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협회 정관 개정을 반대한 대한체육회 ⓒ 대한체육회 제공

[스포츠니어스 | 홍인택 기자] 대한축구협회(이하 협회)가 1일 오후 축구회관에서 임시 대의원총회를 열고 협회의 독립성을 위해 정관을 개정을 공식화했다. 협회는 이에 대해 "정부 및 외부 기관의 간섭을 철저히 배제하는 국제축구연맹(FIFA)의 규정에 따른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 소식을 접한 대한체육회의 반발이 거세다. 대한체육회 관계자는 "우리는 이슬람 국가나 스포츠 후진국과는 다르다"라며 "모든 절차가 자율적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나 대한체육회가 축구협회에 간섭한 적이 없다. 간섭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고 전했다. 대한체육회는 더불어 "축구 종목에만 예외를 둘 순 없다"라며 "회원으로서 지켜야 할 룰이 있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기존 협회 정관에는 회장을 포함한 협회 임원을 선출할 경우 대한체육회의 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다. 협회는 대한체육회의 지침이나 지시사항을 준수해야 하며 연도별 사업계획이나 예결산 등 주요 사항을 보고해야 한다. 협회 측은 해당 정관에 의해 FIFA가 요구하는 '독립성'이 부족한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고 판단해 이와 같은 결정을 내렸다. 해당 내용은 국내 저명한 메이저 스포츠 언론에 의해 보도됐다.

문체부 관계자의 입장이 난처해졌다. 문체부 관계자는 "섣불리 입장을 정하기가 참 어려운 상황이다"라고 전하며 "FIFA와 IOC(국제올림픽위원회) 간의 힘겨루기가 있다"라고 말했다. 문체부 관계자의 발언이 이 문제의 핵심이다. 협회의 '독립 선언'이 FIFA와 IOC 간의 '미니 파워 게임'이 된 셈이다.

FIFA-IOC 파워 게임의 역사

FIFA와 IOC는 오랜 시간 동안 서로의 권위를 위해 자존심 싸움을 했다. 월드컵 탄생 배경에도 두 단체 사이에 갈등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08년 런던 올림픽 당시 축구는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됐고 올림픽 축구는 다른 종목과 마찬가지로 아마추어 선수들만으로 대표팀을 구성하도록 했다. 그러나 몇몇 나라가 프로선수를 아마추어로 위장해 출전시켰고 좋은 성적을 거뒀다.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지자 FIFA가 "올림픽으로는 진정한 축구 세계 챔피언을 가릴 수 없다"며 1930년 우루과이에서 최초로 월드컵을 개최한다. FIFA가 중계권과 스폰서 시장의 확대를 토대로 조직 크기를 키우자 이를 지켜보던 IOC는 1974년 올림픽 참가자격 조건에서 아마추어라는 문구를 삭제하면서 사실상 '아마추어리즘'을 버리고 상업주의로 전환하게 된다.

2003년에는 IOC가 "올림픽에 출전하는 모든 종목 선수는 세계반도핑기구(WADA)의 규제를 따라야 한다"라고 선언했다. WADA는 금지약물 양성 반응을 보인 선수에 대해 2년간 국제대회 출전을 정지한다고 규정했다. 이에 FIFA는 "근력보다는 기술 위주인 축구에까지 일괄 제재할 수 없다. 사안별로 가려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두 조직간 합의가 도출되지 않자 IOC는 "축구를 올림픽에서 제외하겠다"며 으름장을 놨지만 FIFA는 "그러던가"로 응수했다.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이후 도핑에 관한 문제에서는 FIFA가 양보하는 모습을 보였다. FIFA는 2004년 5월 WADA의 규정을 수용했으며 이에 IOC도 FIFA의 요구를 일부 받아들이며 사안별 심사가 가능하도록 절충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당시에는 우리나라 남자축구대표팀이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당시 한국은 올림픽 본선 1차전 카메룬전에서 협회 엠블럼이 부착된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치렀다. 이에 대해 IOC가 불편함을 표시했다. FIFA는 IOC 측에 각국 올림픽대표팀이 자국 축구협회 엠블럼을 부착하도록 요청했으나 IOC가 거부했다. 그 결과로 우리나라 올림픽대표팀은 이탈리아와의 2차전에는 협회 엠블럼을 파란색 매직으로 칠하며 경기를 이어갔고 이어진 온두라스전이 되어서야 엠블럼 자체가 없는 새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치렀다.

IOC와 첨예한 대립각을 보여줬던 제프 블래터 전 FIFA 회장 ⓒ FIFA.com

FIFA 회장이었던 제프 블래터는 베이징올림픽부터 올림픽 축구 종목에 해당하는 와일드카드 제도를 폐지하고자 했다. 이는 당시 IOC 위원장이었던 자크 로게의 요청으로 유예됐다. 당시 FIFA 부회장이자 FIFA 올림픽 위원회 위원장을 겸하고 있던 정몽준은 블래터를 강하게 비판했고 결국 와일드카드 제도를 유지하는 것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IOC로서는 와일드카드 제도가 꼭 필요했다. 와일드카드 없이 23세 이하로만 치렀던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축구는 경기력 저조와 스타 부재로 인한 흥행 손해가 컸다. 블래터는 IOC를 만족하게 했던 와일드카드 폐지를 운운하며 IOC에 압박을 넣은 것이다. 블래터는 또한 로게의 올림픽 축구 연령제한 철폐 주장에도 정면으로 반박하며 "올림픽이 원하는 것을 해줄 수 없다. 올림픽은 제2의 월드컵이 될 수 없고 그렇게 되지도 않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처럼 FIFA와 IOC는 시시때때로 신경전을 이어갔다. IOC는 올림픽을 국가 대항전으로 인식했고 FIFA를 자신들의 산하단체로 취급했다. 반면 FIFA는 월드컵을 통한 중계료 수익, 대회 흥행 면에서 IOC에 아쉬울 게 없으므로 고자세를 취했다. 이에 대해 각종 언론과 체육계에서는 "IOC가 WADA 사건이나 유니폼에 축구협회 엠블럼을 지우는 것으로 자신들의 영향력을 과시하려 한다"는 해석을 주로 내놓았다.

대한체육회의 주장이 이상하다

IOC는 FIFA와 기 싸움을 벌이며 항상 "축구라고 특별 대접은 없다"라는 주장을 일관되게 내세웠다. 대한체육회도 이번 언론 보도를 통해 "축구협회에만 예외를 허용할 수 없다"라고 전했다. FIFA와 IOC의 대립 구도에서 나타났던 말들이 이번 협회 정관 개정을 통해서도 나타났다. 대한민국판 FIFA-IOC '미니 파워 게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협회의 정관 개정은 사실상 '독립 선언'이다. IOC '줄'을 잡고 있는 대한체육회의 간섭을 받지 않고 FIFA 측에 붙겠다는 것이다. 대한체육회는 "협회에 충분한 자율성을 부여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대한체육회가 강경하게 협회 정관 개정을 반대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대한체육회가 협회의 개정을 받아들일 경우 "IOC가 FIFA에 패배했다"라는 인식을 심어줄 가능성이 크다. 평창동계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대한체육회가 IOC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을 것은 분명하다.

대한체육회 관계자의 발언을 살펴보면 대한체육회는 협회를 명확하게 '산하기관'으로 인식하고 있다. '회원사'라는 표현과 자율성을 '부여'했다는 단어에서 그들의 인식이 드러난다. 그들의 발언은 "대한체육회는 대한축구협회보다 '위'에 있다"라는 뜻이다.

대한체육회 관계자는 자율성에 대한 근거로 협회의 인준, 승인 과정을 "비도덕적 인사나 행정에 대한 최소한의 견제 장치일 뿐 실제로 시행된 적도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실제로 시행된 적도 없는 장치를 굳이 정관에 넣을 이유가 있을까. 실제로 시행된 적이 없거나 혹은 시행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자율성을 부여했다면 해당 문구의 존재 이유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생각해보면 애초에 '임원 승인권'을 쥐고 있는 단체가 협회가 아닌 대한체육회인 상황에서 대한체육회가 협회에 '자율성'을 운운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아무리 대한체육회가 협회를 향해 "마음대로 뛰어 놀라"고 한들 대한체육회라는 거대한 울타리 안에 갇힌 협회는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 게다가 대한체육회는 이번 협회의 결정을 반대하며 파주 NFC와 스포츠 토토 기금을 볼모로 삼았다. 자율성을 허락한 단체를 향해 돈으로 협박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거 완전 말로만 듣던 '갑질' 아닌가.

대한체육회는 또한 "정치, 종교가 축구에 개입하는 이슬람 국가나 스포츠 후진국 사정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는 전혀 그렇지 않다"라고 말했다. 최순실 국정 농단 중심에서 김종 전 차관과 함께 하마평에 오르내리던 단체가 말한 것 치고는 꽤 재미있는 발언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재미있는 발언은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협회를 향해 "최순실도 뚫지 못한 단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임원 승인권'이 살아있는 이상 나중에 실제로 '스포츠 후진국' 같은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축구협회가 외부 권력에 의해 난도질당한 뒤에야 "그때 정관 개정을 밀어붙였어야 했어"라고 생각해도 때는 이미 늦은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IOC와 첨예한 대립각을 보여줬던 제프 블래터 전 FIFA 회장 ⓒ FIFA.com

협회 '독립 선언'이 자충수 되지 않으려면

협회 독립 선언에 대한 불편한 시선도 분명 존재한다. 가뜩이나 폐쇄적 집단으로 알려진 협회가 IOC보다도 FIFA를 선택한 것이다. FIFA 또한 '스포츠 마피아'의 불명예를 안고 있다. 협회를 향한 의심의 눈초리를 걷어내기 위해서는 협회 감사조직의 권한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협회의 인준, 승인 과정에 대한 투명성을 제시해야 한다. 비도덕적 인사나 행정에 대한 최소한의 견제 장치를 협회 감사조직에 위임하거나 상위기관이 아닌 독립적인 외부기관에 위탁하는 방법이 있다.

'현대축구협회'라는 오명 또한 벗어야 한다. 현대라는 튼튼한 방패는 외부 기관의 간섭도 막아주지만 독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정몽준, 정몽규를 비롯한 현대 관계자들의 외교, 정치력을 노하우로 흡수하되 이제 그들이 가진 폐쇄적 이미지를 벗어야 할 필요가 있다. 당장은 힘들겠지만 차후 대한체육회와 IOC에 떳떳하게 고개를 들 수 있어야 한다.

투명한 재정의 중요성은 언급할 필요도 없다. 협회가 독립 기관으로 출발할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의 재정 구조가 튼튼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주 수익구조인 후원사 수익의 비율과 액수를 늘려갈 것으로 보인다. 수익 규모를 키우는 과정이 깨끗해야 한다.

협회와 대한체육회가 일으킨 '미니 파워 게임'은 향후 FIFA와 IOC에까지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 정치, 권력 문제를 떠나 '축구'에 대해 더 깊은 고찰을 하는 단체는 분명 IOC보다는 FIFA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축구적 관점에서 협회의 결정은 옳게 느껴진다. 그들이 당장 대처할 문제는 여론이다. 평창동계올림픽 개최를 얼마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 정관 개정을 발표한 타이밍이 마음에 걸린다. 평창동계올림픽에 전국민적 관심사가 쏟아지고 있는 상황은 협회로서는 부담이 될 수 있다.

이 파워 게임의 열쇠는 문체부가 쥐고 있다. 그러나 문체부는 어느 한쪽의 편을 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FIFA와 IOC의 '밀당' 사례를 살펴봐도 그렇다. 일단 문체부는 "곤란하다"라며 난감해하고 있다. 문체부는 두 조직뿐만 아니라 FIFA와 협회의 조율도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만약 FIFA가 개입하고 이에 맞서 IOC도 개입한다면 '애들 싸움이 어른들 싸움으로 번지는' 모습이 나올 수도 있다. 문체부로서는 판을 키우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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