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는 위기일까. 위기 극복을 위한 해법은 없을까. ⓒ프로축구연맹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K리그가 위기다. 15년 전에도 위기였고 10년 전에도 위기였다. 15년 전에도 이대로 가면 곧 K리그가 금방 망할 것이라고 걱정했고 10년 전에도 똑같은 소리를 했다. 최근에도 마찬가지다. 관중은 줄었고 언론 노출도 예전 같지 않다. 여기저기에서 계속 K리그가 마치 금방이라도 망할 것처럼 이야기를 한다. 이런 위기는 이미 10여년 이상 된 건데 마치 새삼스럽게 또 위기론이 등장한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언제는 K리그가 흥했던 적이 있었나. 위기라는 건 흥했던 시기를 지나 기세가 꺾여 바닥을 치는 건데 K리그는 흥했던 시기가 없다. 아마 5년 뒤, 10년 뒤에도 “곧 K리그는 망할 것”이라는 걱정 섞인 소리가 나올 것이다.

관중이 관중 걱정하는 이상한 리그

K리그에 대중의 관심이 적은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관중이 경기장을 가득 채우지도 못한다. 스포츠 뉴스의 메인 화면을 장식하지도 못하고 주변에 K리그 팬이라고 이야기를 하면 이상한 눈길이 쏟아진다. 그런데 이게 요즘 들어 벌어진 일일까. 15년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K리그는 늘 마이너였다. 한 번도 메이저의 자리를 차지해 본 적이 없다. 최근 들어 K리그 클래식과 K리그 챌린지가 분리되면서 K리그에 쏠리던 관심도 분리됐으니 더 심각해 보인다. K리그 상황이 힘들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정신 차리고 더 발전시켜야 한다. 하지만 여기에서 우리가 해야 할 건 망해가는 K리그를 걱정하고 있는 것만이 아니다.

과거 칼럼을 통해 “K리그는 관중이 관중 걱정하는 이상한 리그”라고 말 한 적이 있다. 관중은 경기를 즐겨야 하는 소비자인데 K리그는 이 관중이 다른 관중을 걱정한다. ‘오늘은 관중이 얼마나 올려나….’ 정당한 돈을 지불하고 경기장을 찾은 소비자가 다른 소비자를 걱정해야 할 이유가 없는데 우리는 이런 쓸 데 없는 걱정에 빠져있다. 나는 정말 K리그를 걱정하는 소비자라면 다른 소비자를 걱정할 게 아니라 더 열정적으로 경기에 몰입하라고 주장하고 싶다. 내가 재미있게 즐기고 있어야 다른 소비자도 ‘도대체 저게 뭔데 쟤는 저기에 빠져 있어?’라고 관심을 한 번이라도 더 갖는다. “망해 가는데 제발 한 번만 도와주세요”라는 건 구걸에 불과하고 이런 구걸로는 K리그를 관중으로 채울 수 없다.

이 ‘위기론’은 위기를 타개하는 게 아니라 위기를 더 큰 위기로 몰아넣는 악순환의 구조를 반복한다. 근엄한 지적과 걱정인 것 같지만 결국은 위기론을 팔아 먹고 사는 이들이 많다. 일부 언론의 문제이기도 하다. ‘K리그가 위기니까 다들 현실을 직시하고 죽는 소리 합시다’라는 뉘앙스로는 아무런 발전이 없다. ‘너희 이만큼 망했어’라는 수치와 근거를 들이대면서 위기감을 조성하는 건 문제점을 고치자는 게 아니라 위에서 내려다 보는 관망일 뿐이다. 나는 늘 이야기한다. K리그가 어려운 건 맞는데 이런 상황일수록 언론에서는 스토리를 발굴하고 재미를 찾아줘야 한다고 말이다. 텅 빈 K리그 챌린지 경기장에 가도 스토리는 넘치더라. “아이고, 망했다”고 할 시간에 경기장에서 재미있는 소재를 발굴해 전달하면 K리그는 안 망한다. 위기론을 조성하는 것 자체가 위기다.

K리그의 위기는 매년 나오는 단골 소재다. ⓒKBS 뉴스 캡쳐

K리그에 비약적인 발전은 없을 것

K리그 관계자 입에서 “K리그가 망했다는 걸 인정하고 현실을 직시하자”는 이야기가 나올 때는 경악했다. 현실 직시라는 게 도대체 뭔가. 망했으니 망한 걸 인정하고 접자는 뜻인가. 아니면 그냥 망한 대로 납작 엎드려 쭉 가자는 이야긴가. 관중은 있는 그대로 경기를 신나게 즐기면 된다. 관중이 관중 걱정하는 기형적인 구조에서는 리그가 안 망하는 게 이상하다. 왜 내 돈을 내고 경기장까지 와 남 걱정을 해주는지 모르겠다. 차라리 경기장에 와 ‘매북’이니 ‘북패’니 ‘개랑’이니 지지고 볶고 싸워라. 후반 종료 15분 전 경기장에 나오는 관중수 집계 같은 건 신경 쓰지 말고 경기장에 왔으면 놀자. 관중수는 연맹이나 구단이 알아서 할 거다. 관중은 온전히 경기에 집중하고 즐기기만 하면 된다. 왜 소비자가 흥행으로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나.

K리그는 앞으로도 비약적인 발전을 할 일이 별로 없을 것 같다. 2001년 스포츠토토가 처음 국내에 도입될 때 나는 K리그가 이제 유럽의 프로경기처럼 대박을 칠 줄 알았다. 전국민이 K리그 결과에 울고 웃으며 토토를 즐길 줄 알았다. 사람들이 호프집에서 K리그 중계를 보며 환호하거나 옆집 아주머니가 K리그 경기를 분석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K리그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2012년 처음 K리그에 승강제가 생길 때에도 마찬가지로 거대한 꿈에 부풀었다. 우리 지역 팀의 1부리그행을 간절히 바라는 이들이 2부리그 경기장을 꽉 채워 승격의 기쁨을 느끼며 눈물을 흘릴 줄 알았다. 하지만 승강제가 실시됐다고 K리그에 관중이 폭발적으로 늘어나지도 않았다.

이런 큰 변화 속에서도 K리그는 메이저가 되지 못했으니 앞으로 전국민이 사랑하는 메이저 스포츠가 될 기회가 있을까. 이제는 ‘월드컵빨’도 먹히질 않는데 어떤 변화 속에서도 갑자기 K리그가 비약적으로 도약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거대 중국 자본이 K리그 한 구단에 전폭적인 투자를 해 세계적인 선수를 영입한다면 달라질까. 한두 달 정도 효과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속적인 효과는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대단히 축구를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애국심으로 포장된 국가대표 경기에만 해당되는 일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애국심’을 좋아하지 ‘축구’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지금껏 내가 본 K리그와 축구는 이렇다. 어떤 한 번의 계기로 갑자기 도약할 일은 없다.

K리그의 위기는 매년 나오는 단골 소재다. ⓒKBS 뉴스 캡쳐

이 좁은 땅에 넘쳐나는 즐길거리

과거에는 나 역시 K리그의 인기가 부족한 걸 프로야구 탓으로 돌리기도 했다. 하지만 10년 정도 매일 밤마다 자려고 누워 생각해 보니 이제는 도를 깨우쳤다. 한국에는 K리그가 아니어도 할 게 너무 많은 게 가장 큰 원인이다. 이 좁은 땅덩어리에 밤새 술을 마실 수 있는 곳이 넘쳐나고 재미있는 영화는 수도 없이 개봉한다. PC방에서는 클릭 한 번으로 라면까지 끓여준다. 갑자기 ‘방 탈출’을 열심히 하다가 인형도 뽑아야 하고 수백 개 채널에서 24시간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방송한다. 밤 12시에 채널을 돌리다 또 다시 마주한 영화 <타짜>에서는 고광렬이 이렇게 말한다. “돈 따자고 칩니까? 재밌자고 치는 거지. 안그래요?” 한 40번은 본 영화인데 잠깐만 보다 채널을 돌릴 생각으로 멈춰 또 <타짜>를 끝까지 본다. 이 좁은 땅덩어리에는 24시간 재미있는 게 너무 많다.

유럽은 어떤가. 찾으면 찾을 수야 있겠지만 새벽까지 문을 여는 술집이 별로 없다. 경험해 본 바로는 영국도 그랬고 독일도 그랬다. 체코도 마찬가지였다. 스웨덴을 가봤더니 거긴 더 심하더라. ‘아, 여기에서 태어났으면 술 마시다 죽을 일은 없어도 심심해 죽을 수는 있겠구나’ 싶었다. 해가 떨어지면 별로 할 게 없다. 그런 의미에서 축구는 그들이 즐길 몇 안 되는 문화 수단 중 하나였다. 논현동 한신포차 골목에서는 밤새 술을 마시고 아침 11시에도 술을 더 마실 수 있다. 술을 마셔도 2~3만 원이면 대리운전 기사님이 집까지 모셔다 준다. 연인들에게 영화관 데이트는 일상이다. 이렇게 할 게 넘쳐나는 나라에서 그깟 공놀이에 목숨을 걸 이유는 없다. 참고로 일본은 대리운전 5km에 10만 원씩이나 든단다.

그런데 이런 좁은 땅덩어리에서 24시간 할 일은 무지하게 많은데 프로 스포츠도 넘쳐난다. 인구 5천만 명인 나라에서 프로축구와 프로야구, 프로농구, 프로배구, 프로골프가 남녀별로 다 있다. 이 정도 인구를 갖춘 나라라면 프로 스포츠가 한두 개 있어야 그게 정상이다. 사업하느라 하루 종일 바쁜 아버지가 여덟 명의 자식 중 여섯 째에게 특별히 더 신경을 써줄 수 있을까. 우리의 사정이 딱 그렇다. 프로야구는 그래도 클럽이나 영화관람 등 여러 문화 생활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고 봐야한다. 우리에겐 스포츠를 온전히 스포츠로 받아들이고 즐기는 DNA는 별로 없다. 거기에다 밤새 놀거리가 넘쳐나는데 K리그에 드록바가 오고 루니가 와도 별 수 없다. 내가 10년 넘게 매일 밤 잠들기 전에 분석해 내린 결론은 이거다.

K리그의 위기는 매년 나오는 단골 소재다. ⓒKBS 뉴스 캡쳐

‘K리그 위기론’에 대처하는 현명한 자세

앞서 말한 것처럼 K리그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정부가 금주령을 내린다면 모를까, 통행금지령을 내린다면 모를까, 영화관을 폐지하면 모를까 K리그가 지금보다 눈부시게 성장하는 건 쉽지 않다. 물론 그렇다고 일을 잘 못하는 프로축구연맹이나 오심 투성이인 심판, 열정이 부족한 구단을 보호하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 K리그 위기론을 꺼내며 자책이나 하고 K리그가 언제 망할지 손꼽아(?) 기다리지는 말자는 거다. K리그가 눈부시게 발전할 일도 없지만 하루아침에 망할 일도 없다. 그냥 나라도 축구장에 가 재미있게 즐기면 될 일이지 우리 모두가 프로축구연맹 관계자나 K리그를 살려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진 언론인이 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스포츠니어스>는 K리그가 곧 망할 것처럼 걱정하는 대신 현장에서 더 풍성한 스토리를 발굴해 독자들에게 전달하겠다. 그러니 팬들은 마음껏 소비하면 된다.

누군가는 5년 뒤, 10년 뒤에도 K리그가 망한다고 호들갑을 떨겠지만 그럼에도 K리그는 돌아갈 것이다. 가장 활발하게 K리그를 즐겨야 할 팬들부터 걱정 어린 눈빛으로 K리그를 바라본다면 다른 이들이 이 망해가는(?) 리그에 재미를 붙일 일은 없지 않겠나. K리그의 위기가 정말로 걱정된다면 나부터라도 경기장을 찾아 관중으로서 누릴 수 있는 걸 누리는 게 어떨까. 이런 사람들이 한두 명씩 늘어 경기장을 채우지 않고서는 이 지긋지긋한 ‘K리그 위기론’을 끝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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