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맹의 징계, 팬들의 생각마저 빼앗는 K리그?


메시지를 던지는 전북 현대 서포터즈 ⓒ 프로축구연맹 제공

[스포츠니어스 | 홍인택 기자]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 13일 보도 자료를 통해 제18차 상벌위원회 결과를 발표했다. 상벌위원회를 통해 이동국에게 특정 제스쳐를 취한 수원삼성 매튜와 안산 그리너스 정현식, 대구FC에 징계가 내려졌다.

매튜에게 내려진 징계도 석연찮은 부분이 있지만 연맹이 대구에 내린 징계는 이해 범위를 벗어났다. 연맹은 이번 상벌위를 통해 대구에 1천만 원을 부과하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지난 9월 30일 대구스타디움에서 열린 인천과의 홈경기 때 심판과 다른 팀을 비방하는 현수막과 피켓 반입 및 게재를 제지하지 않은 것”이 징계 사유로 발표됐다.

이는 “대구로서는 억울한 일일 수 있다” 정도에서 끝낼 일이 아니다. 대구 팬뿐만 아니라 K리그 팬들의 목소리를 앗아간 것이나 다름없다. 대구 팬들은 그라운드에 난입하지도 않았고 폭력을 행사하지도 않았다. 그저 그들의 생각과 의견을 그라운드에 내비쳤을 뿐이다. 걸개는 서포터들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표현이다. 팬들의 생각을 벌금으로 잠재울 셈인가.

인천 걸개
인천 유나이티드 팬 ⓒ 스포츠니어스

팬들 목소리 잠재우는 연맹

해당 소식을 들은 K리그 팬들은 벌써 불안에 떨고 있다. “이제 걸개도 함부로 못 들겠다”라며 위축되고 있다. 이제 팬들은 불만을 가져도 목소리를 낼 수 없다. 최근 ‘블랙리스트’, ‘사찰’과 관련된 국정원 이슈가 연달아 터지고 있는데 이러다가 페이스북이나 댓글도 사찰하고 벌금을 물릴 기세다.

다른 스포츠 종목과는 달리 대한축구협회와 프로축구연맹은 팬들의 여론을 수용하는 단체라고 생각해왔다. 수영연맹, 빙상연맹에 비하면 축구협회와 연맹은 그래도 팬들의 목소리를 들어왔다. 정몽규 총재 시절 승부 조작으로 영구 제명된 일부 선수들에 대해 2013년 권오갑 총재가 부임하자마자 징계 수위를 경감, 복귀시키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팬들과 언론의 강한 반발에 한 차례 무산된 적도 있다.

그러나 이번 대구를 향한 징계는 팬들의 발언마저 묵살시키겠다는 의미로 들린다. 시대는 점점 권위주의를 탈피해가고 있는데 연맹은 거꾸로 가고 있다. 대구 팬들은 그들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최소한의 표현으로 비판 걸개를 걸었다. 아무리 공명정대한 판정이라도 억울한 사람은 생길 수밖에 없다. 심지어 범죄자도 변호사를 통해 자신의 입장을 변호할 수 있다. 범죄자는 자신의 범죄 사실에 대한 형량을 받는 것이지 자기 입장을 변호했다고 벌금을 내진 않는다.

상벌위는 K리그 정관과 규정을 기준으로 징계 수위를 결정하고 있다. 상벌위의 징계 수위가 고민을 거친 특정 문장을 기반으로 정해지는 것은 올바른 일이다. 또한 상벌위가 특히 신경 쓰는 수위 결정 기준은 ‘사례’에 기반한다. 심판 매수 사건으로 전북 현대에 승점 9점을 깎으며 연맹이 발표했던 입장은 “경남이 저지른 승부 조작 의뢰 정도와 비교해 봤을 때 그 죄질이 낮다”라는 것이었다. “승부 조작을 직접 의뢰한 경남도 10점을 깎았는데 돈만 건네준 전북에 그와 동일하거나 심한 징계를 줄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이제 걸개, 피켓의 반입을 허락한 구단과 불만의 메시지를 게시한 팬들을 상대로 징계를 내린 사례가 만들어졌다. 이제 팬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시각적인 메시지를 던질 방법과 수단이 없다. 이제 슈퍼매치나 동해안 더비에서도 라이벌을 향한 디스 걸개는 꿈도 꾸지 못하게 생겼다. 팬들은 불만이 있어도 그저 좋은 면만 바라보며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자신을 위로해야 한다.

징계 사유가 된 대구 팬들의 걸개 ⓒ 인천유나이티드FC의 모든 것

대구 팬들의 걸개는 명예훼손에 해당될까

생각의 표현이 문제가 될 수 있는 범위는 범법행위에 해당할 때다. 표현의 자유, 발언의 자유를 등에 업고 ‘헤이트 스피치’를 한다면 문제가 된다. 혐오를 기반으로 퍼지는 차별적 장치들마저 그대로 놔둘 순 없다.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 서포터즈가 걸었던 ‘JAPANESE ONLY’ 걸개나 일장기의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명예훼손을 일삼는 악플러들에게 법적 조치가 가해지는 경우도 제재 대상이다.

연맹이 문제 삼은 대구 팬들의 걸개 내용을 보자. “전북 광주전에 3경기 정지 먹은 박필준 심판을 다시 대구전에 배정한 조영증 심판위원장의 의도는 무엇인가?”라고 적혀있다. 연맹은 대구팬들의 주장을 명예훼손으로 규정하고 해당 징계를 내렸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상벌위의 징계 내용이 이해가 된다. 연맹과 심판 입장에서는 VAR을 보고 정당한 판정을 내린 심판들에겐 문제가 없다. 명예훼손죄에 해당하는 형법 제307조를 살펴보면 대구 팬들의 행동에는 문제의 소지가 있었다고 판단할 수 있다.

K리그 규정 제6장 <상벌규정> 별표 1 ‘유형별 징계기준’에 있는 2. 심판의 권위를 부정하는 행위 (3) ‘심판에 대한 협박이나 명예를 훼손하거나 모욕하는 언동’ 1항을 살펴보면 해당 사건이 발생할 경우 “클럽의 운영책임자 등 임원 및 직원의 행위”에 대해 클럽에 1천만 원 이상의 제재금이 부과된다. 팬들이 심판 관계자의 실명을 거론하며 비방하는 동안 클럽의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판단에 해당 징계를 내린 것으로 보인다. 대구 팬들의 걸개 내용에 심판에 대한 협박은 없다. 명예훼손이나 모욕에는 해당 될 여지가 있다. 명예훼손과 모욕의 기준은 우리나라 형법 제307조에 기반할 것이다.

한편 형법 제310조에 의하면 “제307조 제1항의 행위가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라고 적혀있다. 대구팬들이 ‘진실한 사실’을 바탕으로 “심판들이 정당한 판정을 내리기 원한다”라는 취지로 걸개를 걸었다면 ‘공공의 이익’에도 해당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박필준 심판의 ‘공식적인’ 정지 사실은 확인이 어려웠다. 컴퓨터 프로그램에 의해 무작위로 배정되는 심판 배정에 조영증 심판위원장이 직접 관여하는 듯한 뉘앙스의 문장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이는 ‘진실한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해당 걸개를 명예훼손으로 여겼다면 적어도 징계 사유에 대해 법적 해석이라도 담아내거나 자문받은 변호사라도 거론할 필요가 있었다. 연맹 상벌위가 발표한 내용은 “심판 및 타팀을 비방하는 현수막의 반입 및 개재를 제지하지 않은 것”이었다. 심판과 타팀 비방 걸개는 여태껏 다른 팀들도 많이 걸었다. 형법상 명예훼손에 해당하는 사유라면 자세하게 밝혀야 했다. 연맹이 발표한 내용만으로는 “이제 비방 걸개는 허용하지 않겠다”라는 소리로 들린다.

대구는 할만큼 했다 ⓒ 인천유나이티드FC의 모든 것

대구 팬들은 할 만큼 했다

그렇다고 해도 심판 판정 불만에 팬들이 대처하면 얼마나 할 수 있나. K리그를 안 보던 사람들이 징계 내용을 듣는다면 대구팬들이 축구회관 앞에서 물리적인 행동이라도 한 줄 오해할 수도 있다. 그들은 팬의 입장으로서 불만을 토로하고 싶었고 그 불만을 시각적 도구를 통해 표현했다. 걸개는 팬들의 집결된 목소리를 확인할 수 있는 소통의 도구다. 불만 없는 소통이 소통인가. 연맹이 발표한 징계 사유만 보면 연맹은 팬들의 유일한 ‘소통 도구’를 빼앗겠다는 것과 다름 없다.

직접적인 실명 거론과 확인되지 않은 사실 비난에 기분이 나빴다면 사실을 바로잡고 차라리 공식적인 ‘유감’을 표하는 편이 낫다. 권위를 이용해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빼앗는 행위는 이미 민주주의 사회의 틀을 벗어난 것이다. 독재정권과 다름없다. 팬들이 느끼는 불만을 문장으로조차 표현하지 못한다면 ‘탄압’이나 다름없다. 팬들은 폭력을 저지르지도 않았고 K리그 엠블럼에 불을 지르지도 않았다. 걸개 상에는 특정 심판을 해하겠다는 협박성 행위도 없었다. 연맹 상벌위는 팬들을 찍어 누를 것이 아니라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intaekd@sports-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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