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재가 FC안양 복귀전을 치렀다. ⓒFC안양

[스포츠니어스 | 안양=김현회 기자] 보통 군 제대 후 사회에 복귀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복학을 하려면 그 시기를 맞춰야 하고 다시 직장에 복귀하려고 해도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하지만 군 제대 후 딱 15시간 만에 전 직장으로 복귀한 이가 있다. 2017년 10월 7일 0시를 기해 국방의 의무를 마친 뒤 이날 15시에 열린 경기를 통해 원소속팀으로 돌아온 FC안양 주현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아직 전역증 잉크도 마르지 않았지만 그는 언제 군 생활을 했냐는 듯이 21개월 간의 공백을 깨고 안양으로 돌아왔다. 군 제대 후 15시간 만에 복귀전을 치른 주현재의 강렬했던 하루에 대해 소개하려 한다.

안양 창단 멤버 주현재, 팀의 중심이 되다

보인정보산업고 재학 당시 주로 윙포워드로 출장했던 그는 홍익대 시절 김종필 감독의 선택에 따라 풀백 요원으로 거듭났다. 주현재는 홍익대를 졸업한 뒤 2011년 인천유나이티드에 입단했다. 하지만 두 시즌 동안 그가 인천에서 보여준 모습은 실망스러웠다. 딱 4경기에 나선 게 전부였기 때문이다. 실패에 가까웠다. 주현재는 2013년 창단을 선언한 FC안양에 합류했고 이때부터 서서히 팀에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전임 이우형 감독과 이영민 감독은 그를 중용했다. 세 시즌 동안 63경기에 출장해 8골 4도움을 기록하며 주전으로 도약했다.

하지만 그에게도 군 문제는 피할 수 없는 숙제였다. 2015년 12월 안산무궁화에 입단한 것이었다. 안양과 짧은 작별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영민 감독은 “건강히 다시 돌아와 안양에서 활약해 달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그렇게 주현재는 안산 선수가 됐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이었을까. 안양은 성적 부진을 이유로 이영민 감독과 작별한 뒤 김종필 감독을 후임 사령탑으로 선임했다. 주현재의 대학 시절 스승이 안양 감독이 된 것이다. 더 기가 막힌 일이 벌어졌다. 2017년 시즌을 앞두고 경찰축구단은 안산에서 아산으로 연고를 옮겼고 역사적인 홈 첫 경기를 치르는데 그 상대가 바로 안양이었다.

지난 3월 11일 운명의 경기가 펼쳐졌다. 주현재는 이 경기에서 선발로 출장해 대학 시절 스승이자 제대 후 돌아가면 다시 지도자로 만날 김종필 감독을 상대해야 했다. 그런데 이날 주현재가 일을 냈다. 전반 36분 공민현의 패스를 받은 주현재가 강력한 오른발 논스톱 슈팅으로 안양 골망을 흔든 것이다. 이 골은 아산무궁화 창단 후 역사적인 첫 골이어서 의미가 더욱 깊었다. 주현재는 스승이자 원소속팀 앞에서 골을 넣고 세리머니까지 선보였다. 당시를 회상한 김종필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키워낸 제자가 우리 팀 골문을 향해 골을 넣으니 기분이 복잡했다. 특히나 그 경기에서 우리가 0-4로 대패했다. 앞이 캄캄하더라. 그래도 스승 입장에서는 제자의 성장이 뿌듯하기도 했다.”

아산무궁화에서 활약한 주현재. ⓒ프로축구연맹

주현재와 김종필 감독의 운명적인 재회

주현재는 올 시즌에도 아산에서 줄곧 쓰임새 있는 선수로 활약했다. 15경기에 출장해 2골 1도움을 기록했다. 그런 주현재는 2017년 10월 7일 전역을 앞두고 있었다. 주현재도 사회 복귀를 손꼽아 기다렸지만 그의 전력을 더 절실히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안양 김종필 감독이었다. 2011년 홍익대 졸업 이후 7년 만에 다시 제자와 한 팀이 될 순간을 기다렸다. 더군다나 올 시즌 만족스러운 성적을 내지 못한 김종필 감독으로서는 공격과 수비 모두에서 쓸 수 있는 주현재가 누구보다도 필요했다. 그러던 중 김종필 감독에게 먼저 주현재가 전화를 걸었다. 김종필 감독은 주현재의 말에 기특해했다. “말년 휴가를 나왔는데 바로 팀에서 훈련을 하고 싶습니다.”

주현재는 달콤한 휴가도 반납한 채 바로 안양 훈련에 합류했다. 아껴뒀던 외출과 특박 등을 한꺼번에 써 지난 1일부터 3일까지 안양 선수단과 훈련했다. 주현재에게 김종필 감독은 대학 시절 ‘호랑이 선생님’이었다. 그런 지도자와 프로 무대에서 다시 만났으니 이런 운명이 또 있을까. “감독님과 대학 시절 눈도 마주치지 못할 만큼 나에게는 어려운 분이셨다. 지금도 물론 대하는 게 어렵기는 하지만 많이 부드러워지셨다. 내가 예전에 그렇게 무서워했던 감독님이 맞나 싶었다.” 주현재는 그렇게 옛 스승과 다시 만났다. 주현재는 사흘 간 안양 선수단과 훈련한 뒤 지난 4일 아산에 합류해 제대일까지 대기했다.

김종필 감독은 오랜 만에 만난 주현재를 보고는 이런 판단을 내렸다. “생각보다 컨디션이 좋다.” 당장 경기에 나서도 될 상황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제대 날짜였다. 제대 날짜를 따져보니 7일 열리는 대전시티즌과의 홈 경기에 출장하는 건 시기상 촉박했다. 10월 6일 전역식을 치르지만 공식적으로는 10월 7일 0시가 돼야 민간인 신분이 되는 것이었다. 제대 후 15시간 만에 복귀전을 치른 사례는 없었다. 무엇보다도 주현재가 곧바로 선수 등록을 안양 신분이 되는 것도 하루 만에는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김종필 감독은 “주현재는 즉시전력감”이라고 했고 안양 프런트는 어떻게든 주현재가 제대하는 날 안양 유니폼을 입고 뛸 수 있도록 알아보기 시작했다.

아산무궁화에서 활약한 주현재. ⓒ프로축구연맹

‘주현재를 뛰게하라’ 안양에 내려진 특명

프로축구연맹에 문의를 하니 7일 0시에 제대하고 그날 경기에 나가는 건 선수 등록상 무리가 없다는 해석을 내렸다. K리그에는 한 시즌 동계와 하계 선수 등록 기한이 있지만 군 제대 선수는 이와 무관하게 선수 등록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추석 연휴였다. 최장 열흘이나 되는 추석 연휴 기간 동안 선수 등록을 할 여건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양은 미리 연맹에 선수 등록을 요청했고 연맹도 이를 수용했다. 연휴를 앞두고 미리 선수 등록을 받아줬다. 이 사례로 선수 등록을 한 건 같은 날 제대한 주현재와 공민현이 유이했다. 하지만 공민현은 부천 복귀 이후 8일 첫 경기를 치를 예정이어서 안양 주현재보다는 하루 더 여유가 있었다. 급한 건 안양과 주현재였다.

10월 6일 전역식을 마친 주현재는 곧바로 팀에 합류했다. 7일 열리는 대전과의 홈 경기 출장을 목표로 했다. 구단 프런트는 분주하게 움직였다. 안양에서 주전으로 뛰었던 선수가 돌아오니 그를 위한 이벤트도 준비해야 했다. 하지만 선수 선발 권한은 김종필 감독이 가지고 있었다. 프런트는 두 가지 상황을 모두 준비했다. 주현재가 백업 멤버로 이름을 올렸을 경우와 선발로 출장했을 경우를 모두 고려해야 했다. 백업 멤버로 대전전을 준비할 경우 하프타임 이벤트 등을 통해 주현재를 홈 팬들에게 인사시킬 생각이었다. 하지만 선발로 출장하면 이야기가 달라지는 상황이었다. 구단에서는 이 경우를 대비해 부랴부랴 영상을 제작했다. 선발 출장하면 주현재 환영 영상으로 대체한다는 계획이었다.

이뿐 아니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유니폼이었다. 추석 연휴라 주현재가 입고 뛸 유니폼을 공수하는 문제가 가장 어려웠다. 결국 구단에서는 직접 주현재가 전역한 어제(6일)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사카스포츠 본사를 찾았다. “내일 경기에 나서야 하는데 오늘 무슨 수를 써서라도 주현재 이름의 유니폼을 구해야 합니다.” 연휴 동안은 문을 닫았지만 안양 프런트는 사정사정해 결국 주현재 이름이 박힌 유니폼을 극적으로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촌각을 다투는 ‘주현재 복귀 프로젝트’는 이렇게 이어졌다. 선수 등록도 마쳤고 유니폼도 급하게 구해 일은 이렇게 마무리되는 듯했다. 주현재도 경기에 나설 모든 준비를 마쳤다. 사흘 동안 안양에서 훈련한 주현재는 21개월의 공백이 무색하게도 팀에 완벽히 적응했다.

아산무궁화에서 활약한 주현재. ⓒ프로축구연맹

주현재 선발 출전 놓고 벌어진 해프닝

그리고 6일에서 7일로 넘어가는 0시가 되면서 주현재는 민간인 신분이 됐다. 김종필 감독은 7일 안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리는 KEB하나은행 K리그챌린지 2017 FC안양-대전시티즌과의 경기 시작 한 시간 반 전 공개한 선발 명단에 파격적으로 주현재를 포함시켰다. 루키안이 경고 누적으로 빠진 상황에서 제공권이 좋은 미드필더 최영훈을 임시방편으로 최전방에 내세운 김종필 감독은 주현재를 왼쪽 윙포워드로 기용했다. “루키안의 대체자라기보다는 복귀전에서 수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주현재를 공격적인 자원으로 기용했다. 주현재는 슈팅력이 참 좋은 선수다.” 김종필 감독은 홍익대 시절 주로 수비적으로 활용하던 주현재를 전방에 기용하며 마음껏 공격하라고 주문했다. “잘했으면 좋겠는데 그런 요구를 하면 부담이 될까봐 걱정스럽다”며 웃었다.

하지만 경기 감독관이 선발 명단을 보고는 의문을 제기했다. “주현재가 어제 제대했는데 오늘 경기에 나와도 되는 겁니까.” 곧바로 감독관이 연맹에 문의를 했더니 연맹에서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오는 14일 경기부터 출장이 가능합니다.” 이 말대로라면 안양은 부정 선수를 선발 명단에 포함한 것이었다. 안양 프런트와 코치진이 발칵 뒤집혔다. 하지만 이 해프닝은 5분 만에 마무리됐다. 연맹 측에서 착각을 한 것이었다. “주현재는 안양에 등록을 마쳤습니다. 오늘 경기에 나가도 문제가 없습니다.” 제대 후 이렇게도 빨리 경기에 나선 경우가 없다보니 소통상의 문제였다. 경기 감독관도 어제 제대한 선수가 오늘 선발로 나오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주현재의 안양 복귀전은 이렇게 경기 시작 한 시간 반 전까지도 왔다갔다 했다.

이날 주현재는 선발 출장했다. 선발 출장 통보를 받았지만 경기 전부터 출장 여부를 놓고 논란을 벌여 온전히 경기에 집중할 수는 없었다. 경기장에 도착해 “경기에 나서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현재는 마치 집에 돌아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내가 안양 창단 멤버다. 안양 경기장에 오니 그때 그 느낌을 그대로 받았다. 집에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주현재는 이날 후반 38분 김신철이 교체될 때까지 그라운드를 종횡무진 누볐다. 21개월 간의 공백이 전혀 느껴지질 않았다. 김종필 감독은 경기 종료 후 “잘한 것 같기도 하고 못한 것 같기도 하고…”라며 주현재의 활약에 너스레를 떨었다. 경기 종료 후 안양 팬들은 주현재의 이름을 연호하며 꽃다발을 선사하기도 했다.

주현재, 제대 후 15시간 만에 복귀전

경기 후 만난 주현재는 표정이 밝았다. 오늘부로 민간인이 된 세상에서 가장 기쁜 이 사나이는 바로 복귀전까지 치렀으니 만족스러울 법했다. “일단 오늘 아침에는 점호 청소를 하지 않았다. 제대하니 이게 가장 좋다. 휴대폰을 쓰는 것도 아직은 어색하다. 제대하고나니 하루 아침에 많은 게 바뀌었다.” 주현재는 자신의 극적인 출장을 위해 유니폼을 직접 공수해 오고 연맹과 긴박하게 소통한 프런트에게도 고마움을 표시했다. “내가 이 정도 선수인가 싶었다. 다들 고생해 주셨다. 비록 순위가 상위권에서는 멀어져 있지만 우리에게는 세 경기가 남았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겠다. 안양에 돌아온 게 기쁘고 하루 만에 경기에 나설 수 있어서 더 기뻤다.”

주현재는 안양 팬들에게 사과할 일이 있었다. 지난 3월 안양을 상대로 골을 넣은 뒤 너무 기쁜 나머지 골 세리머니를 했기 때문이다. 그는 시간이 지났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는 팬들에게 꼭 사과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때 너무 기쁜 마음에 돌아서며 좋아하는 동작을 했는데 그게 안양 팬들 앞이었다. 작정하고 한 건 아니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가 그러고 있더라. 아직도 죄송스러운 마음이 있다. 아까 팬들이 꽃다발을 주시는데 그 장면을 기억하고 계셔서 민망했다. 그 동작은 죄송하다.” 군 제대 후 빨리 복귀하는 이들도 3~4일은 걸리지만 이렇게 제대와 동시에 경기가 맞물려 곧바로 복귀전을 치르는 건 사상 유례 없는 일이었다. 주현재는 이렇게 제대 후 15시간 만에 완벽한 안양의 사나이로 돌아왔다. 이렇게도 사회 적응이 빠른 예비군은 아마도 처음일 것이다. 주현재의 전역 후 긴박했던 15시간은 이렇게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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