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브로 후원을 받으며 찍은 사진. ⓒ이슬기 제공

‘슬기로운 축구’는 전직 K리그 선수 출신인 이슬기 SPOTV 해설위원의 공간입니다. 대구FC에서 데뷔해 포항스틸러스와 대전시티즌, 인천유나이티드, FC안양 등 다양한 팀에서 활동했던 그는 현재는 은퇴 후 SPOTV에서 K리그 해설을 맡고 있습니다. 선수 시절 경험과 해설위원의 냉철한 시각을 덧붙여 <스포츠니어스> 독자들에게 독특하고 신선한 칼럼을 전달합니다. -편집자주

[스포츠니어스 | 이슬기 객원 칼럼니스트] 장훈고등학교 시절 전국대회가 열리는 날이면 개회식을 했다. 그러면 모든 팀들이 운동장에 모여 누군지 잘 알 수 없는 높으신 분의 축사를 들어야 했다. 개회식을 할 때면 전국에서 다 모인 우리 또래 선수들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그날 만큼은 항상 가슴을 당당히 펴고 다녔다. 이유는 나이키 트레이닝복 때문이었다. 당시 우리 학교는 나이키의 후원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용품이 나이키였다.

검정색에 나이키가 형광으로 그려진 축구화

고등학교 시절 나이키 후원은 엄청난 일이었다. 다른 팀 친구들이 우리 트레이닝복을 보고는 대단히 부러워하는 게 느껴졌다.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속으로는 굉장히 뿌듯했다. ‘우리는 스폰서가 나이키야. 숙소에서 입는 잠옷도 나이키야.’ 개회식에서 높으신 분의 축사가 계속 이어져도 전혀 지루할 틈이 없었다. 그만큼 우리 학교 축구부가 입은 나이키 트레이닝복을 다른 팀 친구들이 계속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도 나이키가 선망의 대상이었던 적이 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축구부에 정식으로 들어가기 전 꼭 가지고 싶었던 게 있었다. 그건 바로 황선홍이 신었던 나이키 축구화였다. 아버지에게 뭔가 사달라고 조르기 어려웠지만 크리스마스 때 용기를 냈다. “아버지. 저 황선홍 축구화 사주세요. 검정색 축구화에 나이키가 형광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이런 말을 하고 넘어갔다. “그거 신으면 황선홍처럼 ‘똥볼’ 찬다.” 나에겐 황선홍이 최고였는데 아버지는 둘 중 하나였던 것 같다. 황선홍을 싫어했거나 나이키 축구화를 사주기 싫었거나.

그런데 크리스마스 이브에 내가 자다 인기척 때문에 잠에서 깨 깜짝 놀랐다. 내가 자는 척하고 있는데 아버지가 몰래 나이키 신발 상자를 놓고 가시는 것 아닌가. 그리고 신발 상자를 열어보니 ‘황선홍 축구화’가 고이 모셔져 있었다. 나는 그날 너무 좋아서 잠도 못자고 하루 종일 축구화를 안고 있었다. 아직도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그 전까지만 해도 ‘히포’나 ‘야스다’ 축구화를 신었었는데 내가 나이키 축구화라니…. 고등학교 시절 나이키의 후원을 받을 때 부러워하던 다른 팀 친구들의 심정을 잘 아는 것도 초등학교 시절 ‘황선홍 축구화’를 선물 받았을 때의 기쁜 마음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엄브로에서 후원받는 형의 위엄

2009년 프로에 입단했지만 아쉽게도 나이키에서 “후원을 해주겠다”는 연락을 주지는 않았다. 포항스틸러스 소속이던 2011년 동료인 김재성 형이 엄브로의 후원을 받고 있었는데 그 형을 따라 엄브로 스폰서 행사에 간 적이 있었다. 엄브로와 함께 어린 선수들에게 재능기부를 하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끝나고 엄브로 관계자가 와 내게 명함을 주며 이런 말을 했다. “의미 있는 행사에 함께 해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혹시 엄브로 축구화에 관심 있으면 연락주세요.” 무심한 듯 넘겼지만 다음날 바로 엄브로에 연락을 했다. “엄브로 축구화 좀 받아 신어볼 수 있을까요?”

그래서 2012년 대전시티즌으로 이적하면서 엄브로와 계약을 맺었다. 전지훈련을 떠나기 전 엄브로에 가게 됐는데 사진 한 장을 찍어주고 원하는 만큼 축구화를 가지고 가라는 말을 들었다. 대단히 기분이 좋았지만 촌스러워 보이지 않게 새 축구화 5켤레를 골라 챙겼다. 더 챙기고 싶었지만 그러면 촌스러워 보일까봐 최대한 자제한 게 이 정도였다. 그리고 이 새 축구화 5켤레를 들고 멕시코 전지훈련을 가는데 생에 처음으로 이렇게 새 축구화를 한꺼번에 많이 챙기니 기분이 너무 좋았다. 후배들도 ‘엄브로에서 후원받는 형’이라고 부러워했다.

그때 은근히 그런 시선을 즐겼던 것 같다. 초등학교 시절 ‘황선홍 축구화’를 신었을 때도, 고등학교 때 나이키 후원을 받아 어깨를 당당히 펴고 다닐 때도, 프로선수가 돼 엄브로의 후원을 받을 때도 주변의 부러움을 즐겼다. 하지만 나는 이 시즌 개막전에서 부상을 당하며 시즌을 통째로 날리고 말았다. 결국 후원을 해준 엄브로에도 전혀 보답을 하지 못했다. 지금이나마 이 글로 사과드리고 싶다. 좋은 축구화를 많이 주셨는데 사진 한 장 찍고는 아무 것도 도움을 주지 못해 죄송한 마음 뿐이다.

누군가의 꿈, 누군가의 비즈니스

얼마 전에는 미즈노에서 후원을 받는 선수를 따라 미즈노 매장에 간 적이 있다. 거액의 후원을 받는 이 선수는 매월 날을 잡아 매장에 방문해 정해진 액수 만큼 축구화를 비롯한 용품을 가지고 가면 됐다. 같이 갔는데 이 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너도 트레이닝복하고 운동화 하나 골라.” 사실 이 의도로 따라갔던 건데 아닌 척 하며 태연하게 트레이닝복과 풋살화를 골랐다. 나는 이제 축구를 그만두고 용품을 후원해 주는 곳도 없는데 굉장히 부러웠다. 트레이닝복과 풋살화를 챙긴 뒤 그 친구가 용품을 쓸어 담는 걸 옆에서 친절하게 도와줘야 했다.

스폰서는 어린 선수들에게는 꿈 같은 일이다. 이름도 알리고 성적도 내야 후원을 받을 수 있으니 이렇게 후원 받는 형들을 늘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스타가 되면 또 마음이 달라지는 것 같다. 한 선수는 스폰서를 바꾸면서 모교까지도 원래 후원사와 서먹하게 만들기도 했다. 옆에서 볼 땐 이 선수의 행동이 의리도 없고 낭만적이지도 않다고 생각했지만 스폰서를 옮기면서 제안 받은 금액을 들으니 ‘나라도 갈아탈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누군가에게는 이런 용품 스폰서가 꿈이기도 하지만 현실이 되면 철저한 비즈니스가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