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스 히딩크 감독 재부임 논란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프로축구연맹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일어날 리도 없고 일어나서도 안 되는 일들을 대중이 바라고 있다. 바로 한국 대표팀이 거스 히딩크 감독을 영입하는 일이다. 앞서 칼럼에서 소개했듯 이건 어려운 시기에 팀을 위기에서 구해낸 신태용 감독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히딩크 감독이 9개월 동안 팀을 바꿀 수도 없다. 신태용 감독이 부임 후 두 경기에서 보여준 경기력은 실망스러웠지만 한국 축구의 월드컵 본선 9회 연속 진출이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이뤄냈으니 그에게 약속한 대로 계속 기회를 주는 게 옳다. 하지만 여론은 그게 아니란다. 자꾸만 히딩크 감독을 모셔오란다. 무시무시한 대중의 집단 광기다.

[김현회] 이제는 히딩크 감독을 놓아주자 (보러가기)

상식이 없는 ‘히딩크교’ 신자들

히딩크 감독 부임은 상식적으로도, 도의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말이 안 된다. 신태용 감독이 원하는 성과를 냈고 계약 조건대로 그는 더 기회를 부여받아 2018 러시아월드컵 본선 무대에 가야한다. 이건 서류상의 약속이기도 하고 위기에서 팀을 구해낸 영웅에 대한 도의적인 예의이기도 하다. 그런데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도 히딩크 감독의 부임을 주장하는 이들은 이런 현직 감독에 대한 예의 따위는 신경도 안 쓴다. 상식을 이야기해도 “아 몰랑. 우리 히딩크 감독님이 다 해주실 거야”라고 한다. 팀을 구해낸 신태용 감독에 대한 배려는 눈꼽 만큼도 없다. 이건 선택지가 있는 게 아니다. 상식과 몰상식의 차이다.

그런데 상식이 통하지 않는 걸 보니 거의 종교 단체 수준이다. 15년 전 성과를 낸 감독 앞에서는 상식도 없으니 나는 이걸 ‘히딩크교’라고 부르고 싶다. 그들은 대한축구협회 전체를 적폐 세력으로 규정하고 원로 축구인들을 싸잡아 부역자라고 생각한다. 신태용 감독은 무능의 극치가 됐다. 그리고 히딩크 감독이 한국 축구를 구원하러 온다고 믿는다. 그러니 내가 이걸 ‘히딩크교’라고 하는 거다. 협회를 개혁해야 하는 건 맞지만 그건 다른 방향을 통해야 한다. 15년 전 한국 축구를 이끌었던 외국인 감독이 인지도와 명성, 성과를 앞세워 현 감독을 밀어내는 것도 적폐다. 그런데도 “한국 축구는 썩었으니 히딩크 감독이 와서 한국 축구를 구원해 달라”고 주장하니 이게 어찌 종교와 다를 게 있나.

집단 광기다. 여론이라는 무시무시한 힘을 배경으로 안 되는 걸 주장한다. 망해서 곧 문을 닫아도 이상할 것 없는 회사를 내가 밤새 일해 가며 살려 놨더니 갑자기 나를 해고하고 15년 전 이 회사를 번창시켰던 임원을 데려온다면 그걸 받아들일 수 있는 이가 있을까. 이렇게 알아먹기 쉽게 설명해도 “아 몰랑. 히딩크는 짱이야”라고 하면 그건 정말 광신도 인증이다. 히딩크 감독을 신으로 여기며 그의 부임을 바라는 이들은 여기에 신태용 감독이 무능하다고 믿으면서 자신들의 주장을 합리화한다. 애초에 좌초 위기였던 팀을 월드컵 본선 무대에 진출시키는 게 목표였고 이 목표를 완수한 이가 무능한 건가. 그래도 “아 몰랑. 신태용은 무능하고 협회는 적폐야”라고 주장할 건가.

신태용 감독은 위기의 한국 축구를 구해냈다. ⓒ프로축구연맹

매도 당하는 신태용 감독

이 집단 광기에 언론도 편승하고 있다. 심지어 전문성 없이 이슈나 훑고 지나가는 종합 편성 채널에서도 마치 히딩크 감독이 한국 축구를 살리기 위해 금방이라도 날아올 것처럼 분위기를 조성한다.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신태용 감독에 대한 예의, 상식, 약속 따위는 사람들에게 말해주지도 않는다. 상황을 깊게 파악하지 않은 대중은 15년 전 영웅이었던 히딩크 감독 영상을 보면서 그때를 추억하고 그가 성적을 보증하는 수표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여론은 점점 히딩크 감독 편이 되고 있다. 사이비 종교의 전도와 모양이 닮았다. 전혀 상식적이지도 않고 불합리한 일을 대중의 여론이라는 힘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이 정도면 거의 독재국가의 지도자를 찬양하는 수준이다.

이 종교 단체는 신태용 감독을 매도한다. 그가 무능력해야 신으로 여기는 히딩크 감독이 돌아올 수 있으니 단 두 경기만으로 신태용 감독을 평가절하한다. 신태용 감독이 프로 생활을 통해 지도한 경기가 수백 경기인데 단 두 경기만으로 지도력을 평가하는 전문성까지 갖췄다. 이뿐 아니다. 무능력에 무개념까지 덤으로 추가한다. 신태용 감독이 우즈베키스탄과의 경기가 끝난 뒤 이란-시리아전 결과가 나오지도 않은 상황에서 선수들로부터 축하 헹가래를 받았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건 사실이 아니다. 헹가래는 이란-시리아전 경기 결과가 다 나온 뒤 본선 진출 확정 소식을 듣고 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히딩크교’ 신도들은 사실을 부정한다. 신태용 감독이 개념 없이 다른 팀 결과도 듣지 않고 축하 세리머니를 했다는 것이다. 오보도 다 사실로 받아들인다.

이 사실을 이야기하면 그때 가선 “경기에서 이기지도 못하고 헹가래를 하는 것도 무개념 아니냐”고 한다. 태세전환이다. 신태용 감독을 어떻게든 흠집 내야 히딩크 감독이 돌아올 수 있다고 믿는 것 아닐까. ‘모든 나라는 그 나라 국민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가진다’는 말이 있는데 나는 ‘모든 나라는 그 나라 팬 수준에 맞는 축구 실력을 지닌다’고 말하고 싶다. 상식도 없고 예의도 없는 대중의 여론이 이렇게 들끓는 나라에서 우리가 축구 강국이 되는 건 불가능해 보이기 때문이다. 만약 히딩크 감독이 대표팀을 맡았다고 가정해 보자. 갑자기 조제 무리뉴 감독이 “내가 할래”라고 달려오면 그땐 어떻게 할 건가. 히딩크 감독을 내보내고 무리뉴 감독을 받을 건가. 누가 봐도 말이 안 되는 일에 우리는 지금 집단 광기를 보이고 있다.

신태용 감독을 적극 지지한다

이 시점에서 더 이상 현실성도 없고 일어나서도 안 되는 히딩크 감독 부임에 대해서는 앞으로 말하지 않겠다. 대신 지금 누구보다도 황당하고 불쾌할 신태용 감독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싶다. 설령 러시아월드컵에서 성적이 나오지 않더라도 그가 한국 축구를 위기에서 구해냈다는 점은 충분히 조명 받아야 한다. 월드컵에서 16강에 가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건 원칙과 약속, 예의를 한국 축구에 입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지금은 신태용 감독을 적극적으로 응원하고 싶다. 앞으로 월드컵을 준비하면서 그의 전술을 비판하고 선수 기용을 비판하는 건 언론의 당연한 역할이지만 적어도 감독 자리를 불합리하게 내놓으라는 주장은 하지 않을 것이다. 신태용 감독은 힘내라. 여론의 집단 광기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으면 한다. 러시아에서도 ‘난 놈’ 기질을 제대로 보여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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