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축구연맹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1987년 3월 포항제철과 현대가 서로 지난 시즌 우승 트로피를 프로축구위원회에 반납하겠다고 주장했다. 굉장히 황당한 해프닝이었다. 서로 자기들이 지난 시즌 챔피언이었고 그때 받은 우승 트로피를 반납해 챔피언의 정통성을 이어나가겠다는 것이었다. 과연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왜 우승 트로피는 두 개였고 두 팀 다 자기들이 진짜 우승 팀이라고 주장했을까. 그리고 지금 이 트로피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이 궁금증을 직접 파헤쳐 봤다. 시계를 30년 전으로 돌려보자.

수퍼리그 명맥 잇는 축구대제전 챔피언 포철

1986년 축구대제전에서 우승한 포항제철은 이 축구대제전이 1983년부터 시작된 대회이니 당연히 포철이 디펜딩 챔피언이라고 주장했다. 수퍼리그라는 명칭으로 1983년 출범한 이 대회는 이후 축구대제전이라는 이름을 혼용해 써왔다. 우리가 지금 K리그의 역사를 정리할 때 원년을 1983년이라고 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축구대제전은 K리그의 모태가 됐다. 하지만 프로리그라기에는 다소 애매한 구석이 있었다. 프로팀과 아마팀이 참가해 정식 프로리그라고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다.

유공과 대우, 현대, 럭키금성, 포항제철 등 5개 프로팀이 참가했고 실업팀 한일은행도 참가했기 때문에 순수 프로리그라고 보기에는 해석에 따라 차이가 있다. 1985년 축구대제전에 참가했던 상무가 빠졌고 할렐루야 역시 프로에서 실업팀 전환을 선언하며 대회에 불참헤 이 6개팀이 1986년 축구대제전이 참가했다. 각팀당 두 경기씩 10경기를 치러 3~4월에 전기리그 우승팀을 가렸고 후기리그 역시 10~11월에 10경기를 치러 순위를 선정했다. 전기리그에서는 포항제철이 3승 6무 1패로 우승을 차지했고 후기리그에서는 7승 2무 1패를 기록한 럭키금성이 우승을 기록했다.

결국 포항제철과 럭키금성이 만나 치른 챔피언결정전에서는 포항제철이 우승컵을 차지했다. 포철이 1차전에서 럭키금성을 1-0으로 제압한 뒤 2차전에서는 1-1 무승부를 기록하며 우승의 주인공이 됐다. 그런데 황당한 건 경기가 이틀 연속 열렸다는 점이다. 흥행에 참패한 대회로도 오명을 남겼는데 10월 19일 대구에서 벌어진 포철과 한일은행, 럭키금성과 현대, 대우와 유공 등 총 3경기 유료관중은 222명에 불과했다. 다른 경기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10월 22일 포항에서 열린 세 경기 역시 관중은 238명 뿐이었다. 역사상 가장 흥행에 실패한 대회로 남겨져 있다.

1986년 현대가 반납하겠다고 했던 프로축구선수권 우승 트로피. ⓒ울산현대

프로만 참석한 진짜 프로리그 챔피언 현대

하지만 이 대회가 1983년 출범한 수퍼리그를 이어받았으니 역대 K리그 우승팀을 논할 때 1986년 프로축구 우승은 포항제철이라는 게 정설이다. 하지만 체육부에서 “실업팀도 포함시키라”는 규정을 내세워 한일은행도 함께 참가해야 했고 홈 앤드 어웨이가 아니라 제3지역에서 돌아다니며 경기를 치러야 했던 건 1986년 축구대제전이 프로리그의 명맥을 잇기에는 약점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어찌 됐건 포항제철은 이 대회 우승을 차지하며 챔피언 트로피까지 받았다.

그런데 축구대제전 전기리그와 후기리그 사이에 아예 다른 대회가 열렸다. 바로 제1회 프로축구선수권대회였다. 구성을 보면 그래도 축구대제전보다는 이 대회가 더 프로에 가까웠다. 일단 실업팀인 한일은행을 제외하고 순수 프로팀 5개만 참가한 대회였기 때문이다. 물론 이 대회 역시 제3지역을 돌며 순회 경기를 해 완벽한 프로리그라고는 볼 수 없었지만 프로팀만이 참가해 팀당 16경기를 치르며 우승 경쟁을 했다. 현대호랑이가 10승 3무 3패 24득점 9실점하며 대우로얄즈를 제압하고 우승을 차지했다. 5월부터 9월까지 총 40경기를 치르는 대장정이었다.

그런데 이듬해 시즌을 앞두고 두 팀이 첨예하게 대립되는 주장을 펼쳤다. 리그 디펜딩 챔피언이 우승 트로피를 반납해야 새로운 시즌을 시작할 수 있는데 두 구단 모두 “우리가 우승컵을 반납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축구대제전 우승팀인 포철은 당연히 이 대회가 1983년 출범한 프로리그의 명맥을 잇고 있으니 우리가 디펜딩 챔피언이라고 했다.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현대의 주장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실업팀이 포함된 대회가 아니라 프로팀만으로 구성된 대회에서 우승했으니 우리가 프로리그 챔피언이라는 것이었다. 프로축구연맹이 생기기도 전인 당시 프로리그를 주관하던 프로축구위원회는 깊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트로피를 반납하겠다”

결국 프로축구위원회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어느 누구의 손도 들어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다 묘책(?)을 내놨다. “그러면 두 팀 모두 우승 트로피를 반납하세요.” 두 팀 관계자들이 트로피를 반납하지 않으면 디펜딩 챔피언 자격을 잃을까봐 입을 모아 “알겠다”고 했다. 한쪽이라도 트로피에 욕심을 내고 거부하면 반대쪽 손을 들어주면 될 일이었지만 이마저도 먹히지 않았다. 그리고 이 두 트로피를 반납받은 뒤 1987년 시즌 종료 후 챔피언에게 어떤 트로피를 수여하느냐도 초미의 관심사였다. 축구대제전 트로피를 우승팀에게 주면 현대가 발끈할 게 뻔하고 프로선수권대회 우승 트로피를 수여하면 포철이 반발할 것이었다.

결국 난처해진 프로축구위원회는 트로피 반납 행사가 준비돼 있던 1987년 개막식을 아예 열지 않았다. 그리고는 2백만 원을 들여 새로운 우승 트로피를 만드는 것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지금도 연맹은 1986년 K리그 우승을 포항으로 인정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또 하나 아이러니한 일이 생겼다. 1986년 축구대제전을 끝으로 실업팀이 이 대회에서 아예 빠지고 프로팀만이 참가하는 대회가 됐기 때문이다. 성격상으로만 본다면 프로선수권대회의 성격을 이듬해부터 이어받은 셈이었다. 진정한 프로리그의 출발을 1986년 프로선수권대회로 봐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일부에서는 이 프로선수권대회를 리그컵의 효시라고 보기도 하지만 이 대회는 리그컵이 아니라 프로와 실업이 함께 참가하는 비정상적인 구조를 깨기 위해 출범한 또 다른 프로리그였다고 보는 편이 더 타당해 보인다.

이에 대해 대한축구협회에서 오래 일한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참 규정 내리기가 애매한 건데 사실은 멕시코 월드컵 때문에 정상적으로 프로리그를 충분하게 치르지 못하니까 조금 다른 방식으로 리그를 준비했다고 봐야 한다. 정통성을 따지면 축구대제전이 리그에 좀 더 가까우니까 그걸 K리그 기록으로 쳐주는 게 옳아 보이긴 하지만 일부에서는 그 시즌에 우승 팀이 두 팀인 걸로 표기하기도 한다. 지금 봐도 참 애매하다.” 프로리그가 아직 완벽히 자리 잡지도 못했고 대회도 위상이 약하던 시절 우리는 이렇게 두 팀의 우승 트로피 반납이라는 황당한 일을 겪기도 했다. 이게 불과 30년 전의 일이다.

1986년 현대가 반납하겠다고 했던 프로축구선수권 우승 트로피. ⓒ울산현대

1986년, 두 개의 우승컵과 반납 논쟁

이 사건은 한국 프로축구의 과도기를 제대로 보여주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물음이 던져진다. 과연 1987년 시즌을 앞두고 서로 내놓겠다던 우승컵은 지금 어디에 보관돼 있을까. 연맹과 협회에는 이 트로피가 없다. 두 팀 모두 프로축구위원회에 우승 트로피를 반납하겠다고 주장했고 이후에는 어떤 보도 내용도 없다. 그런데 직접 양 측 구단에 확인해 보니 우승 트로피는 두 구단이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었다. 울산은 클럽하우스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당시 트로피를 보관해 놓고 ‘창단 최초 우승 트로피’라는 안내 문구까지 붙여 놓았다. 포항 또한 클럽하우스에 축구대제전 우승 트로피가 놓여져 있다. 울산 구단 측에서는 3년 전부터 이 우승 트로피 전시를 시작했다. 프로축구위원회에서 새 트로피를 만들 테니 두 개의 우승 트로피는 ‘반납받았다 치고’ 영구 보관을 허락한 것이다.

낡은 트로피다. 물론 세월이 한참 흘러 이들 구단에서도 이 트로피가 가지고 있는 이 논쟁의 역사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어쩌면 구단 창고 한 구석에 쳐박혀 있을 수도 있는 트로피였다. 하지만 이 작고 낡은 트로피가 한국 프로축구의 역사적인 논쟁의 주인공이었다는 사실을 알면 아마도 달라 보이지 않을까. 이 과정의 역사를 소개하는 보도에서는 “두 팀 모두 트로피를 반납했다”는 짧은 한 문장만이 등장하지만 이 두 트로피는 여전히 두 구단이 자랑스럽게 보관하고 있었다. 이렇게 작은 역사부터 소중히 간직한다면 언젠간 K리그도 풍성한 역사를 자랑하는 리그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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