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만에 공식석상에 모습을 보인 최영일 전 동아대 감독.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 | 안성=김현회 기자] ‘투혼의 화신’ 최영일 전 동아대 감독이 후배들을 위해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최영일 전 감독은 25일 경기도 안성 신안CC에서 열린 제 1회 월드컵 축구 국가대표와 프렌즈 자선골프 대회에 참석해 2018 러시아월드컵을 준비 중인 후배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1994년 처음으로 성인 대표팀에 발탁돼 한국을 대표하는 중앙 수비수로 1994 미국월드컵과 1998 프랑스 월드컵 등 A매치 55경기에 출장했던 그는 선수 시절 몸을 사리지 않는 성실한 플레이로 ‘투혼의 화신’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1989년 현대호랑이에 입단해 대우로얄즈와 안양LG 등 프로무대에서도 266경기에 출장하며 리그를 대표하는 수비수로도 이름을 날린 바 있다.

최영일 전감독은 현역 시절 일본 공격수 미우라 가즈요시의 전담 마크맨으로도 유명했다. 브라질 클럽 산투스에 입단한 최초의 일본 여권 보유자인 미우라는 1994년부터 1997년까지 한일전에서 늘 최영일의 전담 마크에 시달려야 했다. 그로 인해 최영일은 ‘족쇄맨’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그를 ‘미우라의 그림자’라고 칭하기도 했다. 미우라는 당시를 회상하며 “어느 샌가 여지없이 그 사각형 얼굴의 선수가 내 옆에 찰싹 붙어 있었다”고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브라질 유학파 출신으로 현란한 개인기를 선보이던 미우라는 일본 축구의 상징과도 같은 선수였다. 하지만 이런 미우라를 향해 우직한 수비를 선보이던 최영일은 한국의 정신력을 대표하는 선수로 평가받았다. 한국에는 ‘리티에’로 알려진 중국 대표팀 중앙 수비수 출신 ‘리톄’도 최근 “한국의 최영일을 존경한다. 왜 그는 프로팀 감독이 되지 못했느냐”고 밝힌 바 있다. 리톄는 국어원 외래어표기법 중국어 규정을 준수하면 ‘리톄’가 되나 국내에는 ‘리티에’로 통한다.

2000년부터 모교 동아대 감독으로 지도자 생활을 이어간 그는 2002년 추계대학연맹전 준우승과 2009년 춘계대학연맹전 우승을 차지하는 등 대학 무대에서 정상급 지도력을 선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2014년 동아대 감독직을 내려놓은 뒤로는 현재까지 야인으로 지내고 있다.

“이제는 늙어서 사진이 찍어도 잘 안 나온다”며 농담을 건넨 그는 “집에 일이 좀 있어서 동아대를 끝으로는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서울에서 가족과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축구와 떨어져 있는 그는 후배들의 자선 골프대회 소식에 오랜 만에 반가운 얼굴들과 인사를 나눴다.

선수 시절 ‘투혼’으로 대표됐던 최영일 전감독은 후배들에게 희생을 강조했다. “정신력은 곧 자기 희생과 직결된다”고 말한 그는 “지금 와서는 세대에 뒤쳐진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국가관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국가대표는 그런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믿는다.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으니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역시나 중앙 수비수로 경기를 이끌었던 선수답게 그는 신태용호의 수비 조직력 강화를 주문했다. “수비 조직력을 다지려면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 한다. 다가올 월드컵까지는 시간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시간을 쪼개 수비 조직력을 다져야 한다”고 말한 그는 “좋은 선수들은 많으니 이걸 잘 끌어낼 수 있도록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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