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팀 감독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슈퍼매치 얘길 꺼냈다 ⓒ 프로축구연맹 제공

[스포츠니어스 | 홍인택 기자] 보통 경기가 끝난 후 열리는 기자회견장에서는 경기를 복기하는 일이 다 반수다. 간혹 다음 경기 준비에 대한 질문이 나오지만 이에 답변하는 감독들은 상투적인 대답을 하는 편이다. 감독들은 경기 소감을 밝히면서 말미에나마 "다음 경기도 준비 잘 하겠다"면서 "편한 팀은 없다"라는 생각을 밝히곤 한다.

감독들에게 '다음 경기'는 일상적인 반복일 수 있다. 어차피 리그는 계속되고 K리그 클래식이든, K리그 챌린지든 상대하기 편하고 쉬운 팀은 없기에 상투적인 대답이 나오는 것도 이해된다. 듣는 사람에 따라 성의 없게 들릴 수도 있는 답변이지만 감독들은 방심을 경계하고 있다. "특별한 팀은 없다"라는 말은 상대 팀을 가볍게 여기기보다는 "어느 팀이라도 상대하기 쉬운 팀은 없다"라고 해석하는 게 맞을 것이다. 강팀과 약팀을 나누고 "전력 상 이 팀은 이길 만 하다", 혹은 "이 팀은 어렵겠다"라고 해석하는 팬들의 모습과는 차이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K리그 클래식 34라운드를 마친 서정원 감독과 황선홍 감독의 기자회견 인터뷰는 남다르게 느껴졌다. 서정원 감독은 경기 소감을 묻는 말에 직접 '슈퍼매치'라는 단어를 꺼내며 각오를 밝혔다. 울산 현대를 상대로 달콤한 승리를 거둔 이후에도 "오늘 승리는 오늘로 끝"이라며 슈퍼매치 준비를 시작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황선홍 감독도 전북 현대와의 경기 후 '슈퍼매치'를 직접 언급했다. 황 감독은 "심리적 압박은 시즌 말미에 항상 받는다. 그것을 컨트롤 해야 한다"면서 "라이벌전이고 모든 것을 쏟아부어서 승리하도록 준비하겠다"라며 각오를 밝혔다. 두 감독의 시선은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마자 슈퍼매치로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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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아니라던 서정원, 100% 채운 선수들

"하하, 어떻게 이렇게 많이 오셨어요? 축구회관이랑 전주 가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지난 15일 울산전을 치르기 전, 사전인터뷰에 응한 서정원 감독은 웃으며 취재진을 반겼다. 그의 농담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울산전을 대비한 부담감을 느낄 수 있었다.

짧은 인사 후 이어진 인터뷰에서 그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이번 시즌 울산을 상대로 1무 2패를 거둔 수원이었다. 울산의 선발 명단에는 최근 좋은 활약을 펼친 선수들의 이름으로 가득했다. 반면 수원의 선발 명단은 울산의 그것과 비교해봤을 때 다소 무게감이 떨어졌다.

"이제 스플릿 라운드니까 한 경기, 한 경기가 중요해요. 울산을 상대로 아쉬운 게임을 해왔어요. 주로 우리 실수로 실점을 했죠. 중요한 게임인데 염기훈과 조나탄의 몸 상태가 걱정이에요."

"(염)기훈이는 발목에 통증이 조금 있어요. 심각한 부상은 아닌데 90분을 소화하기엔 힘들어요. 그래서 훈련도 이틀 쉬게 했어요. 조나탄도 엄청 빨리 회복을 했지만, 그런 만큼 더 걱정이 많이 돼요. 훈련량도 적었고 오랜만에 선발이라 경기 감각도 문제가 되겠죠. 본인 의지가 강해서 일단 선발로 내세웠어요."

조나탄이 복귀했지만 수원에는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매튜가 전북 이동국에게 취했던 제스쳐가 문제가 됐다. K리그 상벌위는 매튜의 제스쳐가 부적절했다고 판단해 그에게 출전 정지 징계를 내렸다. 수원의 수비가 안정화되고 있던 과정에 생긴 악재였다. 공격 자원이 돌아오니 수비 자원이 빠졌다.

"그게 문제에요. 100% 전력을 세우지 못한 경우가 많았어요. 수비 불안은 올해 시작부터, 아니 작년부터 항상 얘기했던 거에요. 매튜뿐만이 아니고 양상민, 민상기도 쓸 수가 없어요. 임시방편으로 미드필더 이종성을 내렸어요. 조성진과 김은선도 복귀했지만 2년 동안 팀을 떠나있었잖아요. 적응 시간도 필요할 거에요. 이런 여러 가지 요소들로 우리가 완전체로 경기에 나서지 못했어요. 아쉬운 부분이죠."

서정원 감독의 우려와 달리 경기 결과는 수원의 2-0 승리로 끝났다. 조나탄은 의욕만큼 활발하게 울산 수비라인의 공간을 노리며 침투하며 좋은 활약을 펼쳤다. 자신이 얻어낸 페널티 킥을 골로 연결하며 화려한 복귀를 알렸다. 조나탄은 염기훈과 교체되면서 기립박수를 받았다. 교체 투입된 염기훈도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줬다. 발목 통증은 잊은 채 리더 역할을 해내며 수원의 무실점 승리에 힘을 보탰다.

서 감독은 경기 후 100%를 채운 선수들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조나탄과 염기훈에 대해 "걱정이 많았다. 자기 역할을 충실히 잘해줬다"라며 칭찬했다. 서 감독은 "스플릿 첫 게임을 순조롭게 출발해 좋다. 무실점으로 게임을 치렀다. 팀이 안정감을 찾아 다행스럽다"면서 "다음 게임은 슈퍼매치다. 선수들이 오늘 승리에 도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코치진과 흐트러짐 없이 준비하겠다"라며 방심을 경계했다.

서 감독이 걱정한 부분은 선수들이 채웠다. 그것을 울산전에 보여줬다. 올 시즌 슈퍼매치도 서울에 이기지 못했다. 서 감독의 걱정은 진행형일 것이다. 서 감독이 안고 있는 걱정을 선수들이 슈퍼매치에서도 채워주길 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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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라는 팀의 가치를 생각한다는 황선홍 감독

FC서울을 맡은 황선홍 감독은 새로운 팀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선수들도 새로운 감독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프로의 세계는 냉정했다. K리그 클래식이라는 무대는 그들이 적응과 성적이라는 결과를 모두 챙기기엔 호락호락하지 않은 리그라는 것을 알려줬다.

최용수 감독이 팀을 떠난 후 황 감독 체제 2년 차를 맞이했지만 쉽지 않았다. 다른 경쟁 팀들은 오랜 시간 팀을 이끈 감독과 호흡을 맞췄다. 선수단은 조직력을 떠나 감독의 철학을 흡수하고 있었다. 서울이라는 팀의 위상을 생각하면 더 이른 시간 안에 자리를 잡았어야 했다. 그러나 우여곡절이 많았다. AFC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를 비롯, FA컵에서도 탈락의 쓴맛을 봤다. 리그에서는 우승 경쟁에 뛰어들 만큼 승점을 벌지 못했다. 이제 서울은 목표를 다음 시즌 ACL 진출로 가닥을 잡았다.

황선홍 감독은 지난 9월 17일 열렸던 인천 유나이티드전을 앞두고 동기부여에 대해 설명했다. 인천은 시즌 막바지에 강한 모습을 보인다. 매 시즌 강등권에서 잔류 경쟁을 하면서도 끝내는 강등을 피하는 생존능력이 강한 팀이다. 황선홍 감독도 이들의 절실함을 경계했었다. 인천이 강등을 피하기 위해 절실한 마음이 있다면, 반대로 서울이라는 팀에 심어야 할 동기부여는 무엇인지 물었다.

"서울이라는 팀의 가치를 생각하면 ACL 진출이 마지노선이라고 생각해요. 아직은 승점 차이가 많지만 우리도 인천만큼 절실한 마음이 있어요."

서울은 인천과의 승부에서 송시우의 결승골로 0-1로 패배했다. 인천전 패배는 그들에게도 충격이었다. 황 감독은 "절실함의 차이에서 승부가 갈렸다"라고 인정했다. 서울은 이후 열린 5경기에서 한 번도 지지 않고 현재 5경기 무패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어찌 보면 인천이 그들을 깨웠다고 할 수 있다. 서울의 절실함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보여줬다. 특히 올 시즌 1승 2패를 거두며 상대하기 껄끄러웠던 전북을 상대로 거둔 무승부 결과는 어느 정도 '선방'했다는 평가다.

그러나 서울은 선방에 그치면 안 된다. 단순히 리그 측면의 경쟁이라면 1위 팀을 상대로 5위였던 서울이 무승부를 거뒀으니 선방이라고 표현할 수 있지만 그들의 목표는 ACL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황 감독은 "양 팀 다 승패를 내지 못한 것에 아쉬움이 있다"라고 표현했다.

황 감독은 전북전이 끝난 후 "상대가 힘 싸움을 많이 하고 압박이 심하니 지지 말자고 했다. 기술적으로 완벽하지 않았으나 경쟁에선 지지 않았다고 본다"라고 밝히면서 "처한 환경에 적응하고 ACL 티켓을 따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전했다. 황선홍 감독과 FC서울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경기에 임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말이다. 기복이 심했던 서울의 올 시즌을 생각하면 5경기 무패는 꽤 의미 있는 기록이다.

서울은 쫓아가는 입장이다. 5경기 무패 속에 포항과 전북을 상대로 거둔 무승부는 서울에 심리적 압박을 줄 수 있다. 황선홍 감독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강팀이 되기 위해선 심리적 압박은 항상 받는 거다. 심리적으로 잘 컨트롤하는 게 중요하다"면서 "다음 주 슈퍼매치 준비를 잘 하겠다. 라이벌전이니까 모든 것을 쏟아부어 준비하도록 해야겠다"라며 슈퍼매치에 대한 각오를 밝혔다. 황선홍 감독도 서정원 감독처럼 경기가 끝나자마자 다음 경기를 바라본 것이다.

서정원 감독은 걱정을 안고 시작한 스플릿 라운드 첫 게임에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 황선홍 감독은 다소 만족스럽지 못한 출발을 한 셈이다. 수원의 목표도 순위 상승이며 서울의 목표도 같다. 수원이나 서울이나 갈 길이 바쁜 상황에서 절대 지고 싶지 않은 팀을 만난다. 슈퍼매치는 팀의 사기와도 연결된다. 시즌 막바지에 펼쳐지는 두 팀의 경기는 그들에게도 중요하다. 두 감독의 시선은 이번 주 토요일에 열릴 슈퍼매치로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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