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호 추모①] 형님이자 스승, 전술가였던 K리그의 명장


ⓒ 프로축구연맹 제공

[스포츠니어스 | 홍인택 기자] 부산 아이파크 조진호 감독이 급성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속보로 접한 소식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충격적이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특유의 유쾌함으로 주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었던 감독이었다. 이제 다시 그를 마주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아직도 실감 나지 않는다.

조진호 감독은 지도자로서 큰 발자국을 남겼다. 남들이 다 “안 된다”는 팀을 맡아 “된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조진호 축구는 보는 재미가 있었다. 경기 내용과 결과를 가져오는 전술가였으며 선수단을 응집시키는 매니저였다. 팬들을 비롯한 미디어와의 스킨십에도 능했다. 고인은 그렇게 ‘조진호’라는 브랜드를 만들어냈다.

지도자의 시작

그는 2003년 선수 생활을 은퇴하고 부천 SK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2009년에는 제주 유나이티드 감독이었던 알툴 감독의 사퇴로 감독 대행의 위치에서 3경기 1무 2패라는 성적을 거뒀다. 다소 초라한 시작이었다. 그는 이 경험으로 “감독이 쉽지 않구나”라는 것을 느꼈다. 이후 2010시즌부터는 박경훈 감독에게 지휘봉을 넘겨주며 다시 코치로 복귀했다가 2011년 정해성 감독의 요청으로 전남으로 향했다.

2011년 정해성 감독과 조진호 코치가 이끌었던 전남은 11승 10무 9패라는 호성적으로 7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조진호 감독은 전남 코치 시절 정해성 감독을 보좌하며 많은 것을 흡수했다. 평소에는 빠른 눈치로 정해성 감독의 의중을 꿰뚫고 미리미리 준비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저녁 시간이 되면 매일 정해성 감독을 괴롭혔다. 축구에 관해 모르는 게 생기면 질문 공세를 펼쳤다.

제주와 전남에서 인연을 맺었던 정해성 감독은 고인의 부고 소식을 듣고 큰 슬픔에 잠겼다고 한다. 정해성 감독은 조진호 감독에 대해 “축구에 대한 열정이 컸다. 매일 저녁 숙소에서 궁금한 점을 질문했다. 정말 좋은 지도자가 되겠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한국 축구를 위해 크게 쓰일 젊은 재목을 잃었다”며 애통한 심정을 밝혔다.

정해성 감독이 2012년을 끝으로 전남 감독에서 물러나자 조진호 코치는 대전으로 향했다. 대전에서는 김인완 감독을 보좌하는 수석코치로 부임했다. 2013 시즌은 K리그가 승강제 2년 차를 맞이하는 해였다. 그리고 최초로 스플릿 라운드를 치르는 해였다. 안타깝게도 김인완 감독이 이끌었던 대전은 최하위를 기록하며 부진에 빠져있었다.

조진호 감독은 대전에서 정식 감독 생활을 시작했다 ⓒ 대전 시티즌 제공

기록 제조기, 대전과 상주에서

김인완 감독이 건강 문제로 대전에서 물러난 10월, 조진호 코치는 다시 감독 대행으로서 대전의 지휘봉을 잡았다. 10월 9일 경남을 상대로 치른 첫 경기는 0-1로 패배했다. 대전이라는 팀의 침체, 경험이 부족한 젊은 감독 대행이 이끄는 대전은 거기까지인 줄로만 알았다. 이미 강등은 유력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10월 20일 제주에서 1-0 승리를 거두더니 11월 30일 시즌 마지막 경기인 전남전까지 6경기를 5승 1무로 마무리하는 저력을 발휘했다. 비록 대전의 강등을 막을 수는 없었지만 이때부터 대전팬들 사이에서 조진호는 갓진호로 불리기 시작했다.

조진호 감독과 대전은 K리그 챌린지에서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먹는다. 대전은 축구 특별시라는 자존심이 있는 팀이었다. 동계훈련을 마친 대전은 수원FC와의 개막전에서 1-4로 완패를 당했다. 이때만 해도 대전과 조진호 감독 대행은 그저 그런 팀이 될 줄로만 알았다. K리그 클래식 하위 스플릿에서 거둔 막판 5승 1무의 성적은 다른 팀들의 동기부여가 약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솔솔 피어났다.

그러나 조진호 감독은 대전 역사에 길이 남을 시즌을 치러낸다. 다음 경기였던 고양 Hi FC전에서 4-1 대승을 거두더니 14경기 연속으로 무패 행진을 달렸다. 무승부만 많은 무패행진도 아니었다. 14경기 동안 무승부는 단 두 차례에 불과했다. 그는 대전의 연속 무패 기록을 갈아치웠으며 대전을 K리그 챌린지의 1강으로 우뚝 세웠다. 시즌이 반도 안 지났는데 벌써 우승과 승격이 유력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열심히 무패 행진 기록을 세우던 조진호 감독은 이 과정에서 대행 꼬리표를 떼고 감독으로 정식 승격했다. 5월 8일 정식 감독으로 부임한 그는 3일 뒤 열린 안산 경찰청전에서 2-0 승리를 거두며 성공적인 정식 감독 데뷔전을 치렀다. 놀라운 성과를 거둔 그는 5월 이달의 감독에 선정됐으며 대전의 K리그 클래식 승격을 마침내 이뤄내고 K리그 챌린지 최우수 감독에 선정됐다. 또 그는 대전 구단 역사 최초로 20승 이상을 거둔 감독이 됐다. 대전이 K리그 클래식으로 승격할 당시 2위와의 승점 차이는 11점이나 됐다.

대전을 이끈 조진호 감독은 2014년 역사적인 시즌을 치른 뒤 2015년 K리그 클래식 무대에 도전장을 던졌다. 그러나 K리그 클래식 무대는 녹록지 않았다. 게다가 조진호 감독을 전폭적으로 지원했던 김세환 사장이 물러나고 전득배 사장이 새로 부임하며 축구 외적인 환경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5월 21일 자진 사퇴로 대전 지휘봉을 내려놓았고 2016년 상주 상무 감독으로 부임했다.

조진호 감독의 환호
이런 감독을 또 만날 수 있을까 ⓒ 조진호 감독 페이스북

상주 지휘봉을 잡은 조진호 감독은 전방에서 적극적인 압박 수비를 주문했다. 그는 상주를 이끌며 탄탄한 수비진을 구축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6월 15일에는 친정 제주를 4-0으로 잡더니 서울, 성남, 포항을 연달아 잡고 7경기에서 6승 1패를 거두며 K리그 클래식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스플릿 라운드에 돌입하기 직전 상주는 전남, 포항, 성남, 광주와 함께 치열한 스플릿 경쟁을 치렀다. 상주를 포함한 5개 팀이 승점 3점 사이를 오갔다. 5위부터 9위까지 치열한 경쟁을 다투는 상황에서 상위 스플릿에 들어갈 수 있는 팀은 단 두 팀이었다. 상주는 9월 18일 인천전에서 무승부를 거두고 이어지는 전남, 제주전에서 패배하며 힘든 일정을 이어갔다. 정규리그 마지막 라운드는 전북이었다.

상주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지지 않아야 했다. 같은 시각 전남, 포항, 성남, 광주의 경기도 동시에 열렸다. 홈에서 전북을 상대한 상주는 전반 21분 김성주의 도움으로 윤동민이 득점하면서 상위 스플릿행에 녹색불이 켜지는 듯했다. 그러나 10분 뒤 김신욱이 골을 터뜨리며 녹색불이 노란불이 됐다. 다른 경기장에서 골이 터질 때마다 실시간으로 순위가 요동쳤다.

상주는 끝까지 버텼다. 전북을 상대로 1-1 무승부를 거두며 승점 1점을 챙겼다. 동시에 다른 경기도 끝났다. 결과는 6위. 상위 스플릿이었다. 상주 상무는 창단 최초, 승격팀 최초, 군경팀 최초로 상위 스플릿에 진출하며 K리그 클래식에서 잔류를 확정 지었다. 대전에 이어 상주에 의미 있는 기록을 선물한 것이다. 조진호 감독은 상주 라커룸에서 선수들과 함께 특유의 양팔을 벌린 세리머니로 K리그 클래식 잔류를 기뻐했다.

조진호는 감독 생활을 하며 훌륭한 선수들을 배출했다. ⓒ 프로축구연맹 제공

전술가이며 스승이었던 조진호

조진호 감독의 축구는 재밌었다. 팀의 스피드가 매우 빨랐다. 대전이 그랬고 상주가 그랬으며 부산도 그랬다. 조진호 감독은 퍼스트 터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단순히 공을 차기 좋은 위치로 가져다 놓는 것이 아닌, 공격 방향으로의 터치를 강조했다. 조진호 감독이 강조한 퍼스트 터치가 팀의 속도를 살리는 결과를 낳았다.

조진호 감독은 대전의 우승을 위해 선수들에게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것을 강조했다. 제한된 선수단으로 최적의 포지션을 운영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다재다능한 선수들에게 기회를 줬다. 선수들이 한 포지션에서만 제한되지 않고 여러 포지션을 소화하길 원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기량과 평가가 향상된 선수들도 있었다. 그는 전술가이면서 선수들을 키워낸 훌륭한 지도자였다.

조진호 감독을 거쳐 간 가장 유명한 선수는 누가 뭐래도 아드리아노다. 아드리아노는 K리그 챌린지에서 무시무시한 득점력을 선보이며 대전을 K리그 챌린지 우승으로 이끈 일등 공신이다. 골을 넣을 수 있는 동물적인 감각과 본능이 무시무시한 선수였다. 단, 아드리아노는 감독이 컨트롤하기 어려운 선수였다. 개성이 강해 악동 이미지가 있었다. 조진호 감독은 아드리아노와 밀당을 오가며 그가 대전에서 날개를 펼칠 수 있도록 도와줬다. 모두가 대전의 승격과 동시에 아드리아노가 이적할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아드리아노는 승격 후에도 리그 전반기를 조진호 감독과 함께했다.

이후 아드리아노는 FC서울로 이적해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며 득점기계 역할을 해냈다. FC서울이 가끔 부진해도 결국 골을 만들어내는 선수였다. 아드리아노는 AFC아시아챔피언스리그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FC서울은 준결승전에서 전북에 패배하면서 타이틀 사냥에 실패했지만 아드리아노는 대회 13득점을 기록하며 득점왕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아드리아노는 항상 골을 넣으면 춤을 추면서 기뻐했던 선수다. 그런 그도 조진호 감독의 상주를 상대로 골을 넣었을 땐 무표정으로 일관했다. 골을 넣으면 누구보다 기뻐하던 그의 담담함에 많은 이들이 놀랐다. 아드리아노는 세리머니를 하지 않은 이유를 조진호 감독 때문이라고 전했다. “한국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준 감독님이다.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감독님을 존중하기 때문에 득점 이후에도 차분한 모습을 보였다”라고 직접 밝혔다.

아드리아노는 조진호 감독의 죽음에 슬퍼하는 메시지를 남겼다. 그는 조진호 감독에 대해 “그는 내 아시아 축구 역사의 일부였다”라고 전하며 “감정을 말로 이룰 수가 없다. 그와 함께했을 때 항상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슬프다”라고 전했다.

2015년 조진호 감독과 포옹하는 아드리아노 ⓒ 프로축구연맹 제공

아드리아노뿐만이 아니다. 임창우도 있다. 조 감독은 울산에서 기회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던 임창우를 대전으로 임대했다. 임창우는 원래 센터백이었지만 조 감독은 임창우를 오른쪽 수비수로 기용했다. 오른쪽 측면에 배치된 임창우는 측면을 지배하는 선수가 됐다. 대전에서의 활약으로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발탁됐고 북한과의 결승전에서 연장 후반 종료 직전에 극장 결승골을 뽑아내며 금메달의 주역이 됐다.

상주에서는 임상협, 이용을 내세워 가장 강력한 측면 역습의 팀을 만들었다. 박진포와 박기동도 조진호 감독의 손을 타면 한 단계 높은 선수가 됐다. 조진호 감독이 상주에서 함께 했던 박준태와 임상협은 부산에서도 그 인연을 이어갔다.

부산에는 이정협이 있었다. 시즌 초반 부산에서 만난 조진호 감독은 경남에 있는 말컹을 부러워하면서도 “이정협을 아드리아노로 만들면 된다”라고 말하며 자신 있는 모습을 보였다. 그의 말은 곧 현실이 됐다. 이정협은 K리그 챌린지 개막 후 7경기 연속 득점 기록을 세우며 아드리아노의 6경기 연속 득점 기록을 갈아치웠다. 이렇게 조진호 감독은 공격을 중시하는 전술가이면서도 훌륭한 스승이었다.

부산에서 못다 이룬 꿈, 하늘에서 함께하길

조진호 감독은 부산에 부임하며 10년을 내다봤다. “부산에도 빅클럽 있어야 한다”라며 “10년 안에 아시아 챔피언 하겠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어려운 상황에 있는 팀들을 연달아 맡으며 좋은 성적을 내니 다른 팀에서도 탐낼만한 재능을 가진 감독이었다. 국내 한 매체에 있는 기자는 농담으로 “더 좋은 곳으로 이직해야 하지 않느냐”라고 물었지만 조진호 감독은 껄껄 웃으며 “부산이 좋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부산에서 그는 어떤 사명감을 느끼는 듯했다. ‘야구의 도시’ 부산에서도 축구의 인기가 다시 야구를 추월할 수 있다고 믿었다. 대우 로얄즈 시절을 추억하며 부산 사람들도 축구를 좋아하고 찾아올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부산의 명예를 중요하게 여겼다. “우리는 기업구단이고 대한축구협회 회장님이 구단주로 있는 팀이다. 구단주님이 FIFA 평의회 위원에도 당선됐는데 팀이 2부리그에 있다고 한다면 자존심 상할 것”이라며 부산을 꼭 K리그 클래식으로 승격시키겠다고 전했다.

조진호 감독은 부산에 부임하며 K리그 클래식 승격을 목표로 삼았다. K리그 챌린지 2위를 달리며 그의 말은 현실이 될 가능성이 커 보였다. 이번 시즌 경남이 워낙 탄탄하고 좋은 모습을 보였기에 쫓아가야 하는 입장이었지만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경남이 시즌 중 다른 팀들에 발목 잡힐 때는 기회로 여겼다. 부산이 위기에 빠질 때도 위기를 길게 이어가지 않았다. 서울이랜드와의 경기에서는 퇴장과 부상으로 9명이 그라운드에 남은 채 0-2로 끌려가던 경기를 추격하며 2-2 동점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서울이랜드와의 경기를 마친 후 조 감독은 “벼랑 끝에서 뒤로 넘어지는 기분이었다”라고 전하기도 했다. 구사일생으로 무승부를 거두긴 했지만 롤러코스터 같은 경기를 치렀다. 그 와중에도 그는 경기 후 팬들을 만나 스킨십을 가졌다. 조진호 감독을 두고 버스가 먼저 출발하는 해프닝도 겪었다. “팬들도 웃기만 하고 도와주지는 않더라”라면서도 “팬들도 웃고 그래서 재미있었다”라며 부산 팬들과도 허물없이 지냈다.

부산 아이파크 조진호 감독 ⓒ 스포츠니어스
부산 아이파크 조진호 감독 ⓒ 스포츠니어스

부산은 지난 8일 경남에 0-2로 패배하며 사실상 1위 승격이 물거품이 됐다. 그러면서도 그는 경남에 축하한다는 말을 남길 정도로 멋과 예의를 아는 감독이었다. 경남과의 경기 후 조 감독은 플레이오프를 겨냥하는 소감을 밝혔다. 그는 “앞으로 우리는 험난한 과정이 남아있다. 잘 수습해서 남은 일정을 잘 준비하겠다”라고 전했다.

남은 일정을 뒤로하고 그는 44년 짧은 축구 인생을 마쳤다. 누구도 원치 않았던 죽음이었다. 동료 감독들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이 그의 부고 소식을 듣고 충격에 휩싸였다. 그의 유쾌한 성격 뒤로 짊어졌을 부담감을 알아채지 못했다며 슬퍼했다. 많은 이들이 조진호 감독과의 소소한 추억을 되새겼다. 그만큼 사람 냄새나는 사람이었다. 대전과 상주의 역사를 새로 쓴 훌륭한 명장이었고 스승이었다.

누군가는 그가 이젠 치열한 녹색 그라운드를 떠나 편안히 눈 감기를 바랄 수도 있다. 그러나 조진호 감독은 축구를 사랑했고 축구와 함께하는 사람들을 사랑했다. 그가 하늘에서도 축구와 함께하길 바란다. 못다 이룬 꿈, 부산이라는 제2의 도시에서 부산이 빅클럽이 되는 꿈을 함께하길 바란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intaekd@sports-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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