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통신] 9만8천 관중 사이 447명의 환희


이런 곳에서 경기를 치르는 원정팀과 팬은 상대적으로 기가 죽을 수밖에 없다.ⓒ발렌시아CF 홈페이지

현재 스페인 발렌시아에 거주하고 있는 배시온 기자는 스포츠니어스 독자 여러분들께 스페인 축구의 생생한 이야기를 직접 전달해 드립니다. 세계 3대 프로축구 리그로 손꼽히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그리고 축구 없이 못사는 스페인 사람들의 이야기에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 드립니다 – 편집자 주

[스포츠니어스 | 발렌시아=배시온 기자] 우리팀을 응원하는 수많은 팬들 앞에서 좋은 경기를 펼치는 것은 모든 축구선수들의 바람일 것이다. 누군가에겐 팬들의 응원이 소음이 될 수도 있지만, 일반적인 선수들에겐 힘이되는 것이 당연하다. 팬들의 응원은 우리팀엔 힘이되는 동시에 상대팀에게 큰 압박을 줄 수 있다. 홈경기장을 가득 채운 홈팬들 속에서 치르는 경기는 더욱 그렇다.

이런 곳에서 경기를 치르는 원정팀과 팬은 상대적으로 기가 죽을 수밖에 없다.ⓒ발렌시아CF 홈페이지

반대로 생각하면 원정팀들은 매 경기 상대적인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동 거리의 부담이 있을 뿐만 아니라 상대를 응원하는 열기 가득한 경기장에서 싸워야 한다. 선수들은 우리를 응원하기 위해 먼길을 와 원정석에 자리한 팬들을 생각해서라도 열심히 뛰겠지만 남의 집 안방에서 아무런 부담 없이 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많은 팀들이 ‘홈에서 강한’이란 타이틀을 갖고 있기도 하다.

이는 원정 경기에 오는 팬들 역시 마찬가지다. 머릿수도 부족하고 여러 환경이 불리하다. 원정석은 홈팬들의 좌석에 비해 협소한 것은 당연하고 경기장에 쩌렁쩌렁 울리는 홈팬들의 응원에 비하면 원정 응원은 작기만 하다. 물론 가끔 원정팬들이 홈팬들의 기를 죽이는 응원을 할 때도 있지만, 좌석이 거의 홈팬들로 들어차는 프리메라리가에선 보기 드문 일이다.

경기 전, 후에 갖는 시축을 비롯한 행사나 하프타임에 갖는 이벤트 역시 홈팬들을 위한 것이다. 원정팬들은 경기장을 찾은 손님임에도 불구하고 입장료의 가격부터 선수 소개, 매점의 이용 여부까지 다른 대우를 받는다. 일반석에 앉아 원정팀 유니폼을 입고 응원가를 부른다면 주위의 따가운 눈총을 견뎌야 한다. 이렇게 원정팀 대우에 차이가 존재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당사자의 입장에선 나도 모르게 기가 죽을 수 있다.

13-14시즌 경기에서 아틀레티코 원정팬들에게 447좌석만 내준 바르셀로나ⓒpinterest

우리 모두 홈팬이자 원정팬이다

지난 21일 메스타야에서 치러진 2017-2018 프리메라리가 9라운드 발렌시아CF와 세비야FC의 경기에선 홈팀 발렌시아가 4-0 대승을 거뒀다. 발렌시아는 9라운드 현재 승점21점(6승3무0패)로 바르셀로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함께 무패행진 중이다. 주전 공격수 자자를 중심으로한 공격력이 살아나 이번 시즌 기세가 좋다. 얇은 스쿼드 보강만 제대로 이뤄진다면 예전의 명성을 되찾을 성적을 노려볼만하다. 이렇게 매 경기 화력을 보여주니 발렌시아 팬들도 들뜰 수밖에 없다.

이들은 더 힘찬 응원으로 상대의 기를 죽이고 발렌시아를 응원했다. 전반 43분 게데스의 첫 득점 후 몇 번의 실점 위기가 왔지만 메스타야를 가득 메운 팬들은 머플러와 북, 각종 응원 도구를 이용해 메스타야가 떠나가도록 발렌시아를 외쳤다. 심판 판정에도 목소리를 높여 항의하는 약 44,300명의 관중들 속에서 경기를 치르니 원정 선수들도, 팬들도 위축된다. 발렌시아의 무차별적인 득점력과 분위기 속에서 세비야는 4골을 내주며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같은 소수라도 이렇게 경기장을 꽉 채운 상대 홈구장에서 경기를 치르는 것은 부담감이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원정팀들이 실력으로 당당히 악조건을 극복하는 경우 역시 무수히 많다. 오히려 원정 경기에서 더 뛰어난 모습을 자랑하는 팀들도 있다. 2013-2014시즌 프리메라리가에선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바르셀로나에 승점 3점차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하필 마지막 라운드에서 만난 양 팀의 결정 장소는 바르셀로나의 홈구장인 캄프 누였다. 바르셀로나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원정팬들에게 고작 447개의 원정석을 내주며 입장을 제한했다. 98,0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장소에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응원하는 인원은 447명뿐이었다. 하지만 이런 엄청난 압박감 속에서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1-1 무승부를 거둬 리그 우승 타이틀을 거머쥘 수 있었다. 원정 응원은 힘들지만 때론 이렇게 더욱 달콤한 성취감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물론 승리를 뒷받침하는 것은 실력과 전술이다. 하지만 홈팀의 분위기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원정팀은 손님이기에 홈팀보다 위축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를 꺾어 얻는 승리는 더욱 값지다. 오늘 우리집 안방에서 떵떵거린다 하더라도 다음주는 반대의 입장이 되어 어깨가 움츠러질 수도 있다. 축구팬이라면 누구나 원정팬의 입장이 된다. 그러니 세계의 모든 원정팬들, 기죽지말자.

si.onoff@sports-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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