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진호 감독 페이스북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부산아이파크를 이끌던 故조진호 감독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故조진호 감독은 어제(10일) 급성 심장마비로 병원에 후송됐지만 결국 일어나지 못하고 안타깝게 세상과 작별했다. 충격적이고 안타까운 소식이다. 불과 이틀 전까지만 해도 경남FC를 추격하며 K리그 챌린지 우승을 노렸던 故조진호 감독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은 축구계 전체를 슬픔에 빠트렸다. 무엇보다도 고인과 함께 했던 제자들의 충격도 크다. 故조진호 감독과 함께 울고 웃으며 땀 흘렸던 이들은 하나 같이 고인과의 행복했던 기억을 잊지 못한다. 故조진호 감독과 아름다웠던 추억을 간직한 선수들에게 특별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 칼럼이 밝고 유쾌했던 고인의 생전 모습을 많은 이들에게 전할 수 있었으면 한다.

부대장과 협상해 특별 외박 주던 감독

故조진호 감독은 누구보다도 유쾌했던 사람이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선수들을 먼저 챙겼다. 2016년 상무상무에 부임한 그는 국군체육부대장을 상대로 화끈한 제안을 여러 번 했다. 부대장은 상무를 진두지휘하는 위치에 있어 그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지만 故조진호 감독은 달랐다. “우리 선수들 이번에 이기면 특별 외박 좀 주이소.” 군인 신분인 선수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혜택은 군대를 벗어나는 것이었다. 故조진호 감독은 어려울 수도 있는 부대장에게 늘 이렇게 부탁했다. 동기부여가 약한 상주상무 선수들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당근이라 이런 혜택이 성적과도 직결된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그는 경기를 앞두고 선수들에게 늘 이렇게 말했다. “내가 부대장님한테 잘 말해 놓았으니 이번 경기만 잘하자. 알겠제?”

상주상무 시절 故조진호 감독과 함께 했던 신영준(강원FC)은 故조진호 감독의 유쾌했던 특별 외박 통보 방식을 떠올렸다. “한 번은 경기가 끝난 뒤 선수단 버스에 다 올라탔는데 감독님께서 휴대폰을 꺼내더니 한 선수한테 ‘야, 이거 좀 읽어봐’라고 하셨어요. 부대장님과의 ‘카톡’ 내용이었죠. ‘오늘 승리에 대한 보상으로 선수들 특별 외박을 허락한다’는 내용이었는데 이걸 한 선수가 읽은 뒤 다 같이 환호했죠. 그랬더니 감독님께서 ‘내가 부대장님께 말했더니 포상 나가라고 하시네’라며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으셨어요. 그냥 감독님께서 경기가 끝난 뒤 선수들에게 ‘부대장님 허락 받았으니 특별 외박 나가라’고 말씀해주셔도 되는데 깜짝 이벤트를 한 거죠. 원래 유쾌하고 장난도 잘 치시는 분이었어요.” 신영준은 당시를 떠올리면서 그때의 즐거웠던 기억 때문에 웃었다.

대전시티즌 시절 함께 했던 김찬희도 유쾌했던 故조진호 감독을 기억하고 있었다. 김찬희는 2014년 대전이 파죽지세로 K리그 챌린지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승격하는데 기여한 주축 선수였다. 여전히 故조진호 감독의 장난스러웠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김찬희는 故조진호 감독이 무릎을 꿇고 두 팔을 들어 올리며 기뻐하는 모습의 비밀을 공개했다. “AT마드리드 시메오네 감독을 무척 좋아하셨어요. 자켓을 벗으면서 벤치를 박차고 나가는 모습이나 무릎 꿇고 세리머니 하는 모습도 시메오네 감독을 따라했던 거죠. 경기장에서 보여주는 제스처 하나도 다 시메오네 감독을 연구하는 모습을 보고 되게 특이한 감독님이라고 생각했어요. 훈련 때도 늘 웃으면서 같이 땀 흘리는 모습 때문에 선수들이 어려워하지 않고 다가갈 수 있었죠.”

조진호 감독이 상주상무 시절 제자인 신진호를 꼭 안아주고 있는 모습. ⓒ프로축구연맹

영상 분석하다 갑자기 그가 등장한 이유는?

상주상무에서 故조진호 감독을 경험한 뒤 올 시즌 부산아이파크에서 다시 그와 만난 임상협도 故조진호 감독과 추억이 많다. 그는 얼마 전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다. 지난 8일 경남FC와 K리그 챌린지 우승을 놓고 벌인 마지막 승부 전날의 유쾌했던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부산은 이 경기에서 승리하면 경남을 상대로 막판 뒤집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지만 패하면 사실상 우승과 다이렉트 승격을 경남에 내줘야 하는 중요한 상황이었다. 지난 7일 부산은 경남전을 하루 앞두고 구단 고위층이 직접 선수단을 모아 한 시간 가량 “꼭 이겨야 한다”면서 전의를 다지기도 했다. 선수단도 모두 경남과의 경기를 앞두고 잔뜩 긴장한 모습이었다. 막판까지 경남을 무섭게 추격했던 부산이 전세를 뒤집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기 때문이다.

경기 하루 전 故조진호 감독이 선수들을 불러 모아 경남의 경기 영상을 틀어 놓고 분석을 시작했다. 으레 있는 비디오 미팅이었다. 선수들도 긴장된 모습으로 故조진호 감독과 안세형 전력분석관이 준비한 경남의 플레이 영상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영상 분석이 끝날 때쯤 엉뚱한 영상이 흘러나왔다. 故조진호 감독이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펀치’ 게임을 하는 영상이었다. 故조진호 감독이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동전을 넣고 진지하게 ‘펀치’ 게임 하는 모습이 영상을 통해 흘러나오자 경남전을 준비하며 긴장했던 선수들 사이에서 폭소가 터져 나왔다. 영상 속에는 서울이랜드 유소년 팀에서 축구선수의 꿈을 키우고 있는 중학교 1학년생 故조진호 감독의 아들 모습도 보였다. 가족이 찍어준 듯한 영상이었다.

알고 봤더니 故조진호 감독이 긴장한 선수들을 풀어주기 위해 일부러 안세형 전력분석관에게 지시해 편집까지 한 영상이었다. 점잖은 척 해도 될 K리그 명장이 펀치 기계 앞에서 익살스럽게 주먹을 날리는 모습에 긴장됐던 분위기가 풀렸다. 임상협은 지금도 이 장면이 계속 떠오른다고 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 지나는 사람들도 많은데 감독님이 혼자 1분 동안 펀치 기계 앞에서 계속 그러고 계신 모습이 너무 웃겼어요. 긴장한 선수들이 비디오 분석 마지막에 이 장면을 보고는 긴장을 많이 풀 수 있었어요. 늘 의외의 행동을 많이 하는 분이셨죠.” 故조진호 감독은 이렇게 권위 의식을 버리고 선수들과 형, 동생처럼 지내길 원했다. 그게 故조진호 감독이 선수들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는 이유였다.

조진호 감독이 상주상무 시절 제자인 신진호를 꼭 안아주고 있는 모습. ⓒ프로축구연맹

제자와 한 시간씩 전화로 수다 떠는 지도자

신영준도 선수들이 긴장하지 않도록 먼저 장난을 걸었던 故조진호 감독에 대해 기억하고 있었다. “상주에 있는 선수들은 다 원소속팀이 있잖아요. 그런데 경기 전날이면 원소속팀 선수들에게 장난을 자주 쳤어요. ‘그 팀에서 오늘 누구 나온다 하대? 그것도 안 물어봤나? 퍼뜩 물어보고 오래이. 좀 알아봐라.’ 원소속팀하고 경기를 하면 유독 긴장을 많이 하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감독님이 이렇게 먼저 긴장을 풀어주셨어요.” 대전 시절 함께 했던 서명원도 조진호 감독과의 추억이 많다. “감독님 말투를 따라하는 게 선수들 사이에서 유행이 되기도 했어요. 훈련을 할 때면 ‘아이다. 아이다’ 이런 말씀을 자주하셨는데 감독님 앞에서 선수들이 장난치면서 감독님 흉내도 많이 냈죠.” 故조진호 감독은 허물없이 어린 선수들이 먼저 장난을 걸 정도로 편한 지도자였다.

하지만 故조진호 감독이 늘 장난만 치는 가벼운 지도자는 아니었다. 훈련에 집중할 때면 누구보다도 카리스마 넘치게 선수들을 이끌었다. 신영준은 상주 시절 기억이 또렷했다. “이전 경기에서 만족스러운 플레이를 못하면 선수들이 위축될 수 있잖아요. 그러면 따로 면담을 하거나 아예 따로 훈련시키면서 그 선수가 가진 장점을 계속 이야기 해주시고 장점을 더 살릴 수 있도록 해주셨어요.” 대전에서 故조진호 감독과 함께 한 서명원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평소에는 한마디로 표현하면 동네 삼촌처럼 스스럼없이 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분이셨습니다. 원래 선수들이 감독님께 먼저 다가가기 쉽지 않은데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 주셨어요. 하지만 운동장에 가면 단호하고 카리스마 있는 모습으로 변해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셨어요.”

그는 늘 선수들과 소통하길 원했다. 선수들에게 먼저 전화를 하거나 메시지를 보내 대화를 시도했다. 서명원은 외박을 나와서도 故조진호 감독과 무려 한 시간 동안이나 전화 통화를 한 적도 있다. 하루 뿐인 휴식 시간이었고 친구와 함께 이 외박을 즐기려고 했지만 이 시간마저도 故조진호 감독과의 대화에 할애했다. “전날 경기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사는 이야기도 했어요. 외박을 받은 날 감독님과 한 시간 동안 통화를 했는데도 시간 가는 게 아깝지 않았죠. 감독님도 쉬셔야 하는데 똑같은 휴식 시간 동안 저에게 그 시간을 할애하는 거잖아요.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 컸어요. ‘아 이렇게 일부러라도 더 많이 선수들과 소통하고 싶어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외박이라고 저와 놀던 친구들은 제가 전화기만 붙잡고 있는 게 싫었을 수도 있지만 저는 이렇게 저에게 신경써주시는 게 너무 감사했습니다.”

조진호 감독이 상주상무 시절 제자인 신진호를 꼭 안아주고 있는 모습. ⓒ프로축구연맹

“뒤끝 없고 순수했던 선생님”

상주에서 故조진호 감독과 함께 했던 김도엽(제주유나이티드)도 숨겨왔던 이야기를 공개했다. 이제는 시간이 지났으니, 그리고 고인이 얼마나 따뜻했던 지도자였는지 알리기 위해 부끄러울 수도 있는 사연을 소개했다. 2016년 병장이던 김도엽은 제대를 앞두고 홈에서 치른 마지막 경기에서 제외됐다. 이 경기가 병장들의 홈 고별전이어서 나름대로 준비도 했다고 생각했던 터라 명단 제외에 기분이 상해 있었다. 그런데 다른 병장들은 이후 경기에 나가지 않기로 했는데 故조진호 감독은 제대 일주일 전 광주와의 원정경기에 김도엽을 선발 출장시키기로 결정했고 그에게 이 사실을 통보했다. 동기들의 고별전에서 빠져 마음이 상했던 김도엽은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하고 싶었던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참지 못하고 故조진호 감독에게 대들었다.

“곧 제대하는데 이 경기에 나가 다치면 저만 손해인 것 같습니다. 남은 일주일 운동만 하고 가고 싶습니다.” 김도엽과 故조진호 감독의 의견이 정면 충돌했다. 하지만 김도엽은 이후 故조진호 감독의 방에 직접 찾아가 사과했다. “같은 말이라도 더 부드럽게 할 수 있었는데 저도 모르게 감독님께 세게 말했어요. 그래도 감독님께서도 저를 생각해서 기회를 한 번이라도 더 주신 건데 감독님을 찾아가 ‘죄송하다’고 사과드렸죠.” 그러자 故조진호 감독이 김도엽에게 이런 말을 건넸다. “나도 선수 입장은 충분히 이해해. 그런데 너하고 나는 다같은 축구인인데 네가 제대하고 나서도 또 경기장에서 마주칠 거야. 그때 웃으면서 볼 수 있게 지금 잘 풀자.” 김도엽은 이렇게 故조진호 감독에게 사과한 뒤 제대했고 한 동안은 그와 마주할 일이 없었다.

“감독님께 사과드리고 나왔지만 늘 마음 한 편이 불편했던 건 사실이에요.” 경남에 복귀한 김도엽은 찝찝한 마음을 안고 있다가 올 시즌 부산 사령탑에 오른 故조진호 감독을 경기장에서 마주했다. 경남과 부산의 맞대결이 끝난 뒤 故조진호 감독에게 인사를 하러 갈 때도 한 편으로는 불편한 마음이 컸다. 그런데 김도엽을 마주한 故조진호 감독은 대단히 반갑게 그를 안아줬다. “작별할 때 감독님께 대든게 있어 인사하러 갈 때도 어색했는데 감독님이 웃으면서 맞아주시니 그런 마음이 모두 사라졌어요. 정말 뒤끝 없고 순수하신 선생님이라는 걸 느꼈죠.” 그는 대구 출신이고 경상도 사투리 억양이 강했지만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가 아니었다. 상주 시절 부대 숙소에는 방마다 군대식 전화기가 있었는데 경기 전날이면 오랜 만에 다음 날 선발로 출장하는 선수에게는 일일이 이 군대식 전화기로 전화를 걸어 선수들을 응원하기도 했다.

조진호 감독이 상주상무 시절 제자인 신진호를 꼭 안아주고 있는 모습. ⓒ프로축구연맹

그가 보낸 감동의 ‘단톡’ 메시지

청소년 대표팀과 성인 대표팀까지 거치며 엘리트 코스를 밟아오다 상주상무에 입대해 故조진호 감독을 만난 조영철(울산현대)도 늘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고 있다. 프로 무대 데뷔 이후 무려 8년 동안 일본에서 생활한 뒤 카타르를 거쳐 상주에 온 그는 K리그 적응이 쉽지 않았다. 그런데 이때 적응에 도움을 준 게 바로 故조진호 감독이었다. “개인적으로 불러서 따로 운동도 많이 시켜주셨어요. 공격수 출신이라 조언도 많이 해주셨고 항상 부대와 선수들 사이에서는 선수들 편에서 싸워주셨습니다. 선수들이 감독님을 많이 따르고 좋아했던 건 다 이유가 있죠. 감독님이 1년 만에 상주를 떠나셨는데 그 이후에도 제가 골을 넣으면 축하한다고 연락도 먼저 해주실 정도로 자상하셨어요.”

그는 누구보다도 따뜻하고 자상한 남자였다. 지난 9월 상주에서 전역한 선수들은 故조진호 감독의 세심한 격려에 감동하기도 했다. 지난 시즌이 끝난 뒤 상주 사령탑에서 물러난 故조진호 감독은 더 이상 상주와 연관이 없었다. 이미 12월에 상주에서 물러난 뒤 부산 지휘봉을 잡았으니 부산 선수들 지도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상주 선수들과 작별한지 9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그가 여러 선수들을 ‘단톡방’에 초대해 메시지를 보냈다. “제대 축하한다. 1년 정도 함께한 추억들 즐거웠다. 소속팀 가서 승승장구하기를 바란다.” 1년의 짧은 시간을 함께한 뒤 팀을 떠났지만 헤어지고 9개월 뒤 제대하는 선수들을 초대해 축하 메시지를 잊지 않은 것이다. 故조진호 감독은 선수 한 명 한 명에게 개인적으로도 축하와 조언의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신영준은 이 일에 잊을 수 없다. “1년만 같이하고 나가셨는데 9개월이 지난 뒤에도 잊지 않고 챙겨주시는 모습이 너무 고마웠어요. 함께 찍었던 사진들도 다 ‘카톡’으로 보내주셨어요. 일반적인 감독님과는 많이 달렸죠.” 그는 늘 헤어지고도 그리움을 남기는 지도자였다. 대전 시절 유독 故조진호 감독과 가깝게 지냈던 김찬희도 마찬가지였다. 올 시즌 대전 유니폼을 입고 부산 원정 경기에 나선 김찬희는 경기가 끝나자마자 부산 벤치로 가 故조진호 감독에게 인사를 전하려 했다. 그런데 김찬희는 지금도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감독님과 딱 눈이 마주치는 순간 서로가 뭉클한 게 보일 정도였어요. 한참을 껴안고 어깨동무를 하면서 이야기했죠. ‘감독님하고 다시 해보고 싶어요’라고 했더니 ‘좀만 참고 더 하면 언젠간 같이 또 할 날이 올 거야’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조진호 감독이 상주상무 시절 제자인 신진호를 꼭 안아주고 있는 모습. ⓒ프로축구연맹

선글라스 뒤의 눈물, 그리고 엄청난 스트레스

故조진호 감독의 인품이 얼마나 훌륭했는지는 작별의 순간 선수들의 반응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대전 시절 K리그 챌린지 우승과 승격이라는 찬란한 역사를 세웠던 故조진호 감독은 2015년 시즌 중간에 K리그 클래식에서 성적 부진으로 사퇴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전 선수들과 작별 인사를 하던 순간의 슬픔은 지금도 선수들이 또렷히 기억하고 있다. 故조진호 감독은 이날 평소에 잘 쓰지도 않던 선글라스를 끼고 등장해 웃었다. 하지만 선수들에게는 이 미소가 더 슬프게 다가왔다. 그 순간을 기억한 서명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더 그렇다. “감독님 입은 웃고 있었는데 선글라스 밑으로 눈물이 주르륵 흘렀어요. 일부러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선글라스를 끼고 나오신 거죠. 선수들도 ‘안 가셨으면 좋겠다’면서 울었죠. 아직도 그때 감독님의 눈물이 잊혀지지가 않아요.”

故조진호 감독을 따르는 선수들은 대단히 많았다. 임상협은 올 시즌을 앞두고 여러 구단에서 솔깃한 이적 제안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부산을 떠나지 않았다. 이유는 故조진호 감독이 부산에 왔기 때문이다. 상주 시절 故조진호 감독과 함께 했던 임상협은 올 시즌 그가 부산 사령탑에 부임하자 솔깃한 이적 제안도 미뤘다. “상주 시절에도 저를 많이 믿어주셨어요. 아마 다른 감독님이 오셨더라면 저도 이적을 할 수 있는 좋은 제안을 놓치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그런데 감독님이 저와 올 시즌에도 함께 하고 싶어 하셨고 저도 감독님과 한 번 더 해보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팀에 남게 됐어요.” 마찬가지로 상주 시절 故조진호 감독에게 반한 박준태는 다른 건 아무 것도 따지지 않고 부산행을 택한 이유로 故조진호 감독을 꼽았다. “저는 부산에 아는 선수 한 명 없었지만 오로지 감독님만 보고 부산에 오기로 결심했습니다.”

조영철도 故조진호 감독의 축구 철학을 굉장히 좋아하면서도 한편으론 걱정을 많이 했다. “즐겁게 생활하시면서도 경기를 준비할 땐 굉장히 진지하신 분이었어요. 열정적이고 항상 목표를 높게 잡아 놓고 그걸 끝까지 이루려고 노력하시는 스타일이죠. 목표치가 워낙 높았고 항상 간절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옆에서 보면 그 열정 때문에 더 스트레스를 받고 계신 것 같아 안타까울 때도 있었어요. 결과를 이뤄내면 좋지만 과정에서 굉장히 힘들 때도 많았거든요. 2016년 시즌 초반에 상주에서 잘 풀리지 않을 때는 감독님께 스트레스성 탈모도 생길 정도였어요. 치료도 받고 나중에 성적이 나와 탈모도 치료가 됐지만 겉으로는 굉장히 유쾌해 보여도 혼자 스트레스를 다 안고 가는 건 걱정이 됐어요. 감독님께서 스트레스성 탈모로 고생하시는 모습을 보고는 ‘아 정말 목표를 위해 열정을 다 쏟아 붓는 분이구나’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조진호 감독이 상주상무 시절 제자인 신진호를 꼭 안아주고 있는 모습. ⓒ프로축구연맹

“오전에 모였더라면…” 제자들의 후회

하지만 이렇게 제자들과 늘 유쾌하게 같은 꿈을 꾸던 故조진호 감독은 어제(10일) 갑작스럽게도 세상을 떴다. 산책을 하기 위해 부산광역시 북구 화명동 아파트를 나선 故조진호 감독이 쓰러져 있는 걸 주민이 발견해 119 구급대에 신고했고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오전 11시 38분경 결국 세상과 작별하고 말았다. 사인은 심장마비였다. 그런데 더 안타까운 사실은 이날 선수단 소집이 오전으로 예정돼 있었지만 故조진호 감독이 오후로 미뤘다는 점이다. 故조진호 감독은 선수단에게 “12시까지 클럽하우스로 모이라”고 소집 시간 변경을 지시했다. 소집 시간이 됐을 무렵 믿기지 않는 故조진호 감독의 사망 소식을 접한 선수단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 불과 하루 전까지만 하더라도 웃으며 먼저 장난을 걸던 故조진호 감독이 이렇게 떠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선수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다가 소집 시간을 원망했다. “감독님이 일정을 바꾸지 않아 오전에 모였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부산 선수들뿐 아니라 故조진호 감독과 함께 했던 옛 제자들은 물론 모든 K리그 구성원에게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대전에서 이 소식을 접한 김찬희는 30분 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무언가로 뒷통수를 세게 맞은 느낌이었다. “지난 달에도 연락을 했는데 이런 일이 벌어졌다니 믿어지지 않아요. 대전에 있을 때 늘 뒤에 있는 선수들을 많이 챙기는 감독님이셨어요. 제가 뒤에 있던 선수였기 때문에 잘 알아요. 경기에 나가지 못하는 선수들에게 ‘같이 잘 해보자’고 어깨를 두드려주시는 분이셨거든요. 감독님 덕분에 자신감도 찾고 경기에도 나가고 그랬어요. 너무 슬픈 날이네요.” 이제는 강원 소속인 신영준은 상주 동기들이 모인 ‘단톡방’에서 이 소식을 처음 접하고는 동기들과 믿을 수 없다며 슬픔에 빠졌다. ‘단톡방’에서 “제대 축하한다”던 故조진호 감독의 사망 소식을 ‘단톡방’에서 접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사망 소식을 접하고 오후 훈련에 들어간 서명원은 훈련 시간 내내 故조진호 감독이 떠올라 훈련에 집중하지 못했다. “故조진호 감독님은 저의 프로 무대 첫 스승님이셨습니다. 아직 어린 나이지만 제가 은퇴할 때까지 항상 故조진호 감독님을 가슴 속으로 첫 감독님이라 생각하고 있겠습니다.” 이제는 제주로 이적한 김도엽은 오전 훈련이 끝난 뒤 점심을 먹다가 故조진호 감독의 사망소식에 망연자실했다. “상주에서 그렇게 작별했던 게 여전히 마음에 걸려요. 더 웃으며 헤어질 수 있었는데 죄송한 마음이 크네요.” 울산 소속 조영철도 큰 충격을 받았고 故조진호 감독과는 인연이 없는 울산 동료들도 한 동안 이 이야기로 안타까워했다. K리그를 사랑하는 많은 팬들에게도 이는 충격적인 소식이었지만 故조진호 감독과 함께 했던 이들의 충격은 몇 배나 더 컸다.

조진호 감독이 상주상무 시절 제자인 신진호를 꼭 안아주고 있는 모습. ⓒ프로축구연맹

늘 유쾌하고 긍정적이었던 故조진호 감독

현재 부산 소속으로 불과 하루 전까지만 해도 함께 땀 흘리며 플레이오프를 통해 K리그 클래식에 꼭 올라가자는 약속을 했던 임상협도 이 소식을 믿을 수 없다. “감독님께서 사진 찍는 걸 굉장히 좋아하셨어요. 같이 산책을 하러 가면 ‘사진 찍자’고 하시고 원정경기를 가도 늘 ‘야 나 모여봐라. 우리 같이 사진 찍자’고 하셨죠. 경기가 끝나면 라커에서도 늘 단체 사진을 찍으셨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뭔가 많이 남기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임상협이 건넨 사진마다 故조진호 감독은 제자들과 밝게 웃고 있었다. 그래서 더 이 이별이 슬프다. 뭐가 그렇게 급했는지 故조진호 감독은 이리도 좋아하고 따르는 이들이 많았는데 작별인사도 없이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남은 제자들은 고인과의 아름다웠던 추억을 되새기며 슬픔에 빠져 있다. 빈소를 찾은 박준태는 오열해 주변을 더 안타깝게 했다.

부랴부랴 어제(10일) 저녁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부산에 다녀왔다. 선수 시절부터 유독 고인과 친했던 최용수 감독을 비롯해 많은 축구인들이 빈소가 마련된 첫 날부터 밤을 지내며 고인의 곁을 지켰다. 조화가 세 줄로 빼곡히 늘어섰지만 아직 반에 반도 안 왔단다. K리그 각 구단은 물론 국가대표 선수들, 축구계 인사들, 다른 팀 서포터스 단체에서도 조화를 보내 고인의 죽음을 애도했다. 한참을 바라보고 있으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감독님 축구 인생 헛살지는 않으셨네….’ 늘 유쾌하고 진지하게 축구와 제자들을 대하던 故조진호 감독이 이제는 좋은 곳으로 가 편히 쉬셨으면 한다. 슬픔의 크기가 이토록 큰 건 그만큼 고인이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와 이 세상에서 마주할 수 있었음에 감사드린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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