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이준희 ⓒ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조성룡 기자] 정말 다사다난한 한 해였다. 그래도 경남FC 이준희의 마지막은 해피엔딩이었다.

경남에는 올 한 해 K리그 챌린지 득점 선두를 달리며 많은 관심을 받았던 말컹이 있다. 하지만 그만큼 뜨거운 존재감을 자랑했던 인물이 있다. 바로 이준희다. 부상 당한 주전 골키퍼 이범수 대신 7월 25일 아산과의 경기에서 올 시즌 처음 모습을 드러낸 그는 남은 기간 동안 경남의 골문을 든든하게 지키며 K리그 챌린지 우승에 일조했다.

하지만 불과 몇 개월의 시간 동안 이준희는 천당과 지옥을 수 차례 오갔다. 8월 19일 부천과의 원정 경기에서는 페널티킥을 막고 '호우 세레머니'를 홈 팀 관중들 앞에서 했다. 기쁨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지켜보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성난 홈 팬들은 경남의 버스를 가로막고 이준희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그에게는 당황스러운 경험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약 2개월 뒤 이준희는 다시 한 번 악몽과도 같은 경험을 했다. 10월 1일 안산과의 원정 경기였다. K리그 챌린지 우승을 위해 굉장히 중요한 경기였다. 하지만 경남은 안산을 상대로 득점을 기록하지 못하며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후반 추가시간 사건이 벌어지고 말았다. 안산 유연승의 평범한 크로스를 이준희가 잡으려고 하다 놓쳤다. 그 공은 뒤로 포물선을 그리며 경남의 골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 골이 바로 결승골이었다. 경남은 안산에 0-1로 패하며 고개를 숙였다.

경남은 올 시즌 내내 우승 레이스가 치열하게 진행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주전 골키퍼가 심적으로 흔들린다. 그렇다면 팀의 경기력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비록 이범수가 부상으로 빠진 상황이지만 김 감독의 입장에서는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김 감독은 뚝심 있게 이준희를 경기에 내보냈다. 그리고 그는 그 믿음에 부응하며 우승을 도왔다.

'버스 막기'부터 자책골까지…다이나믹했던 이준희의 2017 시즌

이준희는 지난 한 시즌을 돌아보며 "그냥 한 게 아무것도 없는데 이렇게 좋은 결과를 얻었다"면서 "그저 팀 동료들과 코칭 스태프들께 감사드릴 뿐이다"라고 씩 웃었다. 특히 골키퍼들을 향해 "(이)범수 형과 형록이 등에게 너무나 고맙다. 자신들이 뛰는 것도 아닌데 뒤에서 정말 많이 도와줬다. 특히 범수 형은 부상을 당해 자신이 힘들텐데도 힘내라고 응원을 많이 해줬다. 덕분에 여기까지 온 것 같다"라고 말했다.

어찌보면 팀 내 다른 골키퍼들은 동료이지만 경쟁자기도 하다. 주전 골키퍼는 단 한 자리다. 서로 라이벌 의식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경남의 골키퍼들은 오히려 끈끈하게 뭉쳤기에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었다는 것이 이준희의 설명이다. "누가 주전 골키퍼 장갑을 끼더라도 다른 선수들을 대신해 나간다고 생각한다. 내가 주전일 때는 항상 다른 골키퍼들과 함께 한다는 생각을 한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벤치의 팀 동료들이 함께였다 ⓒ 경남FC 제공

이준희는 올 시즌 정말 힘든 한 해를 보냈다. 올 시즌 계속해서 벤치를 지키다가 이범수의 부상으로 기회를 잡았다. 하지만 만족스러운 경기력을 보이지 못했다. "정말 마음 고생이 많았다. 진짜 골 먹기 싫었는데 자꾸 골을 먹었다. 팀에 도움도 되고 싶었다. 그런데 내 정신력이 워낙 약했다. 팀에 잘 녹아들지 못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부천에서의 '버스 막기' 사건과 안산전 자책골까지 겪었다. "부천전 때는 감독님이 든든하게 지켜준 것이 무척 고마웠다"고 말한 이준희는 안산전 이야기가 나오자 갑자기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그 경기 이후 인터넷에서 악플도 많이 봤다. 그런데 악플보다 경남이 나 때문에 우승하지 못할까봐 그게 더 무서웠다. 그야말로 나라를 잃는 기분이었다."

흔들렸던 이준희의 사이다, 김종부 감독

이렇게 흔들릴 수 있는 이준희를 단단하게 붙잡아준 사람은 바로 김종부 감독이다. '버스 막기' 사건 때는 앞장서서 이준희를 보호했고 안산전 자책골 이후에는 꾸준히 면담을 하며 그의 정신력을 다잡았다. "어차피 골문은 이준희가 지킨다"며 믿음을 보여준 것도 그였다. 덕분에 그는 부산과의 경기를 올 시즌 첫 무실점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올해 부진했다. 지난 시즌이었으면 막을 골을 올해는 막지 못하더라. 사실 돌아보면 부담감이 컸던 것 같다. 한창 잘해주던 범수 형 대신 골키퍼 장갑을 꼈다. 범수 형이 부상이니 대신 경기에 나선 것이다. 그만큼 잘하고 싶었다. 그런데 잘하지 못했다. 김 감독님이 '너무 잘하지 말라'고 하더라. 부담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이준희에게 김 감독은 '속을 후련하게 하는 존재'다. "김 감독님이 골키퍼에 대해 기술적으로 자세하게 가르쳐주고 그러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신기하다. 혼자서 마음 고생을 하며 끙끙 앓을 때가 있다. 아무에게도 말 못할 고민들이 있을 것이다. 감독님은 그걸 알아채서 먼저 얘기를 꺼낸다. 감독님께 실컷 얘기하면 속이 후련해진다. 경기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올 시즌 첫 출장인 아산전 이후 이준희는 꾸준히 실점을 기록했다. 하지만 김 감독은 그를 포기하지 않았고 이준희 역시 자기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다. 후보 골키퍼의 몫까지 해내고자 이를 악물었다. 매번 실점을 기록해도 버텼다. 그리고 결과는 달콤했다. 부산을 제쳤고 올 시즌 첫 무실점까지 기록했다. 힘든 한 해를 보내는 이준희에게 찾아온 최고의 선물이었다.

"견딜 수 있는 시련만 준 것 같아요"

이제 이준희는 K리그 클래식 무대를 바라본다. 내년 시즌 경남은 K리그 클래식에서 뛰게 될 확률이 상당히 높다. 그만큼 본인도 기대가 크다. 그는 클래식 무대에서 꼭 만나고 싶은 팀이 있다. 바로 포항 스틸러스다. "유소년 시절을 그곳에서 보냈고 우선 지명으로 성인팀에 합류했다. 하지만 부상으로 제대로 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채 경남으로 왔다. 내가 잘하고 있다는 것을 꼭 보여주고 싶다."

앞서 언급했듯이 그의 한 해는 다사다난했다. 마지막이 되서야 활짝 웃을 수 있었다. 그 때를 돌아보면 힘든 시간이었지만 다 지난 일이다. "고생도 많이 했지만 내 정신력이 약한 것도 있었다. 힘들 때는 혼자서 '왜 나한테만 이러나'하고 하늘을 원망한 적도 있었다"는 이준희는 "하지만 '이겨낼 수 있는 시련만 준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힘들었지만 다 이겨낼 수 있는 시련이었다"고 활짝 웃었다.

그는 서울 이랜드와의 경기에서 무승부 이상을 기록할 경우 염원했던 K리그 챌린지 우승컵을 들어올린다. "마지막까지 열심히 해야한다"고 말한 그지만 벌써부터 우승컵을 들어올릴 상상에 행복하다. 마지막으로 농담 삼아 "우승 세리머니는 준비했냐"고 물어보자 재치 있는 답변이 돌아왔다. "제가 저번에 했던 '호우 세리머니'가 걸개로 만들어졌던데요? 앞으로는 계속 그걸 해야할 것 같아요. 우승할 때도 '호우 세리머니' 할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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