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나탄 ⓒ 수원삼성

‘슬기로운 축구’는 전직 K리그 선수 출신인 이슬기 SPOTV 해설위원의 공간입니다. 대구FC에서 데뷔해 포항스틸러스와 대전시티즌, 인천유나이티드, FC안양 등 다양한 팀에서 활동했던 그는 현재는 은퇴 후 SPOTV에서 K리그 해설을 맡고 있습니다. 선수 시절 경험과 해설위원의 냉철한 시각을 덧붙여 <스포츠니어스> 독자들에게 독특하고 신선한 칼럼을 전달합니다. -편집자주

[스포츠니어스 | 이슬기 객원 칼럼니스트] 지난 슈퍼매치에서 수원삼성 조나탄이 부상을 당했다. 아마도 패배보다 더 뼈아픈 게 조나탄의 부상이 아니었을까. 수원삼성에서 조나탄이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한다면 이런 말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K리그에서 외국인 선수의 영향력은 대단히 크다. 올 시즌 K리그 클래식 득점 상위권만 보더라도 조나탄과 데얀, 자일, 에두, 디에고, 에반드로 등 많은 외국인 선수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많은 팀들이 외국인 공격수에게 득점을 의지하는 편이다. 또한 국내 선수들은 해외의 좋은 무대에서 뛰었던 선수들이 영입되면 많은 걸 궁금해 한다. 훈련은 어떻게 하는지, 훈련 이외의 시간에는 어떻게 지내는지, 뭘 먹는지까지도 그들을 통해 배운다. 국내 선수들은 해외의 좋은 리그에서 뛰었던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배우려고 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외국인 선수들의 영향력은 더 크다. 물론 잘하고 있는 선수들에 한해서 하는 말이다.

대구FC가 영입했던 음밤바와 포포비치 ⓒ대구FC

신인선수로 대구FC에 입단했을 때 외국인 선수가 세 명 있었다. 음밤바와 포포비치 그리고 펑샤오팅이었다. 특히나 음바바와 포포비치에 거는 기대가 컸다. 음밤바는 카메룬 U-15 대표팀을 시작으로 U-17, U-20, U-23 대표팀에도 뽑혔고 네덜란드를 비롯해 이스라엘과 포르투갈, 인도네시아 등 세계 각지의 프로 무대를 경험한 선수다. 포포비치도 세르비아 청소년 대표 및 올림픽 대표로 총 30경기에 나와 12골을 넣었고 세르비아 1부리그에서도 89경기 출장 26골의 좋은 기록을 보유한 전형적인 타겟맨이었다.

이렇게 기록과 경력만 놓고 본다면 정말 기대되는 영입이었다. 이 두 선수가 함께 공격수로 뛴다면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낼 수도 있다고 기대했다. 나 역시 처음 프로무대에 와서 외국인 선수와 한 팀이 돼 설레기도 했다. 하이라이트 영상을 먼저 접하면서 “엄청난 선수와 뛰게됐다”고 흥분했던 기억도 난다. 하지만 이 둘은 K리그 팬이라면 다들 아는 것처럼 나란히 6개월 만에 방출되고 말았다. 나한테 “슬기야. 어디가?”라고 물을 정도로 한국어를 열심히 배웠던 음밤바가 떠날 땐 참 슬펐다. 이 둘이 나가고 레오와 바울이 합류하고 4연승을 하게 됐으니 외국인 선수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외국인 선수를 잘 선발하기로 유명한 K리그 팀이 있다. 이 팀의 스카우트는 브라질로 직접 날아가 하루에 두세 시간만 자면서 선수를 뽑는다고 한다. 보통 스카우트가 브라질에 가게 되면 현지 에이전트를 만나 이동하면서 선수를 관찰하는데 이 팀 스카우트는 잠자는 시간까지 줄여가며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다. 실제로 소똥이 굴러다니는 시골 축구장에서 공을 차고 있는 무명의 선수들까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면서 선수를 뽑아왔다고 한다. 이 팀은 K리그에서 외국인 선수를 가장 탁월하게 선발한다는 평가를 받는 제주유나이티드다. 소똥이 굴러다니는 시골 축구장까지 뒤질 정도이니 이 팀 스카우트의 열정과 안목이 얼마나 대단한지 느껴진다.

스카우트라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잘 뽑은 외국인 선수 한 명이 그 팀을 책임지기도 해 대단한 부담감이 필요한 직업이다. 스카우트를 위해서는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 하지만 대다수의 팀들이 스카우트를 한두 명 보유하고 있는 게 전부다. 스카우트 한두 명이 팀의 선수 선발 모두를 책임지고 있는 경우가 다반사다. 고등학교와 대학교, 외국인 선수들을 모두 관찰해야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숫자다. 그러다보니 시즌 중에 기존 외국인 선수를 내보내고 갑자기 외국인 선수를 새롭게 뽑아야 하는 경우에는 선수의 하이라이트 영상만 보고 선수와 계약하는 일도 생긴다. 한두 명 잘 뽑아서 당장 효과를 볼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확률이 낮은 도박이다.

대구FC가 영입했던 음밤바와 포포비치 ⓒ대구FC

선수를 선발할 때 감독이 직접 구단에 요청을 해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선수를 선발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건 전적으로 한계각 있다. 보통 프로팀에 필요한 선수가 35명 정도인데 감독은 경기를 준비하기에도 빠듯하다. 외국인 선수나 대학교, 고등학교 선수를 잘 뽑아 와야 하는 상황에서 감독이 이런 부분까지 다 신경을 쓰기에는 큰 무리다. 감독이 잘 알고 있는 선수를 구단에 요청해 영입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최근 들어 스카우트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전문성 있는 스카우트 팀을 구성하는 팀들이 점차 생겨나고 있지만 아직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들어 국내 선수들이 중국이나 중동으로 많이 진출하면서 K리그는 이 선수들을 잡고 싶어도 잡지 못하는 상황이 늘어나고 있다. 구조상 이적료가 가장 큰 수입인데 그러면 당연히 또 다른 누군가를 키워내기 위한 스카우팅은 필수적이다. 그런데 구단의 생사가 걸린 이 문제를 팀당 한두 명에 의존하고 있다는 건 상당히 위험한 일 아닐까. 구단마다 확시한 철학을 가지고 운영하려면 그 철학에 부합한 선수를 찾아야 한다. 구단은 단지 선수와 감독의 것이 아니라 구단에 속한 모든 사람의 것이고 응원하는 사람들의 것이다. 구단의 철학과 목표를 이룰 수 있는 운영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좋은 선수를 발굴하는데 더 많은 노력과 인력을 쏟아야 한다.

드라마 <미생>에서는 이런 말이 나온다. “기초 없이 이룬 성취는 단계를 오르는 게 아니라 성취 후 다시 바닥으로 돌아오게 된다.” K리그의 많은 구단이 소똥이 굴러다니는 브라질의 시골 축구장까지 살펴가며 선수를 뽑을 정도로 탄탄하게 기초를 갖췄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