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조수혁은 2015년 큰 부상을 당해 재활에만 매달려야 했다. ⓒ프로축구연맹

‘슬기로운 축구’는 전직 K리그 선수 출신인 이슬기 SPOTV 해설위원의 공간입니다. 대구FC에서 데뷔해 포항스틸러스와 대전시티즌, 인천유나이티드, FC안양 등 다양한 팀에서 활동했던 그는 현재는 은퇴 후 SPOTV에서 K리그 해설을 맡고 있습니다. 선수 시절 경험과 해설위원의 냉철한 시각을 덧붙여 <스포츠니어스> 독자들에게 독특하고 신선한 칼럼을 전달합니다. -편집자주

[스포츠니어스 | 이슬기 객원 칼럼니스트] FC서울이 후반기 반등을 위해 이명주를 야심차게 영입했다. 이명주는 서울 데뷔전에서 전북을 상대로 박주영의 결승골을 어시스트하며 값어치를 증명했다. 그리고 이명주가 합류한 서울은 후반기 대도약의 기회를 만든 것 같았다. 하지만 이명주는 두 번째 경기에서 발목 인대 부상을 당하고 말았다. 시즌 막판에나 복귀를 할 수 있다는 진단을 받았고 현재는 재활 훈련 중이다. 경기 해설을 하다보면 선수들끼리 충돌하는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움찔할 때가 있다. 넘어져 괴로워하는 선수들을 보면 내 선수 시절의 부상 악령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이명주의 부상을 보고도 그런 느낌이었다.

4개월의 훈련과 개막전 그리고 10개월의 재활

K리그 팀들은 보통 12월에는 휴식을 취하고 1월부터 전지훈련을 시작한다. 하지만 2012년 시즌을 앞둔 대전시티즌은 달랐다. 2012년은 첫 승강제가 실시되는 해였고 내가 속한 대전이 유력한 강등 후보로 꼽혔다. 다른 팀보다 더 많이 준비해야 했고 2011년 12월부터 멕시코 전지훈련을 시작했다. 3월 시즌 개막까지 4개월 정도를 훈련에 매진했다. 2011년 시즌에 많은 경기를 소화하지 못한 선수들이 대거 영입돼 경기력이 부족한 선수들도 불만 없이 훈련에 매달렸다. 2012년을 계기로 다시 한 번 도약하고 싶은 선수가 많았다. 나 역시 2011년 포항에서 많은 경기를 소화하기 못해 그 어느 때보다도 이 시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훈련했다.

2012년 시즌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 전지훈련을 제주도에서 했다. 매일 하루에 훈련을 두 번씩 하면서 평소보다는 조금 무리하게 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훈련 도중 허리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처음에는 근육통이라고 생각해 조금 쉬면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통증은 점점 더 심해졌다. 그럴수록 욕심은 더 커졌다. 이렇게 4개월 내내 힘들게 동계훈련을 했는데 개막전에는 무조건 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아파도 참고 버텼다. 그리고 마침내 경남FC와의 개막전에 나섰다. 하지만 점프를 하고 착지하는 과정에서 다리가 이상했다. 다리가 올라가지 않아 도저히 뛸 수 없는 상황이었고 결국 참고 참다가 벤치 쪽에 교체 사인을 보냈다.

다음 날 병원에 가 MRI 검사를 받았는데 충격적인 결과를 전해 들었다. “디스크 파열입니다. 회복까지는 빠르면 10개월 정도 걸립니다.” “10개월? 회복까지 10개월?” 믿을 수가 없어 다른 병원 몇 군데를 가봤지만 다 비슷한 의견이었다. 동계훈련을 다른 팀보다 더 많이 하면서 4개월을 악착 같이 준비했는데 다 물거품이 됐고 10개월을 또 재활에만 매달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어떻게 준비한 개막전인데 이대로 시즌을 날릴 수는 없었다. 중학교 때부터 허리가 조금씩 아팠지만 조금 쉬면 괜찮아져 그대로 방치했었고 그게 누적이 돼 결국 터지고 말았던 것 같다. 2012년 7월 처음으로 허리 수술을 하게 되고 그 이후로 내 몸은 한계에 부딪히기 시작했다. 물론 지금 남자 구실은 잘 한다.

이명주는 복귀 후 두 경기 만에 부상을 당해 기나긴 재활에 돌입했다. ⓒ프로축구연맹

줄 수 있는 게 사골국밖에 없다

재활은 생각보다는 간단하다. 수술을 하게 되면 평소에 할 수 있던 동작을 할 수가 없는데 다시 평소의 동작으로 복귀시키는 거다. 그런데 이게 간단하지만 너무 괴롭다. 당시 대전에는 재활 전문 트레이너가 없어 팀 의무 트레이너가 병원을 알아봐 줬다. 그곳에 가 재활을 하는 방식이어서 알아서 집과 병원을 오가야 한다. 난 허리 수술을 해 일반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도 쉽지 않았고 그렇다고 운전을 해 이동하는 것도 너무 불편했다. 재활을 하러 가도 할 수 있는 게 많이 없다. 움직일 수 있는 동작 범위 안에서 스트레칭을 하는 게 전부다. 그런데 그냥 편하게 왜 집에서 하지 않느냐고 묻는 이들도 있겠지만 혼자 하기에는 너무나 힘들어 재활센터에서만 할 수 있었다.

한 시간 정도 이렇게 재활 운동을 하는 것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다. 그게 너무 괴로웠다. 하루 빨리 복귀하고 싶은 마음뿐이지만 간단한 스트레칭을 할 수 있기까지 2개월의 시간이 필요했다. 조금 걷고 쉬는 거 말고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해 괴로웠다. 책을 읽으려고 해도, 영화를 보려고 해도 이게 전혀 눈에 들어오질 않았고 편안히 쉬는 게 일이니 잠도 오지 않았다. 천천히 내 몸이 망가지는 느낌이었고 재활을 마무리 하는 데는 무려 10개월이나 걸렸다. 재활은 그저 시간과의 싸움이다. 내 노력도 정말 중요하지만 몸이 회복되길 기다리는 일이라 참 힘들다. 그리고 가까스로 복귀했지만 FC안양 소속으로 2016년 3월 개막 후 무릎이 아프기 시작했다. 이때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이젠 축구를 그만둬야겠구나.’

2015년 10월 인천 소속일 때 우리가 상위스플릿으로 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에서 김도훈 감독님은 유현을 빼고 골키퍼로 조수혁을 선택했다. (조)수혁이는 성남을 상대로 선방을 하며 좋은 활약을 펼쳤다. 그런데 후반 상대 선수와 충돌했고 결국 십자인대 파열로 5개월 재활을 하게 됐다. 백업 골키퍼로 활약하다 겨우 기회를 부여받은 시즌이었는데 수혁이는 이 경기에서 부상을 당하고 말았다. 이제 막 도약할 수 있는 정말 중요한 시즌에 부상을 당한 수혁이는 경기가 끝난 뒤 라커에서 눈물을 흘렸다. 고등학교 동문으로서, 선배로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사골국을 사주는 것 말고는 없었다. 수혁이는 7개월 후에서나 다시 그라운드로 돌아왔다. 다행히 수혁이는 지금 재활을 잘해 울산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명주는 복귀 후 두 경기 만에 부상을 당해 기나긴 재활에 돌입했다. ⓒ프로축구연맹

부상 털고 돌아온 선수에게 박수를

겨울이 되면 동료들과 휴가를 받아 스키를 타러 가고는 했다. 포항 소속일 당시에 스키장을 가려다가 김기동 형님께 여쭤봤다. “형님도 스키 잘 타세요?” 그러자 지금은 포항 코치로 계신 김기동 형님이 이렇게 말했다. “나는 축구하고 골프 말고 다른 건 안 해. 그러다 다친다.” 그 말이 너무나도 기억에 남는다. 김기동 형님이 K리그에서 필드 플레이어 중 가장 많이 경기에 나간 이유도 사소하지만 여기 있지 않을까. 이렇게 간단한 원칙이 김기동 형님을 위대한 선수로 만든 것 같다. 하지만 아무리 몸을 사리고 부상을 피하려고 해도 경기 도중이나 훈련 도중 당하는 부상은 어떻게 피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축구가 더 어려운 것 같다.

2007년 5월부터 11월까지, 2010년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2012년 3월부터 11월까지, 그리고 2014년 12월부터 이듬해 7월까지…. 아직도 잊을 수 없는 날들이다. 축구를 하면서 부상 당한 날부터 공식 경기 복귀까지 걸린 시간들을 나는 다 기억하고 있다. 선수가 축구를 할 수 없다는 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거였다. 나와 충돌한 선수를 탓하기도 하고 나의 판단을 탓하기도 한다. 그런데 가장 힘든 건 나 때문에 힘들어하는 가족의 모습을 보는 거다. 움직임이 가능할 때가 되면 몸에 있던 근육이 많이 빠져 그동안 운동했던 게 다 초기화된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부상을 털고 돌아오는 건 시간과의 싸움이고 나 자신과의 싸움이다. 이 칼럼을 보는 독자들께 부탁 하나만 하고 싶다. 부상에서 돌아온 선수에게 뜨거운 박수를 쳐주셨으면 한다. 재활이라는 기나긴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돌아온 선수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