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팀 후배들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은 전북현대 김상식 코치.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 | 안성=김현회 기자] 현역 시절 대표팀에서 김상식(현 전북현대 코치)보다 더 욕을 먹었던 선수는 한 손에 꼽을 정도다. 김상식 코치는 현역 시절 불안한 모습을 보였던 적도 많았고 경고와 퇴장을 자주 당해 ‘카드캡터’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김상식 코치는 K리그에서 무려 458경기에 나서며 가장 성공한 선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왕조’ 성남일화에서 K리그 우승만 세 번을 경험했고 전북현대에서도 2009년과 2011년 우승에 일조했다. K리그 역사의 산증인이다.

하지만 유독 대표팀에만 가면 작아졌다. 관심이 덜한 K리그에서는 적수가 없을 정도로 탁월한 경기 능력을 선보였지만 관심이 쏠린 A매치에서 이따금씩 불안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특히나 A매치 두 번의 퇴장은 그를 거칠고 불안한 선수로 각인시켰다. 김상식 코치는 지난 2000년 12월 거스 히딩크 감독이 관중석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치른 일본전에서 퇴장 당했고 이듬해 9월 대전월드컵경기장 개장 기념 경기로 치러진 나이지리아와의 평가전에서도 레드 카드를 받았다. 2006년 9월 이란과의 아시안컵 예선에서는 경기 종료 직전 동점골의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다.

물론 그도 할 말은 많았다. K리그에서는 주로 수비형 미드필더로 나서 탁월한 경기 운영을 선보였던 김상식 코치는 대표팀에만 가면 자신의 포지션이 아닌 중앙 수비수로 나서면서 불안한 모습을 보인 게 사실이었다. 김상식 코치 특유의 위협적인 패싱 능력을 보여줄 수가 없었다. 하지만 팬들이 보기엔 그런 안타까움보다 부진한 플레이에 대한 분노가 먼저였다. 김상식 코치는 2006년 이란전 실수 이후 미니홈피가 집중포화를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상식 코치는 선수 생활 내내 논란을 묵묵히 견뎠다. 그렇게 그에게는 ‘카드캡터’라는 오명이 따라 붙었다.

김상식 코치도 이제는 그 당시를 회상하며 웃을 수 있는 나이가 됐다. 25일 안성 신안CC에서 열린 제 1회 월드컵 축구 국가대표와 프렌즈 자선골프 대회에서 만난 김상식 코치는 “그땐 욕을 참 많이 먹었다”면서 “내가 대표팀 부진의 원흉 같은 선수였다. 동료들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고 웃었다. 그리고 솔직하게 당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2000년 히딩크 감독이 막 부임을 앞둔 시기에 일본에서 평가전을 했다. 히딩크 감독이 관중석에서 이를 지켜봤다. 사실 그때 난 선발 멤버가 아니었는데 (김)태영이 형이 다쳐서 내가 대신 나갔다. 나도 당시 배탈이 나 설사를 계속할 때였지만 ‘못 뛴다’는 소리는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날 알다시피 히딩크 감독이 처음 보는 앞에서 내가 장렬하게 퇴장을 당했다.”

김상식 코치는 때부터 대표팀에만 가면 불안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 역시 스스로 마음을 다잡기가 어려웠다. “퇴장을 당하고 공을 빼앗기고 할 때는 정말 축구를 때려 치고 싶었다. 나 혼자만의 생각일 수도 있는데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다 나를 보고 손가락질 하는 것만 같았다. 특히나 나이지리아와 평가전에서 퇴장 당했을 때는 도망치고 싶었다. ‘대표팀에 가기 싫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나는 괜찮다’고 스스로 위안을 삼으려고 하는데 격려를 위해 전화가 수백 통이 왔다. 지인들이 ‘괜찮다’는 이야기를 전했는데 물론 그 분들도 다 나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었지만 '괜찮다’는 말도 듣기가 싫었다. 전화 벨소리가 울릴 때마다 심장이 내려 앉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일부러 전화기를 무음이나 진동으로 해놓고 다녔다.”

김상식은 전북현대에서 은퇴한 뒤 현재까지 코치로 일하고 있다. ⓒ전북현대

겉으로는 괜찮은 척 해도 국가대표라는 사명감이 주는 부담은 엄청났다. 김상식 코치는 현재 대표팀 후배들이 겪고 있는 스트레스에 대해서도 누구보다 잘 안다. “(김)영권이를 비롯해서 이번 대표팀 선수들이 욕을 많이 먹고 있질 않나. 그런데 다른 방법은 없다. 속된 말로 얼굴에 철판을 깔아야 한다. 뻔뻔해져야 하고 면역이 돼 있어야 한다. 나는 10년 전 이란과의 경기에서 공을 빼앗겨 실점한 뒤 그 장면을 다시 보는 게 너무나도 싫었다. 볼 때마다 ‘왜 저런 플레이를 했을까. 왜 그랬을까’ 수도 없이 생각했다. 하지만 그래도 계속 봤다. 그러면서 감정이 무뎌졌고 뻔뻔해졌다. ‘그럴 수도 있다’고 강한 마음으로 넘기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김상식 코치는 그러면서 “대중과 싸우라는 게 아니라 이런 식으로 ‘멘탈’을 강하게 하라는 것”이라고 오해가 없길 신신당부했다.

대표팀 분위기는 현재도 어수선하다.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2018 러시아월드컵 본선 무대에 진출하면서 9회 연속 월드컵 본선행이라는 목표를 달성했지만 여전히 여론은 좋지 않다. 김상식 코치는 국내파와 해외파 모두의 분발을 당부했다. “선수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뛰었으면 좋겠다”고 밝힌 그는 냉정한 분석을 이어나갔다. “K리그와 해외파 수준을 비교해 보면 어느 쪽이 더 나은지도 모르겠다. 해외파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 (박)지성이와 (이)영표가 있을 때는 더 큰 무대에서 뛴 이 선수들이 팀을 이끌고 소통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전체적으로 선수들 기량이 올라가야 하는데 해외파와 국내파 모두 기량이 답보상태다. 다 비슷비슷한 수준이다.”

물론 김상식 코치는 후배들의 상황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한다. “해외파도 당연히 고충이 있다. 먼 거리를 이동하며 경기를 하는 것도 힘들고 현지에서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스트레스도 엄청날 것이다. 실력은 멈춰 있는데 팬들이 원하는 기대치는 높다. 당연히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국내파 역시 발전할 필요가 있다. 지금 부족한 K리그 관중수가 우리 선수들의 실력을 대변하고 있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김상식 코치는 처음엔 웃으며 욕을 먹던 10년 전 이야기를 꺼냈지만 현 대표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누구보다도 온몸으로 비난을 받아왔던 선수였기에 현 대표팀 후배들에 대한 애정도 남다른 모양이었다.

마지막으로 김상식 코치는 후배들을 위해 한 마디를 던졌다. ‘카드캡터’ 김상식이라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대표팀에서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하면서도 늘 가장 많은 욕을 먹던 김상식이기에 더 와닿는 말이었다. “어린 선수들은 팬과 여론의 비난에 쉽게 흔들릴 수도 있고 정신력을 다잡기도 쉽진 않다. 하지만 그들은 그만큼 특권을 누리고 있다. 그 높은 위치라면 항상 책임감을 지녀야 한다. 원래 회사에서도 사장이 되면 책임질 일도 더 많아지고 욕도 더 먹지 않나. 기죽지는 말되 이런 대중의 비판도 당연하고 겸허하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언젠가는 이 시기도 웃으며 말할 수 있는 날이 온다. 그렇게 욕을 먹던 나도 잘 살고 있지 않은가. 난 이제 골프 치러 가겠다. 하하.” 그렇게 김상식은 골프채를 들고 필드에 나가 OB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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