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FA 주주총회 ⓒ FIFA.com

[스포츠니어스 | 홍인택 기자] 10월 22일 흥미로운 뉴스가 BBC를 통해 보도됐다. 국제축구연맹(FIFA) 주주총회 위원장인 빅터 몬테글리아니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그는 "국가대표 선수 제한을 완화해야 한다"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몬테글리아니는 캐나다인으로 FIFA 주주총회를 이끌고 있다. 동시에 북중미축구연맹(Confederation of North, Central America and Caribbean Association Football; CONCACAF) 회장을 맡고 있는 인물이다.

FIFA 주주총회 위원장의 입에서 나온 말에 BBC는 "FIFA가 국가대표 정관 개정을 고려하고 있다"라며 보도했다. 몬테글리아니는 "이민 정책이 변하고 있고 국적 논쟁은 전 세계적으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아프리카, 아시아뿐만 아니라 북중미, 카리브해 지역에서 특히 문제가 되고 있다"라고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 "세상은 변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 살펴볼 좋은 기회다. 국제 경기의 순수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해결할 방법이 있는지 알아봐야 한다"라고 주장한 것으로 BBC 보도에 의해 알려졌다.

몬테글리아니 위원장의 주장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현재 FIFA에서 규정하는 국가대표팀 출전 자격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정관에는 '참여 관리 규정'을 다루는 내용이 있다. 이 중 3장에 해당하는 '대표팀 출전 자격'에 선수가 어떻게 성인 대표팀에서 뛸 자격이 주어지는지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다.

FIFA가 국가대표의 자격 요건 완화를 고려하고 있다 ⓒ BBC 관련 기사 갈무리

몬테글리아니가 말한 출전 자격 완화는?

한 선수가 축구를 매우 잘한다는 가정하에, 국가(협회) 대표팀으로 뛰기 위해서는 해당 국가의 국적과 함께 친부모, 친조부모의 국적이 중요한 요인이다. 한마디로 본인의 출생 국적과 '혈연관계'가 중요하다. 벨기에 국적을 가진 아드낭 야누자이가 복잡한 가정사에 의해 여러 나라 국가 대표팀에서 러브콜이 왔었던 사건을 기억하면 이해가 쉽다.

현재 FIFA 정관 3장 제5조에는 한 선수가 성인 대표팀의 유니폼을 입고 '공식 경기'를 치렀다면 다른 나라의 대표팀으로 출전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친선 경기가 아니다. 아시안컵이나 월드컵 예선처럼 FIFA가 공인하는 '대회' 성격의 경기를 의미한다. 디에고 코스타는 브라질 성인 대표팀으로 친선 경기에 뛰었지만 공식 경기가 아니었기에 스페인 이중국적 취득 후 스페인 대표팀 소속으로 출전할 수 있었다.

몬테글리아니 위원장은 이 규정을 완화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즉, 정대세가 북한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공식 대회에 1~2번 출전했어도 대한민국 대표팀에서 뛸 수 있게 하자는 이야기다. 몬테글리아니 위원장의 이와 같은 발언에는 어떤 이면이 있을까. 세계는 점점 하나로 묶이고 있고 이민자 정책은 해를 거듭할수록 고민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가 회장으로 있는 북중미지역은 이민자들의 나라다. 친부모와 친조부모의 혈연관계를 따지면 그중에는 야누자이보다도 더 복잡한 사정이 있는 선수들이 많다. 그가 따로 언급한 아프리카, 아시아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냉전 시대를 겪은 복잡한 역사적 배경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 대표팀에서 뛸 수 있었던 선수 중에는 정대세와 이충성이 있다. 몬테글리아니 위원장의 의도를 우리도 알아둘 필요가 여기에 있다.

FIFA가 국가대표의 자격 요건 완화를 고려하고 있다 ⓒ BBC 관련 기사 갈무리

그는 어떤 대안을 제시했나

몬테글리아니 위원장은 "국제 경기의 순수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거론했다. 그는 그 대책의 하나로 다른 규정의 개정을 제안했다. 정관 3장 제7조에 해당하는 조건부 규정을 예로 들며 선수가 대표팀을 변경할 때 선수나 협회에 "보상 체계가 필요하다"는 언급을 했다.

정관 3장 제7조에는 (축구적으로) 새로운 국적을 취득할 수 있는 조건이 있다. 태어나면서 취득하는 국적, 혈연관계와는 별개로 꽤 의미 있는 단서 조항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선수 본인이 그 협회의 영토에서 18세 이후 5년 동안 쭉 거주했을 경우, 즉, 18세에 한국에 넘어온 23세의 일본인 축구 선수가 한국 대표팀에서 활약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한양대로 축구 유학을 온 이시바시 타쿠마가 한양대를 졸업하고 K리그에 진출해 총 5년 동안 한국에 머무른다면 특별귀화 정책으로 복수 국적을 허용한다는 전제하에 '한국 축구 대표 타쿠마'를 볼 수 있다.

몬테글리아니 위원장은 복잡해질 수 있는 '대표팀 옮기기'의 대안 중 하나로 이 '5년'의 기간을 늘리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의 인재를 한국에서 빼 간다니. 일본 입장에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타쿠마를 놔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이를 최소화하겠다는 것이다. 만약 이 기간이 '8년'으로 늘어나게 된다면 타쿠마는 만 26세가 될 때까지 일본과 한국 대표팀을 놓고 고민해야 한다.

그러나 선수 입장에서도 마냥 불리한 조건은 아니다. 타쿠마는 한국 대표팀에 합류했다가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한다면 일본 대표팀으로 '이적'이 가능하다. 그가 월드컵 최종 예선 두 경기에서 결승골을 뽑아내며 한국을 월드컵 본선에 진출시켰다고 해도 월드컵 본선 이후부터는 일본 대표팀을 위해 뛸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적 기회는 단 한 번만 주어지기에 다시 한국 대표팀으로 복귀할 수는 없다.

한편 이 대안이 적절한 방법인지는 아직 논의되지 않았다. 몬테글리아니 위원장과 FIFA 주주총회는 더 다양한 방법을 놓고 고민할 것이다. 공식적으로 안건이 규정 위원회에 올라온 것도 아니다. 최종적으로 정관이 개정될지 안 될지도 불분명하고 개정된다면 어떤 규정이 개정될지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 카타르 협회가 이 규정을 악용할 가능성도 있다. 다만 앞서 말 한 '대표팀 옮기기'가 줄 수 있는 혼란은 우리가 대표팀을 바라보는 프레임이 변해야 한다는 의미를 던진다.

FIFA가 국가대표의 자격 요건 완화를 고려하고 있다 ⓒ BBC 관련 기사 갈무리

대표팀을 바라보는 시선, '애국심'보다 '자부심'이 중요해진다

11명의 선발 명단이 모두 외국인 출신으로 채워지지 말라는 보장도 없을 것 같다. 몬테글리아니 위원장이 말한 것처럼 세상은 변하고 있다. 아직은 국가대표 스포츠가 국가의 선전도구로 이용당하는 모습이 왕왕 보이지만 그래도 세상은 조금씩 본질을 추구하고 있다. '한국'의 축구보다 '한국 축구'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바라봐야 하는 시점이다.

몬테글리아니 위원장의 주장이 받아들여질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그의 말처럼 세상은 분명히 변하고 있다. 대표팀에 애국심을 끼얹는 정서도 분명 변할 것이고 변해야 한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어렸을 때부터 해외에서 축구를 배운 선수들에게 한국 축구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게 할 수 있을까.

앞으로 대표팀 선수단에 필요한 동기부여는 "어떻게 애국심을 고취시킬 수 있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자부심을 느끼게 할 수 있을까"가 될 것이다. 이 자부심은 단순히 대표팀에 뽑힌다고 생기지 않을 것이다. 한국 땅에서 한국 축구의 매력을 느낄 수 있어야 하고 지도자들에 대한 존경심과 심판에 대한 존중심도 필요할 것이다. 단순히 '한국인'이니까 애국심을 갖고 대표팀을 위해 뛰라는 것과 한국 축구를 경험한 구성원들이 느낄 수 있는 자부심을 끌어올리는 것.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방법은 분명 후자여야 한다. 그게 유니폼 가슴 위에 달린 '호랑이'의 진짜 의의다.

intaekd@spor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