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는 월드컵을 보다 더 현명하게 준비해 보자. ⓒRussianPresident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정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하지만 한국은 그래도 해냈다. 한국은 6일 자정 우즈베키스탄에서 벌어진 한국과 우즈벡의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0-0 무승부를 기록하며 A조 2위를 기록, 가까스로 월드컵 본선 무대에 합류했다. 경기력은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감격적인 월드컵 9회 연속 출전이라는 금자탑을 세웠다.

월드컵은 당연하지 않다

중간에 감독이 바뀌기도 했고 여론의 질타를 당하기도 했다. 이번에는 정말 월드컵 본선 무대에 나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도 팽배했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한국은 다시 월드컵 무대에 서게 됐다. 1986년 멕시코월드컵 이후 32년 동안 이 전통을 지켜냈다. 마음에 드는 경기력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선배들의 역사를 이어간 신태용호에 박수를 보낸다. 스포츠에서는 내용 이상으로 결과가 중요한 법이다.

한국은 월드컵 본선 진출 티켓이 아시아에 딱 두 장만 걸려 있을 때도 월드컵에 나갔다. 1994년 미국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서는 마지막 경기에서 운까지 따라주며 ‘도하의 기적’을 완성했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서는 ‘도쿄대첩’이라는 명승부를 이끌어 내기도 했다. 늘 월드컵에 나갈 때면 위기가 많았지만 이걸 다 이겨냈다. 9번이나 이 위기에서 늘 승자가 됐다는 건 한국 팬들이 한국 축구에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일이다. 아시아에서 강호라고 자처하는 이란이나 일본 등도 해내지 못한 일이다.

월드컵에 나가는 걸 당연하게 느끼는 이들도 많다. 나 역시 태어난 이후 단 한 번도 월드컵 본선 진출 실패를 경험해 본 적이 없고 요새 젊은 세대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태어나서 처음 본 월드컵에서 한국이 4강에 진출하는 걸 목격한 이들도 많을 것이다. ‘월드컵 진출 쯤이야’라고 생각하는 이들의 반응도 이제는 자연스럽다. 그래서 이제는 월드컵 본선쯤 나가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다들 잊고 사는 것 같다. 하지만 이번 월드컵 도전을 보면서 이 무대를 우리가 지금껏 당연하게 올라간 적 없다는 걸 새삼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으면 좋겠다.

경기력은 실망스럽지만 결과가 중요했다

우즈벡과의 경기는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우즈벡 정도 수준의 팀을 상대로 0-0 무승부에 만족해야 하는 상황은 그다지 기쁜 일이 아니다. 이 정도로 실망스럽게 월드컵에 나갔던 적도 없다. 만약 시리아가 이란과의 경기에서 한 골만 더 넣었더라면 우리는 지금쯤 우즈벡전 0-0 무승부에 엄청난 질타를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만큼은 결과로만 말하자. 한국은 감독이 경질되는 위기의 순간 위태위태한 경기력을 선보이면서도 2무승부를 기록하며 그래도 목표를 이뤄냈다. 후반 막판 그래도 우즈벡을 압도하며 큰 위기 없이 넘겼다는 점도 다행이다. 이것 하나만은 우리가 오늘 박수를 보내도 충분하지 않을까.

한국이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한다는 보장만 있다면 아시아지역 예선 3위로 B조 3위와 살 떨리는 플레이오프를 치르고 여기에서 이겨 북중미 4위팀과 홈앤드어웨이 경기까지 하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그래야 사람들이 월드컵 본선 진출이 얼마나 힘든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 바람(?)처럼 한국이 플레이오프를 거쳐 월드컵에 가지는 않았지만 많은 이들이 이번 레이스를 통해 월드컵 본선 진출이 대단히 어려운 일이라는 걸 느꼈다면 좋겠다. 우리는 좋은 시기에 태어나 이렇게 4년에 한 번씩 거르지 않고 월드컵을 경험하게 된 세대라는 것도 감사할 일이다.

한국은 월드컵에서 전통 아닌 전통이 있다. 비교적 어렵지 않게 출전했던 월드컵에서는 오히려 쉽게 무너졌고 힘들게 진출한 월드컵에서는 반대로 경기력이 더 괜찮았다.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 당시 한국은 아시아에서 단 1실점만을 하며 무패로 가볍게 월드컵 무대에 올랐지만 본선에서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3전 전패에 머물렀다. 벨기에와 스페인, 우루과이를 상대로 득점 6실점의 초라한 성적에 머물렀다. 그런데 1994년 미국월드컵 당시에는 기적이 일어나 가까스로 월드컵 본선 무대에 나섰고 비록 16강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독일, 스페인 등과 대등하게 싸우며 후회 없이 월드컵을 마쳤다.

한국은 이렇게 최초로 월드컵 무대에 선 뒤 이제는 월드컵 단골 손님이 됐다.

월드컵 진출이 이렇게 어려운 일입니다

이런 전통을 되새겨본다면 아마 내년에 열리는 러시아월드컵도 희망을 걸어볼 만하다. 역설적이지만 한국이 우여곡절 끝에 월드컵 본선 진출 티켓을 손에 넣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그 어렵다는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귀중한 티켓을 따냈고 국민들은 월드컵이 이렇게 진출하기 어려운 대회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원하는 목표를 이뤄냈고 이 목표 달성이 대단히 힘든 일이라는 것까지도 알았으니 적어도 오늘은 다른 문제점을 다 떠나 이 축제를 즐겼으면 좋겠다. 중간에 감독이 바뀌고 선수들은 비난받고 이러다 정말 세계인의 축제인 월드컵에서 들러리가 될 수도 있다는 걱정까지 하면서 월드컵 본선에 갔으니 더 이상 ‘월드컵 본전 진출은 기본이다’라는 말이 나오지 않길 바란다.

일부에서는 월드컵 본선 무대 진출에 한 번은 실패해 봐야 한국 축구도 개혁에 성공하고 발전할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개혁과 발전은 당연히 필요한 일이고 나 역시 동감한다. 하지만 월드컵 본전 진출 실패가 개혁과 발전을 보장하는 건 아니다. 한국 경제 발전과 개혁을 위해 다시 IMF를 겪어보자는 것과 크게 다른 말이 아니다. 굳이 위기 의식을 느끼기 위해 어려운 시절로 다시 돌아가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런 면에서 한국의 월드컵 본선 진출은 대단히 박수를 보내야 할 경사스러운 일이다. 문제점은 문제점대로 앞으로 차차 고쳐 나가자. 오늘은 어려운 상황에서 팀을 선택한 신태용 감독과 비난에도 최선을 다해준 선수들, 그리고 모든 국민들, 배가 나와 맞지도 않는 빨간 유니폼을 입고 응원한 나도 다 승자다.

더 반가운 건 우리가 이제 2022년 카타르월드컵에서만 이 관문을 잘 통과하면 앞으로 연속 출전 기록을 계속 늘릴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이다. 2026년 월드컵부터 48개국이 출전할 예정인데 그렇다면 아시아에는 약 8장의 월드컵 티켓이 배정될 것으로 보인다. 다가올 월드컵에 나가게 돼 10회 연속 본전 진출에 성공한 이후로는 어지간히 못해서 월드컵 본선 무대 진출에 실패할 수가 없다. 이제 한국은 그 관문을 아주 잘 넘겼다. 고비였던 우즈벡전을 잘 넘기며 엄청난 역사를 위해 한 발짝 더 다가간 한국 축구에 박수를 보낸다. 문제점은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월드컵 예선이었지만 그래도 우리가 또 꾸역 꾸역 월드컵에 나갔다는 게 중요하다. 월드컵 한 번 나가는 게 이리도 어려운데 우리는 이걸 9번이나 연속으로 해냈다는 건 충분히 박수를 받을 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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