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윤(오른쪽)은 현역 시절 거칠기로 유명한 선수였다. ⓒ울산현대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예쁘게 공을 차는 선수는 팬들의 사랑을 받는다. 이관우가 그랬고 윤정환이 그랬다. 반면 그라운드에서 상대 유니폼을 잡고 늘어지고 파울로 경기를 끊고 거기에다가 툭하면 카드를 수집하는 선수들은 팬들로부터 늘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쟤는 또 저러네. 저게 축구선수야? 격투지 선수지.” 하지만 이런 선수들도 다 감독들이 필요로 하니 경기에 내보내는 거다. 화려함과 스포트라이트는 테크니션의 몫이지만 욕을 먹으면서도 이런 거친 플레이를 마다하지 않는 선수도 때론 필요한 법이다. 오늘은 K리그에서 역대 가장 거칠었던 선수 7명을 꼽아봤다.

7위. 이한샘 (2012년~현재)

역대 K리그에서 경기당 경고가 가장 많은 이는 누구일까. 의외의 인물이 경기당 경고 비율면에서는 압도적인 1위를 지키고 있다. 바로 현재 수원FC 소속인 이한샘이다. 이한샘은 지금껏 133경기에 나서 무려 50개의 경고를 받아 경기당 0.38개의 카드를 수집했다. 터프한 수비수인 이윤표가 옐로우 카드 50개를 모으는데 206경기가 걸렸고 황재원은 196경기씩이나 나와 경고를 48장밖에(?) 못 받았는데 이한샘은 어마어마하다. 경기에 나와 경고를 받는 비율은 다른 선수들을 압도한다. 광주와 경남, 강원 등 늘 승격과 강등을 오가는 팀에서 수비수나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다보니 거친 플레이로 상대를 제압하는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 비율이라면 대기록 달성이 무난하지만 문제는 올 시즌 그가 수원FC에서 주전으로 나오지 못한다는 점이다. 100m 달리기로 치면 출발은 빨랐지만 뒷바람을 받지 못하고 있다.

K리그 최다 경고 100위 안에 있는 선수 중에 이한샘은 경기당 경고 비율로 따지자면 역대 1위인 선수다. ⓒ강원FC

6위. 정종선 (1985년~1998년)

1994년~1996년 사이 대표팀의 풀백으로 활약했던 정종선. 포항의 라데가 현역 시절 가장 독종으로 꼽았던 선수가 바로 그다. 아르헨티나 클럽 벨레즈 사스필드와의 친선 경기에서 경기 내내 정종선에게 밀착 마크를 당했던 벨레즈 선수들이 경기 종료 후 정종선을 잡으려 추격전을 펼쳤던 일화는 유명하다. 끈적한 밀착마크로 상대방의 진을 빼놓는 그의 플레이는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반전이 벌어졌다. 현역 시절 끈적함과 독종의 대명사였던 그가 지도자가 돼 '자율축구'로 언남고를 전국 최강으로 이끌었고 2013년에는 전국대회 3관왕을 차지한 것이다. 정종선 감독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애들을 반쯤 죽이는 줄 아는데 우리 애들이 그런 말 들으면 웃어요. 허허.” 물론 ‘자율축구’라고 해도 정종선의 언남고는 고등학생 중 최고의 인성을 자랑하기로 유명했다. 감독이 정종선인데 제자들 인성이 안 좋을 수가 있나. 현재는 한국고등학교축구연맹 회장님이시다.

5위. 김형일 (2007년~현재)

2007년 K리그에 입성한 김형일은 시한폭탄 같은 선수였다. 악의적이거나 지능적인 반칙을 하는 선수는 아니었지만 움직임 하나하나가 무서웠다. 그와 어깨 싸움을 하던 선수는 나가 떨어졌고 공중볼 다툼을 벌이던 상대 선수는 코뼈가 부러지기도 했다. 한 선수는 “지나칠 정도로 거칠다”고 할 정도였다. 안 그래도 무서운데 더 무섭게 보이려고 신인 시절에는 머리를 삭발한 적도 있다. 하지만 김형일은 데뷔 시즌에 29경기에 나서 경고 11장을 받으며 역대급 경고 수집 페이스를 시작했지만 이후에는 그래도 경고 수집을 자제하는 중이다. 지금은 경고를 많이 받는 선수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거칠고 터프한 플레이는 그대로다. 심지어 지난해 AFC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 상하이 상강과의 경기에서는 상대가 발을 높게 들어 골문으로 향하는 상황에서도 머리를 들이대며 막아내는 모습으로 투혼을 발휘하기도 했다. 거친 플레이와 투혼이 적당한 조화를 이루는 선수다.

K리그 최다 경고 100위 안에 있는 선수 중에 이한샘은 경기당 경고 비율로 따지자면 역대 1위인 선수다. ⓒ강원FC

4위. 최영일 (1989년~2000년)

몇 해 전 사석에서 만난 중국 국가대표 수비수 출신 리티에는 가장 먼저 이런 질문을 했다. “최영일은 지금 뭐하나.” 대학교 감독을 하고 있다고 답하자 리티에가 놀랐다. “왜 프로팀 감독으로 볼 수 없는 건가. 나는 선수 시절 그렇게 영리하고 터프한 수비수를 본 적이 없다. 얼굴만 떠올려도 겁이 난다. 당시 내가 격돌한 한국 선수 중 최고는 황선홍도 아니고 김주성도 아니었다. 최영일이었다.” 그리고 일본 국가대표 공격수 출신 미우라는 과거 한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지금까지 만나본 수비수 중에 나에게 최영일 만큼 집중 했던 선수는 없다. 경기 시작을 알리는 휘슬이 울리고 나면 어느새 사각형 얼굴의 선수가 내 옆에 찰싹 붙어 있다.” 최영일 만큼 주심과 부심의 눈을 피해 손까지 써가며 교묘하게 반칙을 잘 하는 선수도 없었다. 오죽하면 별명이 ‘반칙왕’이다. 축구는 발만 쓰는 게 아니라 손도 함께 써야한다는 걸 몸소 보여준 그는 266번의 K리그 경기에 나와 경고는 37차례만 받으며 몰래 반칙을 했다.

3위. 조성환 (2001년~현재)

현역 선수 중 가장 거칠고 터프한 선수로 다들 조성환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별명이 ‘미친개’다. 상대 공격수를 잡아 채고 퇴장을 받아도 할 말이 없는 상황에서 경고만 받고도 항의하는 모습에 상대팀 팬들은 분노한다. 특히나 조성환은 친정팀 수원삼성만 만나면 종종 이성을 잃은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지난해 9월 수원삼성전에서는 심판에게 과도하게 항의를 하다 5경기 출장 정지와 제재금 500만 원의 징계를 받기도 했다. 이게 처음이 아니었다. 조성환은 2008년에도 과도한 판정 항의 및 경기장 무단이탈로 6경기 출장 정지 및 600만 원 제재금의 징계를 받은 바 있다. 상대팀 팬들에게는 ‘타도 1순위’다. 하지만 우리 팀에 있을 땐 이보다 더 듬직한 선수가 또 있을까. 전형적으로 우리 편이면 좋은데 상대 편이면 화나는 선수다. 놀라운 건 거친 플레이에 비해 퇴장이 의외로 적다는 점이다. 259경기에 나서 퇴장은 딱 한 번 당했다. 더 반전인 건 그라운드 밖에서는 부끄러움을 타 한참 어린 후배들로부터도 놀림을 당한다는 거다.

K리그 최다 경고 100위 안에 있는 선수 중에 이한샘은 경기당 경고 비율로 따지자면 역대 1위인 선수다. ⓒ강원FC

2위. 김한윤 (1997년~2013년)

김상식은 현역 시절 무려 79차례나 경고를 받았고 최진철도 75차례 경고를 받으며 만만치 않은 저력(?)을 과시했다. 하지만 김한윤 앞에서는 다 수줍은 새색시일 뿐이요 ‘비폭력주의자’ 간디였다. 김한윤은 1997년 데뷔해 2013년 은퇴할 때까지 430경기에 나서 무려 143차례의 경고를 받으며 이 분야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선수로 남게 됐다. 김상식과 최진철의 경고 수를 합쳐야 김한윤을 겨우 넘을 수 있을 정도다. 김한윤은 2012년 부산 시절에는 36경기에 나서 무려 18개의 경고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선수 생활을 하며 딱 세 번만 퇴장을 당했을 정도로 카드 관리에 능하기도 했다. 무조건 거칠게 플레이하지만은 않았다는 의미다. 한편 김한윤의 최다 경고 기록은 앞으로 수십 년간 깨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현역 선수 중 터프하다는 평가를 받는 조성환(78개)과 김치곤(75개) 등이 김한윤의 기록을 깬다는 건 무리다. 매 경기 작정하고 나와서 경고를 받아도 김한윤의 기록은 못 건드린다.

K리그 최다 경고 100위 안에 있는 선수 중에 이한샘은 경기당 경고 비율로 따지자면 역대 1위인 선수다. ⓒ강원FC

1위. 박광현 (1989년~1999년)

1989년 K리그에 데뷔한 박광현은 1999년 현역에서 은퇴할 때까지 11년 동안 특유의 거친 수비를 바탕으로 '스트라이커 킬러'라는 별명을 얻었다. 1995년 챔피언결정전 2차전 당시 황선홍을 끈질기게 괴롭혀 경고누적 결장을 이끌었던 그는 3차전에서는 라데를 거칠게 대했고 결국 화를 참지 못한 라데가 박광현에게 백태클을 해 퇴장 당하고 말았다. 박광현은 거칠면서도 상대의 심리를 이용할 줄 알았던 선수였다. 일화 선수단과 공항에서 만난 라데는 다른 선수들과 전부 악수를 나눈 뒤 박광현을 보고는 “우이씨”라며 그냥 가버린 적도 있다. 박광현은 현역에서 물러난 뒤 취미 삼아 활약했던 K3리그 용인시민구단 연습 경기 도중에도 자신보다 20살이나 어린 대학생과 볼 다툼을 벌이다 상대방의 치아를 부러뜨려 여전함(?)을 과시했다. K리그 역대 최다 퇴장(5회) 기록 보유자인 박광현에 대해 허정무 감독은 이런 말을 한 적도 있다. “광현이 플레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파울이다.”

축구가 얌전한 선수들의 전유물이 될 수는 없다. 때론 거칠고 터프하게 상대를 몰아쳐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물론 이런 거친 플레이도 어디까지나 정당한 파울이 허용되는 범위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 비록 화려한 조명과 박수는 기교를 부리는 선수들에게 쏠리겠지만 누군가는 이런 궂은일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상식적인 선에서 상대를 거칠게 물고 늘어지는 터프가이들의 모습을 보는 것도 축구의 한 묘미다. 상대를 지독하게도 괴롭히면서 선은 적당히 지키는 선수들의 모습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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