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꿇기 운동에 동참하는 헤르타 베를린 ⓒ 헤르타 베를린 제공

[스포츠니어스 | 홍인택 기자] 현재 미국의 국민 스포츠 전국풋볼리그(NFL)에는 쟁점으로 떠오르는 사건이 있다. 요즘 몇몇 미식축구 선수들은 경기 전 미국 국가가 연주될 동안 무릎을 꿇고 있다. 이들에겐 어떤 사연이 있을까.

캐퍼닉의 무릎 꿇기, 동참하는 스포츠 선수들

NFL 선수들의 '무릎 꿇기'는 지난해 8월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의 전 쿼터백 콜린 캐퍼닉이 시작했다. 캐퍼닉은 미국 경찰의 흑인 과잉 진압에 항의하는 뜻으로 국가 연주 도중 경기장 바닥에 앉는 행동을 했다. 그가 처음 바닥에 앉는 행동을 했을 때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두 번째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일이 세 번째 일어나자 한 기자의 눈에 띄어 인터뷰가 진행됐고 그의 의도가 밝혀졌다.

그는 일종의 침묵시위를 한 셈이다. 그는 전직 미식축구 선수이자 해병대 출신인 네이트 보이어의 편지를 받은 후 그는 앉는 방식을 바꿨다. 군인들에게 존경심을 표한다는 의미로 한쪽 무릎을 꿇었다. 영국 매체 <이코노미스트>는 그의 이와 같은 행동을 일컬어 "분노보다는 성찰이 돋보이는 자세다"라고 평가했다. 그리고 그의 시위에 공감한 많은 선수와 구단 관계자들이 캐퍼닉처럼 국가가 연주될 동안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해당 내용은 국내 여러 매체를 통해서도 전달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위에 동참하는 이들을 욕설과 함께 모욕하며 '반국가적 행위'라고 규정했다. 안타까운 점은 NFL 측에서 처음에는 선수들 편에 섰던 로저 구델 NFL 커미셔너가 트럼프 대통령에 일단 '백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캐퍼닉의 의도와 달리 트럼프 대통령은 선수들의 항의가 "국기, 국가에 대한 모독이다"라며 본질을 흐렸다. 결국 대중도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귀담아듣기 시작했고 NFL 후원사들도 점차 마음이 움직였던 모양이다. 구델 커미셔너는 "많은 팬처럼 우리도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서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는 우리 경기에서 중요한 순간"이라고 전하며 손을 들었다.

콜린 캐퍼닉과 마찬가지로 무릎을 꿇은 팀 동료 에릭 레이드 ⓒ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 제공

NFL의 향후 행보가 중요한 이유는 그럼에도 선수들의 기립을 강제하지는 않겠다는 측면에 있다. 선수들의 강한 저항도 예상되며 기립을 강제할 경우 발생하는 또 다른 항의 방법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NFL은 이러한 저항 운동 논란에서 탈출구를 찾기 위해 선수노조 위원장의 도움을 받는다. 한발 뒤로 물러났지만, 그래서 더 신중하게 움직이려는 모습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와 같은 운동을 진행하는 곳이 비단 미식축구장이나 미국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백인 여성 축구 선수인 메건 라피노도 동참했고 최근에는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뛰고 있는 헤르타 베를린 선수들과 코치진도 이와 같은 무릎 꿇기 운동에 동참했다. 헤르타 베를린 선수들과 코치진은 샬케04와의 경기 시작 전 서로 팔짱을 끼고 무릎을 꿇었으며 관중들은 박수와 환호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헤르타 베를린 홈구장의 장내 아나운서는 "우리는 다양성을 추구하고 폭력에 반대한다"면서 "헤르타 베를린은 차별에 반대하기 위한 미국 선수들의 무릎 꿇기에 동참한다"라며 설명했다. 헤르타 베를린의 동참 운동은 더 큰 의미가 있다. 그들의 홈구장은 독일 나치가 베를린 올림픽을 개최하기 위해 지은 올림피아 슈타디온이기 때문이다. 분데스리가 측은 헤르타 베를린의 운동에 "위대하고 중대한 퍼포먼스"라는 평가를 했다. 헤르타 베를린 수비수 세바스티안 랑캄프는 "우리는 21세기에 살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자신의 이념을 발전시키지 못한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라며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한 것으로 알려졌다.

콜린 캐퍼닉과 마찬가지로 무릎을 꿇은 팀 동료 에릭 레이드 ⓒ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 제공

K리그에도 '캐퍼닉'은 나타날 수 있을까

K리그 선수들도 이와 같은 차별 운동에 동참했으면 좋겠다. K리그도 결코 인종 차별 논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신태용 감독이 이란전 이후 발언한 '페르시아인의 특성'은 인종 차별적 발언이었다. 당시에는 대표팀 경기력 논란 때문에 그의 발언에 문제를 삼는 매체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인종 차별적 발언이 아닌 '핑계' 쯤으로 생각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축구를 잘하는 사람들을 모아 놓은 팀을 이끄는 수장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 하물며 K리그는 어떨까. 차별 감수성에 둔감한 우리는 종종 이러한 차별적 발언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곤 한다.

K리그에도 다양한 인종이 섞여 축구를 하고 있다. 한국축구 구성원들도 인종 차별에 대한 고찰을 심각하게 해야 한다. 팬들의 입에서 '흑형', '쪽발이', '짱깨'와 같은 단어는 나와선 안 된다. 팬들의 인식을 바꿀 수 있는 행동은 이와 같은 저항 운동이다. 우리도 인종 차별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스스로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선수들을 대상으로한 차별 금지 교육도 체계적으로 이루어졌으면 한다.

영화 <청년 경찰>에 나타난 대림동을 바라보는 우리는 어땠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한 매체에 소개된 조선족 3세 김 씨의 일화는 한국인들의 인종차별적 행위가 얼마나 심각한지 잘 알려주고 있다. 김 씨는 "조선족 범죄 원인으로는 한국인의 인종차별과 이주한 조선족들의 열악한 처우를 살펴봐야 한다"며 "범죄를 일으키는 조선족들은 한국사회의 최하층에서 온갖 언어적·물리적 폭력에 노출되어있다. 나 역시 출입국사무소에서 무시를 당한 경험이 있다"라고 밝힌 적이 있다. 현재는 없지만 K리그에도 중국 선수들이 뛴 적이 있다. 만약 그들이 똑같이 무릎을 꿇었다면 어땠을까.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처럼 "K리그와 우리나라에 대한 모독"이라며 그들을 매도하진 않았을까. "중국 선수들은 선수 생명을 위협하는 반칙성 행위를 저지른다"라는 편견은 아직도 우리 머릿속에 뿌리 깊게 박혀있다.

최근 독일의 비영리 공익·정치재단인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며 촛불 집회에 참여했던 1000만여 명의 우리나라 국민들을 대상으로 인권상을 수여했다. 국민이 인권상을 받는 와중에 한편으로는 인종 차별이 만연한 것도 현실이다. 누군가는 인기도 없는 K리그를 미국 사람 누가 본다고, 대표팀이 무너지게 생겼는데 K리그 앤썸이 울려 퍼질 동안 무릎이나 꿇어야겠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프로축구연맹을 넘어 K리그 팬들도 트럼프 대통령의 영향으로 이와 같은 운동을 '정치적 행위'라고 규정할 수 있다. K리그 정관 제5조에는 '정치적 중립성'과 '모든 형태의 차별 금지'가 함께 명시되어 있다. '차별 반대'라는 본질적인 논지를 트럼프 대통령처럼 정치관, 국가관으로 흐릿하게 만든다면 해석의 여지를 줄 수 있는 문장이다.

그래서 이러한 운동이 연맹 차원이 아닌 구단이나 선수들 차원에서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더 좋은 그림은 연맹이 이들을 지지하는 것이며 선수들의 한뜻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다. 인종 차별적 걸개를 걸었던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가 AFC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진출한 시점에서도 의미있는 행동이 될 수 있다. 선수들 입장을 생각하면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21세기에 살고 있다.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 선수 개인의 표현이 공익에 위배되지 않는다면 그들을 막을 정당성이 없다. 혹시 아는가? 누군가는 K리그 앤썸이 울려 퍼질 동안 다른 의미로 무릎을 꿇기 시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선수들의 운동에 팬들이 걸개로 동참한다면 또 하나의 스토리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K리그에도 캐퍼닉과 같은 선수가 나타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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