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사진은 칼럼의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영상 제공

[스포츠니어스 | 명재영 기자] 정치적 수식어인 ‘잃어버린 X년’이 K리그에도 적용되고 있다.

한국 축구의 근간인 K리그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주식에서 가장 무섭다는 계단식 하락을 이어가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조차 쉽게 꺼내기 힘든 상황이라는 점이다. 국가대표팀은 국가적 이슈로 조명이라도 받지만, K리그는 쌓인 문제조차 이제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K리그에 위기라는 단어가 항상 붙었다지만 지금은 분명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 리그의 근간인 팬들은 이미 빠질 대로 빠져나갔다. 남아있는 팬마저 계속 터져 나오는 문제에 자괴감을 느끼고 있다. 수치상으로도 지난 주말까지 K리그 클래식과 K리그 챌린지의 평균관중이 각각 6,514명과 2,301명으로 위기를 적나라하게 확인할 수 있다. 그나마 2013년 출범한 K리그 챌린지가 점차 자리를 잡아나가면서 관중 수가 소폭 상승하고 있는 점이 위안거리다.

시간을 되돌려보면 이러한 모습은 2011년부터 나타났다. 2011년 여름 축구계를 강타한 승부 조작 사태로 K리그는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겼다. 십수 년 전부터 수면 아래에서 제기됐던 논란이 검찰 수사 결과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사실 회복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승부 조작 사태만 하더라도 원점에서부터 모든 것을 밝혀내겠다는 의지로 해결책을 찾아 나섰다면 오히려 반등의 계기로 삼을 수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심판, 구단 등에 대한 수사는 뒷전으로 밀려나면서 반쪽짜리 봉합이라는 비판이 거셌다. 결국 이 문제는 지난 2015년과 2016년 경남FC와 전북현대의 심판매수 사건이 연달아 세상에 밝혀지면서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빠져들고 말았다.

특히 지난 2009년 이후 K리그의 리딩 클럽 역할을 해왔던 전북이 심판 매수 사건에 휘말린 것이 결정적이었다. 더군다나 전북이 해당 사건을 직원의 개인적인 일탈로 발표하면서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까지 스스로 만들었다. 매수를 직접 시도한 직원이 올해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숨진 채 발견되면서 의혹은 더욱 증폭됐다. 사태가 이렇게 악화되면서 K리그의 모든 이슈가 매수의 블랙홀로 빠져드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심판에 대한 불신은 시위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전북의 모든 상황에 ‘매수한 팀’이라는 비아냥이 따라붙고 전북 팬은 이에 대응하는 모습이 펼쳐지는 판국이다. 이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있다. 실제로 지난 1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진 수원삼성과 전북의 경기에서는 후반에 있었던 판정 논란으로 종료 직후 수원 홈팬들과 전북 최강희 감독이 직접 충돌하는 아찔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지금 이 모든 악순환의 심판매수 탓일까. 그것 또한 아니다. 심판매수 사건이 분명 K리그 이미지에 큰 상처를 준 것은 사실이지만 대중의 관심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은 본질적인 문제의 영향이 더 크다. 한 마디로 ‘볼 가치가 없다’라는 것이다. 관심을 끌 수 있는 선수의 이탈은 연중무휴로 이뤄지고 있다. 강원FC의 문창진이 지난 13일 UAE 리그로 이적한 것처럼 이제는 시즌 중에도 선수들이 사라지고 있다. ‘이적 시장만 무사히 넘기면 한 시즌은 안심할 수 있다’는 전제도 이젠 깨졌다.

한 번 조명을 받은 선수는 그날로 보따리를 싸니 전체적인 경기력도 자연스럽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기록이 아닌 상대와의 맞대결로 승부를 가리지만 기본적으로 공을 다루는 능력이 떨어지면 극단적으로 재미없는 경기가 나온다. 지도자 세계에서는 순위에 대한 스트레스를 호소하지만, 대중에는 ‘이해해줄 만한’ 사유가 되지 못한다.

경기력 문제까지만 해도 골치가 아픈데 여기에 심판 논란까지 한술 더 떴다. 불신의 아이콘이었던 심판 논란이 올해에는 유독 거세다. 이는 리그를 관장하는 프로축구연맹과 심판진 본인들이 자초했다. 심판 매수 사건으로 시선이 날카로운 상황에서도 그들은 환골탈태(換骨奪胎)에 실패했다. 비디오 판독 시스템인 VAR을 시즌 중 도입했지만, 현재까지는 심판에 대한 불신감을 더 키우고 있다. 팬들 사이에서는 “당연한 반칙을 VAR로 겨우 잡아내면 심판은 도대체 하는 일이 뭐냐”는 격정적인 반응도 나온다.

이렇듯 K리그는 경기력, 행정, 위기 대응 능력 등 모든 면에서 낙제점을 받은 셈이다. 지금까지 버텨온 충성심 높은 팬들도 이제는 손을 들고 발을 떼려고 하고 있다. 언론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대안 제시다. 비판했으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응책 또한 제시하는 것이 합리적인 태도다. 그런데 해결책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프로스포츠의 뿌리인 자금부터 빠져나가고 있는 현실에서 삽을 뜰 위치를 찾을 수가 없다. ‘너와 나, 우리의 K리그’는 이대로 절벽에서 미끄러지는 것인가.

hanno@spor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