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국은 정말 ‘역대 두 번째 최고령 국가대표’일까?


이동국
이동국 ⓒ 전북 현대 제공

[스포츠니어스|조성룡 기자] 정말로 이동국(전북 현대)은 역대 두 번째 최고령 국가대표가 맞을까?

최근 <스포츠니어스>에 한 통의 독자 제보가 들어왔다. “이동국이 역대 두 번째 최고령 국가대표가 아니다”라는 내용이었다. 그는 “故 김용식 선생이 역대 최고령 A매치 출전 기록을 가지고 있는 것도 의문이다. 다시 정확히 따져봐야 한다”고 <스포츠니어스>에 팩트체크를 요청했다. 독자의 의견에 따라 <스포츠니어스>는 역대 최고령 A매치 출전 기록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우리가 몰랐던 역대 최고령 국가대표, 故 박규정

현재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최고령 대표 선수의 기록은 故 김용식 선생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1950년 4월 15일 홍콩전에 출전하며 이 기록을 보유했다. 당시 나이는 39세 274일이었다. 이동국은 이번 이란전에서 후반 44분 교체로 투입되며 약 38세 4개월의 나이로 A매치에 출전했다. 기존의 기록이 맞다면 이동국은 역대 두 번째 최고령 A매치 출전 선수로 기록된다.

하지만 이 독자는 “A매치 최고령 기록은 좀 더 따져봐야 하지만 적어도 故 김용식 선생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고 주장했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 출전하는 등 한국 축구의 또다른 전설적 인물인 故 박규정 선생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일제강점기와 광복 후 한국의 축구 역사에서 종종 등장하는 인물이다.

그는 일제 강점기 시절 1938년 프랑스 월드컵에 대비해 1936년 11월 소집한 일본 국가대표팀 명단에 김용식 등과 함께 이름을 올렸다. 당시 한국의 대표 축구 경기 중 하나였던 ‘경평전’ 멤버기도 했다. 광복 이후 굵직한 세계 축구 이벤트에도 참여했다. 1948년 런던 올림픽 본선 출전을 비롯해 1954년 한국의 첫 본선 무대였던 스위스 월드컵에도 출전했다. 그는 1954년 6월 20일 스위스 월드컵 본선 두 번째 경기인 터키전을 마지막으로 국가대표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스위스 월드컵 멤버
1954 스위스 월드컵 멤버 중 故 박규정 선생(위에서 세 번째 줄 가운데)을 찾아볼 수 있다

대한축구협회의 기록에는 故 박규정 선생이 1924년 6월 12일 생으로 나온다. 대부분 그를 1924년 생으로 기록하고 있다. 만일 그렇다면 독자의 주장은 무의미하다. 스위스 월드컵에 참가할 당시 그는 만 30세라는 이야기다. 최고령 국가대표와는 한참 거리가 멀다. 하지만 생년이 달라진다면 이야기도 달라진다.

과거 故 박규정 선생에 대한 경향신문 등의 언론 보도를 보면 대부분 그를 1914년 생으로 표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는 틀린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1914년에 좀 더 무게감이 실린다. 1936년 그는 일본대표팀에 소집됐다. 대한축구협회의 기록이 맞다면 그는 만 12세의 나이에 일본대표팀에 승선한 것이다. 불가능한 이야기다. 만일 그가 1914년 생이라면 그는 만 40세의 나이로 스위스 월드컵에 출전했다. 故 김용식 선생의 기록을 뛰어넘는 것이다.

알고보니 이동국은 3위? 그것도 글쎄…

그렇다면 이동국이 역대 최고령 국가대표 3위라는 것일까? 이것도 확실하지 않다. 서성오 선생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故 김용식, 박규정 선생의 다음 세대라고 볼 수 있다. 1964년 아시안컵에서 처음 국가대표로 데뷔했고 1971년 이란과의 친선경기, 뮌헨 올림픽 예선전을 끝으로 국가대표에서 은퇴했다.

그의 나이는 확실하지 않다. 1970년대 축구 잡지 <월간 축구>에 1933년 1월 7일로 나온 것이 가장 상세한 기록이다. 하지만 이후 각 언론의 보도마다 33~35년 생으로 조금씩 다르게 표기되어 있다. 서 선생의 마지막 국가대표 출전 기록은 1971년 10월 4일 대만과의 뮌헨 올림픽 예선전이었다. 현재 이동국과 비슷한 나이대라고 볼 수 있다.

<월간 축구>의 기록이 맞다면 그는 만 38세 8개월 가량의 나이에 대표팀 경기에 출전했다. 하지만 언론 보도들 중 최소치인 35년 생으로 잡는다면 그는 만 36세 8개월에 마지막 경기에 출전한 셈이다. 그의 정확한 생년월일에 따라서 이동국의 기록 또한 정확해질 것으로 보인다. 아쉽게도 대한축구협회에는 그의 생년월일이 1999년 99월 99일로 기록되어 있다. ‘알 수 없음’이라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아직까지 한국 축구의 기록과 역사는 불완전하다. 맞춰지지 않은 퍼즐이 많다. 최근 정부는 보훈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국가를 위해 희생한 분들을 최대한 예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국 축구도 이에 발을 맞춰가야 한다. 물론 금전적인 혜택을 제공하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그 분들의 소중한 기록 하나 하나를 잘 간직하는 것이 첫 걸음 아닐까.

wisdragon@sports-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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