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권은 말 한마디로 온갖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광저우헝다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스포츠스타들이 음주운전이나 도박 등 사고를 쳐 놓고 속죄하는 모습을 보이며 “경기력으로 사죄하겠다”고 하는 것 만큼 웃긴 일은 없다. 엄한 곳에서 사고를 쳐놓고 개인의 이득을 위해 경기에 임하는 건 사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연봉을 사회에 전액 환원하는 것도 아닌데 범법자들이 경기력으로 사죄하겠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범법 행위를 했으면 거기에 맞는 법적 처벌을 받는 게 속죄의 방법이다. 음주운전이나 도박 등 경기 외적인 범법 행위를 저지른 뒤 “축구로 보답하겠습니다” “야구로 사죄하겠습니다”라고 하는 건 말이 안 된다.

하지만 경기력과 관련한 논란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지난 3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한국과 이란의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경기가 끝난 뒤 대표팀 주장 김영권이 했던 말 한마디의 여파가 상당하다. 김영권은 “많은 관중 때문에 의사소통이 어려웠다”고 했고 대중은 이에 분노했다. 열심히 응원한 팬들에 대한 모독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런 자세로 경기에 임하고 인터뷰까지 한 김영권의 행동에 대단히 실망했다. 김영권은 경기가 끝난 뒤 집중포화를 맞았고 결국 사과했다.

화가 나는 건 사실이지만 결국 이건 경기력으로 사죄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애초에 이 논란 자체의 시작은 실망스러운 경기력부터였기 때문이다. 안방에서 열 명이 싸운 이란을 상대로 이기지 못한 뒤 관중 탓을 했으니 논란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경기에서 이겼으면 이런 말이 나올 여지도 없었다. 실망스러운 경기에 머문 뒤 인터뷰까지 그 모양으로 했으니 많은 이들이 분노하는 건 당연했다. 좋은 경기력을 선보였으면 이런 인터뷰를 했어도 ‘어려운 상황을 이겨낸 갓영권’이 되기 때문이다. 물은 이미 엎질러졌고 쓸어 담을 수도 없다.

이 논란을 깨끗이 씻는 건 우즈베키스탄과의 원정경기에서 시원한 경기력을 선보이는 것뿐이다. 김영권은 음주운전을 하지도 않았고 도박을 하지도 않았다. 범법자들이 “경기력으로 보답하겠다”고 하면 인정할 수 없지만 김영권이 일으킨 논란은 경기력으로 보답하면 다 잊혀진다. 지금이야 나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분노했지만 우즈베크를 깔끔히 이기고 “그땐 죄송했어요” 한 마디하면 또 금방 바뀌는 게 여론이다. 김영권이 우즈베크 공격을 꽁꽁 틀어막고 세트피스에서 한 골 넣기라도 한다면 그걸로 논란은 종결이다. 고개를 숙이고 사죄하고 말을 해도 이 논란은 잦아들지 않는다. 경기력으로 갚는 수밖에 없다.

김영권을 비롯한 일부 대표팀 선수들 입장에서는 억울한 것도 있고 확대해석하는 이들에게 화가 나는 것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자꾸 말이 많아지거나 핑계가 많아지면 계속 논란만 키울 뿐이다. 지금은 묵묵히 갈 길만 가야한다. 화나고 억울하다면 그걸 다 경기장에서 쏟아야 한다. 이 논란의 여파는 상당하지만 오히려 이게 김영권을 비롯한 선수들이 독을 품고 경기에 임하는 계기가 된다면 좋겠다. 오히려 이번 일이 팀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계기가 되지 말란 법도 없다. 나 역시 김영권의 발언에 실망스러운 마음은 금할 수 없지만 그들이 경기력으로 보여준다면 할 말이 없어진다. 내가 바라는 것도 그거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서로 적을 만들어 싸우는 게 아니라 월드컵 티켓을 따내는 것 아닌가.

김영권은 "많은 관중 때문에 의사소통이 어려웠다"고 해 논란을 일으켰다. ⓒ프로축구연맹

나 역시 욕을 많이 먹는 직업이다. 때론 하지 않았던 말을 한 것처럼 오해 받기도 하고 누군가 확대해석해 나를 손가락질 하기도 한다. 내 입장에서는 억울할 때도 많다. 물론 지금도 가끔은 이런 일로 ‘멘탈’이 나갈 때도 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이 시대의 성인군자인 샤다라빠의 말을 새긴다. “네가 글을 써서 버는 돈에는 대중이 너를 지적하고 욕하는 비용까지 포함돼 있어.” 나 역시 동의한다. 어떤 칼럼을 써도 대중이 무관심하다면 그게 더 비참한 일이다. 대중의 관심을 먹고 사는 연예인이나 작가, 평론가는 안티도 숙명이다. 물론 지금도 ‘멘탈’을 잘 부여잡지 못할 때가 있지만 이건 엄연한 사실이다.

스포츠스타, 그것도 한국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축구를 업으로 삼은 선수라면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더군다나 국가대표에서 주장 완장까지 찬 선수라면 당연히 일거수일투족이 대중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많은 연봉을 벌고 사회적 성공까지 누리면서 대중의 관심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 같다. 지금이야 김영권도 마음이 쓰리겠지만 또래에 비해 훨씬 더 큰 성공을 누린 위치에서 다소 과한 비판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느꼈으면 좋겠다. 샤다라빠가 말한 것처럼 축구를 해서 버는 돈에는 대중이 지적하고 욕하는 비용까지 포함돼 있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물론 그 돈을 중국에서 번다고 하더라도 축구라는 공통 분모는 같다.

많은 선수들이 감사한 마음으로 마지막 경기에 임했으면 한다. 내 주변에 있는 비인기종목 선수들은 이런 관심도 받아본 적이 없다. 경기장에서 경기를 하면 응원도 없고 야유도 없다. 때론 부당하다고 느끼기고 하고 억울하다고 생각할 때도 있겠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축구라는 종목을 택해 얻는 이익과 그로 인해 쏟아지는 비난과 스트레스의 크기를 따져보자. 텅 빈 경기장에서 대패해도 아무런 야유조차 없는 경기를 하고 마음 편해 하는 것보다는 그래도 헛발질 한 번, 논란이 될 말 한 마디에라도 반응하는 팬들이 있는 곳에서 경기를 하는 편이 훨씬 더 낫지 않은가. 아직도 한국에서는 축구가 이렇게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뜻이라고 받아들이자.

경기장에서 응원이건 야유건 뭐라도 들릴 때가 좋은 거다. 지난 해 탄천종합운동장에서 벌어진 성남FC와 강원FC의 승강 플레이오프 2차전이 끝나고 성남의 강등이 확정된 다음에는 경기장에 살기가 돌았다. 야유마저 사라진 경기장은 주심의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린 뒤 기나긴 침묵에 빠졌다. 지금껏 경기장에서 많은 야유도 들어봤지만 야유보다 더 무서운 건 이런 침묵이다. 강등 확정에 야유를 보내는 것보다 무관심과 침묵이 더 무섭다는 걸 이때 처음 알았다. 응당 축구선수라면 작은 행동 하나 하나에도 반응을 보이는 팬들이 있을 때 더 신나는 축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대중의 성난 반응도 그만큼 축구와 나 자신이 주목받고 있다고 받아들였으면 한다.

실망감이 큰 발언이었지만 김영권은 “축구로 갚겠다”고 할 자격이 있고 그럴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술을 먹고 운전을 한 것도 아니고 도박을 한 것도 아니다. 나 역시 분노한 대중 가운데 한 명이었지만 화가 가라 앉으니 결국 김영권을 비롯한 대표팀 선수들에게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건 응원 뿐이다. 김영권의 속마음까지 들여다 볼 순 없으니 지금 그가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정말 속죄하건, 아니면 억울하고 화가 나는데 표면적으로 사과를 했건 결론은 딱 하나다. 이 논란을 이겨내는 건 경기력으로 보여주는 것뿐이다. 대중은 굉장히 똑똑해 보이지만 이럴 때면 또 되게 순진하기 때문이다. 김영권을 비롯한 태극전사들이 우즈베크에서 꼭 원하는 성과를 가지고 돌아오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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