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이랜드에서 ‘꽃길’ 아닌 ‘글로리 로드’ 걷는 김영광

팀 동료들과 승리를 기뻐하는 김영광 ⓒ 서울 이랜드FC 페이스북

[스포츠니어스 | 홍인택 기자] 김영광은 소위 말해 ‘엄친아’였다. 2003년 U-20 대표팀 주전 골키퍼로 이름을 알린 후 김병지, 이운재의 뒤를 이을 인재로 인정받았다. 이후 2004년 아테네 올림픽부터 2010년 남아공 월드컵까지 국가대표 선수를 지냈다. 그런 그가 지금은 K리그 챌린지 하위권을 맴돌고 있는 서울 이랜드FC에 있다. 그리고 서울 이랜드의 골키퍼 유니폼을 입고 벌써 101경기를 뛰었다.

누군가는 그를 향해 “실패했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를 향해 “망했네”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의 서울 이랜드 100경기 출전을 알리는 보도자료 댓글에는 그가 뛰는 팀과 그의 커리어를 모욕하는 악플이 달리기도 했다. 그를 실패자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적어도 김영광 본인은 실패자가 아닌 도전자의 위치에서 꾸준하게 서울 이랜드의 골문을 지켰다.

그는 벌써 서울E 유니폼을 입고 101경기를 뛰었다 ⓒ 스포츠니어스

“2부 리그에서 뛰기에는 아까운 선수”

그는 2007년 전남에서 울산으로 이적할 때 22억이라는 거금을 남겼다. 2011년에는 K리그 베스트 일레븐 골키퍼 부문까지 수상했다. 그런 그가 하락세를 겪기 시작한 계기는 2013년 종아리 부상이었다. 그는 부상을 극복하고 그라운드로 복귀하기 위해 이를 악물고 재활에 힘썼다. 그러나 그가 울산 골문을 비울 동안 김승규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부상 회복 후 대구를 상대로 복귀전을 치렀지만 5개의 골을 실점하며 주전에서 밀려났다. 그는 이후 출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경남으로 임대됐으나 그해 경남은 강등되고 말았다.

그리고 2015년 김영광의 새로운 거처는 서울 이랜드였다. 많은 이들의 그의 행보에 물음표를 던졌다. “국가대표급 선수가 2부 리그에서 시작하는 서울 이랜드로 이적한다.” 많은 이들이 그의 선택이 아닌 서울 이랜드의 이적 정책을 칭찬했다. K리그에서 보기 힘든 북중미 대륙 출신 칼라일 미첼(트리니다드 토바고) 영입이 이슈가 되면서 김영광의 영입도 서울 이랜드의 큰 그림으로 해석됐다. 모두가 서울 이랜드의 화려한 스쿼드를 좋아했고 창단 첫해 승격을 기대했다.

그러나 서울 이랜드는 승격에 실패했고 마틴 레니와도 결별하며 3시즌째 K리그 챌린지에 머무르고 있다. 19년 만에 생긴 K리그 기업 구단은 그렇게 관심에서 멀어졌다. 그와 동시에 김영광의 이름도 팬들의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서울 이랜드 팬들이나 K리그 챌린지에 참가하는 팀의 팬들만 “김영광이 서울 이랜드에서 뛰고 있다” 정도로 알고 있었다.

그동안 서울 이랜드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그들이 기대했던 승격이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자 마틴 레니를 떠나보냈다. 2017년이 되자 박건하 감독도 사임했다. 김영광과 함께 조명받았던 조원희, 김재성이 연달아 팀을 떠났다. 나이가 어린 신인 선수들을 이끌어줄 선배들과 감독이 차례차례 팀을 떠났다. 김영광만 덩그러니 남았다.

서울 이랜드는 어수선한 팀 분위기를 추스르기 위해 2017년 한만진 대표이사를 선임했고 김병수 감독을 영입하며 새 출발을 다짐했다. 영남대를 강호로 변모시킨 그의 능력에 많은 이들이 기대를 걸었다. 김병수 감독이 서울 이랜드를 승격시킬 것이라 믿었다. 동시에 김영광의 부활 신호탄도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많은 이들이 김영광을 향해 “2부 리그에서 뛰기에는 아까운 선수”라고 말했다.

그는 최후방에서 선수들을 지켜보고, 지켜주고 있다 ⓒ 서울 이랜드FC 페이스북

그는 서울 이랜드라는 팀을 쭉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2017년도 서울 이랜드는 쉽지 않았다. 프로 무대에 첫발을 내디딘 김병수 감독은 안산과 성남을 제외한 다른 팀에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모두가 김병수 감독을 ‘전술의 천재’라고 했지만 선수들에겐 그의 전술이 어렵게만 느껴졌다. 다른 팀들도 서울 이랜드의 패스 게임을 경계했지만 정작 중요한 공격진들의 득점이 터지지 않아 김영광에게 가해지는 부담이 점점 늘어났다. 실점으로 인해 이겨야 할 경기를 비기고 비겨야 할 경기를 지는 경우가 많았다.

서울 이랜드의 부진은 9경기까지 이어졌다. 서울 이랜드는 지난 5월 29일 안산 원정에서 승점 3점을 거둔 이후 계속 승리가 없었다. 심지어 홈 승리는 3월 26일 안산을 상대로 거둔 1-0 승리가 전부였다. 김병수 감독뿐만 아니라 선배로서, 주장으로서 김영광의 마음도 무거웠다. 자신이 끝까지 실점하지 않고 지켰다면 이길 수 있었던 경기들이 생각났다. 팀의 패배를 자신의 책임으로 생각했다. 팀에 승리를 안겨주고 싶었다.

그리고 지난 12일 서울 이랜드는 마침내 9경기 연속 무승 고리를 끊고 10경기 만에 승리를 거뒀다. 그것도 K리그 챌린지 3위를 달리고 있는 부천을 상대로 4-1 대승을 거뒀다. 그가 서울 이랜드 유니폼을 입고 뛴 101번째 경기였다. 경기 후 만난 김영광의 표정에는 기쁘고 즐거운 감정과 함께 울컥하는 감정도 느껴졌다. 김영광은 “팀이 하나가 됐다. 감독님이 원하는 전술을 선수들이 이해하고 뛰었다. 주장으로서도, 선배로서도 뿌듯하다”라고 이날 경기 소감을 밝혔다.

정말 오랜만에 거둔 승리였다. 김병수 감독도 “승리하는 게 이렇게 어려울 줄 몰랐다”라고 솔직한 심정을 밝혔다. 팬들이나 선수들 일부는 “김병수 감독의 전술이 선수들에게 너무 어려운 게 아니냐”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영광의 관점은 조금 달랐다. 김영광은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라며 운을 띄운 뒤 “선수들이 어렸을 때부터 해오던 축구로 프로까지 진출했다. 감독님 축구에 적응하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영광은 재밌는 표현을 했다. “선수들이 본인의 습관을 잘 버리고 있다”라고 말했다. 관찰자 같은 발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최후방에서 골문을 지키며 전방에서 뛰는 선수들을 전부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전반전 이후 감독님 지시 하나로 선수들이 변했다”라고 말하며 그가 느낀 점을 설명했다. 그는 “이전에는 선수들이 공이 오고 나서 행동하는 경향이 있었다. 오늘은 공 없을 때 움직임이 좋았다”라고 전하며 “감독님이 전반전 이후 ‘크로스가 올 때 미리 예측하라’라고 지시했다. 그랬더니 정말 선수들이 그렇게 뛰더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감독님도 마음고생이 많았을 것이다. 골키퍼로서 실점하면 패배로 이어질까 불안했는데 오늘은 네 골이나 넣어서 부담도 없었다. 뒤에서 좀 더 버텨주면 계속 좋아질 것이다. 전민광, 김연수도 부상에서 회복했고 조향기 등 다른 선수들로 인해 수비 폭이 넓어져서 수비도 단단해졌다”라며 팀의 긍정적인 면을 부각했다. 그는 주장으로서 골문을 지키며 팀을 쭉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이날 승리 비결에 “난 오늘 별로 할 게 없었다”라고 말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는 “할 수 있다”라는 ‘끈 하나’를 놓지 않았다 ⓒ 서울 이랜드FC 페이스북

그가 놓을 수 없었던 ‘끈 하나’

그의 발언에는 어떤 의지가 있었다. 그는 김병수 감독의 마음고생을 걱정했지만 그도 잘나가던 국가대표 골키퍼였다. 그런 그가 실점으로 팀 승리를 챙기지 못할까 봐 불안에 떨었다.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잊었다. 그도 마음고생이 심했을 것이다. 그는 “나도 사람인지라 마음고생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라며 솔직한 심정을 고백했다.

서울 이랜드에서 뛴 100번째 경기에도 성남 박성호에게 실점하며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어쨌든 무사히 100경기를 출전한 그에게 101번째 경기인 부천전을 앞두고 구단이 축하 행사를 제안했다. 행사에는 그의 아내와 두 딸도 함께했다. 김영광도 가족에게 승리를 선물하고 싶었을 것이다. 골키퍼로서 후배들에게 승리를 부탁할 만도 했다.

그러나 그는 “선수들에게 승리를 부탁하고 싶었지만 하지 않았다”라며 “선수들이 부담을 가질 것 같았다”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팀 동료들은 김영광의 속마음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듯이 “영광이 형을 위해 이 경기 꼭 이기자”라고 외쳤다. 김영광은 “누가 그랬는지 정말 모르겠다”라고 멋쩍게 말하면서도 “선수들은 다른 때보다 열심히 뛰었다. 수비수들도 몸을 날리며 공을 막았다. 너무 고마웠다”라며 감동에 젖었다.

동료들의 몸을 던지는 투혼에 힘을 얻은 김영광은 주저앉지 않았다. 그럴 수 없었다. 그는 “지금까지 ‘할 수 있다’라는 ‘끈 하나’를 놓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경기 내용이 계속 나빠지면 자신도 포기했을 텐데 경기를 치를수록 내용이 좋아진다고 느꼈다. 더 좋아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고 한다. 김영광은 “아직 리그 일정이 많이 남았다. 축구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끝까지 희망을 품고 한다”라며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그는 팀의 부진 속에서도 꿋꿋하게 100경기, 101경기를 치렀다.

그는 자신의 100경기 출전 보도자료를 접하며 악플에 대응한 사연을 전하기도 했다. “솔직히 악플을 보면 마음은 상한다”라며 심경을 밝힌 그는 “누가 댓글로 2부 리그 팀에서 100경기 뛰면 뭐하냐고 하더라. 그 댓글을 보고 처음으로 포털 사이트에 댓글을 달아봤다”라고 전했다. 악플을 향한 그의 대응법은 ‘선플’이었다. 그는 “댓글도 관심이고 기본적으로 그분도 축구 팬이다. 팬들 마음을 돌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긍정적으로 다가갔다”라며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고 있으니 끝까지 응원해달라고 했다. 그래도 댓글 다니까 선수가 직접 댓글도 다냐며 나중엔 응원해주셨다”라고 밝혔다. 그는 팬들의 부정적인 반응에도 “프로 축구 선수라면 겸손하고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라고 밝히며 “악플러들도 진정한 축구 팬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고 전했다.

그는 도전 끝에 있는 영광을 향해 걷고 있다 ⓒ 서울 이랜드FC 페이스북

그는 ‘꽃길’아닌 ‘글로리 로드’를 걷고 있다

김영광은 프로 최고의 자리에서 프로 최하위까지 경험했다. 그런 김영광은 대전에서 뛰고 있는 김진규, 부천에서 뛰고 있는 김형일보다도 2부 리그에 먼저 발을 디뎠다. 그의 경험은 앞으로 K리그 챌린지에서 선수 경력을 이어가고 싶어 하는 선수들에게 큰 자산이 될 수 있다. K리그 챌린지로 향하는 유명 선수들에게 조언해줄 수 있냐는 기자단의 요청에 그는 “꼴찌가 무슨 조언을… 아, 꼴찌에서 탈출했나? 그럼 하겠다”라며 기자들을 웃겼다.

김영광은 “K리그 클래식에서 뛴 선수들은 대부분 경험이 많다. 반면 챌린지에는 프로를 처음 경험하는 신인 선수들이 많다.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 전수를 잘 해주면 후배들이 프로 경기에 임할 때 무섭고 겁나는 부분들을 채워줄 수 있을 것이다”라며 후배들에게 조언해주길 원했다. 그는 경험과 노하우에 대해 더 자세하게 말했다. “멘탈, 이미지 트레이닝 전달이 후배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먼저 다가가며 후배들을 돕길 바랐다. 그는 이어 “김형일도 워낙 잘하고 있다. K리그 챌린지는 다시 올라가기 위한 도전의 무대다. 다 같이 잘 도전해서 먼저 올라간 사람들에게 축하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그에게 K리그 챌린지는 말 그대로 도전이었다. 새로운 시작이었다. 그는 서울 이랜드로 이적하며 “내 모든 커리어는 없는 셈 쳤다”라고 말했다. 팀과 함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경기에 임했다. 지금은 K리그 클래식이라는 목표만 바라보고 있다. 그는 “아직 목표에는 다가가지 못했다”라고 말했지만 “도전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런 경험은 돈으로 살 수 없다. 선수로서도 성숙할 수 있는 좋은 경험을 하고 있다”라며 K리그 챌린지에서, 그리고 서울 이랜드에서 얻은 가장 큰 소득을 전했다.

그는 K리그 챌린지가 의미하는 바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선택을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고 했다. 모두가 그를 ‘실패자’라고 부를 때 그는 ‘도전자’로 변신했다. 도전자가 택한 무대는 K리그 클래식이나 해외 무대가 아닌 K리그 챌린지였다. 그리고 그의 도전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그가 걷고 있는 길이 모두가 바라는 ‘꽃길’은 아닐지언정 그에게는 분명 도전 끝에 있는 영광으로 향하는 길, ‘글로리 로드’가 틀림없다.

intaekd@sports-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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