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FC에서 활약 중인 조현우는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도 데뷔전에서 인상적인 플레이를 선보였다. ⓒ대구FC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1994년 미국월드컵 조별예선 마지막 독일과의 경기에서 한국의 붙박이 수문장 최인영은 전반에만 무려 3실점을 했다. 그 중 두 골은 주지 않아도 될 골이었다. 월드컵 아시아 예선 1라운드 8경기에서 단 1실점에 머물렀고 최종 예선 5경기에서도 4실점으로 틀어막으며 맹활약했던 최인영은 한국의 상징과도 같은 골키퍼였다. 나는 그가 독일과의 경기에서 허무하게 실점하는 모습을 보며 앞이 캄캄해졌다. 한국 골키퍼는 최인영 말고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후반 들어 생전 처음 보는 골키퍼가 골문에 섰다. 대학생 이운재였다.

변화 적은 골키퍼, 한 번 차지하면 오래 간다

의아했다. 당시 대표팀에서 최인영을 대신할 골키퍼는 그래도 경험 있는 박철우였기 때문이다. 대학교 3학년생이 대표팀 골문을 지킨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운재는 또 다시 잊혀졌다. 대표팀에서 반짝 활약한 선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1999년 예고 없이 돌아왔다. 물론 그는 1996년 수원삼성에 입단한 뒤 프로 무대에서 줄곧 뛰었지만 ‘예고 없이’라는 오늘 내 표현은 어디까지나 대표팀에 한정된 것이다. 이운재는 1998년 프랑스월드컵 참패 이후 이듬해부터 주전으로 도약하기 시작했다. 당시 대표팀 골키퍼는 최인영의 은퇴 이후 차상광과 신범철, 박철우, 김병지, 박종문, 서동명, 김봉수 등 춘추 전국시대였었다.

그런데 이런 경쟁은 1999년 이운재가 대표팀에 예고 없이 재등장한 뒤 끝났다. 이운재는 2000년 들어 이전 골키퍼 경쟁이 무색하리만큼 독주 체제를 굳혀갔다. 마치 언제 경쟁이라도 했냐는 듯 이운재가 부동의 주전으로 도약했다. 골키퍼라는 포지션은 한 번 주전으로 나서는 것도 어렵지만 한 번 확고한 믿음을 주면 다른 포지션보다 훨씬 더 자리를 지키기 수월하다는 특징이 있다. 한 번 빼앗기도 어렵지만 빼앗으면 몇 년은 기회가 보장돼 있다. 그래서인지 세대교체가 쉽지 않지만 한 번 등장해 눈도장을 받은 선수는 오래간다. 이운재는 그렇게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역사에 남을 활약을 펼쳤다.

골키퍼는 한 번 바뀌면 또 다른 변화를 크게 허락하지 않는다. 전설적인 골키퍼 이운재도 2006년 독일월드컵 소속팀 수원삼성에서 후보로 밀릴 정도다. 당시 이운재는 무릎 부상을 당한 뒤 회복했지만 부상으로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동안 좋은 활약을 펼친 박호진을 다시 밀어낼 수 없었다. 차범근 감독은 팀이 잘하고 있는데 굳이 다시 이운재를 투입하는 변화를 줄 이유가 없었다. 박호진은 이 시즌에 K리그 베스트11에 이름을 올렸다. 대표팀 주전 골키퍼가 소속팀 주전 경쟁에서 밀렸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골키퍼라는 포지션이 그렇다. 다른 포지션은 그래도 대표팀에 불러 한두 경기 테스트해보고 돌려보낼 수 있지만 골키퍼는 혜성처럼 등장하기까지 신중한 편이다. 한 번 신뢰를 얻으면 그 신뢰가 오래 가는 편이기도 하다.

조현우를 대표팀에서 볼 기회가 더 많아질 수도 있다. ⓒ대구FC

정성룡도 그랬고 김승규도 그랬다

이운재의 시대도 급격하게 막을 내렸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 직전까지 활약하다 정성룡의 등장으로 이운재의 찬란했던 시대도 끝이 났다. 마찬가지로 정성룡도 2008년부터 대표팀에서 테스트를 받았지만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 예고 없이 주전으로 등장해 4년간 붙박이 주전으로 활약했다. 골키퍼는 늘 이런 식이다. 영원할 것 같던 정성룡의 시대도 김승규가 대표팀에 등장하면서 마감됐다. 김승규의 시대는 그렇게 2013년경부터 시작됐다. 2013년 8월 A매치 데뷔전 페루와의 경기에서 눈부신 활약을 보이며 무실점에 성공한 김승규는 합격점을 받고 이후 정성룡을 밀어냈다. 국가대표 선수 11명 중 딱 한 명만 허락된 포지션이어서 변화에 보수적이지만 변화가 일어나면 그 입지는 이렇게 확고해진다. 등장도 급격하고 추락도 급격한 게 바로 골키퍼 포지션이다.

골키퍼는 최전방 공격수처럼 전략과 전술에 따라 수시로 바뀌는 자리가 아니다. 그런데 이제 김승규의 경쟁자가 예고 없이 혜성처럼 등장했다. 바로 대구FC 조현우다. K리그를 즐겨보는 이들에게는 놀라울 일도 아니지만 오랜 만에 축구를 본 이들은 깜짝 놀랐을 것이다. 오늘(14일) 세르비아와 펼쳐진 평가전에 나타난 이 생소한 선수는 상대의 완벽한 프리킥을 막아내며 강렬한 인상을 심어줬다. 1994년 이운재처럼, 2010년 정성룡처럼, 그리고 2013년 김승규처럼 예고 없이 등장했다. 그때의 느낌과 비슷하다. 기존 주전 골키퍼가 약간 주춤한 사이 아직은 국가대표팀 유니폼이 어색한 이런 골키퍼는 한 방에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킨 뒤 어느새 주전 골키퍼로 도약했던 바 있다.

조현우가 세르비아전에서 보여준 능력이라면 앞으로 김승규도 안심할 수 없을 것이다. 당장은 김승규가 부상을 회복한 뒤 주전 골키퍼 자리를 빼앗을 순 있어도 수년 내로 조현우가 대표팀에서 차지할 입지는 과거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대구에서 보여준 반사 신경과 슈퍼 세이브 능력, 그리고 발재간이라면 그의 활약이 세르비아전에서 반짝했던 걸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비록 그는 세르비아와의 A매치 데뷔전에서 한 골을 실점했지만 강렬한 임팩트를 선사했다. 대표팀에도 호재다. 김승규가 확고한 입지를 다진 가운데 김진현의 경쟁이 부족했던 시점에서 조현우의 등장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대표팀 골키퍼라는 자리는 두 명의 선수에게 눈꼽 만큼의 차이가 있어도 둘 중 하나다. 주전이거나 후보거나. 조현우는 김승규와의 경쟁에서 누가 이기건 딱 눈꼽 만큼의 실력차 뿐이다. 전혀 밀릴 게 없다.

조현우는 대표팀에서 가능성을 보여줬다

조현우는 2013년 대구에 입단했다. 당시 인천유나이티드 김봉길 감독대행은 스카우트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선문대학교에 다니는 두 명의 선수가 뛰어나다.” 그 중 한 명이 이석현(현 FC서울)이었고 또 다른 한 명이 조현우였다. 인천은 골키퍼 유현이 군대에 가고 권정혁은 나이가 많아 조현우를 영입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석현도 탐이 났다. 그런데 두 선수를 놓고 고민하는 그 상황에서 대구가 덜컥 조현우를 영입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대구와 인천을 비롯해 다른 K리그 구단들도 조현우 영입에 탐을 내고 있었다. 만약 당시 조현우가 인천에 입단했더라면 또 지금 상황이 어떻게 달라졌을지 모른다. 대구의 상황도, 인천의 상황도, 그리고 대표팀의 상황도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소위 말하는 축구 명문대는 아니지만 조현우는 대학 시절부터 여러 팀이 탐을 내던 선수였다. 그리고 사람들이 많이 주목하는 팀은 아니었지만 대구FC에서 착실히 경험을 쌓았다. K리그 챌린지도 경험했다. 오랜 만에 텔레비전을 틀어 대표팀 경기를 지켜본 이에게는 ‘혜성처럼 등장했다’는 표현이 맞을 수도 있다. 그런데 대표팀 골문을 지킬 단 한 번의 기회를 얻는다는 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기도 하고 그 자리에까지 간 선수는 그만한 가치가 있다. 그리고 한국 축구사에 빼놓을 수 없는 골키퍼들이 혜성처럼 등장했던 그때처럼 조현우도 비슷한 느낌을 준다. 세르비아전을 보면 이제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조현우의 존재가 서서히 익숙해질 가능성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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