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전에서 두 번의 자책골을 기록한 김주영. ⓒ중계 화면 캡처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한국이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치른 러시아와의 축구 대표팀 평가전에서 2-4 패배를 당했다. 그리고 늘 그렇듯 경기가 끝난 뒤 특정 선수 몇몇에게 패배의 책임을 전가하는 이들이 많다. 특히나 첫 번째 실점에서 헤딩에 실패한 김영권과 자책골을 두 번이나 기록한 김주영을 패배의 원흉(?)으로 꼽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패배가 기분 좋을 리 없고 네 골이나 허용했으니 비판적인 의견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특정 선수 몇몇에게 패배의 책임을 돌려서는 안 된다. 이건 어디까지나 수비 조직력의 문제였지 김영권과 김주영 등 개인의 잘못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영권과 김주영은 어이없는 실수를 했을까

첫 번째 실점 장면에서 눈에 띄는 건 김영권이 달려들며 헤딩을 시도한 공이 머리에 닿지 않고 표도르 스몰로프에게 연결됐다는 점이다. 스몰로프는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팀의 첫 골을 뽑아냈다. 이 단 한 순간의 장면을 놓고 본다면 김영권 개인의 잘못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하지만 김영권 입장에서 항변을 좀 하고 싶다. 시야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던 스몰로프가 돌아 들어가는 과정을 한국 수비진이 모두 놓치고 말았고 그나마 마지막까지 몸을 날린 게 김영권이었다. 그래도 스몰로프의 움직임에 유일하게 반응했던 게 김영권이었지만 결국 이 한 장면으로 김영권은 첫 실점의 빌미를 제공한 선수로 낙인 찍혔다.

책임을 따지자면 대인 마크에서 스몰로프를 놓친 김주영을 탓하는 게 맞다. 하지만 가뜩이나 최근 관중 발언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으며 좋지 않은 이미지가 쌓인 김영권은 공에 미치지 못한 헤딩 한 장면으로 첫 실점을 막지 못한 선수가 되고 말았다. 나 역시 관중 발언 당시 김영권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내놓았지만 이 장면까지도 온전히 김영권의 잘못으로 돌리고 싶은 마음은 없다. 수비진 전체의 움직임이 둔했고 러시아는 기민한 세트피스 한 방으로 전반을 앞선 채 끝냈다. 수비 조직력 전체를 손봐야 하는 숙제가 남은 장면이었다. 전반전을 잘 치러 놓고도 전반 종료 직전 세트피스 실수 한 번으로 전세가 역전된 채 끝내야 했던 것도 뼈아프지만 교훈이다.

후반전 불과 2분 만에 연속적으로 자책골을 허용한 김주영은 김영권보다 더한 질타를 받고 있다. A매치에서, 그것도 대표팀에 대한 여론이 가장 좋지 않은 상황에서 사상 유례 없는 한 경기 2자책골을 기록했으니 결과로만 놓고 보면 김주영의 활약은 최악이었다. 그런데 이 두 번의 자책골 장면을 엄밀히 놓고 보자면 김주영이 말도 안 되는 실수를 해 골을 내준 건 아니다. 두 골 모두 김주영이 자책골에는 직접적인 관여를 했지만 이 장면 역시 의도치 않는 굴절로 공이 한국 골문으로 빨려 들어간 상황이었다. 이런 악몽 같은 경기는 신이 와도 막을 수 없다. 한 경기에서 네 골이나 허용한 수비진을 옹호할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고 기본적인 자질을 논할 수준의 한심한 플레이는 아니었다.

김영권도 러시아전이 끝난 뒤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프로축구연맹

선수 차출, 전후사정을 살펴보자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러시아전 실점은 특정 선수 몇몇에게 모든 화살을 돌릴 수 없다. 김영권은 그래도 실점을 막을 수 있는 헤딩을 놓쳤고 김주영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한국 골문을 향해 두 골을 넣었다. 권경원은 A매치 데뷔전에서 기대 만큼 활약하지 못했다. 다들 부족했다. 그럼에도 이 경기에서 누구 한 명이 대단한 잘못을 저질러 패한 것처럼 받아들이지는 않았으면 한다. 우리가 러시아전을 통해 얻어야 할 건 수비 조직력을 더 키우고 특히 세트피스 상황에서의 집중력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지 누구 한 명을 빼면 수비진이 더 안정될 것이라고 마냥 사냥하는 일이 아니다. 패배의 원인은 김영권도 아니고 김주영도 아니다. 한국 선수 모두가 패배의 원인이었다.

내가 너무 낙천적인 건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적지에서 이 정도면 그래도 일말의 희망은 봤다고 생각한다. K리거는 소집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해외파로만 명단을 꾸렸고 이 중에는 소속팀 경기에 나서지도 못해 실전 감각조차 의심되는 이들이 많았다. 지난 이란전, 우즈벡전 당시 K리그 일정까지 미루고 국내파 선수들을 조기 소집해 이번 원정 평가전 두 차례에는 K리그 선수들을 차출하지 않기로 이미 합의를 마친 상황이었다. 엔트리를 채우기 위해서라도 동원할 수 있는 모든 해외파 선수들을 차출해야 했다. 이 과정을 쏙 빼놓고 신태용 감독의 선수 기용에 대해서만 비판하면 안 된다. 한국은 차출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해 선수를 살펴 소집했다. 이 선수들이 대표팀 붙박이 주전 베스트 멤버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석현준과 이승우, 백승호 등은 이적 후 팀에 적응하라는 배려 차원에서 뽑을 수도 없었다. 지동원과 이청용은 실전에서 제대로 뛰지도 못하고 있고 기성용도 부상 이후 아직 완벽한 몸 상태는 아니었다. 그래도 선수 점검 차원에서, 전술 실험 차원에서 이들을 소집해야 했다. 더군다나 포지션별로 선수 수급도 제대로 할 수 없어 기형적인 스리백으로 나서야 하는 경기였다. 포백 수비에서 김영권이 왼쪽 측면에 서는 경우는 이따금씩 봤어도 스리백에서 그가 왼쪽 윙백 역할을 하는 건 내 기억으론 처음이었다. 이청용도 프로 초창기 이후 오른쪽 윙백 포지션을 맡은 적은 없었다. 포지션별로 쓸 수 있는 선수를 선택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이 부분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김영권도 러시아전이 끝난 뒤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프로축구연맹

이 경기에 큰 의미부여가 필요할까

유럽에서 팬들의 응원을 받는 현지팀과 이런 격돌을 하는 건 소중한 경험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경험이 많지 않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한국 축구의 소원이라면 전용구장을 갖는 것과 유럽 원정 평가전을 치러보는 게 소원이던 시절도 있었다. 안방에서 아시아 팀이나 시차적응도 안 된 남미 2.5군 팀을 데려다 놓고 ‘두드려 팬 뒤’ 아시아의 호랑이라고 자부심을 갖던 평가전이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오랜 만에 유럽 현지에서 좋은 팀과 악조건을 안고 싸웠다는 건 큰 경험이다. 이런 평가전에서 크게 깨지고 보완점을 찾는 게 안방에서 붉은악마의 응원을 받으며 파라과이나 온두라스 2.5군을 데려다 놓고 크게 이기는 것보다는 훨씬 더 낫다.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시리아나 중국을 상대로도 아무 것도 못하던 공격진이 그래도 나름대로 공격 전개를 하며 위협적인 플레이도 꽤 선보였다는 건 내 눈에만 보이는 걸까.

결과로는 네 골을 허용한 참패였을지 몰라도 내용이 중요한 평가전이었다. 이 경기 결과의 중요성은 사실 크지 않다. 딱 하나 큰 의미를 부여하자면 그건 히딩크 감독 재부임 논란 이후 거센 여론과 마주한 상태에서 치른 경기라는 것뿐이다. 전후 상황을 다 자른 뒤 딱 하나만 놓고 생각해 보자. 이제 막 월드컵 본선 무대 진출에 성공한 뒤 치른 첫 평가전에서, 그것도 경기 감각이 부족한 해외파들만을 소집해 적지에서 한 경기에서 결과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게 더 성급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히딩크 감독 재부임 논란이 아니었더라면, 대한축구협회에 대한 불신이 없었더라면 그냥 월드컵에 가기 위한 과정 중 하나일 뿐인 테스트다. 자꾸 이 평가전 한 번에 큰 의미를 부여할 이유는 없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의 향수를 느끼는 이들에게 좀 더 쉽게 설명하고 싶다. 2002년 6월에 열린 월드컵 본선과 비교하면 8개월 전이었던 2001년 11월 당시 대표팀 경기력을 떠올려보면 쉽다. 그런데 2001년 11월 당시 한국은 안방에서 세네갈에도 0-1로 패했다. 심지어 월드컵 개막 넉 달 전인 2002년 2월에는 캐나다를 상대로도 1-2로 졌다. 똑같은 기간을 놓고 봤을 때 2018년 6월에 열릴 월드컵을 앞둔 한국이 2017년 10월에 완성되지 않은 채 러시아에 2-4로 패하는 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일이다. 뭐 대단한 타이틀을 갖춘 대회에서 자책골을 두 번이나 넣고 졌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 평가전에서 한 번 패한다고 한국 축구의 위상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안 온다던 히딩크 감독이 갑자기 오는 것도 아니다.

김영권도 러시아전이 끝난 뒤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프로축구연맹

누군가가 패배 원흉이 되어야 하나

단순히 수비수 몇 명에게만 질타를 보낼 게 아니라 네 골을 먼저 허용한 뒤 기어코 두 골을 따라간 선수들의 노력도 평가해야 한다. 최근 들어 대표팀 경기를 보며 이렇게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경기를 본 적은 많지 않다. 시리아나 중국 등을 상대로 한숨이 푹푹 나오던 경기를 할 때에 비하면 공격 전개도 그나마 괜찮아졌다. 월드컵 본선 진출 확정 이후 치른 첫 번째 평가전에서부터 대단한 걸 바라면 안 된다. 오는 12월 동아시안컵에서는 또 이 해외파 대부분이 빠지고 K리거 위주로 옥석 가리기가 펼쳐질 텐데 여기에서도 깨지고 부서진다고 난리를 피울 것도 없다. 신태용 감독이 이번과는 전혀 다른 선수들로 전술 테스트를 하는 경기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경기 내용과 결과까지 잡는 건 감독의 영역이 아닌 신의 영역이다.

절대적인 대표팀 옹호가 아니다. 네 골이나 허용한 수비진은 당연히 개선이 필요하다. 이 수준이라면 월드컵 본선에서는 더 처참한 꼴을 당할 수도 있다. 특히나 세트피스 상황에서의 실점 장면은 한숨이 나오기에 충분했다. 대표팀에만 오면 힘을 쓰지 못하는 손흥민 활용법도 고민해야 하고 측면 수비의 인재도 찾아야 한다. 하지만 누구 한 명에게 책임을 씌울 경기도 아니었고 현재 우리의 상황도 잘 이해해야 한다. 헤딩 미스를 했다고 김영권을 욕하고 자책골을 두 번이나 넣었다고 김주영을 비난하는 건 지금 대표팀에 아무런 득도 되지 않는다. 이렇게 매 경기 패배의 원흉(?)과도 같은 선수들을 하나씩 대표팀에서 지우다 보면 아마 대표팀에는 기성용 말고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부디 대표팀과 신태용 감독이 평가전 결과에 휘둘리지 않았으면 한다. 아마도 이 순간 가장 큰 교훈을 얻은 건 선수들과 코치진일 것이다. 월드컵에서 참패를 하면 내가 누구보다 앞장서서 대표팀을 향해 온갖 욕을 퍼붓겠다고 약속하고 싶다. 하지만 그전까지 우리가 할 일은 별로 없다. 지금은 과정이라 생각하고 문제점을 찾아가는 대표팀을 응원해야 할 때다. 이 정도면 적지에서 크게 깨지고 충분히 얻지 않았는가. 명심하자. 우리의 목표는 2017년 10월 러시아 평가전에서 승리를 거두는 게 아니라 2018년 6월 러시아 월드컵에서 성과를 내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헤딩 미스를 하고 자책골을 넣는 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이건 선수 개인의 잘못이 아니다. 대표팀이 고쳐나가야 할 숙제 하나를 받은 것뿐이다. 평가전다운 경기 잘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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