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세가 예능 프로그램 <동상이몽2-너는 내 운명>에 출연 중이다. ⓒSBS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정대세가 한국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 중이다. 정대세는 SBS 예능 프로그램 <동상이몽2-너는 내 운명>에 출연하고 있다. 아마 제작진에서는 정대세에게 추성훈의 느낌을 기대했을 수도 있다. 한국어는 다소 어눌하지만 패션 센스도 뛰어나고 거기에 남성적인 매력도 있고 끼 있는 모습은 정대세와 추성훈이 꽤 많이 닮았기 때문이다. 방송가에서 정대세는 ‘제2의 추성훈’이 될 만큼 매력적인 인물이다. 결혼 생활을 주제로 한 <동상이몽2-너는 내 운명>은 정대세의 색다른 매력을 보여주기에는 가장 적합한 프로그램이다.

역사를 알아야 정대세를 안다

하지만 정대세가 나올 때마다 이념 논쟁은 여전하다. 그와 관련한 보도에는 프로그램 내용과는 상관없는 댓글이 달린다. 그런 반응만 보고 있으면 정대세가 무섭게 느껴질 정도다. “정대세는 남북 전쟁이 나면 우리에게 총부리를 겨눌 북한 사람이다” “월드컵에서 인공기를 달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북한 김정은 정권을 찬양하는 빨갱이다” 이 논란은 끊이질 않고 있다. 받아쓰기를 하는 일부 매체에서는 이 선정적인 반응을 그대로 전달해 논란을 더 키우고 있다. 정대세가 북한 축구 대표팀에서 뛰었다는 점은 반감을 사기에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 정도가 너무 심하다. 정대세를 아직도 ‘빨갱이’로 모는 건 ‘내 편’ 아니면 ‘네 편’으로 모는 이분법적인 행위다.

정대세의 입장을 이해하려면 일단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정대세는 1984년 일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대한민국 국적 재일교포 2세였고 어머니는 조선 국적의 재일교포 2세였다. 여기에서 말하는 조선은 북한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한일합방 이전 조선 왕조를 의미하는 것이다. 일본으로 넘어간 많은 조선인들이 대한민국과 북한이 갈라지면서 한 쪽 국적을 택해야 했지만 이들 중 상당수는 남북 분단을 인정하지 않고 남북 중 어디도 택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대한민국도 조선이었고 북한도 조선이었다. 어느 한 쪽을 택할 문제가 아니었다. 조선은 실재하는 나라가 아니어서 사실상 무국적자였지만 정대세의 어머니처럼 조선 국적으로 일본에서 생활하는 이들은 적지 않았다. 갑자기 엄마와 아빠 중 한 명을 선택하라고 하면 대부분은 어느 한 쪽을 선택하지 못하고 고민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정대세는 아버지를 따라 대한민국 국적을 얻었다. 지금도 그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하지만 그가 다닌 학교는 조총련계였다. 대한민국의 영향력이 큰 민단 계열 학교도 있었지만 이런 곳들은 대부분 일본어로 교육을 하는 반면 조총련계 학교는 조선어를 가르치면서 사상 교육도 엄격하게 했다. 정대세 어머니가 조총련계 학교 교사로 일한 것도 큰 계기가 됐다. 정대세는 “일본 학교와 축구 경기를 하면 내가 조선 사람이라는 것에 대해 느꼈다. 지고 싶지 않았다. 지면 마음의 지축이 흔들린다”고 할 정도로 조선인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다. 하지만 조총련계 학교는 북한의 영향을 받아 김일성과 김정일 부자에 대한 신격화 교육 및 북한 체제 옹호 등의 사상 교육이 강하게 이뤄진다.

수원삼성에서 뛸 당시 정대세의 모습. ⓒ수원삼성

아픈 우리 역사를 관통하는 인물

당연히 정대세는 어린 시절부터 조총련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북한 대표팀을 선택하려고 했던 건 북한 체제의 우수성을 세계에 널리 알리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이 조선인이라는 데 자부심을 느끼게 교육한 곳을 선택하려 했던 것뿐이다. 민단 계열에 비해 훨씬 더 민족적 자긍심에 대해 주입하는 조총련계 영향을 받은 그는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북한 대표팀으로 뛰길 바랐다. 정대세는 2007년에 국제축구연맹(FIFA)에 “북한 대표팀에서 뛰게 해달라”고 했다.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한 정대세가 북한 대표팀으로 뛰는 건 FIFA 규정상 허용되지 않는 일이었지만 FIFA는 정대세의 손을 들어줬다. 남북 상황을 감안했고 정대세가 안고 있는 아픈 우리네 역사를 감안한 일이었다.

정대세는 우리의 아픈 역사를 관통하는 인물이다. 과거 대한민국 여권과 북한 여권을 동시에 보유한 아이러니한 인물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여권을 보유하고 있지만 2010년 남아공월드컵 당시 북한 여권을 임시로 발급받기도 했다. 동시에 남북 여권을 보유한 것이다. 그런데 법리적으로 또 이중국적자는 아니다. 남과 북은 서로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정대세를 이중국적자로 인정하지 않는다. 참고로 정대세의 친형인 정이세도 대한민국 국적으로 내셔널리그 충주험멜에서 뛴 적이 있다. 단순히 정대세를 ‘대한민국 국적자’나 ‘북한 축구 대표팀 선수’라고 한 쪽으로 몰아 설명할 수 없는 이유다. 정대세를 알려면 이런 역사까지도 대충은 알아야 한다.

가족사가 복잡한 이들도 꽤 있다. 그런 가족사를 누군가에게 설명하는 것도 상당히 번거로운 일이다. 하지만 정대세는 가족사 정도가 아니라 복잡한 대한민국 역사를 그대로 떠안고 있다. 정대세가 2010 남아공월드컵 당시 북한 국가가 나오자 뜨거운 눈물을 흘렸던 장면이 떠오르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반공’을 외치는 이들에게는 충격적인 장면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정대세는 훗날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불가능할 것처럼 보였던 국가대표가 되고 월드컵에 진출할 때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런 파란만장한 일들이 한 순간에 떠올라 감격해서 눈물을 흘렸다.” 그가 인공기를 달고 흘린 눈물에 너무 대단한 정치적인 이념을 부여하지 말자. 정대세는 감정에 충실한 ‘울보’ 정도다.

수원삼성에서 뛸 당시 정대세의 모습. ⓒ수원삼성

국가보안법 무혐의, 그래도 ‘빨갱이’인가?

자꾸 정대세에게 이념 운운하면서 ‘빨갱이’ 프레임을 씌우려는 이들이 많다. 그가 K리그 클래식 수원삼성에서 뛸 때도 마찬가지였다. 2013년 1월 정대세가 수원삼성 입단을 위해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하자 한 우익 언론에서는 “대남공작원 정대세가 박근혜 목을 따러 왔다”고 하면서 “친노종북매체가 정대세를 이용해 박근혜 흔들기를 시도할 것”이라고 했다. 뭐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됐으니 정대세가 어마어마한 일을 한 걸 수도 있다고 믿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우익 단체들은 정대세가 입국하자 수년 전 인터뷰까지 들고 와 ‘빨갱이’라고 손가락질 했다. “김정일을 존경한다”는 그의 발언을 문제 삼은 것이다. 결국 정대세는 우익 언론으로부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돼 조사까지 받았다.

하지만 대한민국 수원지검 공안부에서는 1년 만에 이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검찰은 “언행이 대한민국의 존립·안전과 체제를 위협했거나 위협하려 했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 정 선수의 입장을 여러 방면으로 충분히 들었고 특수한 성장배경도 고려했다”고 무혐의 처분 이유를 설명했다. 이후 정대세는 당시 인터뷰 상황에 대해 이런 해명을 한 적이 있다. “북한 국가대표 선수로서의 공식적인 입장을 내는 것이라 김정일 위원장에 대해 존경하고 있다고 영어로 이야기했다. 영어로 내 의사를 완전히 전달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정대세는 사상 및 이념과 관련한 질문에 대해서는 최대한 말을 아끼고 있다.

운동선수에게 자꾸 ‘이념적으로 어느 편’이냐고 묻는 것도 그리 옳은 일은 아니다. 대한민국 국적이면서도 조총련계 교육을 받은 인물에게 이 이념적인 문제에 대해 시원한 답변을 원하는 게 더 무리 아닐까. 그럴 바엔 정대세가 느끼는 우리 복잡하고도 슬픈 역사에 대해 탐구하는 편이 더 좋을 것이다. 연예인에게 꼬치꼬치 정치적 성향을 묻는 것도 실례인데 운동 선수에게, 그것도 가장 난감한 선수에게 이념을 묻는 건 올바른 일이 아니다. 그게 뭐 그리 중요한가. 차라리 그에게 프리킥의 비밀을 묻거나 헤딩의 비밀을 묻는 게 더 유의미한 일 아닌가.

수원삼성에서 뛸 당시 정대세의 모습. ⓒ수원삼성

‘내 편’과 ‘네 편’만 있는 세상 아니다

정대세를 아직도 사상 불순한 ‘빨갱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그에게 뭐라고 할 것이 아니라 정부에 문제 제기를 해야 한다. 정대세는 국가에서 입국을 허락한 대한민국 국민이고 국가보안법 조사에서도 혐의가 없음이 밝혀졌다. 그가 정말 ‘빨갱이’라면 입국과 방송 출연까지 문제 없이 넘어가는 정부를 탓해야 한다. 참고로 정대세는 박근혜 정부 시절부터도 대한민국 여권을 들고 문제 없이 입국했고 <힐링캠프>에도 출연했다. 그에게 묻는 말은 “그래서 김정은은 개XX입니까? 아닙니까?”라는 유치한 말이 아니라 “일본에 거주하는 재일교포로 힘든 점은 무엇이었느냐”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인공기를 달고 북한 국가를 들으니 눈물이 났습니까?”가 아니라 “월드컵에서 브라질과 격돌해보니 어땠느냐”는 것이어야 한다.

정대세도 추성훈 만큼이나 기구한 운명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일본 국적을 취득한 추성훈에 대해서는 큰 반감이 없다. 한국 유도계에서 차별을 당하고 그 설움 때문에 일본 국적을 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추성훈을 바라보는 기본적인 시선에는 차별을 이겨낸 선수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그건 정대세도 마찬가지다. 일본 땅에서 나고 자라면서 일본 국적을 택할 수 있었음에도 조선인의 긍지를 느끼고 버텼다. 일본어로 수업하는 학교에 가지 않고 조선어로 수업하는 학교에 갔다. 크기와 방식은 다르지만 정대세도 추성훈 못지 않은 차별과 역사적인 아픔을 느낀 인물이다. 그런데 자꾸 정대세의 이념만 바라보고 그를 대한민국 텔레비전에 나오면 안 되는 불순분자라고 생각하는 건 세상을 너무나 이분법적으로 바라보는 것 같다.

정대세를 향해 “남북 전쟁이 나면 우리에게 총부리를 겨눌 북한 사람이다” “월드컵에서 인공기를 달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북한 김정은 정권을 찬양하는 빨갱이다”라고 하면 꽤 그럴 듯해 보인다. 하지만 이런 자극적인 말로 누구든 나쁜 사람을 만들 수 있다. 만약 일본 국적을 택한 추성훈을 향해 “대한민국과 일본이 전쟁을 하면 일본 편을 들 사람이다” “일본 국적을 취득할 때 일장기를 달고 일본 국가를 불렀다” “일왕을 위해 뛰는 선수다”라고 하면 이것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러시아로 귀화한 안현수를 향해서도 “김연아 대신 소트니코바를 응원하는 러시아 사람이다”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세상은 이렇게 ‘내 편’과 ‘네 편’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으면 한다.

그의 예능 출연을 응원한다

‘빨갱이’와 ‘빨갱이가 아닌 사람’만 존재하는 세상이 아니다. 정대세가 대한민국 텔레비전에 출연해 재일교포로서의 아픔과 설움, 우리네 슬픈 역사에 대해 많은 이들에게 알렸으면 좋겠다. 그는 오히려 텔레비전에 더 많이 나와야 한다. 그래야 세상엔 ‘빨갱이’와 ‘빨갱이가 아닌 사람’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이 사회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인공기 단 ‘빨갱이’ 선수가 왜 우리나라 텔레비전에 나오느냐는 선정적인 연예 기사에 낚이지 말자. 다 그럴 이유가 있었고 정부에서도, FIFA에서도 허락한 이유가 있다. 더군다나 정대세가 속한 J리그 시미즈 S펄스 유니폼은 빨간색이 아니라 오렌지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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