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보물' 한석종을 만났다.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입단한 지 이제 7달밖에 안 된 선수가 있다. 주전 경쟁에서 밀려 시즌 개막 후 한 동안 경기에 나오지도 못했던 이 선수는 지금껏 이 팀 유니폼을 입고 22경기를 뛴 게 전부다. 하지만 7개월 만에 이 선수는 ‘보물’이 됐다. 어느덧 이 팀에서 이 선수가 없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됐다. 바로 인천유나이티드 미드필더로 중원을 휘젓고 있는 한석종이 그 주인공이다. 요즘은 ‘갓석종’으로 통하는 ‘인천의 보물’ 한석종을 어제(24일)직접 만나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

반갑다. K리그 클래식이 휴식기에 들어갔다. 어떻게 지내고 있나.

월요일부터 목요일인 오늘(24일)까지 나흘을 쉬었다. 오랜 만에 친구들도 만나고 그랬다. 집이 전남 광양인데 원래 휴식기 동안 며칠 광양에 내려가서 쉬려고 했다. 그런데 우리가 며칠 쉬고 광양으로 전지훈련을 간다더라. 광양에 가면 불고기 먹는 거 말고는 별로 할 게 없는데 내려갔다가 올라와서 다시 전지훈련을 하러 광양에 다시 가는 건 피곤해서 그냥 짧은 휴가 기간 동안 인천 집에 있었다.

언제 광양 전지훈련을 시작하나.

금요일(25일) 광양으로 출발한다. 거기에서 일주일 동안 훈련을 할 예정이다. 아무래도 시즌 중 전지훈련이다보니 체력 훈련보다는 조직력 훈련이나 그런 부분에 더 중점을 둘 것 같다. 일단 골 결정력을 많이 보완해야 할 것 같고 그 다음에는 뭐 감독님이 알아서 하실 거다. 우리는 감독님을 믿고 시키는 대로 열심히 할 뿐이다.

최하위권에서 허덕이다 최근 2연승이라는 놀라운 성적을 냈다. 상승세를 타고 있는데 리그가 중단돼 아쉽진 않나.

물론 상당히 아쉽다. 팀이 연승을 하면서 분위기가 하늘을 찌를 정도로 좋다. 나 역시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는 것도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 짧은 기간 동안 더 좋은 팀을 만들면 된다.

한석종은 강원FC를 4년 만에 K리그 클래식으로 올려 놓는데 일등공신이었다. ⓒ강원FC

그런 자세 좋다. 그렇다면 올 시즌 이적에 관한 이야기부터 해보자. 지난 시즌 강원의 K리그 클래식 승격 주역으로 활약했지만 결국 강원을 떠나게 됐다.

지난 시즌이 강원과 계약기간이 만료되는 해였다. 속으로도 다른 팀에서 한 번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강원 구단 쪽에서도 재계약 이야기가 없었다. 계약 만료가 다가오고 있어 국내보다는 해외 쪽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에 갈 곳을 알아보고 있었다. 그러다 강원 부단장님하고 면담을 했는데 솔직히 말하면 조건이 현실적으로 내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아마 내 활약에 대해 만족을 많이 못 하셨던 것 같다. 이름 있는 선수들을 영입하려고 계획을 미리 짜고 있던 건지는 몰라도 3년 동안 있던 팀이었는데 재계약 조건을 듣고는 서운한 마음이 없진 않더라. 그래서 “그러면 다른 팀을 알아보겠다. 감사했다”고 하고 나왔다.

그렇다면 이걸 강원이 잡지 못했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당신이 함께 할 의지가 없었다고 해야 하나.

최윤겸 감독님이 워낙 좋은 분이시고 승격까지 하면서 좋게 한 시즌을 마무리했다. 감독님도 함께 K리그 클래식으로 가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도 함께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다. 1년 동안 이미 감독님과 함께 하면서 호흡도 잘 맞아 장점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솔직히 재계약 조건은 기분이 상할 정도로 내 입장에서는 터무니가 없었다. 그렇다고 팀을 나쁘게 떠난 건 아니고 계약 만료 시점에 서로에 대한 입장 차이가 있었던 것 정도다.

만약 강원이 그보다 더 좋은 조건을 제시했더라면 강원에 남았을 것인가.

그랬을 수도 있다. 그런데 강원이 승격을 하면서 선수들을 싹 다 물갈이하지 않았나. 승격을 이룬 입장에서는 아쉬운 부분이 있다. 남 좋은 일을 시켰나 싶은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다. 하나로 뭉쳐서 승격을 이뤄낸 건데 승격하면 뭐 다 해줄 것처럼, 돈도 많이 올려주고 그럴 것처럼 하다가 물갈이가 되니 그런 부분은 아쉬웠다. 그 과정에서 팀을 찾다가 축구를 그만둔 동료들도 있다. 프로니까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는 것도 잘 알지만 그래도 아쉬운 건 아쉬운 거다.

도대체 재계약 조건이 어떻기에 그랬나. 말도 안 되는 수준이었나.

말이 아예 안 되는 건 아니고 어떻게 보면 말이 되긴 하는데 기분은 좀 나빴다.

강원과 계약 만료 이후 새로운 팀을 찾는 과정은 어땠나.

여러 군데에서 제안이 있었다. 그런데 나는 일본에 가서 한 번 뛰어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실제로 J리그 구단과도 이야기가 오갔다. 나는 J리그 구단 쪽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었고 다른 K리그 구단은 내 결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K리그 구단들은 날 오래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내가 그렇게 시간을 끌다 J리그로 가 버리면 대안을 찾아야 할 것 아닌가. 그래서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하고 J리그 구단에 어떤 식으로건 빨리 결정을 내달라고 했는데 그쪽에서도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고 하더라. 결국 그러다가 양 쪽 다 안 됐다.

그렇다면 인천과는 어떻게 이야기가 진행된 건가.

내가 팀을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는데 어느 날 이기형 감독님한테 전화가 왔다. 원래 이기형 감독님이 FC서울 코치로 계셨는데 지금은 강원에 있는 (정)승용이 형과 서울에서 함께 한 인연이 있었다. 이기형 감독님이 승용이 형한테 나에 대해 이미 물어본 적이 있다더라. “한석종이 어떠냐”고 전화를 해서 승용이 형이 “잘한다”고 좋은 이야기를 많이 했단다. 이기형 감독님이 내가 그 시즌을 끝으로 강원과 계약기간이 끝나는 것도 알고 있는 상황에서 시즌 중에도 계속 나를 보고 있었다고 하시더라. 인천이 임대로 썼던 김원식 선수와 계속 하려고 했는데 잘 안 되면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뛸 선수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포지션에 필요한 선수를 찾다가 나를 발견하신 모양이다. 그렇게 감독님하고 처음 통화를 하게 됐다.

이적 이야기가 바로 진행됐나.

사실 비슷한 시기 인천보다 조금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한 팀이 있었다. K리그 챌린지였다. 그래서 고민하고 있는데 이기형 감독님 말씀 한 마디에 결정을 내리게 됐다. “돈 1,2천 가지고 고민하지 말자. K리그 챌린지에서는 목표가 K리그 클래식으로 올라오는 건데 K리그 클래식은 목표가 더 큰 무대로 가는 거다.” 사실 주저주저 하다가 이 이야기를 듣고 결정했다. 날 오랜 시간 지켜봐 오셨다고 해 믿음도 갔다.

혹시 제안을 보낸 K리그 챌린지 팀이 성남이었나.

말 할 수 없다.

그렇다면 부산 아닌가.

그것도 노코멘트하겠다.

한석종은 강원FC를 4년 만에 K리그 클래식으로 올려 놓는데 일등공신이었다. ⓒ강원FC

알겠다. K리그 클래식보다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할 수 있는 K리그 챌린지 팀이 많지는 않아서 물어본 거다. 인천에 와보니 강원과 비교해서 어떤가.

강원은 클럽하우스도 있고 훈련장도 바로 앞에 있어서 운동에 전념하는 건 좋다. 그런데 쉴 때는 주변에 할 게 별로 없어 항상 숙소에만 있었다. 그 반면 인천은 아예 숙소가 없다. 그전까지 쓰던 숙소가 있는데 고등학교 선수들한테 편하게 쓰라고 아예 내주고 우리는 다 나가 산다. 2군 선수들도 숙소 생활을 하지 않는다. 출퇴근하고 그런 건 좋은데 훈련을 하려면 항상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는 점은 불편하다. 문학주경기장과 보조구장, 인천축구전용경기장, 승기구장 등을 돌며 훈련한다.

강원에 비해 쉬는 날 할 건 많을 것 같다. 당신은 인천 어디 사나.

구월동에 산다.

거기 놀기 좋은 곳 아닌가. 나도 구월동에서 몇 번 헌팅을 한 적이 있다.

나는 그쪽에서 놀아보지 않아 잘 모르겠다.

그렇게 믿겠다. 5라운드 포항과의 경기 전까지 벤치만 지켰으니 그 위기의 시간 동안 구월동에서 헌팅을 하고 있다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이야기긴 하다.

첫 전지훈련을 태국으로 갔는데 거기에서 발목을 다쳤다. 그 이후 회복을 하고 다시 운동을 하는데 컨디션이 안 올라오더라. 감독님도 내가 더 노력하고 운동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하셔서 나를 2군으로 내려 보냈다. 1군보다는 2군 훈련량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때를 기다렸다. 개막할 때는 이미 부상에서 다 회복한 상태였는데 컨디션이 안 좋을 뿐이었다.

이적하고 갑자기 후보가 됐으니 초조했을 것 같다.

그 부분에 대해 내가 안일하게 생각한 것 같다. 인천에서 내가 필요해 영입했으니 곧 경기에 나가겠다고 쉽게 생각했다. 감독님도 내가 허술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고 계셨던 모양이다. 감독님도 나를 경기에 내보내려고 하면 내보내셨을 텐데 계속 선택해 주지 않으셨고 지켜만 보셨다. 그 시기에 운동을 많이 했다. 원래 개인 운동도 많이 하는 스타일인데 많이 보여주려고 했다. 눈에 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올해로 4년차인데 항상 시즌 초반에는 경기에 못 나간다. 이런 걸 바꾸고 싶은데 잘 안 바뀐다. 초반에 좀 느슨해지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당신은 5경기 만에 처음으로 선발 출장해 장렬하게 레드카드를 받고 퇴장 당했다.

그때는 얼굴도 못 들었다. 인천 데뷔전이었는데 41분 만에 퇴장 당했다. 우리가 공격을 한창 하고 있다가 코너킥을 얻었다. 부노자가 때린 슈팅이 골대를 맞고 나한테 흘러 나왔는데 그때 포항 골문이 비어 있었다. 그런데 내가 왼발로 갖다 된 공이 골문을 넘어갔고 아깝게 득점 기회를 놓쳤다. 그리고 상대 골킥이 이어져 내가 헤딩을 하면서 도움닫기를 했는데 이 공이 내 머리에 맞고 포항 롤리냐 머리에 맞았다. 큰 충돌이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심판이 퇴장을 선언했다. 내가 팔꿈치로 롤리냐를 가격했다는 것이었다. 난 내 팔꿈치에 뭐가 닿은 느낌도 없었다.

하지만 이 판정은 결국 오심이었다. 연맹은 상벌위원회를 열어 당신의 징계를 감면했다. 데뷔전에서 무척이나 억울한 일을 당했다.

많이 억울하긴 했다. 데뷔전이고 흐름도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패를 끊어야 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내가 퇴장을 당하고 바로 골을 먹었다. 감독님 얼굴도 못 보겠더라. 하지만 전반전이 끝난 뒤 분석관이 보여준 영상을 보고는 형들이 “이건 징계 안 받을 거야. 괜찮아”라면서 위로해 줬다. 내 K리그 첫 퇴장이었는데 답답한 마음이 컸다. 뭐 이미 지나간 일이니 더 아쉬워해도 바뀌는 건 없다.

한석종은 강원FC를 4년 만에 K리그 클래식으로 올려 놓는데 일등공신이었다. ⓒ강원FC

올 시즌 주전으로 도약한 뒤 줄곧 풀타임 활약하고 있다. 가장 많이 뛰는 선수인 것 같아 체력적인 부분이 걱정되기도 한다.

경기를 하면 매 경기 힘든 건 사실이다. 하지만 나만 그런 건 아니다. 주변에서는 내가 가장 많이 뛴다고 해주시는데 나만 많이 뛰는 것처럼 보이는 것뿐이다. 우리 선수들은 다 열심히 뛴다. 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면 힘들지만 그건 그때 뿐이고 한 시즌을 놓고 봤을 때는 체력적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다.

팀내에서 가장 호흡이 좋은 선수는 누구인가.

처음 입단할 당시에는 (김)대경이 형과 (김)용환이와의 호흡을 많이 기대했다. 다같은 숭실대 멤버였기 때문에 대학교 시절 2~3년 동안은 한 팀에서 뛰었다. 대경이 형은 1년 선배고 용환이는 내 1년 후배다. 그런데 대경이 형이 시즌 초반에 다쳐서 호흡을 보여줄 기회가 별로 없었다. 용환이하고는 지금도 잘 맞추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같이 중원에서 짝을 이루는 (김)동석이 형이나 요즘 호흡을 맞추고 있는 (이)상협이 형도 나에게 너무 잘 맞춰주신다. (김)도혁이 형도 마찬가지다. 호흡이 척척 들어맞는다기보다는 그 형들이 나를 잘 맞춰주고 있다.

그래도 그중에 가장 축구하기 편한 동료도 있을 거 아닌가.

지금 한 명을 콕 집으라는 건가. 어렵다. 원정경기에 가면 미드필드에서 같이 뛸 파트너와 같은 방에 쓰게 하는데 내 파트너들이 다 형들이라 같은 방을 쓰면 그래도 물이라도 한 잔 떠 드려야 하질 않겠나. 동계훈련 때는 용환이하고 방을 같이 썼는데 그래도 후배하고 한 방에 있으니 그때가 가장 편하긴 했다.

인천은 늘 초반에 쉽게 실점하고 한 70분을 죽어라 뛰어서 이걸 만회하는 느낌이다.

그게 진짜 안 좋은 거다. 먼저 먹으면 계속 힘들게 경기를 해야 하고 조급해 진다. 항상 경기 전에 미팅을 하면 “먼저 실점하지 말자”고 이야기하는데 그게 시즌 초반에는 참 안 됐다. 아무래도 선수가 많이 바뀌다보니 조직력 부분에서 맞추기가 쉽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다른 팀들은 1,2년씩 함께 한 선수들이 많은데 인천은 한두 달 맞춰보고 경기를 하는 거라 그런 핸디캡을 안고 싸워야 한다.

당신이 ‘인천의 보물’이 돼 그라운드를 누비자 곧바로 이적설이 터져 나왔다. 이적 5개월 만에 아랍에미리트(UAE) 1부 리그 알 와슬 임대이적 제안이 온 걸로 알려졌다.

“중동에서 이적 제안이 왔다”고 에이전트한테 연락이 와 깜짝 놀랐다. 원래 그런 중동 팀은 국가대표 경험이 있고 잘하는 선수들을 데려다 쓰는 곳 아닌가. 믿을 수가 없었다. 에이전트가 구단에 이 사실을 알리고 대화를 해보겠다고 하더라. 나는 일단은 모른 척하고 있었는데 그 팀으로 가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해외에서도 나를 좋게 봐주고 있다는 생각에 모른 척하는 게 쉽진 않았다. 그렇게 사흘 정도 모른 척 하고 훈련을 했는데 감독님이 날 부르셨다. 그러면서 “그 이야기 들었느냐”고 임대이적 제안에 대해 말씀하셨다.

어떤 이야기가 오갔나. 연기를 좀 했나.

“네. 대충 들었습니다”라고 했더니 감독님은 “지금은 절대 안 된다”고 하셨다. 상황이 8~9위만 돼도 생각해 보겠는데 11~12위에서 강등 싸움하고 있는데 지금은 보낼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임대이적 기사가 터졌다. 에이전트 형한테 “기사가 났는데 어떻게 된 거냐”고 물어보니 자기도 모른다고 하더라. 그래서 기사가 나간 뒤 단장님과 면담을 했다. “올해는 안 되고 올 시즌을 잘 마무리하고 그때 좋은 제안이 오면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알 와슬 쪽에서 한 번 제안을 넣었다가 인천이 거절하자 다시 한 번 더 좋은 조건으로 제안이 왔는데 이것도 인천에서 거절했다. “절대 안 된다”고 하셨다.

당시 심정은 어땠나.

솔직히 말하자면 아쉬운 감정도 있었다. 돈과 조건 때문이 아니라 선수라면 해외 무대에서 뛰어보는 것만큼 큰 경험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선수 개인의 의사보다는 구단의 결정에 따라야 한다. 그런데 주변 다른 선수들은 “그런 좋은 조건 왔을 때 가지 왜 안 갔느냐”고 한다. 내가 뭐 할 수 있는 게 있나.

솔직한 이야기를 해줘 고맙다.

계속 솔직하게 이야기하겠다. “무조건 가야돼”라며 보내달라고 구단에 떼를 쓴 건 아니다. ‘좋은 기회인데 아쉽다’ 정도였다. 그리고 지금 인천의 상황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했다. 경기에 많이 나서고 있는 상황이었고 구단과 감독님도 나를 믿어주는 상황에서 팀은 위기에 몰려 있었다. 감독님이 날 이곳에 받아주셨는데 내가 그렇게 가버리면 되게 힘드셨을 것이다. 앞으로도 열심히하면 기회는 얼마든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직 해외로 나갈 준비가 덜 됐다고 생각하니 이제는 편하다.

솔직히 알 와슬에 대해 검색도 좀 해봤나.

물론이다. 두바이 쪽에 있더라.

그러면 두바이 맛집도 좀 찾아놓았던 건가.

그건 아니고 검색해 보니 그 팀이 내년 AFC 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한다더라. 사실 그것도 좀 끌리는 부분이긴 했다.

되게 많이 찾아본 모양이다.

내 SNS로도 메시지가 오더라. 알 와슬 쪽 직원인지 팬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두세 분이 계속 SNS 메시지를 보내주셨다. 그래서 “다음에 기회가 되면 보자”고 답장했다. 선수 생활을 하면서 한 번 올까 말까한 기회여서 부모님들이 더 아쉬워하셨다. 물론 지금은 인천 선수이니 인천에서의 축구만 집중할 생각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축구선수가 해외에서 뛸 기회를 잡는 건 쉽지 않은데 그런 제안이 와 욕심이 났던 거고 억지를 부리면서까지 갈 수는 없어 지금은 마음을 접었다. 내가 있는 이 팀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지금으로서는 도리라고 생각한다.

한석종은 강원FC를 4년 만에 K리그 클래식으로 올려 놓는데 일등공신이었다. ⓒ강원FC

요새 인천 팬들이 고민이 있다.

뭔가.

당신 이름을 유니폼에 새기고 싶은데 당신이 내년에 인천에 없을 것 같아 마킹을 할까 말까 고민 중인 팬들이 많더라.

음…. 하셔도 될 거 같다.

답변을 하는데 잠깐 망설이는 것 같았다.

일단은 하셔도 된다. 나는 아직 인천과 계약기간이 많이 남아있다. 지금은 미래에 대해 생각할 때는 아닌 것 같고 내가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그 팀이 인천이다. 승점차가 위 아래로 얼마 나지 않아 한두 경기로 순위가 요동칠 수 있다. 미래는 나중에 생각하고 싶다.

인천 선수들을 10년째 인터뷰 해오고 있는데 늘 내년 시즌에 대해 물으면 어려워한다. 당장 내년에 이적할 수도 있는데 “이 팀에 뼈를 묻겠습니다”라고 섣불리 대답하는 것도 웃기지 않은가.

묻고 싶다고 아무나 여기에 뼈를 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구단에서 해주셔야 가능한 일이다.

아, 그런가. 당신의 친형도 축구선수로 알고 있다.

형 이름은 한홍규다. 지난 시즌까지 안산무궁화에 있다가 제대했는데 복귀해야 할 원소속팀 충주험멜이 해체됐다. 그래서 지금은 내셔널리그 강릉시청에 가 있다. 형이 올 시즌이 끝나고 결혼을 하는데 결혼 준비도 바쁜 와중에 내가 경기하는 날이면 항상 연락이 온다. 나는 형 경기 잘 안 보는데 형은 내 경기를 다 챙겨보는 모양이다. 요새 강릉시청도 내셔널리그에서 성적이 좋지 않아 분위기도 별로고 운동도 많이 한다더라. 형도 축구선수고 아버지는 축구감독이다.

들었다. 현재 광양제철남초등학교 감독이라고 알고 있다.

방금도 아버지 팀이 출전한 화랑대기 왕중왕전 준결승을 보다가 왔는데 졌다. 아버지 팀이 전남드래곤즈 유소년 팀인데 울산현대 유소년 팀한테 1-4로 패했다.

축구를 시작한 게 아버지의 영향이 컸을 것 같다.

원래는 축구를 하기 싫었다. 맞으면서 축구를 하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당시 아버지는 전남 지역에서 클럽 축구 취미반 아이들을 지도하고 계셨는데 하루는 나를 데려가 축구화를 사주시는 거다. 광양제철남초등학교 감독님이 그 당시 선수들을 때리지 않고 축구를 가르치신다고 하면서 축구화를 사주신 다음 나를 축구부에 넣어주셨다. 그런데 축구부에 들어가 보니 너무 재미있었다. 같은 축구부 선수들 이름 외우는 것도 너무 재미있더라. 하루인가 이틀 만에 선수들 이름을 다 외웠다.

선수 이름 외우는 게 재미있을 게 있나.

모르겠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좋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는데 엄마한테 가서 “나 축구부 애들 이름 다 외웠다”고 자랑했다. 4학년 올라가고 감독님이 바뀌었다. 지금 목포시청을 맡고 계신 김정혁 감독님이 새로 오셨다. 내가 졸업하고 내 밑에 밑에까지는 그 분이 감독을 하셨다.

축구부 애들 이름 외운 걸 자랑한 걸 보니 그땐 되게 순수했다. 이렇게 아들 둘이 성인 무대에서 뛰는 모습을 보고 아버지가 무척 좋아하실 것 같다.

지난 포항전을 하는 날 아버지가 이끄는 팀도 화랑대기 그룹 결승을 했다. 초등학교 팀이 워낙 많다보니 그룹별로 나눠 결승을 치르는 제도였는데 그날 아버지 팀은 졌고 나는 포항을 상대로 골을 넣어서 이겼다. 아버지께서 그 경기를 보고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 “그래도 아빠가 이긴 것보다 아들이 골 넣고 이긴 게 더 기분 좋아.” 평소에는 축구 이야기는 잘 하지 않으신다. 다치지 말고 내 몸 보호하는 법도 알아야 한다는 말씀만 주로 하신다.

당신은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면서 동시에 가수 박재정의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다. 박재정이 당신의 열혈 팬이라고 밝혀 화제가 됐다.

너무 고마운 분이다. 경기장에서 한 번 마주할 때마다 인사하는 정도일 뿐 따로 만나거나 그럴 기회는 없었다. 내가 올 새해를 앞두고 SNS로 메시지를 한 번 보낸 적은 있다. “저를 사랑해 주시고 알려주셔서 감사하다”고 보냈더니 “정말 한석종 선수인지는 모르겠는데 제가 정말 좋아하는 스타일의 선수여서 팬이다. K리그 홍보대사로 더 많은 이들께 K리그와 한석종 선수를 알릴 테니 내 노래도 좋아해 달라”고 답장이 왔다.

그래서 박재정의 노래는 아나.

거… 거… 그거… 뭐지? 박재정 노래… 슈퍼스타K 나왔을 때 참 좋아했다.

그래서 지금 나온 노래는 아나.

더 알아가려고 노력하겠다.

한석종은 강원FC를 4년 만에 K리그 클래식으로 올려 놓는데 일등공신이었다. ⓒ강원FC

인천은 올 시즌에도 출발이 좋지 않았다. 개막 후 9경기 만에 첫 승을 따냈고 이후에도 강등권을 면치 못했다.

선수들이 겉으로 보기에는 다들 분위기가 좋아보였지만 계속 이기지 못하다보니 속으로는 위축돼 있었다. 만들어가도 되는 상황을 덜 만들고 그냥 걷어내는 경우도 잦았다. 항상 먼저 골을 먹었고 또 막판에 실점하기도 했다. 강하게 더 해도 되는데 그러니 더 움츠려 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항상 비기면 만족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비겨도 잘한 것처럼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한 번 동료들과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어 내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지금 비기는 건 잘하는 게 아니다. 이기기 위해 경기를 했으면 좋겠다.” 형들도 내 의견에 동의해 줬고 더 간절하고 강하게 부딪혀서 이기는 경기를 하자고 했다.

휴식기를 앞두고는 상주와 포항을 상대로 연승을 거두며 잔류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잡았다.

포항전에서 내가 첫 골을 넣었는데도 한 골 먹고 또 비기는 건 싫었다. 그래서 경기장에서 동료들에게 “하나 더 해보자”고 했고 (최)종환이 형이 하나 더 넣어줬다. 경기를 하면서 질 것 같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 경기였다. 누가 공격으로 나가면 누가 들어와 주고 이런 게 너무 잘 맞았던 경기였다. 우리끼리도 너무 잘 맞아서 재미있었던 경기였다.

인천은 되게 간절하게 뛰는 느낌이 확 들 때가 많다.

경기장의 분위기가 선수들을 그렇게 만든다. 일단 관중석과의 거리가 가까워서 관중의 열기가 다 느껴진다. 그리고 이렇게 열정을 가진 팬들도 본 적이 없다. 당연히 팬들의 응원에 신경을 안 쓸 수가 없는 경기장이다. 나이가 많건 적건 누구 하나 열심히 안 뛰는 선수가 없다. 다 열심히 뛰니 나도 열심히 뛰어야 한다. 경기장의 이런 분위기가 팀 컬러를 만드는데 한 몫 한 것 같다. 몰입하게 하는 경기장이다.

나도 느낀다. 반면 어느 경기장은 가면 집중을 할 수 없는 곳도 있다.

이런 특유의 경기장 분위기가 다 있다. 경기장마다 느낌이 다 다르다. 나는 울산만 가면 뭔가 되게 습한 느낌을 받는다. 그러면 꼭 그 경기장에서 말린다. 포항도 되게 비슷하다. 갈 때마다 습한 기운이 있다. 강원 알펜시아는 바닥이 딱딱하고 잔디는 좋지 않은데 경기가 끝난 한참 뒤에도 인사하러 가면 기다려주시는 팬들이 있어 좋다. 경기장마다 분위기가 다르다.

올 시즌 경기를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언제였나.

상주와의 경기에서 내가 골을 넣고 이겼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올 시즌 첫 승이라는 이유도 있었고 내가 골을 넣어 그 승리를 도왔다는데도 큰 의미가 있었다. 아쉬운 경기는 참 많다. 그 다음 상주전에서는 채프만이 코너킥을 골로 연결했을 때 이겼다고 생각했는데 마지막에 김병오 선수한테 한 골 내주고 비겼다. 그렇게 이길 수 있는데 비긴 경기가 많다는 건 아쉽다.

지난 시즌 강원을 이끌고 승격했고 올 시즌에는 인천에서 잔류 경쟁을 펼치고 있다. 어느 게 더 힘든가.

K리그 클래식 선수들의 수준도 높고 간절함도 대단하지만 K리그 챌린지의 간절함은 더 엄청나다. 물론 아직 잔류 경쟁을 끝까지 해보지는 않았지만 지금껏 경험해 본 바로는 잔류보다는 승격이 더 쉽지 않았다. K리그 클래식 11위와 승강 플레이오프까지 치러야 해 경기수도 많고 힘들었다. 물론 잔류 경쟁도 만만치 않게 피 말리는 싸움이기는 하다.

한석종은 강원FC를 4년 만에 K리그 클래식으로 올려 놓는데 일등공신이었다. ⓒ강원FC

인천은 늘 힘든 상황에서 잔류에 성공했다. 올 시즌에도 최근 2연승을 하며 슬슬 잔류를 위한 시동을 거는 것 같다.

인천은 잔류 본능이 있다고 생각한다. 여름 이후부터는 더 잘 뛴다. 잔류는 늘 자기들이 해왔던 거고 잘하는 거니까 그게 몸에 배 있다. “우리는 쉽게 안 떨어진다”고 다들 생각한다. 이게 자만심이 아니라 믿음 같은 거다. 우리가 열심히 최선을 다한다는 전제 하에 우리는 어떻게 되건 안 떨어진다는 믿음이 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K리그 챌린지로 안 떨어진다.

올해 당신이 보기에도 마찬가지인가.

물론이다. 올해도 우리는 안 떨어진다.

알겠다. 그 말을 한 번 믿어보겠다. 올 시즌 개인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팀의 목표가 곧 개인적인 목표다. 팀이 잘 돼야 나도 빛을 발한다. 팀의 목표, 그리고 개인적인 목표 모두 잔류다. 지금 분위기만 이어간다면 강등 당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마지막 질문이다. 앞으로 선수로서의 최종적인 목표가 있다면 말해달라.

축구선수라면 모두 국가대표가 되고 싶은 게 최종 목표일 것이다. 나도 언젠가는 태극마크를 한 번 달아보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축구를 오래 하고 싶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 부상 없이 뛰면서 “쟤 아직도 해?”라는 소리를 듣고 싶다.

한석종은 장담했다. 올해도 인천은 강등 당하지 않는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는 말로만 허풍을 떠는 게 아니다. 올 시즌 한석종은 인천에서 한 차원 높은 경기력을 선보이며 ‘보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석종은 어느덧 팀에 없어서는 안 될 주전 미드필더가 됐고 7개월 만에 가장 믿음을 주는 선수로 성장했다. 한석종이 “인천은 강등 당하지 않는다”고 했으니 인천 팬들은 그의 말을 믿어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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