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회] K리그 가상 라디오 사연과 신청곡


인천 박용지
인천 박용지는 이번 라운드에서 '갓용지'가 됐다. ⓒ프로축구연맹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지난 주말 K리그 클래식과 K리그 챌린지는 날씨 만큼이나 뜨거웠다. 그리고 경기가 끝난 뒤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이번 라운드 K리그 사연과 함께 신청곡이 쇄도했다. ‘보이는 라디오’는 경험해 봤어도 ‘읽는 라디오’는 처음일 것이다. 지금부터 지난 라운드 K리그 클래식과 K리그 챌린지의 주요 이슈들을 ‘읽는 라디오’로 복습해 보자. 여기에 신청곡까지 듣고 나면 감동과 환희, 짜증은 배가 될 것이다. 물론 이 라디오 사연은 다 가상이다.

귀중한 결승골 기록한 박용지
“인천에 사는 25세 박용지 씨의 사연이네요. 안녕하세요. 저는 대학교에 다니고 있는 박용지라고 합니다. 조별 과제를 하고 있는데 같은 조 친구들이 ‘혹시 F를 받아 재수강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걱정합니다. 실제로 조별 과제를 하면서 친구들과도 호흡이 맞지 않았고 아르바이트 때문에 방과 후 시간을 제대로 내지 못하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다들 지방에서 올라와 생계를 걱정하면서 어렵게 공부하는 친구들이거든요. 물론 저 역시도 방황하며 조별 과제에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친구들에게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꼭 하고 싶어요. 제가 밤을 새워가며 자료 조사도 다 했고 PPT 준비도 다 했거든요. 지금까지 제가 안 했던 거지 못 했던 게 아니라는 걸 친구들이 꼭 알아줬으면 합니다. 그리고 지금껏 제 동기들은 아슬아슬하게 늘 재수강을 피해 갔거든요. 이번에도 다 잘 될 겁니다. 제가 먼저 앞장설게요. 혹시 우리가 F를 받아 재수강을 해야 하는 건 아닌지 걱정하는 같은 조 친구들에게 이 노래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들국화>의 ‘걱정말아요 그대’”

*박용지는 이번 라운드 상주와의 원정경기에서 팀을 2-1 승리로 이끄는 귀중한 결승골을 기록했다. 강등 위기에 놓인 인천을 위기에서 구해내는 골이었다.

정조국 대체자가 되기엔 부족한 나니
“어머, 이번에는 유명인의 아버지께서 사연을 보내 주셨네요. 인기 아이돌 그룹 샤이니 멤버 민호 군의 아버지죠. 최윤겸 님께서 보내주신 사연입니다. 안녕하세요. 영화감독 최윤겸입니다. 요새 강원도에서 새로운 영화 <아챔행>를 찍고 있는데요. 주연 배우 정조국이 촬영 도중 다치는 바람에 시나리오를 수정해 다른 주연 배우 한 명을 더 캐스팅하게 됐습니다. 딱 보기에 잘 생겼고 거기에 연기력이 괜찮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 무명의 배우를 주연으로 섭외했습니다. 급하게 캐스팅을 하게 돼 주변 이야기만 듣고 영화 촬영을 시작했거든요. 그런데 요새 너무 고민이 많습니다.”

“연기력이 수준에 한참 미치지 못합니다. 어느 정도껏 해야 감독인 저도 편집으로 해결할 텐데 그 정도 수준이 아니에요. 잘 생긴 외모만 보고 결정한 제 판단이 잘못된 걸까요. 외모에 완전히 속은 것 같습니다. 더 화가 나는 건 이번에 촬영을 하며 슬쩍 다른 감독이 찍고 있는 영화를 봤는데 거기에 딱 7분 나오는 조연 배우의 연기력이 더 강렬했다는 점입니다. 이름이 마유송인가 그렇던데요. 우리 주연 배우가 영화에 나오는 70분보다 이 조연 배우의 7분이 더 인상 깊었습니다. 어찌됐건 요새 이 배우 때문에 고민이 많습니다. ‘링동댕’인가하는 아들 녀석 노래도 좋지만 오늘 만큼은 이 노래를 듣고 싶네요. <고유진>의 ‘걸음이 느린 아이’ 부탁합니다.”

*강원FC가 야심차게 영입한 나니는 부상 당한 정조국의 공백을 이번 라운드 제주전에서도 메워주지 못했다. 느렸고 제공권 장악도 못했다. 오히려 7분 간의 데뷔전을 치른 제주 마유송이 70분을 뛴 강원 나니보다 더 인상적이었다.

수원삼성 곽광선
수원삼성 곽광선은 슈퍼매치에서 자책골을 기록하고 말았다. ⓒ프로축구연맹

슈퍼매치에서 유일한 골 기록한 곽광선
“정치인께서도 사연을 보내주셨네요. 안녕하세요. 이번에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한 곽광선 후보입니다. 국회의원 후보 출마를 포기하려고 했는데 우리 당에서 탈당해 정치 성향이 완전히 다른 반대쪽 당에 입당한 후보가 출마 선언을 했습니다. 제 목표는 저의 당선이 아니라 그 후보의 낙선이었어요. 죽어도 그 후보가 국회의원에 당선돼서 행복한 모습은 볼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제가 출마를 포기하면 표가 그 후보에게 몰려 그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높았거든요. 그래서 더더욱 그 후보의 당선을 막아야 했죠. 정치 성향이 다른 그 후보의 낙선을 원하고 저를 지지하는 세력도 많았습니다.”

“선거 날까지 고민을 많이 했지만 결국 저는 선거에 완주했고 그 후보의 당선을 막았습니다. 결국 저는 선거에서 패했지만 제가 출마하지 않았더라면 당선됐을 그 후보를 생각하니 슬프지만은 않습니다. 제일 좋은 건 제가 당선되는 것이었지만 그게 아니라면 절대 그 후보가 국회의원이 돼 금배지를 달고 국민들의 환호를 받는 모습을 보지 않는 것이었거든요. 주변에서도 그 후보의 당선을 막았다고 저에게 격려를 보내주는 분들이 많습니다. 제가 없었더라면 아마도 그 후보가 당선이 돼 모든 관심을 받았겠죠? 죽어도 그 꼴을 못 봅니다. 복잡 미묘한 감정입니다. 이런 곽광선 님을 위해 노래 한 곡 띄워드릴게요. <2AM>이 부릅니다. ‘죽어도 못 보내’”

*곽광선은 이번 라운드 슈퍼매치에서 이상호를 막다 자책골을 허용, 결국 0-1 패배의 빌미를 제공했다. 하지만 이 순간 쇄도하던 이상호에게 실점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기는 팬들도 많다.

레이어의 퇴장과 수원FC의 대패
“호주에서 온 유학생 레이어라고 합니다. 11대 11 미팅 자리에서 이상욱이라는 친구가 술 마시기 게임을 하다가 벌칙에 걸렸는데 ‘자기는 술을 잘 못 한다’면서 저에게 흑기사로 소주 한 병 원샷을 부탁하더라고요. 친구의 부탁이라 어쩔 수 없이 들어줬는데 그 술을 마시고 결국 너무 취해 제가 제일 먼저 집에 왔습니다. 마지막 기억은 11대 10으로 계속 술자리가 이어지는 것뿐입니다. 상대방 분들과 제대로 이야기도 나누지 못하고 연락처도 못 받았는데 너무 아쉽습니다. 그냥 제 친구가 벌칙에 걸렸을 때 나 몰라라 했으면 어떻게 됐을까요.”

“들어보니 상대방 분들이 술이 너무 세 제가 집에 간 뒤 제 친구들만 다들 뻗었다고 하더라고요. 흔히 말하는 ‘떡실신’이라고 하죠? 잘 이뤄진 커플도 없고 미팅 이후로 과 분위기도 굉장히 어색해졌어요.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 일찍 저만 빠져나온 게 뭐 크게 나쁜 일도 아닌 거 같기도 하네요. 이상욱을 비롯한 제 친구들에게 이 노래를 바칩니다. 제가 술에 취해 인사불성으로 집에 먼저 갈 때 술집에서 흘러나오던 노래라고 하네요. <조수미>의 ‘나 가거든’ 듣고 싶습니다.”

*수원FC 레이어는 이번 라운드 안산전에 출장한 골키퍼 이상욱의 실수로 초래된 위기에서 무리한 파울을 하다 퇴장 당했고 결국 팀은 0-4 대패했다.

김영광은 서울이랜드FC의 최후방을 든든히 지키고 있다. ⓒ 서울 이랜드FC

101경기 출장해 기념식 치른 김영광
“대기업에서 오래 근무하다가 2015년 중소기업으로 이직했습니다. 벌써 3년째 이 회사에 다니고 있네요. 처음에는 같이 대기업에서 옮긴 동료들이 꽤 있었는데 다들 다시 대기업으로 떠나고 저만 남았습니다. 사람들은 저에게 ‘능력이 부족해서 대기업을 나와 중소기업으로 간 게 아니냐’고 묻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전에 제 경력은 모두 없는 셈 치고 이곳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경험은 돈을 주고도 살 수 없거든요. 도전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할 뿐이지 제가 어느 회사에 있다는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회사에 출근했다가 깜짝 놀랐어요. 글쎄 동료들이 저를 위해 깜짝 이벤트를 해줬지 뭡니까. 알고 봤더니 중소기업에서 묵묵히 3년째 일하고 있는 저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동료들이 마련한 자리였습니다. 더 놀란 건 아내와 두 딸도 이 깜짝 이벤트에 참여했다는 점이었어요. 누군가에게는 더 작은 규모의 회사로 옮긴 게 실패로 보일 수도 있지만 저는 이 선택을 단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습니다. 내일도 출근해야 하는데 이렇게 감성에 젖어 밤늦게 사연을 보내네요. 1994년 미국월드컵 공식 주제가죠. <대릴 홀>과 <사운즈 오브 블랙니스>가 함께 부른 ‘GLORY LAND’를 신청합니다. 꼭 제 이야기 같거든요.”

*김영광은 K리그 챌린지 서울이랜드 이적 이후 100경기 출장 기록을 세웠다. 이번 라운드 부천과의 홈 경기에 101번째 출장한 그를 위한 기념식이 열렸다.

정우재와 박동진, 김진수와 토미의 충돌
“저는 고등학교 선생님입니다. 그런데 우리 반에 아주 말썽꾸러기 두 명이 있어요. 우재와 동진이인데요. 그 두 녀석이 오늘도 잠깐 한 눈을 파는 사이 또 싸우고 있더라고요. 이 두 녀석이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욕을 하기 시작하니까 주변에 있던 친구들도 우르르 몰려가 한바탕 곤욕을 치렀습니다. 말리는 친구도 있었지만 구경하는 친구, 같이 싸우려는 친구가 뒤엉켜 한 동안 수업 진행을 멈춰야 했어요. 사이좋게 지내면 좋겠는데 너무 혈기왕성하고 예민한 시기라 그런 걸까요.”

“속이 상해 교무실에 가 옆 반 선생님께 이 이야기를 꺼내니 이 선생님도 하루 전날 비슷한 일을 겪었다고 하더라고요. 토미와 진수가 한바탕 하려고 해 겨우 뜯어 말렸다고 합니다. 애들은 싸우면서 큰다지만 그래도 선생님 입장에서는 사이 좋게 지내길 바라는 마음이 더 큽니다. 서로 얼굴을 맞대고 자존심 싸움을 벌인 이 학생들을 위해 이 노래를 선정해 봤습니다. <V.O.S>의 ‘눈을 보고 말해요’를 신청합니다. 싸우지 말고 눈을 보고 말하면서 잘 풀었으면 하네요.”

*대구 정우재와 광주 박동진, 그리고 전북 김진수와 전남 토미는 이번 라운드 맞대결에서 충돌하며 몸싸움 일보 직전까지 갔다.

정우재 박동진
정우재와 박동진의 진한 스킨십. ⓒ중계 방송 화면 캡처

물병 투척과 그에 반응한 이상호
“서울에 사는 30세 이상호 씨의 사연입니다. 얼마 전 수원에 살다 서울로 이사를 왔습니다. 제가 갑자기 이사를 오는 바람에 수원 동네 친구들이 무척이나 섭섭해 하더라고요. 하지만 부모님이 다같이 이사를 오는 바람에 저도 서울로 이사를 오게 됐습니다. 그런데 서울에 와보니 너무 좋네요. 수원에 살 때는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 인심도 없어 보여 SNS에다 흉을 본 적도 있는데 알고 보니 서울 분들도 다 인심 좋은 분들이었습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고 하죠? 이제는 수원 친구들과 멀어지고 여기 서울 친구들과 더 친해졌어요.”

“지난 주말에는 급작스레 친해진 서울 친구들하고 축구를 했습니다. 그런데 날씨도 덥고 많이 뛰다보니 갈증이 심했어요. 시원한 물 한잔이 생각났는데 그때 운동을 마치고 주위를 둘러보니 누군가 저에게 물병을 던져주더라고요. 속된 말로 ‘시야시’가 제대로 된 시원한 물이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뚜껑을 열고 물을 벌컥벌컥 마셨습니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한 여름에 운동하는 저를 위해 시원한 물을 건네주신 고마운 분에게 이 노래를 바칠까 합니다. <한대수>의 ‘물 좀 주소’ 틀어주세요.”

* 수원삼성에서 FC서울로 이적한 이상호는 이번 라운드 수원삼성전이 끝난 뒤 친정팬들에게 인사를 하러 갔다가 물병 투척 세례를 받아야 했다. 하지만 이상호는 당황하지 않고 이 물을 마셔 또 한 번 화제의 중심에 섰다.

이번 라운드 K리그 클래식과 K리그 챌린지는 볼거리가 참 많았다. 슈퍼매치에 많은 관심이 쏠렸지만 다른 경기에서도 이슈가 참 많았다. K리그가 앞으로도 더 다양한 이슈와 볼거리로 경기장을 찾은 팬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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