 혹시 서로 쓰지 않을 일이 생기면 상대팀에 양보하기로 해요.” 이 극성수기에 B호텔에 마냥 기다려달라고 하기에도 미안했던 곽재승 주무도 이야기를 듣고 동의했다. “그래 우리 서로 준플레이오프에서 이기는 팀이 B호텔에 가기로 하자.” 이 두 주무는 사이좋게 합의했다. 15일 밤까지 B호텔에 묵을 30여 명의 선수단 자리는 비워져 있었지만 투숙객 이름은 적혀 있지 않았다. 투수객이 아산무궁화선수단이 되느냐 성남FC선수단이 되느냐는 90분의 승부에서 판가름 나기 때문이었다. B구단도 투숙객 예약자 명단에 그 어떤 팀의 이름도 미리 적어 놓을 수 없었다. 부산 B호텔에 투숙하기 위한 아산과 성남의 ‘숙박업소 쟁탈전’ 준플레이오프가 펼쳐졌다.

하지만 두 팀 모두 부산에 가겠다는 의지는 확고했다. 경기 전 만난 아산 송선호 감독은 “이미 부산에 갈 계획까지 다 마무리했다. 오늘 경기를 꼭 잡고 부산으로 가겠다”고 전의를 불태웠다. 준플레이오프 결과야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모든 훈련 일정을 부산으로 가는 것까지 세워놓았다. 하지만 성남도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K리그 챌린지 규정상 경기마다 U-22 선수를 한 명은 선발로 내세워야 하지만 예외가 있다. 경찰로 구성된 아산과의 경기에서만큼은 U-22세 출전 조항이 없다. 성남의 약점은 U-22 선수가 빈약하다는 것이었다. K리그 클래식은 U-23세 조항이 있지만 성남은 U-22세 조항이 있는 K리그 챌린지 강등을 생각해 본 적이 없어 U-22 선수 육성에 신경을 기울이지 않다 강등을 경험했다.

성남이 FC서울에서 심제혁을 유상 임대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U-22세 어린 선수 한 명을 채워야 해 고민이 많았다. 그런데 U-22세 조항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아산을 만난 성남은 어린 선수들을 제외한 채 아산 원정 명단을 꾸렸다. 하지만 박경훈 감독은 부산으로 갈 계획도 세웠다. 부산과 플레이오프를 치른다면 U-22세 선수 한 명을 투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박경훈 감독은 아산전이 열리는 어제 성남에 머물던 어린 선수들을 아산으로 불렀다. 부산행이 확정되면 곧바로 팀에 합류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두 팀 모두 준플레이오프를 치르고 있었지만 머리 속에는 부산으로 갈 일정을 챙기지 않을 수 없었다. 두 팀 중 한 팀을 맞을 B호텔도 채비를 갖췄지만 그 주인은 쉽게 가려지지 않았다.

아산은 안방에서 성남을 기다렸다. ⓒ아산무궁화

17일 아산이 부산 B호텔로 간다

‘숙박업소 챙탈전’ 준플레이오프는 치열하게 펼쳐졌다. 추운 날씨 속에서도 두 팀의 경기는 뜨거웠다. 선취골을 내주면 경기를 뒤집기 어려운 성남이나 홈에서 싸우는 아산이나 반드시 살아남아야 하는 경기였다. 팽팽한 경기는 전반 45분이 지날 때까지도 0-0이었다. 그런데 후반 21분 마침내 ‘숙박업소 쟁탈전’에 종지부를 찍는 골이 터졌다. 아산 서용덕의 도움을 받은 정성민의 통렬한 헤딩골이었다. 반드시 이겨야 하는 성남의 추격 의지를 완전히 꺾는 골이었다. 이후 성남은 총공세에 나섰지만 이렇다 할 위협적인 기회를 잡지 못했고 아산은 안정적인 수비를 보여줬다. 결국 경기는 아산의 1-0 승리를 막을 내렸다.

그렇게 결국 17일 B호텔에서 숙박할 수 있는 영광(?)은 아산에 돌아갔다. 성남의 맹공을 막아내며 준플레이오프에서 살아남은 아산 선수들은 90분 경기가 끝나자 환호했다. 추운 날씨 속에서도 응원을 보낸 관중 역시 경기가 끝나자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성남 선수들은 그라운드에 그대로 주저 앉았다. 올 시즌 정규리그에서 성남과 네 번 맞붙어 1무 3패로 극도의 열세를 보였던 아산은 단 한 번의 승부에서 결국 웃었다. 그리고 이들이 모두 경기장을 빠져 나간 뒤 아산 이선우 주무는 전화기를 꺼내 들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B호텔이죠? 17일에 저희가 숙박하게 됐습니다. 네. 아산무궁화축구단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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