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조현우가 골킥을 잘못 찼다는 이유로 대구의 골은 취소됐다. ⓒ프로축구연맹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과학 기술 발전은 스포츠도 변화시켰다. 특히나 영상 기술이 발달하면서 이제는 인간의 실수까지도 영상으로 잡아내는 시대가 됐다. 중요한 순간 애매한 판정이 펼쳐진다면 이제는 그 자리에서 영상을 분석해 주심에게 실시간으로 전달된다.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는 말이 더 이상은 허용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승패를 뒤집을 수 있는 중요한 순간에 벌어지던 오심은 VAR(video assistant referees) 도입 이후 눈에 띄게 줄었다. 과학 기술의 발전과 이를 스포츠의 한 영역으로 인정한 건 스포츠사의 흐름을 바뀐 대사건이었다. K리그 클래식 역시 올 시즌부터 VAR을 도입해 효과를 보고 있다.

에반드로의 골은 정말 무효였을까?

한 골로 승패가 가려지는 순간 주심은 비디오 영상을 본 뒤 판결을 내린다. 이 순간 경기장을 채운 관중은 숨을 죽이며 심판의 판정을 기다리고 텔레비전 앞에 모인 이들은 계속해서 반복되는 논란의 장면을 느린 화면으로 본다. 그러다 주심의 최종 판정이 떨어지면 한 팀은 웃고 한 팀을 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스포츠에서 볼 수 없던 장면이 이제는 보편화됐다. VAR 판정이 심판의 권위를 깎아먹는다는 지적도 있지만 심판도 사람이니 실수할 수 있다는 걸 이렇게 인정하니 경기는 더 공평해 지는 것 같다. 눈 앞에서 일어나는 플레이도 “못 봤다”며 악의적인 오심을 저지르는 건 더 이상 용납이 안 된다. 영상은 거짓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제(24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KEB 하나은행 2017 K리그 클래식 전북현대와 대구FC의 경기는 첨단 기술이 아무리 발전했어도 이를 이용하는 인간이 허술하면 오히려 역효과만 낸다는 걸 보여준 한 판이었다. 후반 39분 대구는 세징야가 오른쪽 측면을 돌파해 크로스했고 이를 에반드로가 가볍게 밀어 넣으면서 ‘거함’ 전북을 상대로 2-1로 달아났다. 하지만 이 골은 VAR 판독 이후 노골로 선언됐다. 처음 공격 전개 시 골키퍼 조현우가 정지된 볼이 아니라 흐르는 볼을 찼다는 판정이 나온 것이다. 결국 분노를 주체하지 못한 세징야는 이후 인플레이 상황에서 거친 플레이로 경고를 받고 퇴장 당했고 경기는 1-1 무승부로 끝이 났다.

이 판정에 대해서는 여러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VAR은 경기 결과를 바꿀 수 있는 명백한 오심 상황에서만 적용된다. 조현우가 골킥을 한 뒤 전북 신형민이 공을 차단하려다가 이 공을 흘렸고 다시 대구가 공을 잡고 공격을 진행했다. 그리고 이 상황은 골로 이어졌다. 그런데 과연 조현우의 골킥은 이미 진행된 뒤 한참 지난 상황이었고 경기 결과를 바꿀 만한 오심이라고 볼 수 있었을까. 이 골 상황에서 결정적인 장면의 시작은 전북 신형민이 공을 차단하려다 끊긴 것부터라고 봐야 한다. 조현우가 정지된 공이 아니라 흐르는 공을 찬 건 잘못이긴해도 이걸 득점 과정까지 쭉 이어서 연결하는 건 무리다. 마치 입소대에서 신검 받을 때 까치발 들고 키를 속였다고 21개월 뒤 제대를 인정해주지 않는 꼴이랄까.

VAR은 신뢰를 쌓아가고 있을까. ⓒ 스포츠니어스

골킥도 못 보는 심판 ‘줌인’만 하는 방송사

또 하나, VAR은 결정적인 장면만을 다뤄야 한다. 골문 앞에서 때린 슈팅이 골라인을 넘었는지 안 넘었는지, 페널티박스 안에서 핸드볼 파울이 일어났는지 안 일어났는지 등 골과 결정적인 연관이 있을 때만 써야 한다. 그런데 골문과는 한참 먼 반대편 골대에서 제대로 골킥을 차는지 안차는지까지 VAR에 맡기면 안 된다. 결정적인 찰나에 써야할 VAR로 골키퍼가 골킥을 어떻게 차는지까지 되돌려봐야 한다면 이건 심판의 직무유기다. 주심과 두 명의 부심이 골킥을 올바르게 차는지도 눈으로 판단할 수 없다면 심판이 하는 일은 거의 없다고 봐야한다. 이거 최첨단 영상 시스템 갖춰 놓고 영화 <클레멘타인> 보는 꼴이다.

골킥을 잘못찬 건 파울성 플레이도 아니다. 엉뚱한 위치에서 골킥을 하거나 움직이는 공을 골킥으로 연결할 경우 주심은 “다시 차라”는 신호만 준다. 여기서 못 잡아냈다면 이건 그냥 인플레이로 간주해야 한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부터 시작된 공격이 골로 연결됐다고 해 아예 득점을 인정하지 않는 건 너무 과도한 해석이다. 비약이 심한 예를 한 번 들어보자. 골킥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는데 3분간 플레이가 지속되자 득점으로 연결됐다. 그런데 주심이 영상을 돌려본 뒤 3분 전 골킥에 문제가 있었다면서 노골을 선언했다면 어떨까. 기가 찰 일이지만 어제의 상황과 비교해 보자면 충분히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다. 순간순간의 애매한 판정에 대해서만 VAR을 적용해야 하지 않을까. VAR을 ‘큰 그림’으로 써선 안 된다.

더 답답한 문제는 이 논란의 장면이 시청자들에게는 전혀 제공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중계사인 SPOTV는 리플레이를 보여주다가 아예 이 골 장면을 놓쳤고 논란이 된 조현우의 골킥 장면은 카메라에 제대로 담지도 못했다. 뭘 그래도 봐야 언론과 팬들도 가타부타 의견을 낼 텐데 아무런 정보도 제공되지 않은 상황에서 “VAR이 그렇다니 그런가보다”라고 하는 것 말고는 도리가 없다. 리플레이를 통해 왜 VAR 판정이 진행됐고 어떤 부분이 문제인지 볼 수 없으니 중계진도 이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대어’ 전북을 잡을 뻔한 아주 중요한 골이 무효 판정이 났는데 시청자들은 이 골 장면을 보지도 못했고 심지어 왜 무효가 선언됐는지도 경기가 끝날 때까지 알 길이 없었다. 심판 자질 문제야 그럴 수 있다고 해도 영상 하나 잡아내는 것도 못하면 VAR도 소용이 없다.

VAR은 신뢰를 쌓아가고 있을까. ⓒ 스포츠니어스

VAR이 완벽한 신뢰를 받으려면

답답한 건 SPOTV의 중계 기술 수준이 전혀 나아지질 않고 있다는 점이다. 속공 상황에서 갑자기 상대팀 감독의 클로즈업 한다던가 공중볼 경합 상황에서 공을 클로즈업 해버리는 기술은 SPOTV 중계만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골문 앞에서 중요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추가시간을 안내하는 대기심이 단독샷을 받기도 한다. ‘줌성애자’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매 경기 시청에 불편을 줄 만큼 경기 내용을 툭툭 끊어먹으며 누군가를 ‘줌인’한다. 리플레이 도중 골이 들어가는 경우도 다반사다. 스포츠 중계도 스토리를 입히면 대단한 그림을 연출할 수 있는데 SPOTV는 지금 이런 스토리 문제가 아니라 가장 기본적인 중계 방송 기술도 보여주질 못하고 있다. 제발 쓸 데 없는 리플레이와 ‘줌인’만 아니어도 중간은 갈 텐데 말이다.

중계 기술만 좋아져도 스포츠를 바라보는 재미는 배가 된다. 다양한 각도에서 경기를 바라보며 생생함을 안방에 전달해 줄 수 있다면 K리그도 유럽 축구 못지 않은 콘텐츠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역습 상황에서 상대팀 감독 얼굴을 비추고 슈팅 상황에서 추가시간을 안내하는 대기심이 단독샷을 받는 수준에서는 있는 경기도 제대로 보여줄 수가 없다. 언젠가부터 K리그 경기장에서는 지미집(크레인과 같은 구조 끝에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어 리모컨으로 촬영을 조정할 수 있는 무인 카메라)도 사라졌다. 예전 경기장에는 그래도 양쪽 골대 뒤에 두 대의 지미집이 설치돼 있어 팬들의 역동적인 응원 장면과 골대 뒤 모습을 담았지만 이제 K리그에서는 그런 모습도 쉽게 찾아볼 수 없다. 그나마 ‘티브로드 수원’이 가끔 지미집을 준비할 뿐 SPOTV가 이 정도 정성을 쏟은 걸 본 적은 없다.

중계 영상에서 VAR 판독하는 걸 보여주지 못하는 건 굉장히 부끄러운 일이다. 논란의 장면을 시청자들에게 제공해야 하는 건 스포츠 중계진의 의무다. 논란의 장면을 반복 재생해 가며 360도 회전하면서 입체적으로 보여 달라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조현우의 골킥과 그 이후의 플레이도 영상에 담아 놓지 못하면서 팬들에게 VAR을 믿으라고 하면 곤란하지 않을까. 중계 기술은 발전하는데 SPOTV는 늘 ‘줌인’만 해댄다. 심판 수준도 발전해야 하는데 골킥을 어떻게 했는지도 눈이 아니라 영상을 통해서 봐야한다. 기술력과 인간의 능력이 서로 이 정도 수준인데 우리는 이 사이에서 신뢰를 찾을 수는 있을까. 심판들과 VAR 기술, 그리고 영상을 담는 SPOTV 모두 팬들의 마음 속으로 그마만큼 ‘줌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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