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회] 히딩크 재단에 놀아나는 한국 축구


거스 히딩크
거스 히딩크 감독 재부임 논란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프로축구연맹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무역업에 종사하는 한 남성이 대한축구협회 관계자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 “히딩크 감독이 한국 대표팀을 맡고 싶어 한다. 우선은 남은 두 경기만 맡을 ‘땜빵’ 감독을 세우고 월드컵 본선 감독은 나중에 찾자”는 메시지를 보냈다고 가정해 보자. 기분이 굉장히 나쁠 것 같다.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도 아닌 이가 대표팀 감독 후보를 추천하는 것도 모자라 선임 시기까지 간섭하는 건 월권 행위다. 내가 협회 관계자인데 나에게 이런 연락이 왔다면 그냥 답장을 하지 않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고 한 마디 쏘아붙였을 것 같다. “참견하지 마시고 본인 일이나 잘하세요.”

재단 총장이 무슨 권한으로 제안하나?
거스 히딩크 감독 논란은 여전히 끊이질 않고 있다. 김호곤 대한축구협회 부회장과 노제호 히딩크 재단 사무총장이 진실게임을 펼치는 동안 대중은 히딩크 감독이라는 매혹적인 이름에 혹해 협회를 욕하기에 바쁘다. 하지만 지난 13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이하 교문위) 문화체육관광부(소속기관 포함) 국정감사에 노제호 총장이 출석해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진실을 일부 털어놓았다. 현재는 에이전트를 그만 두고 무역업에 종사하고 있는 노제호 총장이 한국 축구에 과할 정도의 월권을 휘두르고 있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는 협회에서 그 어떤 직책도 맡고 있지 않지만 기술위원회까지 좌지우지했다.

노제호 총장이 히딩크 감독을 러시아에서 만나 먼저 한국 대표팀 감독직을 제안했다는 것 자체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협회와 전혀 관계 없는 인물이 협회 의지는 묻지도 않고 개인적으로 히딩크 감독을 만나 한국 대표팀 감독 자리를 부탁했다는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노제호 총장이 협회를 자주 들락거렸고 히딩크 감독의 측근이었다는 점은 이 사건과는 별개다. ‘제3자’가 협회 의지와 상관없이 지인에게 “대표팀 감독 한 번 하시라”고 한 게 문제다. 만약 이 사안에서 히딩크 감독을 본프레레 감독으로 바꿔놓고 생각해 보자. 누군가 본프레레 감독을 만나 “이번에 대표팀 감독 한 번 하셔야죠”라고 했다면 과연 이를 좋게 받아들일 이가 누가 있을까. 히딩크 감독을 떠나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야 한다.

히딩크 감독이 노제호 총장의 제안에 대응하지 않자 그는 계속해서 히딩크 감독을 설득했다. 도대체 그가 무슨 자격으로 히딩크 감독을 설득했는지 잘 모르겠다. 그가 히딩크 감독을 설득하는 모습이 당위성을 얻는 조건은 단 하나 뿐이다. 협회에서 “히딩크 감독을 모시고 싶은데 당신이 친하니 가서 의중을 물어봐 달라”고 했을 때를 제외하면 노제호 총장은 ‘특사’ 자격이 없다. 노제호 총장 혼자 러시아로 날아가 히딩크 감독을 설득해 “한국이 본선 진출하면 ‘헌신(dedication)’하겠다”는 답을 들었다고 해 그를 공식채널로 인정해 줘야 할 이유도 없다. 또한 ‘헌신(dedication)’이라는 단어를 본인 뜻대로 해석해 “히딩크 감독이 한국 대표팀 감독을 맡겠다”고 협회에 전달한 것도 순전히 다 자기 마음대로다. ‘헌신’에는 여러 방식이 있기 때문이다.

기술위원회 권한까지 흔드는 재단 총장
더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은 노제호 총장이 개인 자격으로 히딩크 감독의 의견을 받아 김호곤 부회장에게 ‘카톡’으로 전달했다는 점이다. 한 나라 대표팀 감독의 운명이 갈릴 상황을 ‘카톡’으로 보고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이후 김호곤 부회장과 노제호 총장이 통화를 했는지 하지 않았는지를 두고 논란이 많지만 이 문제도 별로 중요한 사항은 아니다. 협회의 ‘특사’ 자격도 아닌 사람이 독단적으로 히딩크 감독을 설득해 ‘카톡’으로 협회 부회장에게 전달한 과정 자체가 문제이기 때문이다. 김호곤 부회장이 ‘읽씹’을 했다고 언론에 일러바치는 건 히딩크 감독이라는 대중적 영웅을 앞세워 여론전을 하겠다는 심산으로밖에 볼 수가 없다.

‘카톡’ 내용을 보면 더 기가 차다. 협회와 무관한 이가 기술위원회까지 관여하는 건 우리가 지난해 그토록 분노했던 ‘비선실세’와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노제호 총장이 “히딩크 감독께서 관심이 높으시니 이번 기술위원회에서는 남은 두 경기만 우선 맡아서 월드컵 본선 진출 시킬 감독 선임하는 게 좋을 듯 하다. 월드컵 본선 감독은 본선 진출 확정 후 좀 더 많은 지원자 중에서 찾는 게 맞을 듯하다”고 보낸 ‘카톡’은 대단히 큰 문제다. 그가 도대체 무슨 자격이 있는데 기술위원회까지 입김을 넣는지는 모르겠다. 정부와 전혀 관련 없는 최순실이 권력을 쥐고 흔든 것과 다를 게 뭔가. ‘비선실세’에는 분노하면서 권한 없는 이가 대표팀 감독 선임에 압력을 넣는 건 옹호하는 현실이 앞뒤가 맞질 않는다.

노제호 총장은 자꾸 진실게임을 하려고 한다. 김호곤 부회장과 통화내역까지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통화를 한 사실이 밝혀졌다고 해 그의 행동 자체가 설득력을 얻는 것도 아니다. 왜 협회가 무역업에 종사하는 일개 재단 사무총장 말을 들어야 하는가. 이건 대상이 히딩크 감독이 아니라 다른 감독이었더라면 노제호 총장에게 모든 비난이 돌아갈 만한 사안이다. 제발 히딩크 감독을 보지 말고 노제호 총장이 월권을 휘두른 과정을 보자. 한 개인이 히딩크 감독과 친분이 있다고 해 월권을 휘두르며 언론 플레이를 했고 대중은 히딩크 감독이라는 영웅에 정신이 팔려 월권 행위에도 정당성을 부여한다. 한 사람의 언론 플레이에 한국 축구와 팬들 전체가 놀아나고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

히딩크 노제호 김호곤
노제호 사무총장이 김호곤 부회장에게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

히딩크 재단에 놀아나는 한국 축구
처음부터 대표팀 감독은 생각도 하지 않았던 히딩크 감독도 노제호 총장이 절차와 과정을 다 무시하고 설득해 일부에는 ‘욕심 많은 늙은이’로 비춰지기도 했다. 히딩크 감독은 잘못한 게 없는데 노제호 총장의 행동으로 졸지에 그간의 업적까지도 폄하되는 지경이 이르렀다. 노제호 총장의 경솔한 행동으로 인해 협회는 물론 죄 없는 신태용 감독과 히딩크 감독, 한국 축구 전체가 불신에 빠지고 말았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이게 과연 누굴 위한 월권이었나. 안 해도 될 일, 아니 해서는 안 될 일을 해서 한국 축구 전체가 개판 5분전으로 분열됐다.

히딩크 감독 선임을 반대하면 다 적폐세력이 된다. 썩어빠진 협회를 옹호하는 세력으로 비춰진다. 하지만 진짜 적폐는 과정과 절차를 다 무시하고 권한도 없는 이가 권한을 가지는 것이다. 히딩크 감독이 천하제일 명장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반박하지 않겠다. 나 역시 히딩크 감독의 능력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협회의 투명하지 못한 일처리도 반드시 고쳐져야 한다. 과거 칼럼에서 언급했듯 조중연 회장이 임기를 1년 앞두고 거액의 8년짜리 용품 스폰서 계약을 맺은 건 굉장히 뒤가 구리다는 생각도 든다. 협회가 문제도 많고 개혁해야 할 대상이라는 사실은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 역시 누구보다도 협회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을 많이 했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이건 다른 문제다. 아무 권한도 없는 이가 과정도 다 무시한 채 기술위원회를 쥐락펴락 하려 했다는 건 한국 축구를 흔드는 행위다. 히딩크 감독이 한국 대표팀에 부임하면 히딩크 재단에 어떤 식으로건 금전적인 이득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노제호 총장이 “금전적 이득을 바라고 한 일이 아니다”라고 했으니 백 번 양보해 그의 주장을 그대로 믿어보려 한다. 그래도 그의 의도와 과정, 절차는 당연히 비판받아야 한다. 노제호 총장은 대표팀 기사마다 신태용 감독을 부정하고 오로지 히딩크 감독만 찾고 있는 여론을 보며 어떤 생각이 들까. 과연 이게 한국 축구를 위해 옳은 일을 한 건지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히딩크 재단 사무총장 한 명에게 한국 축구가 놀아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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