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크로는 수원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 수원삼성 제공

[스포츠니어스 | 명재영 기자] K리그에는 영원한 떡밥(논쟁거리)이 있다. 바로 서포터스다. 인식은 극과 극으로 나뉜다. K리그에 빠질 수 없는 존재라는 의견과 함께 K리그의 발전을 저해하는 세력이라는 의견도 있다. 무엇이 문제인 걸까. 그리고 언제쯤 논쟁이 끝날까. 

축구가 만들어낸 낭만, 서포터스

지난 23일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열린 KEB하나은행 K리그 클래식 31라운드 인천유나이티드와 수원삼성 간의 경기가 끝난 뒤 수원의 서포터스 ‘프렌테 트리콜로’의 내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살펴보기에 앞서 서포터스의 의미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K리그의 서포터스 문화는 유럽과 남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충성적인 팬들이 자발적으로 집단을 이뤄 경기장에서 여러 수단을 이용해 응원하는 것이 핵심이다. 가장 보편적인 응원 방식은 노래다. 수십 명 정도의 인원으로도 경기장의 분위기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응원가에 반해 축구에 빠질 정도로 서포터스의 합창 모습은 축구가 만들어낼 수 있는 장관 중 하나다.

응원가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시각적인 수단도 동원된다. 걸개로 불리는 현수막, 깃발 등이 함께한다. 인원이 많은 조직은 카드섹션과 같은 대형 규모의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한다. K리그 최고의 콘텐츠로 꼽히는 수원삼성과 FC서울의 슈퍼매치가 주목을 받는 이유도 양 팀 서포터 간의 대결이 있기 때문이다. 경기 외에도 이들의 대결 모습을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는 관중이 적지 않을 정도다.

1990년대 말 K리그에 모습을 드러낸 서포터스는 지난 20년의 세월 동안 수많은 이슈와 함께 K리그를 지탱해왔다. 각종 사건ㆍ사고로 K리그의 인기가 추락할 때도 서포터스는 인원이 줄지언정 경기장을 지켜왔다. 팀에 대한 조건 없는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한 모습이었다.

열정과 현실 사이

팀을 좋아한다는 사실 자체는 똑같지만 정도의 차이가 존재한다. 이 점이 바로 각종 사건사고와 서포터스 내부의 충돌이 일어나는 이유 중 하나다. 누군가는 “나 죽거든 이 곳(경기장)에 묻어다오”라고 할 정도로 인생에서 축구가 엄청난 비율을 차지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저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수단 중 하나이기도 하다. 최근 잦아드는 서포터스 내부의 충돌은 이 생각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위에서 언급한 프렌테 트리콜로의 내부 충돌 또한 마찬가지였다. 내용은 이렇다. 인천을 상대로 한 경기에서 수원의 주장인 염기훈이 후반 35분 페널티킥으로 득점에 성공해 K리그 통산 다섯 번째로 ‘60-60 클럽’에 가입했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원정 팬들을 바로 앞에 두고 있는 골대에서 페널티킥 기회를 잡았고 이를 침착하게 처리했다. 팬들은 환호하며 대기록의 탄생을 축하했다. 문제는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발생했다. 많은 수원 팬들이 기록의 탄생을 직접 담기 위해 휴대폰을 들었다. 이 모습이 일부에게는 영 좋지 않은 모습으로 보였다. 서포터스의 본질적인 응원에 사람들이 전혀 집중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현재 수원의 서포터 '프렌테 트리콜로'는 홍역을 앓고 있다 ⓒ 인터넷 캡쳐

경기가 끝난 후 온라인과 SNS에는 이 문제로 인해 한바탕 설전이 펼쳐졌다. 한쪽은 응원보다 촬영에 집중한 사람들을 비판했고 한쪽은 비판한 이들을 역으로 받아쳤다. 상식으로만 이 사건을 바라본다면 정말 이상한 일이다. 촬영하든 음식을 먹든 본인의 자유이기 때문에 비판받을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서포터스 자체가 자발적인 조직이기에 더더욱 자유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서포터스가 우리 사회에서 부정적인 인식을 가진 것도 이런 문제에서 시작됐다. 서포터스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의 주된 요지는 일부 인원들이 “우리는 다르다”며 선민의식을 가지고 편 가르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수원 외에도 대다수의 서포터스 조직 내에서 유사한 문제들이 발생한 바 있다. 지난 2014년에는 인천의 서포터스가 둘로 나뉘어 좌석까지 달리해 김도훈 당시 감독이 중재에 나선 적도 있었다.

각자의 생각과 가치관은 존중받을 필요가 있다. 따라서 독려를 할 수 있을망정 “응원을 하지 않는다”며 같은 편에게 손가락질하는 행동은 그 누구에게도 인정받을 수 없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다. 이른바 강성 세력도 그들의 문화를 존중받을 필요가 있다. 사실 서포터스의 멋진 장면은 이들의 헌신으로부터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기장의 흥을 돋우는 북을 치는 행위부터 카드섹션을 준비하는 것까지 이들의 숨겨진 노력이 있다.

과거 한 서포터스 운영진은 “카드섹션과 같은 퍼포먼스는 많은 작업 인원이 필요하다. 준비를 위한 인력을 모으기 위한 노력을 열심히 해도 인력난에 시달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우리 또한 팀을 위해 자발적으로 나섰을 뿐인데 마치 돈을 받고 고용한 것처럼 각종 요구와 비판이 거세질 때는 힘든 것이 사실”이라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이러한 간극을 어떻게 좁혀야 할까. 어려운 일이다. 서포터스라는 조직은 생각 이상으로 복잡한 측면이 있다. 축구만의 고유문화로 접근할 때 비로소 고개가 끄덕이기 시작한다. 단순히 응원단으로만 인식하면 답이 나오지 않는 이유다. 이렇게 복잡한 가운데에서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있다.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저 팀이 마음에 들어 서포터스석에 찾아와 경기를 지켜보는 사람도 서포터스도 웃통을 벗고 경기 내내 목청을 울리는 사람도 서포터스다. 같은 목적을 가진만큼 한 발짝 물러서서 서로를 바라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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