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대 이동건은 축구를 계속하기 위해 공부를 해야했다. ⓒ이동건 제공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운동선수에게 부상은 적이다. 더군다나 가장 중요한 시기에 부상을 당하면 미래가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다. 고등학교 3학년, 대학교 4학년 선수들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이때의 장기부상은 축구를 그만두라는 것과 다를 게 없다. 한 번이라도 더 활약을 보여줘도 대학교나 프로팀에서 관심을 가질까 말까한데 이 중요한 시기를 부상으로 날리는 건 운동선수에게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그런데 이런 최악의 부상을 극적으로 이겨낸 한 선수가 있어 소개하려 한다. 수원대의 중앙 수비를 든든하게 책임지고 있는 이동건이 오늘의 주인공이다.

치명적인 부상, 그래서 시작한 공부

공릉중학교 1학년 때 축구를 처음 시작한 이동건은 꽤 주목받는 선수였다. 하지만 공릉중 김경수 감독은 축구만 시키지 않았다. 축구부 선수들도 철저하게 수업에 동참해야 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학교 축구부는 오전 수업만 받은 뒤 훈련에 매진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공릉중 선수들은 6교시까지 정상적인 수업을 다 받은 뒤 오후에 집중 훈련을 했다. 오후 3시 30분부터 딱 두 시간 정도만 집중적으로 축구에 매진했다. 이동건 역시 학교의 방침 때문에 축구와 공부를 다 해야 했다. 특히나 이동건은 국어 공부에 관심이 많았다. 공릉중학교는 시험 기간이면 아예 훈련도 하지 않고 시험에만 집중할 정도로 공부를 중시했다. 평균 성적이 70점 밑으로 떨어지면 김경수 감독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이동건은 공릉중을 졸업한 뒤 가락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선수 생활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 ‘열심히 해 좋은 대학에 진학하자’고 다짐했다. 그런데 3학년이 되던 2013년 2월 끔찍한 부상을 당했다. 추계고등연맹전에서 발목이 부러지는 큰 부상을 당해 곧바로 수술대에 오르게 된 것이다. 이동건은 가장 중요한 시기에 수술대에 누워야 했고 깁스를 한 채 목발에 의지해야 했다. 주위에서는 “끝났다”고 했다. 낙담한 이동건은 축구부에서 나와 스스로 전학을 택했다. 더 이상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도 크게 달라질 게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동건은 2013년 3월 새학년을 대진고에서 맞았다.

대진고에는 축구부가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동건은 축구를 계속하기 위해 축구부가 없는 학교로 간 것이었다. 이동건은 전학한 뒤 곧바로 공부에 매진했다. ‘공부를 해 축구부가 있는 대학에 가 입단 테스트를 보자’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목표를 잡았다. 이미 또래들은 대학의 진학 제안을 받았지만 이동건은 아무 것도 보여주지 못한 채 여름을 맞이했다. 대학교 스카우트 경쟁에서 이미 이동건은 지워진 선수가 됐다. 공릉중 김경수 감독 소개로 노원에 위치한 레인보우FC에서 클럽 축구를 경험하며 축구선수로서의 꿈을 이어가려고 했지만 쉽진 않았다. 아무래도 학교와 클럽 축구를 오가는 게 고등학교 3학년 입장에서는 힘겨웠다.

이동건은 극적으로 축구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이동건 제공

정시모집으로 대학에 가다

그는 2013년 9월부터 다른 고3 수험생들과 마찬가지로 책상에 앉았다. 함께 축구를 했던 친구들은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었지만 이동건은 책을 폈다. 갈 길이 멀었다. 축구에 집중했던 터라 공부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그래도 다른 운동부 선수들과 다르게 이동건은 기본적인 지식이 있었다. 중학교 시절 공부를 유난히도 강조하던 김경수 감독과 함께 했기 때문이다. 특히나 국어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고 취약한 영어 위주로 공부를 했다. 목표는 축구부가 있는 대학 체육교육과에 입학해 다시 정식 축구선수가 되는 것이었다. 물론 가락고에서 뛰던 그가 조용히 은퇴(?)한 뒤 공부에 집중하고 있다는 건 그 어떤 대학 축구부도 알지 못했다.

그 누구도 이동건을 기다리는 이는 없었다. 오로지 이동건은 자기 자신을 위해 조용히 공부했다. 그는 이 시기를 이렇게 떠올렸다. “오로지 축구를 다시 할 생각으로 공부에만 매진했어요. 공부를 해야 축구를 다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집중력도 높아지더라고요.” 이동건은 시간이 촉박해 문제집 위주로 공부를 했고 금방 친해진 주변 학생들도 그를 많이 도와줬다. 이동건은 다른 체대 입시 준비생들과 마찬가지로 체대 입시 학원도 다녔다. 지구력과 운동 능력에는 자신 있었다. 20m 왕복 달리기와 제자리 멀리뛰기, 윗몸 일으키기 등 체대 실기 과목에서 경쟁자들보다 좋은 능력을 보여줬다. 중학교 시절부터 운동장에서 뛰고 구른 결과였다. 이동건은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수학능력시험을 마친 뒤 가,나,다군 모두 축구부가 있는 학교에 원서를 넣었다. 수원대와 명지대, 그리고 인천대였다. 그의 마음은 오직 축구부에 가 있었다. 생각보다 수능 시험도 잘 풀렸다. 반드시 대학에 합격해 축구부에 들어가리라 다짐했다. 만약 진학에 실패하면 딱히 미래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이동건은 간절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이런 간절함이 통했던 것일까. 이동건은 극적으로 수원대에 합격했다. 학창시절 6년 가까운 시간 동안 축구를 해왔던 그가 공부를 해 정시모집으로 수원대 합격 통지서를 받고 수원대 체육교육학과 14학번 학생이 된 것이다. 하지만 이동건은 마냥 좋아할 수 없었다. 이건 절반의 성공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목표는 축구부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이동건은 극적으로 축구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이동건 제공

대학교 축구부 입단 테스트 받은 이동건

그는 공릉중 김경수 감독을 다시 만나 상황을 설명했다. “축구를 그만두고 공부를 해 수원대에 합격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축구부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그랬더니 김경수 감독이 수원대 체육부장에게 연락을 전달했다. “제자 중에 축구부 입단 테스트라도 받고 싶어하는 녀석이 있는데 한 번이라도 좀 기회를 달라”고 부탁했다. 이동건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입단 테스트를 받았다. 비록 수원대에 체육특기자 자격으로 입학하진 못했지만 정시모집 합격자 신분으로 당당히 입단 테스트에 응했다. 프로 무대도 아니고 대학교에서 이렇게 입단 테스트로 선수를 뽑는 건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런데 수원대 김한욱 감독은 이동건과 딱 두 번 훈련을 한 뒤 이렇게 말했다. “축구부로 들어와. 같이 해보자.”

기적과도 같은 순간이었다.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치명적인 부상을 당해 대학 진학도 사실상 포기해야 했던 선수가 공부를 해 대학에 가고 또 축구부에 다시 들어가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동건은 그렇게 다시 축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그는 명지대까지도 추가합격했지만 이미 약속한 수원대로 향했다. 남들은 이 상황이면 자연스레 축구를 포기했을 테지만 이동건은 운명을 스스로 개척했다. 그리고는 3년간 열심히 훈련을 하며 미래를 계획했다. 진로를 결정해야 할 4학년이 되면 많은 걸 보여주겠다고 다짐했다. 놀라운 일은 더 벌어졌다. 김한욱 감독은 이동건에게 주장 완장까지 맡겼다. 축구를 포기했던 선수가 주장이 됐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일이었다.

이동건은 이 힘든 시기가 외롭지만은 않았다. 그와 비슷한 경험을 한 친구가 한 명 더 있기 때문이다. 공릉중 시절 함께 축구 선수의 꿈을 키웠던 한 친구는 고등학교 때 부상을 당한 뒤 공부를 하며 하남FC에 속해 있다가 용인대 정시 모집에 합격했다. 그리고는 현재 K리그 챌린지 수원FC에서 뛰는 중이다. 바로 최원철이다. 이동건은 힘이 들 때마다 같은 아픔을 가진 친구를 보며 힘을 냈다. 같은 시기 이동건은 공부를 해 수원대로 진학했고 최원철은 용인대로 갔다. 이동건은 한 중학교에서 이런 선수가 두 명이나 나올 수 있었던 것에 대해 공릉중 김경수 감독에게 공을 돌렸다. “감독님께서 늘 공부를 중요시하신 게 큰 도움이 됐어요. 그때 그래도 공부를 조금이라도 했으니 이렇게 정시로 대학에 갈 수 있었죠.”

이동건은 극적으로 축구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이동건 제공

공부하는 선수를 키워야 하는 이유

그런데 4학년이 된 올해 2월 이동건은 또 한 번 좌절해야 했다. 동계훈련을 하다 무릎 내측 인대 파열이라는 큰 부상을 당한 것이다. 이동건은 진로가 결정되는 4학년이 되자마자 또 큰 시련을 겪게 됐다. 무려 4개월이라는 긴 시간 동안 재활에만 매달려야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피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포기할 수도 없었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과 마찬가지로 대학교 4학년 마지막 순간을 이렇게 허무하게 보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동건은 악착 같이 재활에 매달렸고 다시 주장 완장을 차고 돌아왔다. 그리고는 올해 첫 대회에 나섰다. 바로 현재 강원도 태백에서 열리고 있는 추계대학연맹전이 그의 올 시즌 첫 대회다. 중앙 수비수 이동건은 주장 완장을 차고 다시 그라운드에 들어섰다.

이동건은 어제(25일)까지 수원대가 치른 5경기에 모두 풀타임 출장했다. 든든하게 중앙 수비를 책임지며 주장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남부대학교와의 경기에서는 골까지 기록했고 그가 속한 수원대는 고려대와 광주대까지 제압하며 16강에 올랐다. 김한욱 감독은 이미 두 번이나 부상으로 좌절을 겪고 다른 선수들은 겪지 못한 고생을 하며 축구 선수의 꿈을 이어가고 있는 이동건을 믿는다. “워낙 우여곡절이 많은 선수다. 그래서 그런지 잔소리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 한다.” 축구를 포기할 뻔한 순간에 그 간절함을 담아 책상에 앉았던 그는 지금 그라운드에서 원 없이 뛰고 있다. 그리고 그의 한쪽 팔에는 주장 완장까지 채워져 있다. 2013년 그가 축구부를 떠나 일반 학교로 전학을 갈 때만 하더라도 상상할 수 없던 일들이 벌어지는 중이다.

공부하는 축구선수를 왜 키워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 여기 있다. 학창시절 내내 지독하게 운동에만 매달린 이들은 축구를 포기해야 하는 순간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그런데 공부도 중시하는 지도자와 함께 한 이동건은 위기의 순간을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참고로 김경수 감독은 현재 중등연맹회장으로 부임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노력하면 누구나 위기를 넘겨 이렇게 드라마를 쓸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이동건에게 진심으로 응원을 보낸다. 이동건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공부의 끈을 놓지 않게 해주신 공릉중 김경수 감독님, 그리고 축구를 계속할 수 있게 해주신 수원대 김한욱 감독님께 감사드립니다. 당장 진로에 대한 고민보다는 이번 대회에서 계속 이겨 8강, 4강에 갈 수 있도록 눈앞의 경기부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동건은 수원대의 믿음직한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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