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딩크 감독 ⓒ 네덜란드 축구협회

[스포츠니어스|조성룡 기자] 점점 길어지고 있는 히딩크 감독의 한국 국가대표팀 선임 논란에 또다른 이슈가 등장했다. 이번에는 히딩크 감독이 직접 나섰다. 14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히딩크 감독은 "한국 축구에 도움이 된다면 도움을 주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이로 인해 히딩크 감독 선임을 원하는 여론은 더욱 거세졌다. 이와 함께 김호곤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에게 여론의 집중 포화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히딩크 감독이 비공식적 채널로 대한축구협회 측 인사에게 의사를 타진했다고 밝혔고 그 주인공이 바로 김 부회장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얼마 전 히딩크 측의 접촉을 부인한 바 있다.

하지만 이 사건은 길고 긴 히딩크 감독 선임 논란의 일부분일 뿐이다. 우리는 꽤 많은 시간을 '히딩크'라는 이슈에 할애했다. 찬반 여론이 대립하면서 아직까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이 논란의 결말이 어떻게 맺어질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번 사건을 통해 한 가지는 파악할 수 있었다. 논란의 핵심에는 '메신저의 역할'이 있었다.

신태용 지키려던 김호곤, 오히려 더 흔들었다

우선 김호곤 부회장의 책임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히딩크 감독에 관한 이야기가 처음 나왔을 때 김 부회장의 반응은 "불쾌하고 어처구니가 없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대한축구협회는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김 부회장은 히딩크 감독 선임에 관해 어떤 얘기도 듣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히딩크 감독이 직접 나서서 말하자 김 부회장은 그제서야 '카카오톡'으로 메세지를 받았다고 말했다. 히딩크의 말대로 비공식적 채널을 통해 대한축구협회 인사와 접촉한 것이었다. 메세지 하나였기 때문에 '공식적인 접촉은 없었다'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불쾌하고 어처구니 없을' 정도는 아니지 않을까? 적어도 이런 기분이 들려면 정말 뜬금없이 이런 이야기를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이기 때문에 협회의 입장을 생각한 발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강경했다. 만일 정말로 어떠한 연락도 받지 못했다면 그의 발언은 좋게 포장해서 '뚝심'이라는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이 아님이 알려졌다. 본인도 시인했다. 국민들은 '말을 바꿨다'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신뢰가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

결과적으로 깊게 생각하지 않고 내뱉은 그의 한 마디는 부메랑이 되어 그를 향했다. 본인만 피해를 보는 것이 아니다. 가뜩이나 여론에 몰려 위태로운 신태용 감독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수 있다. 특히나 히딩크 감독의 인터뷰가 있기 전 대한축구협회 고위직 인사들이 줄줄이 입건됐다. 협회에 대한 신뢰도가 땅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 김 부회장의 말은 더욱 상황을 악화시키는 역할을 할 뿐이었다. 그는 신 감독을 지키고자 나섰지만 오히려 신 감독을 더욱 흔들어버렸다.

히딩크 재단은 한국 축구를 구원할 '선한 메신저'일까?

김 부회장과 더불어 비판 받아야 할 존재가 하나 더 있다. 히딩크 재단과 노제호 사무총장이다. 현재 김 부회장은 여론의 집중 포화를 맞고 있다. 그에게 실망감이 쏟아지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반면 히딩크 재단은 여론의 비난에서 한 발짝 비켜서 있다. 하지만 이들은 메신저의 역할을 잘못해도 한참 잘못했다.

히딩크 감독 부임설이 등장한 이후 히딩크 재단은 고자세를 유지했다. "히딩크 감독이 뭐가 아쉬워서 대한축구협회에 먼저 연락을 하느냐", "히딩크 감독이 두 경기 후 탈락할 수도 있는 대표팀을 맡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라는 등 언론을 통해 상당히 자극적일 수 있는 발언들이 이어졌다. 그의 입장에서 히딩크가 '갑'이었고 협회는 '을'이었다.

고자세 발언의 화룡점정은 공교롭게도 김 부회장에게 보낸 메세지였다. 모두가 말을 바꾼 김 부회장을 비판하고 있지만 이와 함께 주의깊게 봐야하는 것은 이 메세지다. 히딩크 재단이 대한축구협회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대로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긍정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진 이 메세지는 대한축구협회에 대한 존중을 찾아볼 수 없다. 전문을 다시 보자. "부회장님~ 2018 러시아 월드컵 한국 국대 감독을 히딩크 감독님께서 관심이 높으시니 이번 기술위원회에서는 남은 두 경기만 우선 맡아서 월드컵 본선진출 시킬 감독 선임하는 게 좋을 듯 합니다. 월드컵 본선 감독은 본선 진출 확정 후 좀 더 많은 지원자 중에서 찾는 게 맞을 듯 해서요~ㅎ"

사람들의 생각에 따라 이 메세지는 다르게 읽혀질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이 메세지가 '내정간섭'으로 읽힌다. '관심이 높으시'기 때문에 '기술위원회에서는 남은 두 경기만 맡을 감독을 선임하라'고 얘기한다. 덧붙여 '본선 감독은 진출 확정 후 더 많은 지원자 중에서 찾는 게 맞는 것 같다'고 전한다. 참고로 히딩크 재단은 대한축구협회의 결정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어떠한 자격도 없다.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이 메세지 내용을 공개하며 김 부회장은 "기술위원장으로 선임되기 전이라 대표팀 감독 선임에 대한 권한이 없었다"라고 말했다. 노 사무총장 역시 이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는 김 부회장에게 이런 메세지를 보낸 것일까? 단순히 히딩크 감독이 한국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만일 그랬다면 기술위원회의 감독 선임 방향에 대한 '사족'을 붙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히딩크 재단이 대한축구협회에 과도한 개입을 시도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만일 실제로 히딩크 감독 선임이 이루어졌다면 우리는 또다른 '비선실세'의 모습을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길고 긴 갑론을박, 물은 이미 엎질러졌다

이런 상황에서 흥미로운 것은 히딩크 감독의 인터뷰다. 히딩크 재단의 모습을 보면 그를 꼭 감독에 앉혀야 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하지만 막상 그의 발언은 달랐다. "감독이든 기술 자문이든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은 돕겠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심지어 그는 러시아 월드컵 때 미국 폭스 TV 해설자 제안을 받았고 하기로 약속했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감독직을 제안 받더라도 풀어야 할 과제가 있다는 뜻이다.

히딩크가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는 국내의 모습을 의식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히딩크 재단의 발언과는 꽤 다른 뉘앙스다. 그는 신태용 감독 선임에 대해 "대한축구협회의 결정을 존중한다"고도 말했다. 김 부회장에게 "불쾌하고 어처구니가 없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협회와 대립각을 세울 일은 아니었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인터뷰가 진작 이뤄졌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든다. 노 사무총장은 그동안 히딩크 감독의 생각을 묻는 미디어에 "내 말이 맞다. 히딩크 감독의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라고 말해왔다. 하지만 노 사무총장과 히딩크 감독의 생각은 분명 달랐다. 노 사무총장은 대표팀 감독 만을 고수했고 히딩크 감독은 보다 다양한 역할을 생각하고 있었다.

만일 히딩크 감독의 의중이 제대로 전해졌다면 어땠을까? 그동안 히딩크 재단의 발언을 살펴보면 히딩크 감독의 생각보다 꽤 많이 '오버'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의 말대로 "감독이든 기술 고문이든 한국 축구에 도움이 된다면 돕고 싶다"라는 말이 전해졌다면 지금처럼 치열하게 갑론을박을 벌이는 것보다 그가 러시아 월드컵을 위해 어떤 도움이 될지 고민하는, 지금보다는 좀 더 생산적인 토론이 벌어졌을 것이다.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메세지를 전달하는 메신저의 과정은 굉장히 중요하다. 메신저가 메세지를 왜곡한다면 전혀 다른 전개가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모습에서 메신저의 중요성을 실감한다. 히딩크 재단은 '호가호위'하는 모습으로 그의 메세지 중 '감독직'에 포커스를 맞춰 전달했고 본의 아니게 대한축구협회의 메신저가 된 김 부회장은 강경한 대답으로 궁지에 몰렸다.

이미 지나간 일을 되돌릴 수는 없다. 한 번 뱉은 말은 주워담을 수 없다. 엎어진 물이기에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무의미할 수 있다. 하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이 갑론을박 속에서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한 번은 고민해봐야 한다. 나비의 작은 날개짓 같은 잘못된 말 한 마디가 지금 한국 축구계에 태풍이 되어 몰아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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