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한국이 독일을 제압했다. 이번 월드컵 최대 이변이다. ⓒ 아시아축구연맹(AFC)

[스포츠니어스 | 홍인택 기자]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한국 대표팀이 친선 경기 2연전을 치른다. 다가올 10일(금)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콜롬비아, 14일(화) 울산문수축구장에서 세르비아와의 경기 일정이 잡혀있다.

친선 경기를 앞두고 토니 그란데 코치는 한국 축구의 첫인상에 대해 "축구를 너무 순하게 한다"라고 밝혔다. 신태용 감독은 "거친 축구 하겠다"라고 밝히며 그란데 코치의 조언을 받아들였다. 이 발언으로 신태용호 3기의 과제가 분명하게 드러났다. 손흥민의 중앙 배치를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지만 이번 2연전의 초점은 공격보다는 수비에 있다. 전체적으로는 '선수들이 얼마나 투지를 보여주는가'에 있다. 이제 이 과제가 실현되는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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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용 감독은 목적을 정확히 알고 있다

그동안 신태용 감독의 대표팀 운영을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았다. 대표팀의 경기력에 만족하기 어려웠던 것은 사실이다. K리그 선수들을 유난히 보호하려던 모습, 의문을 남겼던 교체 타이밍 등 신 감독의 결단력에는 비판의 여지가 있었다.

그러나 신 감독을 비롯한 대표팀을 향한 '불신'에는 이의를 제기 하고 싶다. 신 감독은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성실하게 마무리했다. 그는 실패하지 않았다. 신태용호 1기는 물론이고 유럽원정을 떠났던 신태용호 2기도 마찬가지다.

축구에서 결과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다. 신태용호 1기는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과제의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아시아에서 축구를 가장 잘하는 이란을 상대로 패배하지 않았다. 우즈베키스탄 원정은 골을 만들어내지 못하며 다소 불안한 모습을 보였지만, 그래서 월드컵 본선 진출을 '당했다'라는 표현도 있었지만 어쨌든 진출은 진출이다.

처음 신태용 감독이 선발 명단을 꾸렸을 때 그는 대표팀 사령탑 부임 후 3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자신의 축구 인생을 걸었다. 모험보다도 실리를 선택했다. 그가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최선책은 승리였지만 승리를 위한 첫 번째 과제는 '지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이란전 백 포 수비라인 중 세 명을 전북 선수들로 선택했다. 수비 조직력과 안정화를 통해 무실점이라는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한 선발명단이었다. 이어진 우즈베크전에는 아예 시스템을 백 스리로 바꾸며 수비 밀도를 높였다. 신태용호 1기는 그렇게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과제를 달성했다.

한편 신태용호 2기의 경기 결과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선수 구성은 전원 해외파로 꾸렸다. 그는 "K리그 선수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해외파로 꾸렸다"라고 밝혔다. 전원 해외파 구성의 선발 명단에서 중요한 초점은 해외파 선수들의 '점검'이었다. 신태용 감독이 직접 보지 못했던 선수들, 함께 팀 동료로서 뛰어보지 못한 선수들을 모았다. 일각에서 기대를 모았던 U-20 멤버들을 뽑지 않은 이유도 마찬가지다.

신태용 감독은 러시아전과 모로코전에서 완패를 당했다. 하지만 결과보다 선수들의 기량 확인이 더 중요했다. 신태용호 2기에 뽑힌 선수들은 그들이 왜 해외로 진출할 수 있었는지 스스로 증명했어야 했다. 10월에 열렸던 친선 경기 2연전에 쓰인 전술에는 큰 의미가 없었다. 변형 백 스리는 신태용 감독의 실험적 방향과 의중을 살펴볼 수 있는 기본 틀이었을 뿐이다. 해당 전술의 실현은 선수들에게 달려있었다. 굳이 패배의 책임을 묻고 싶었다면 그 책임의 비중은 감독보다도 선수들에게 더 컸던 경기다.

'전원 해외파' 선발 명단의 의미는 여기에 있다. 신태용 감독은 해외파 선수들을 직접 지도하며 쓸만한 선수들을 가려냈다. 신 감독은 해외에서 뛰는 선수들도 대표팀에 들어올 자격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신태용호 2기를 꾸린 것이다. 한마디로 '솎아내기' 작업을 했다고 봐야 한다. 신태용 감독은 두 번째 과제도 무사히 마쳤다. 그 결과 상당수의 선수들이 떨어져 나갔다. 신태용호 2기에 발탁된 해외파 23명 중 이번 3기에 살아남은 선수들은 기성용, 손흥민을 비롯한 10명에 불과하다. 여기에 사간 도스에서 뛰고 있는 정승현이 추가로 발탁됐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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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용의 세 번째 과제는 '거친 축구'

신태용 감독의 첫 번째 과제는 월드컵 본선 진출이었으며 두 번째 과제는 해외파 선수들의 점검과 솎아내기였다. 그의 세 번째 과제는 '거친 축구'의 실현이다. 콜롬비아와 세르비아를 상대로 손흥민의 마수걸이 골이 나와 승리를 거둔다고 해도 선수들이 계속 소극적인 경기를 치른다면 비판받아야 한다. 반대로 국내에서 벌어질 친선 경기 2연전에서 또 완패를 당하더라도 선수들이 한 발 더 뛰며 투지를 보여준다면 신태용 감독의 세 번째 과제도 긍정적인 결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경기 후 주목할 데이터는 최종 스코어가 아니다. 뛴 거리와 히트맵이어야 한다.

신 감독은 그의 세 번째 과제를 실현하기 위한 명단을 짰다. 신태용호 3기 명단에는 한 눈에도 파악하기 쉬운 공통점이 있다. 발탁된 선수들이 일단 많이 뛰기로 소문난 선수들이다. 활동량이 많다는 의미는 저돌적인 플레이를 펼친다는 의미와 맥을 같이 한다. 저돌적인 선수들은 그렇지 않은 선수들보다 더 거친 축구를 펼칠 수 있다. 물론 그들의 플레이 성향과 더불어 경기에 임하는 마음가짐과 자세도 중요하다.

이정협의 발탁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이정협은 최전방에서 많이 뛰며 상대 수비수와 싸워줄 수 있는 선수다. 수비 라인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며 골을 기록할 수 있는 선수는 이제 대표팀뿐만 아니라 현대 축구에서도 쓰임새가 줄어들고 있다. 게다가 골을 넣지 못해도 공격 지역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팀에 좋은 결과를 가져온 선수들은 많다. FC서울에서 뛰었던 세르히오 에스쿠데로를 기억해야 한다. 그를 꾸준히 기용했던 최용수 감독조차 그에게 골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가 기록한 골은 '보너스' 정도로 생각했다. 에스쿠데로의 첫 번째 임무는 저돌적인 움직임으로 상대 수비수를 흔드는 것이었다. 에스쿠데로의 저돌적인 움직임이 데얀과 몰리나의 득점을 만들었다고 봐야 한다. 공격수라면 골을 넣어야 하지만, 골을 만들어내는 것도 공격수의 일이다. 그의 움직임이 이근호나 손흥민의 골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를 기용하는 것이 옳다. 그리고 이정협은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선수다.

이정협, 이근호, 손흥민의 골을 기대하는 것보다도 대표팀이 수비 상황에서 어떤 플레이를 펼치는지 지켜봐야 한다. 수년간 공을 예쁘게 차는 수비수들을 보며 한국 축구 팬들은 '파이터' 수비수들을 그리워했다. 인천 유나이티드의 '미추홀 파이터' 이윤표는 수비 시 어려운 상황에 맞닥뜨릴 때도 "선수 피하고, 공 피하고, 몸싸움 피한다면 축구선수 그만둬야 한다"라고 말했다. 전술적으로 접근하면 수비 조직도 중요하다. 그러나 대표팀 소집 기간은 짧다. 조직력은 러시아 월드컵 개막 전까지 다지면 된다. 수비 조직력이 완전히 실현되는 것보다도 일단 선수들의 '파이팅'이 살아나야 한다. 이번에 뽑힌 김진수와 최철순은 그동안 K리그에서 충분히 '파이팅' 넘치는 모습을 보여줬던 자원이다.

관건은 김영권이다. 김영권은 지금까지 많은 비판과 비난의 중심에 있었다. 소극적이고 자신감 없는 플레이를 펼쳤다. 그의 장점은 침착한 빌드업 능력이었는데 그의 소극적인 자세가 그의 장점을 흐릿하게 만들었다. 오히려 김민재보다 떨어지는 퍼포먼스를 보여주면서 어려운 상황을 자초했다. 미리 어려운 상황을 예측하고 여유롭게 끊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는 몸을 날려야 한다. 상대 선수와 거칠게 부딪혀야 한다. 신태용 감독의 세 번째 과제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김영권이 변화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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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용 감독의 대표팀, 이제부터 시작이다

신태용 감독의 대표팀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1기와 2기 모두 경기 내용보다 중요한 초점이 있었다. 이제는 내용을 봐야 한다. 선수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봐야 하고 신태용 감독의 전술이 어떻게 실현되는지 확인해야 한다. 코치진이 얼마나 선수들을 움직이게 만들 수 있는지 봐야 한다.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말은 많은 의미를 안고 있다. 이제부터 시작이기에 다소 모험적인 전술 운영도 가능하다. 결과보다 내용과 변화에 초점을 둬야 한다. 러시아 월드컵 개막 전까지 신태용호의 키워드는 실험과 변화, 정착이 될 것이다. 신태용호는 '완성'을 향해 달려가는 여정을 지금 막 시작했다. 여러 가지 환경과 조건 때문에 이제서야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1기와 2기가 아주 의미 없었던 일도 아니다. 1기와 2기가 있었기 때문에 3기에서 제대로 시작할 수 있게 됐다. 아직은 실험을 진행해도 괜찮다. 실험을 통해 변화를 이끌어내면 된다. 그리고 실험과 변화로 얻어낸 교훈들을 월드컵 직전까지 대표팀에 정착시키면 된다.

새로 영입된 외국인 코치에 의해서인지, 혹은 계속되는 졸전에 느낀 스트레스 때문인지는 몰라도 신태용호 3기가 치를 친선 경기는 이전과는 다른 비장한 각오가 느껴진다. 코치진은 4시간을 할애하며 회의를 열고 경기 준비에 사력을 다하고 있다. 그들의 비장한 각오가 더 크게 와닿는 이유를 신태용호 3기의 의미에서 찾고 싶다. 신태용 감독은 지난 두 번의 소집을 통해 '서바이벌'과 '점검'을 거쳐 세 번째 소집에서야 그가 원하는 최정예 멤버를 꾸렸다. 진정한 의미의 첫 단추다. 그래서 가장 먼저 팀의 철학과도 같은 '거친 축구'를 천명했다. 비장해질 수밖에 없다.

안타깝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지만 현재 대표팀이 콜롬비아와 세르비아를 상대로 승리를 거둘 것이라는 기대는 적다. 이제 신태용호 세 번째 과제를 실현시킬 차례다. 지금 대표팀은 구석에 몰린 생쥐다. 이제 앞에 있는 고양이를 물어뜯을 각오로 달려들어야 한다.

intaekd@spor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