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같으면 저 곳에 있어야 할 이흥실 감독이 갑자기 다가왔다 ⓒ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안산=조성룡 기자] "뭐 어때? 단 둘인데."

15일 안산 와~스타디움에서 열린 KEB하나은행 K리그 챌린지 2017 안산 그리너스와 아산 무궁화의 경기에서 안산은 후반 아산 이재안에게 선제 결승골을 내주며 0-1로 패했다. 잘 싸웠지만 득점이 침묵하며 아쉬운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다.

하지만 이흥실 감독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기자회견장에 들어온 이 감독은 자신의 자리에 착석하는 대신 기자의 옆 자리에 앉았다. 당황한 구단 직원이 감독 자리에 앉을 것을 권유했으나 그는 "한 명 밖에 없는데 그냥 둘이 같이 얘기 하면 되는 거 아니냐. 뭐 어때 단 둘인데"며 기자와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 본의 아니게 공식 기자회견은 일대 일 인터뷰로 전환됐다. 공식 기자회견에 참석한 기자가 단 한 명 밖에 없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경기 후 소감을 묻자 그는 씩 웃으며 "매번 하는 얘기 크게 다르지 않다. 알아서 쓰면 안되냐"라고 말했다. 과거 이 감독은 경기에서 패배하면 공식 기자회견에서 "선수들은 정말 최선을 다해서 싸웠지만 결과가 좋지 않아 아쉽다. 많은 팬들께서 응원 해주셨는데 미안한 마음이다. 다음 경기 준비 잘해서 좋은 모습 보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안산의 입장에서는 패배보다 아쉬운 것이 있다. 바로 카드 관리다. 이번 경기에서 라울이 경고를 받아 다음 서울 이랜드전에 뛰지 못한다. "서울 이랜드전이 우리 마지막 홈 경기다. 팬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면서 마무리 잘 하고 싶다"고 말한 이 감독은 "그런데 라울이 경고 누적으로 못뛴다. 일부 주전들도 사후 징계 등으로 못나온다. 선수들이 자제해야 할 부분이다. 다시 주의를 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선수 구성에 문제가 있지만 나머지 선수들이 잘 해줄 것이다"라고 믿음을 드러내더니 갑자기 씩 웃었다. "이제 단두대 매치만 남았네." 남은 두 경기의 상대가 서울 이랜드와 대전 시티즌이기 때문이다. 각오를 묻는 질문에 "뭐 그냥 잘 해야지"라는 답이 돌아온다. 평소 그의 말을 빌리자면 "홈에서는 끝까지 공격적으로 하고 원정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겠다"란 뜻이다.

그래도 안산은 최근 '고춧가루 부대'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미 두 팀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경남FC가 안산에 0-1로 패하며 바짝 긴장했고 부천FC1995도 1-1로 비기며 발목을 잡혔다. 상대 팀 감독들 사이에서는 안산에 대한 원망 아닌 원망의 목소리가 높다. 악명(?)을 떨치고 있는 셈이다. 이 이야기를 전하니 이 감독은 무심하게 한 마디를 툭 던진다. "있는 놈들이 더 해."

이제 이 감독의 시선은 마지막 홈 경기를 향한다. 그 누구보다 팬을 향해 다가가고 있는 안산이기에 마지막 홈 경기는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다. "관중이 많이 올 것 같냐"는 질문에 이 감독은 짐짓 허세를 부린다. "많이 올 거야. 3만 명 정도 올걸?" 뒤에 있던 직원이 "큰일났다"며 한숨을 쉬자 "그럼 2만 명으로 하자"고 자비 아닌 자비를 베푼다. 사실 서울 이랜드와의 마지막 홈 경기는 '만 명 데이'다. 안산의 목표는 만 명이었다.

"선수들도 1년 동안 홈에서 나름 열심히 했다. 최선을 다했다"고 말한 이 감독은 "그래서 마지막이 굉장히 중요하다. 끝까지 팬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각오를 밝혔다. "관중 동원을 위해서는 감독님도 홍보 하셔야 한다"라고 지적하니 고개를 끄덕이며 "당연하지. 나도 이번주에 중앙역 나갈 거야"라고 맞장구를 친다. 그러더니 조심스레 귀띔한다. "아직 확정은 아니야. 구경 올 거면 미리 한 번 더 연락해."

말을 마친 이 감독은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는 손가락과 기자의 입을 번갈아서 쳐다본다. '너만 다하면 퇴근하니 빨리 끝내자'는 압박 아닌 압박이다. 기록을 마치고 이 감독에게 "수고하셨습니다"라고 인사를 하니 활짝 웃으며 "고생 많았다"라고 화답하며 기자회견장을 떠났다. 뒤에 있던 구단 직원이 "갑자기 감독님과 단 둘이 인터뷰를 해서 당황스러웠겠다"고 말을 건넨다. 하지만 괜찮다. K리그 챌린지에서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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