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회] 신태용 감독이 이리도 ‘새가슴’이었단 말인가


신태용 감독
신태용 감독은 월드컵을 준비하면서 정말 많은 고생을 했다. ⓒ프로축구연맹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나는 신태용 감독의 열렬한 팬이다. 스스로 ‘난 놈’이라고 표현하는 그는 시원시원한 용병술과 언변을 자랑한다. 탈권위적인 모습과 독특하고도 공격적인 전술 역시 내가 신태용 감독을 좋아하는 이유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 후임으로 그가 대표팀을 맡는다고 했을 때 이런 식으로 또 한 명의 소중한 자원이 땜질식으로 소비되는 건 아닌지 걱정했을 정도다. 신태용 감독은 스스로를 ‘난 놈’이라고 했고 나는 이렇게 잘난 척을 하면서도 성과로 보여주는 그를 전적으로 지지한다. 물론 지금도 신태용 감독의 능력을 믿고 응원한다.

대단히 실망스러웠던 교체 카드
하지만 8월 3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한국과 이란의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경기는 실망 그 자체였다. 지금껏 봐 왔던 신태용 감독의 모습이 전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난 잘 났어”라고 스스로 말했고 누구나 다 그 능력을 인정했던 신태용 감독의 그 자신감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슈틸리케 감독 시절에 비해 전혀 달라진 게 없었다. 며칠 만에 전술을 입히고 컬러를 바꿀 수는 없으니 대단한 경기력을 바란 건 아니다. 하지만 교체 타이밍과 용병술을 보며 과연 이게 신태용 감독의 축구인지 의심부터 갔다. 신태용 감독이 이리도 ‘새가슴’ 전술을 쓸 줄은 몰랐다.

후반 6분 이란의 에자톨라히가 퇴장을 당하면서 한국은 수적 우세를 잡았다. 이미 4승 4무를 기록하며 러시아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지은 이란은 이기는 것보다 실점하지 않는 게 더 중요한 승부였다.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서 무실점을 기록 중인 이란은 전경기 무실점으로 월드컵 본선 무대에 가고픈 열망이 강했다. 거기에다 한 명의 선수까지 잃었으니 이란이 잔뜩 웅크린 채 남은 시간을 보내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한국은 후반 6분 이후 완벽히 기세를 잡았어야 했다. 이재성과 권창훈, 황희찬, 그리고 이 경기에서 실망스러운 손흥민 중 누구라도 먼저 빼고 새로운 공격 옵션을 투입해야 했다.

벤치에는 공격적인 카드가 많았다. 김신욱도 있었고 이근호도 있었다. 이동국도 한 방을 지니고 있었다. 평소 신태용 감독이라면 여기에서 ‘난 놈’다운 모습을 보였어야 했다. 수비적인 부담은 있어도 전진하는 게 신태용 감독 스타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태용 감독은 수적 우세를 잡고도 무려 20분 동안 변화 없는 경기를 펼쳤고 첫 교체 카드를 후반 27분에야 썼다. 이재성 대신 김신욱을 투입한 것이었다. 상대는 이미 승리보다는 무실점에 중점을 둔 상황에서 너무 소극적인 대처였다. 이근호와 이동국 등은 잠깐 몸을 풀다가 아예 벤치로 들어와 있었다. 신태용 감독은 한 명 적은 이란을 상대로, 그것도 홈에서 골을 넣고자 하는 열망이 부족했다.

신태용 감독
그는 과연 이런 수비적인 전술을 썼어야 했을까. ⓒ프로축구연맹

이란 잡을 기회, 쉽게 오지 않는다
이근호를 투입해 측면 공격을 살리고 이동국을 내세워 김신욱-이동국 조합으로 강하게 몰아쳐야 했다. 아니 꼭 이들이 아니더라도 김보경을 넣건 염기훈을 넣건 변화를 줘야 했다. 누구를 쓰지 않았다고 비판하는 게 아니라 감독이라면 이 상황에서 뭐라도 해야 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은 거다. 그런데 신태용 감독은 이 급박한 상황에서 후반 38분 중앙 수비수 김민재를 대신해 같은 포지션의 김주영을 투입했다. 공격과는 아무런 상관 없는 교체였다. 김민재가 부상으로 더 뛸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 장현수를 수비로 내리고 한 명이라도 더 팔팔한 공격수를 투입해야 했다. 이렇게 경기 막판 비기고 있는 상황에서 수비수를 맞바꾸는 건 지금까지 본 신태용 감독 스타일이 아니다.

그리고 후반 42분 이동국을 투입했다. 이건 사실상 경기 흐름과는 큰 상관없는 교체였다. 후반 종료 직전 투입된 이동국이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이동국은 가슴 트래핑 후 슈팅 한 번을 날린 뒤 땀에 젖지도 않은 채 경기를 마쳐야 했다. 샤워를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이동국은 제대로 뛸 기회도 없었다. 이동국을 이 늦은 시간에 투입한 건 어떤 전술적인 의미도 부여할 수 없다. 교체 카드 한 장을 쓰지 않은 것과 같다. 이란을 상대로 무승부만 거둬도 만족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 선수 운영이었다. 이란에 4연패를 당했던 한국으로서는 그들을 상대로 무승부만 거둬도 될 만큼 여유가 있었던 게 아니었는데도 신태용 감독은 꽁무니를 뺐다. 과연 다시 이란을 잡을 절호의 기회가 언제쯤 올까. 우리보다 냉정하게 한 수 앞서 있는 이란을 상대로 수적 우위를 점한 채 안방에서 경기를 치른 기회는 당분간 오지 않을 것이다.

더 답답한 건 같은 시간 중국이 우즈베키스탄을 1-0으로 잡았다는 점이다. 한국은 이란을 상대로 한 골만 넣으면 바로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지을 수 있었다. 그런데도 한국은 무승부에 만족하는 듯한 수비적인 모습에 머물렀다. 다른 감독도 아니고 ‘난 놈’이라고 스스로 자부하던 신태용 감독이 이런 수비적인 경기를 했다는 것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 ‘난 놈’은 이럴 때 공격을 해 골을 넣고 기회를 놓치지 말았어야 한다. 위기의 순간 지도자 인생을 걸고 대표팀 감독직을 수락한 감독이라면 이럴 때 승부사 기질을 발휘했어야 한다. 하지만 중국이 밥상까지 차려줬는데 신태용 감독은 이 밥상을 물렀다. ‘삼땡’ 정도는 잡고 있는 유리한 판에서 레이스를 하지 않고 그냥 죽었다. 그리고 스스로 모든 운명을 우즈벡과의 다가올 원정 경기로 미뤘다.

한국 국가대표팀
한국은 우즈벡과의 마지막 원정경기에서 월드컵 본선 진출을 걸고 싸우게 됐다. ⓒ중계 방송 화면 캡처

신태용 축구는 원래 이러지 않았다
이란전에서 승부를 걸었어야 한다. 우즈벡과의 원정경기에서 한국이 무승부 이상을 거두리라는 보장은 없다. 홈에서 무조건 이겨야 사상 최초의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짓는 우즈벡과 비겨도 올라갈 여지가 있는 한국의 경기라면 우즈벡이 훨씬 더 나은 환경이라고 생각한다. “비겨도 올라갈 수 있다”는 조건에서 이 상황을 유리하게 끌고간 경우는 별로 본 적이 없다. 우즈벡과의 경기에서 무승부를 기록하고 있다가 후반 막판 상대의 거센 공세를 틀어막으며 쫄깃한 축구를 꼭 해야하겠나. 그것도 무슨 홍콩 구정컵이나 칼스버그컵도 아니고 월드컵 본선 진출 티켓을 놓고 그런 축구를 해야 하나. 다음 패로 뭐가 들어올지도 모르는데 우리는 ‘삼땡’이 든 판에서 레이스를 걸지 않고 죽은 채 다음 패에 ‘올인’을 할 예정이다.

이건 신태용 감독의 패착이다. 나는 지금껏 신태용 감독의 팬이었지만 이번 경기는 너무나도 실망스러웠다. 다른 감독들보다 훨씬 더 강심장이어서 신태용 감독을 좋아했는데 이란전은 쫄아도 너무 쫄았다. 스스로 ‘난 놈’이라고 자부했던 그였기에 더더욱 실망스럽다. 중국이 우즈벡을 잡아주고 이란은 한 명 퇴장까지 당해줬는데 이런 천운을 잡지 못하면 ‘난 놈’ 소리를 들을 수 없다. 시리아가 우즈벡을 잡아주고 중국도 우즈벡을 이기면서 우주의 기운이 한국으로 다 쏠리는데 한국은 우주의 기운을 거스를 만큼 ‘쫄보’였다. 우리 스스로 판을 불리하게 만들었다. 한국이 우즈벡과 비겨도 월드컵에 올라갈 수 있으니 유리한 판이 절대 아니다. 더군다나 시리아가 조 3위로 올라오며 한국은 우즈벡전 무승부로도 본선 진출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그들을 비하할 생각은 없지만 시리아와 우즈벡이 아시아예선 마지막 경기까지 본선 진출의 희망을 품게 만들었다는 것 자체를 우리는 부끄럽게 생각해야 한다. 이 두 팀은 단 한 번도 월드컵에 나가본 적이 없다.

신태용 감독은 K리그에서 공격적이고 때론 상식을 파괴하던 전술 운용으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그런 신태용 감독이 유리한 국가대표팀 경기에서 엉덩이를 뒤로 쭉 뺀 채 쉐도우 복싱만 하다 90분을 보냈으니 믿을 수 없다. 신태용 감독의 이런 축구는 처음 봤다. 경기력도 시원시원하고 승패를 떠나 후회 없이 싸우는 신태용 감독의 스타일이 전혀 발휘되지 않았다는 점은 상당히 실망스럽다. 지지 않는 축구도 중요하고 그 상대가 이란이었으니 뼈아픈 패배를 피하려는 전술도 좋았지만 이렇게 수적 우세를 앞세워 6만 넘는 홈 관중 앞에서 막판에는 이란을 상대로 총공세를 펼쳤어야 하지 않을까. 신태용 축구는 원래 그런 것 아니었나.

신태용이 이리도 ‘새가슴’이었단 말인가
어려운 상황에서 팀을 맡은 신태용 감독의 용기에는 박수를 보낸다. 그는 지금껏 쌓아온 모든 업적이 한 방에 무너질 수 있는 어려운 결정을 했다. 하지만 그런 용기로 선택한 일이라면 훨씬 더 공격적이어야 한다. 이렇게 제대로 싸워보지도 않고 지도자 경력에 흠집이 나면 그보다 후회스러운 일은 없기 때문이다. 홈에서 한 명이 적은 이란을 상대로 비겨도 만족한다는 식의 선수 교체는 우리가 신태용 감독에게 원한 모습이 아니었다. 신태용 감독이 이리도 ‘새가슴’이었단 말인가. 신태용 감독 스스로 자신의 장점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한국은 이기라고 하늘이 도와준 경기를 놓쳤다. 잘 준비해서 우즈벡하고는 꼭 비기자. 아니 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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